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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Mar 09. 2023

어머 ! 혀끝에 멤도는 강렬한 뒤끗 뭐지~ 에스프레소

쓰다. 첫 만남이 그렇게 쓸 줄이야.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데미타세(demitasse)는 작은 커피잔이다. 이 쓰디쓴 커피는 꼭 이 잔에 마셔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덩치는 산만한 내가 앙증맞은 하얀 커피잔을 들고 '호로록' 마시니 아내가 '까르르' 웃는다. 사실 나는 스타벅스 같은 카페에서 마시는 것보다 믹스커피를 더 좋아한다. 직장에서 회식을 하고 난 후 그 고기 집 자판기 커피가 너무 맛있어 감탄을 연발한 적도 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우리나라에 출장을 왔다가 우연히 덕수궁 근처에서 400원짜리 커피 자판기를 마셨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한국에 올 때마다 일부러 그곳을 간다는 외국인도 있다.

을미사변을 겪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이 처음 마셨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는 서양에서 온 국물이라 하여 양탕국이라 했다. 어지럽고 혼란한 구한말 시대의 시름을 커피 한잔으로 달랬을 그를 떠올려 본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들어와 마시게 된 때는 6.25 이후 미군의 영향과 가혹한 노동 환경의 사회 분위기였던 1960년, 70년대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마시고 싶습니다.' 유명 배우 안성기가 나온 광고 문구의 감성을 담은 커피는 '맥심'이라는 대명사까지 만들었다.


지난여름 안목해변에 다녀왔다. 사계절 창 넓은 카페의 커피와 바다가 잘 어울리는 강릉 커피 거리는 언제나 운치가 있다. 커피 한 잔과 가을 해변의 푸른  하늘은 늘 소소한 행복을 주곤 한다. 질 좋은 재료를 쓰는 이곳 커피자판기도 다른 곳과 달리 맛있다.


특별한 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더 좋은 맛일 듯싶어'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처음 마셨을 때는 몹시 썼다. 하지만 깔끔한 뒷맛의 여운은 강했다. 역설적이지만 쓴맛에서 오는 기분 좋음이라 할까. 집으로 돌아와 에스프레소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면 혀끝에서 단맛이 맴도는 듯했다.


공복에 커피 한 잔은 '위산 분비를 촉진' 시켜 건강에 나쁘다고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믹스커피 한잔의 달달함을 맛보면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있어서 좋다.

삶에도 단맛, 쓴맛이 있다. 너무 단맛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할 때도 있지 않은가. 유튜브 방송에서 별안간 인기를 누리게 된 어떤 이는 과거 그의 행동으로 인한 유명세를 단단히 치르고 있다. 쓴맛을 맛본 후에 마음이 더 단단해질 때도 있다. 입시, 사업 실패, 취업 등 살다 보면 쓴맛 맛 볼일이 어디 한두 가지 이던가. 하지만 오히려 다음이라는 기회를 얻게 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나는 소소한 맛이 좋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 즐겁고,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마중 가는 것도 좋다. 4월의 봄날 아침 공원을 걷다가 보는 초록 새싹은 아직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울긋불긋 물든 가을 단풍나무와 어울리는 커피 향과 함께 햇살이 따뜻한 카페에 앉아 누리는 카페라테의 부드러움도 좋다. 달달한 아저씨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에스프레소를 마시게 될 줄이야. 진한 맛의 여운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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