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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Apr 02. 2024

' 강민주의 들밥 ' 에서 엄마의 손맛이 되살아났다.

주말에 출근을 하는 아내의 직업 특성상 우리 부부는 함께 할 시간이 늘 부족했다.

둘이서 궁리를 하다가 이제는 제법 아이들도 컸으니  한 달에 한 번씩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에 변화를 줬다. 나름대로 활력소를 얻었다. 평일은 차도 막히지 않고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다. 맛집을 찾아 여유로운 점심 식사를 했다. 3월은 여주를 거쳐 이천을 다녀왔다.

느지막이 여유 있게 아침을 맞이했다. 호텔 방의 커튼을 걷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왔다. 확 트인 남한강의 전망에 황포돛배 선착장이 보였다.

''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

" 글쎄~  이천은 쌀이 좋기로 유명하잖아. 밥만 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데.. ''

맛집을 검색했다. ' 강민주의 들밥 ' 집이 눈에 들어왔다.

" 여기가 좋겠어. 간판에 자기 이름을 걸었다는 건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뜻이 들어있지. 대부분 반찬이 정갈하고 맛있더라고. "

" 어디 보자. 음.. 유명하네~ 허영만의 식객에서 소개된 집이야. "

지하 주차장을 나왔다.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자동차 앞유리에 송골송골 떨어지는 빗방울이 싱그러움으로 다가왔다.

식당 주차장이 꽤 넓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차들이 많았다. 20분 정도 대기를 하고 들어갔다. 대표 메뉴인 들밥과 보리 굴비를 주문했다. 놋그릇에 담긴 반찬들이 깔끔했다.


장사가 잘 되는 집은 회전율이 좋게끔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장 앞에서 인원수와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몇 번째 순번인지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왔다. 메뉴도 중구난방이 아닌 단순하게 메인 음식에 집중했다. 반찬들은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데 쟁반을 받쳐 음식을 나르는 직원이 한 번에 수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찬과 추가 밥은 얼마든지 리필할 수 있도록 셀프바도 만들어 놓았다. 돌솥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었다. 반찬들이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재료의 특성을 살린 맛이 났다. 음식의 간은 아무나 잘 맞추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경험에 의한 노하우이기도 하고 그만큼 요리 재료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본 결과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 어때? "

" 괜찮아. 맛있어. 예전에 엄마 손맛이 느껴지는데.. "

"맞다. 맞아. 도라지 무침, 고추절임, 나물 무침이 엄마가 해준 반찬 같았어. "

"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 거야. 동네 친구들과 하루종일 쏘다니며 해 질 녘 까지 신나게 놀다가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지 "

"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서 집에 갔는데 엄마가 난리 난 거야. 아침에 나간 녀석이 저녁에 들어오니까 하루종일 노심초사 했던 모양이야. 엄마는 ' 어딜 갔다가 이제 오냐 ' 며 안도의 표정을 지으셨어. "

"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어서 실시간으로 위치를 알 수도 없는 시절 엄마는 하루종일 보이지 않는 아들 걱정에 불안하셨던 거야.   "

" 배고프겠다며 한 상가득 밥을 차려 주셨는데 그때 먹었던 반찬들이 얼마나 맛이 있던지 지금 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네. "

" 엄마는 재료 본연의 맛을 참 잘 살리셨어. MSG가 들어가지 않은 자연스러운 맛이었지. "

계산대 앞에서 반찬을 담아 팔고 있었다. 아내는 요모조모 살펴보더니 4팩을 샀다.

엄마의 손맛을 잊고 살아왔다. 결혼 후 아내가 해주는 반찬들에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엄마는 몇 해 전부터 김장을 당신 드실 것만 소규모로 하셨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신 이후로 이제는 살림을 거의 내려놓으셨다. 


누나가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있다. 한편으로 안심되지만 한 해 두 해 갈수록 건강이 걱정된다.

엄마의 반찬이 유명한 맛집과 견줄 정도로 맛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반찬투정을 왜 했는지 어리석었다. 엄마의 손맛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엄마의 손맛에는 가족을 위한 희생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몰랐다.


세상 모든 음식 중 가장 으뜸은 엄마의 손맛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그 맛은 단순한 요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건 엄마품의 따뜻함과 향수를 불러오는 특별함이다.


엄마의 손맛은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맛이든 그 자체로 완벽하다. 엄마의 김치찌개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의 맛을 가져다준다. 엄마의 젊음은 팔순의 노인이 되었고 손맛은 예전 같지 않지만 어릴 적 갓 지은 밥 위에 올린 김치찌개 한점 엄마의 손맛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여행 중 방문한 ' 강민주의 들밥집 ' 에서 어릴 적 먹었던 반찬들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행복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엄마의 손맛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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