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이 잠든 아이의 숨결이 그러했으리라.

우리 두 딸

by 임세규


"우리 두 딸"



아이가 태어나 처음 본 엄마의 모습은 어땠을까..
최초로 숨을 쉰 공기와 바람과 하늘색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채 다음 해를 맞이했다. 큰 딸아이가 태어났다. 산통이 시작된 후 반나절만에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었다.

신생아실 유리창 건너편으로 보던 아이가 내 품으로 왔다. 간호사가 포대기를 두른 딸아이를 내게 안겨줬다. 공중에 '둥' 떠 있는 새의 깃털 같았다. 천사의 숨이 있다면 고이 잠든 아이의 숨결이 그러했으리라.


방 온도를 적당하게 맞춘 후 신생아 목욕 대야에 물을 받았다.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아내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멀뚱멀뚱 ' 바라보기만 했다.

''이렇게 목을 제일 먼저 손으로 대고, 아이가 놀라지 않게 가슴 위에 물을 살짝 적셔 가며 온몸을 담그는 거야.. ''

산후 조리로 오신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모성애란 그런 것이던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몸에 밴듯한 익숙함이 변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30년 전의 나를 씻기듯이 큰 아이를 잘 다루셨다.

퇴근 후 조그만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받치고 목욕을 시켰다. 말끔하게 단장한 녀석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이 목욕시키기에 서툴렀던 나는 점점 요령이 생겼다. 따뜻한 물에 젖은 수건으로 머리를 쓰다듬자 큰 아이도 '방긋' 웃었다. 제 엄마 뱃속과 비슷했는지 딸아이는 목욕 대야에 몸을 담그면 즐기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때 사용하던 목욕 대야는 10년을 더 썼다. 세 번의 이사에도 불구하고 늘 욕실 한쪽에 놓여 있었다. 둘째 딸아이가 네 살 즈음까지 대야에 물을 받아 목욕을 했다. 욕실에서 장난감을 동동 띄워주면 아이는 '히~'하고 신나 했다.


큰 딸과 둘째 아이의 나이차는 6년 터울이다. 선영이가 돌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을 무렵 아내는 임신을 했다. 병원에서 초음파를 해보니 임신낭이 보인다고 했다. 장모님께 제일 먼저 전화를 드렸다.

''그려~ 임서방 축하하네. 연년생도 괜찮으이. 첫째 키우는 김에 둘째도 언릉언릉 키우게나.''

일주일 후로 예약을 잡았다. 그러나 병원을 방문했을 때 우리 부부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한동안 '멍' 하고 있었다.

''아기집은 있는데 그 속에 아이가 없어요. 태아의 형태가 자리 잡아야 하는데.. ''

아내는 애써 덤덤한 모습을 보였고 눈물을 참았다. 결국 아내는 수술을 했다.


큰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방바닥에서 처음 '뒤집기'를 할 때 저도 신기했는지 눈이 동그래진 아이의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선영이가 세 살 무렵이었다. 아내와 상의를 했다.

''큰 아이가 어른이 되면 외롭지 않을까?''

둘째 아이의 임신 계획을 세웠다. 산부인과에 갔다. '축하한다'는 의사의 말에 날아갈 듯 기뻤다. 하지만 우리는 또 한번 좌절을 했다. 일주일 후 다시 초음파를 했다.

''아기집과 아기가 있는데 성장을 하지 않아요. 수치 상으로 일정한 크기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군요. 일주일 후에 다시 한 번 검사해봅시다.''

아내는 두 번째 수술을 했다. 새벽녁 옆으로 돌아 누운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안 아팠겠지.. 아내는 우리 아이가 될 수 있었던 그 점 같은 조그만 생명을 걱정했다. 나는 아내를 말없이 '꼭' 안아 주었다.


큰 딸아이가 다섯 살이 됐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선영이가 동생 없이 혼자 지내는 게 싫어요.''

네 번째 임신 전 아내가 말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건강하게 태어났다. 정기 초음파 검사를 하는 날 담당 선생님이 말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대퇴부의 길이가 크네요. 키가 클 것 갈아요.''

실제 가영이의 키는 초등학생의 평균치를 넘었다.

우여곡절을 겪고 두 번의 낙태 수술 후 둘째 아이가 우리 곁으로 왔다. 선영이는 고 3이 얼마 남지 않았고 가영이는 이제 곧 초등학교 6학년이 된다.


어제저녁 아내와 아이들이 안방에서 한참을 '히히덕' 거리더니 내게 ' 카톡 '을 보냈다. 깜빡하고 아침 출근길에서 보내준 '동영상'을 봤다. 둘째 딸아이가 무선 이어폰을 끼고 팝송을 따라 부르며 제스처를 하는 모습이었다.

''예~ 예~ 예~ 딩가딩가~ ''

기타 간주를 흉내 낸 모양이다. 얼마나 웃기 던 지 배꼽을 꽉 쥐어야 했다. 가영이는 아빠, 엄마 등 긁어주기 선수다. 그 녀석 손을 거치면 '시원하다. 정말 시원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삼신할머니께서 엄마, 아빠에게 커다란 시련을 주시더니 가영이를 보내시려 그랬나 보다. 눈치도 빨라 어린아이 답지 않게 제 할 일도 '척척' 해내는 둘째 아이.

''아빠~ 점심 먹었어? 뭐하고 먹었어?
아빠~ 언제 와? 아빠~ 같이 가~ ''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 '껌딱지' 라는데 우리 집 둘째 가영이는 아빠 '껌딱지' 로도 불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 2병의 아이를 대할 때 '욱' 하고 올라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