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세규 Jul 18. 2023

나이도 어린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딸아이와 장보러 일찍 집을 나섰다. 국밥집에 들러 아침 식사를 했다. 24시간 콩나물 국밥집은 휴일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 손님들이 있었다. 조기 축구를 마치고 단체로 온 모양이었다. 등번호를 달고 있는 유니폼을 입은 중년의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나이 또래로 보였다.


콩나물 밥 2개와 김치전을 주문하고 뉴스를 검색하고 있다 보니 뒷자리에서 두런두런 대화 소리가 들어왔다. 


조기 축구회에서 일어난 일인 듯했다.


" 거 ~ 나이도 어린 사람이 그러면 안돼. A말이야. 50대 아저씨들을 그렇게 제치고 싶은가.. "


" 그러게 말이야 ~ 공을 넘겨주면 패스를 해야지. 혼자서 몰고 다니면 안 돼~ "


"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 여러 명이 볼을 돌려가며 기회를 만드는 거지. 우리보다 힘이 넘친다고 패스도 안 하고 혼자서 뛰어다니는 건 아니지. "


" 아니, 우리 경기가 무슨 타이틀을 건 대회라면 모를까. 다 같이 하는 조기 축구회에서 그렇게 플레이를 하면 안 돼. "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게 된 나는 대화의 첫머리에서 ' 꼰대 '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은어로 늙은이를 뜻하는 이 낱말은 왠지 답답하고 꽉 막힌 이미지를 가져온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도 어린 사람이 그러면 안돼~라는 서두의 말이 나와 비슷해 보이는 연배의 남자에게서 들리니 조금 귀에 거슬렸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보니 그의 말에 공감이 갔다.


50대의 형님들보다 체력이 월등한 30대의 젊은 A가 조기축구회에서 볼을 가지고 종횡무진으로 달렸던 모양이다. 남자의 말에 앞에 있던 등번호 13번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 그러게 말여 ~ 우리를 제치며 저만 신나게 달리더군. "


나머지 회원들의 표정을 힐끗 쳐다보니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눈치였다. 맞다. A는 형님들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운동을 해야 했다. 축구란 각자 맡은 포지션에서 서로협력하며 골을 넣는 스포츠가 아니던가. 동네 조기축구회라고는 하지만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함께 축구를 해야 했다. 그러나 A는 저 혼자 실력을 뽐내듯 달렸다. 


주문한 국밥이 나왔다. 뜨거운 김을 호호 불어가며 머릿속으로 30대의 나와 조기 축구회의 A가 겹쳐졌다.


나이가 들면 비로소 깨닫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알게 되며 ' 왜 그랬을까 '라는 부끄러움이 드는 일들 말이다. 회사 내의 업무를 서로 협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젊다는 이유였을까.. 몰아 부쳐 추진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옳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지라도 선배님들의 충분한 조언을 듣고 함께 해야 했다.

50대가 되어 형님들의 나이가 되어 보니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음을 직접 느껴보니 알겠다.


공을 쥐고 혼자서 달려가는 A가 한 때의 젊은 사람, 나였던 거다. 패스를 하며 동료들과 함께 하며 해야 했던 업무를 일방적으로 했다. ' 아 그때의 선배들은 내가 얼마나 미웠을지 ' 지금 생각해 보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픈 심정이다.


다만, 아쉬움이 한 가지 남는다. 그때 누군가 내게 '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라는 조언을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런 말을 들었다면 협력이란 의미를 좀 더 일찍 깨달았을 텐데 말이다.


조기 축구회의 남자는 A에게 ' 축구는 다 같이 패스하며 하는 거지 자네처럼 볼이 오면 혼자만 가지고 냅다 달리는 게 아니야 '라는 말을 직접 해주지 않고 뒷담화를 하는 걸까..


국밥집에서 우연히 듣게 된 조기 축구회의 A라는 젊은이는 수없이 많을 것 같다. 주위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혈기 왕성한 사람들 말이다. 


" 아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  "


뭔가를 생각하는 내 표정을 읽은 딸아이가 시계를 가리켰다. 짧은 시간, 조기 축구회의 A는 국밥집에 없었지만 어딘가에서 귀가 간지러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둥시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