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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Nov 08. 2023

여보! 한 번에 간을 맞추다니 참 대단하오.

요리초보 시절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이다.


" 미역국은 레시피대로 대충 재료 넣고 간만 맞추면 되는겨 ~ "


" 오래 끓여야 맛있지 ~ "


아내 말대로 정말 그렇게 해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이때만 해도 미역국은 누구나 해도 맛이 나오는 만만한 국물 요리인 듯싶었다. 그러나 맛은 있지만 뭔가 흉내 낸듯한 어설픈 맛이 늘 찜찜했다.


' 도대체 왜 그럴까? '


그랬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맛있게 끓이는 미역국은 노하우가 있구나 싶었다. 많이 해봐도 어딘가 허전하고 깊은 맛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어머니가 해주신 미역국의 맛을 찾았나 보다. 어머니의 요리는 참 이상했다. 재료를 g이나 스푼 단위로 정확하게 계량하는 것도 아니었다.  눈대중으로 대충 하는 것 같지만 그 맛은 얼마나 맛이 있던지...


눈대중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된다. 정확하지 않으나 간편하게 양이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사실 눈대중으로 경지의 맛에 오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눈대중으로 무언가를 잘한다는 건  수없이 많은 경험 했다는 의미다.


' 달인 '이라는 TV 프로를 보면 감각에 의존해 빵의 반죽을 일정하게 나누는 달인을 소개한다. 눈으로 어림잡아하는데 정확히 무게를 분할해서 맞춘다. 이 역시 한 분야의 달인들은 경험으로 기술을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었던 거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깊은 맛을 재현해 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방법을 다르게 해 봤다. 매번 들어가는 재료는 똑같았고 양도 비슷했다. 재료를 넣는 타이밍과 순서를 바꿔보기도 했다. 정말 맛있게 나오는 날도 있었지만 밍밍한 맛이 나오기도 했다. 미역국의 맛은 때에 따라 들쑥날쑥했다.


정말 맛있게 끓인 날에는 레시피와 요리방법을 메모해놓았다가 다음번에 사용했다. 그러나 똑같이 한다고 했는데 그저 그런 맛이 나왔다. 실패를 반복하며 미역국을 끓였다.


하지만 역시 많이 끓여보다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각이라고나 할까. 드디어 어머니 미역국의 깊은 맛을 찾았다. 어머니 미역국에 비교할바는 아니지만 미역국의 깊은 맛을 깨달았다. 비밀은 간 맞추기였다.


음식의 간 맞추기는 요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간은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간을 잘 맞추면 음식의 풍미를 더욱 살리고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내가 끓이는 미역국의 간은  물양에 따른 간장과 액젓, 소금, 다시다의 비율이 포인트다. 그러나 이 비율이라는 것이 어렵다. 집집마다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만의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소개한다. 뭐 그렇다고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1. 미역을 잘 사야겠지만 마트에서 파는 옛날 미역 4인분을 기준으로 미역을 물에 불린다.

(대략 30분 ~ 40분 정도 )


2. 국거리용 소고기를 볶는다. 한우를 사면 좋겠지만 약간 비싸다. 호주산 두툼하게 썰린 소고기도 좋다.

(핏기가 약간 남을 때까지 참기름을 한 숟가락 반정도 넣고 볶는다. 불조절은 강불이다.)


3. 소고기를 볶은 냄비에 불린 미역을 넣고 까만색이 변할 때까지 적당히 볶는다. )


4. 여기에 국 간장을  스푼 넣고 살짝 볶아준다.


5. 미역국이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넣고 끓인다. 3회 정도 나누어서 끓인다. 여기서부터가 어렵다. 눈대중으로 적당한 물양을 맞추기가 미역국의 맛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야 간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 ( 우리 집 식구들의 입맛 기준 ^^)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으로 할 수밖에 없다.


6. 3회 정도 끓였으면 다진 마늘을 크게 한 스푼 넣는다.


7. 멸치 액젓을 한 스푼 정도 넣는다.


8. 살짝 저어주면서 조금 있다가 소금 또는 소고기 다시다로  간을 맞춘다.  여기서도 물의 양의 조절처럼 경험에 의한 감각이 중요하다.


9. 불을 중 약불로 줄이고 15분 정도 끓인 후 불을 끈다.


미역국 끓이는 일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은 분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음식의 간을 제대로 맞춘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늘 미역국은 간을 딱 한 번에 맞췄다. 끓이는 과정을 어깨너머로 흠칫흠칫 바라보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 여보! 한 번에 간을 맞추다니 참 대단하오. "


" 한 가지 더 넣었지. 두 글자. 크크 "


한 손으로 하트 모양을  ❤️ 만들어 뿅뿅 날렸다. 내 어깨가 ' 으쓱으쓱 ' 둘이 함께 한바탕 웃었다.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온 딸은 ' 후루룩 ~ ' 미역국 마셨다. 눈이 똥그래지더니 딸아이가 말했다.


" 아빠가 끓인 미역국 중에서 최고로 맛있는 작품이 나왔어요 "


아빠의 요리 실력이 요즘 절정기에 다다랐다며 엄지 척에 칭찬 일색이었다.


" 정말? 아빠도 한번 먹어 볼까나... "


미역국에 밥을 말아 한 입 먹어보니, 음..  이게 웬일인가.. 맛있다. 마치 사골 국물 같은 깊은 맛이 다. 자화자찬. 내가 끓였어도 이렇게 맛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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