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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Jul 23. 2023

얼마 남지 않은 너와의 시간

한 여름  뙤약볕은 우리 차의 빛바랜 선팅을 우습다는 듯 가볍게 뚫고 들어온 지 오래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2학년인 둘째 딸보다 한 살 어린 나이인 SM3는 요즘 들어 이곳저곳 이상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아내가 멈칫하더니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듯 귀를 쫑긋한다.


" 여보,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


" 그래? 에어컨이 돌아갈 때 나는 소음이겠지. 차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려. "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차에서 내려 엔진이 있는 쪽으로 귀를 기울여본다.


" 부~ 웅, 지르르.. 지르르.. "


" 오 ~ 그러네.. 심상치 않은걸 "


삼성 자동차 정비소를 갔다. 직원이 내민 종이에 내 전화번호와 차 넘버를 적었다. 자동차의 증상을 알려주니 정비사는 일단 차를 들어 올려봐야 안다고 했다.


오래 타기는 탔다. 도로에서 종종 우리 차는 힘들어했다. 약간의 언덕을 오를 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에어컨을 고 달리면 숨을 헐떡거리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 3956 이 시죠? 정비를 해보니 에어컨 컴프레셔의 나사가 헐거워져 뭔가에 닿는 소리가 난 것 같습니다. 나사를 조여주니까 더 이상 아까와 같은 소리는 나지 않네요. "


다행히 큰 고장은 아니었다. 3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돌아왔다.


" 불안 불안하군. 시내 주행은 그럭저럭 하는데 고속도로에서 100km 이상을 달리면 수전증 있는 사람처럼 핸들이 떨려. "


" 차를 바꿀 때가 된 것 같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 글쎄.. 웬만한 차를 사려면 목돈이 제법 들 텐데.. "


큰아이 대학 등록금에 만만치 않은 둘째 아이의 학원비가 먼저 떠올랐다. 조금 더 타도 될 것 같은 마음과 큰맘 먹고 이번에 바꿀까라는 마음도 공존했다. 주위 사람들은 쉽게 차를 바꾸던데 우리는 왜 그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자동차의 수명은 어떻게 될까.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운전 습관이나 관리에 따라 많이 다르다. 주행거리를 기준으로 삼거나 출고 연도에 따라 자동차를 교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자동차의 수명을 어느 기준으로 잡아 측정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 차만 해도 그렇다. 2008년 산이긴 하지만 달리는데 아주 큰 문제는 없다. 소위 말하는 ' 자동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되지 '라는 말에 위안을 삼는다.


15년을 타다 보니 차체에 흠집이 많이 나있다. 어디서 긁혔는지도 모르는 상처투성이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끄러운 건 사실이다. 달리는데 지장은 없다 치지만 군데군데 녹이 슬어 보기가 불편한 곳도 있다.


그동안 참 많은 곳을 다녔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먼지방을 두루두루 돌아보곤 했다. 아무리 무생물이라 하지만 우리 식구의 발이 되어 함께한 시간에 정도 많이 들었다.


자동차 전시장을 가서 새 차를 둘러보고 나오니 우리 차가 어딘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찬밥신세가 되어 버렸다. 당장 바꾸기로 결정한 건 아니지만 주차장에 놓인 SM3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측은하기도 했다.


모든 생명 수명이 다하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지구상에 존재한다. 물질 또한 그렇다. 우리 차도 자동차로서의 역할은 다했지만 각종 부품과 철은 다른 차의 일부로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생을 다해도 기억 속에서 존재하면 그때까지 이별한 것이 아님은 추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막상 SM3와의 헤어짐은 15년 동안 함께 한 소중한 기억들이 마치 삶의 저편으로 넘어가는 듯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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