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 시 소개 *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는 시인 함민복의 대표작입니다. 1980년 시집《갯벌》에 발표된 시 입니다. 이 시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중국집 부부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는 작품입니다.
라면을 먹는 아침 / 함민복
프로 가난자인 거지 앞에서 나의 가난을 자랑하기엔 나의 가난이 너무 가난하지만 신문지를 쫙 펼쳐놓고 더 많은 국물을 위해 소금을 풀어 라면을 먹는 아침 반찬이 노란 단무지 하나인 것 같지만 나의 식탁은 풍성하다 두루치기 일색인 정치면의 양념으로 팔팔 끓인 스포츠면 찌개에 밑반찬으로 씀바귀 맛 나는 상계동 철거 주민들의 눈물로 즉석 동치미를 담그면 매운 고추가 동동 뜬다 거기다가 똥누고 나니까 날아갈 것 같다는 변비약 아락실 아침 광고하는 여자의 젓가락처럼 쫙 벌린 허벅지를 자린고비로 쳐다보기까지 하면 나의 반찬은 너무 풍성해 신문지를 깔고 라면을 먹는 아침이면 매일 상다리가 부러진다
* 시 소개 *
라면을 먹는 아침은 두루치기 일색인 정치면의 양념으로 끓인 스포츠면 찌개와 씀바귀 맛나는 상계동 철거 주민들의 눈물로 담근 즉석 동치미, 그리고 매운 고추까지를 상상 속에서 펼쳐내는 시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풍성한 아침 식사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삶의 맛을 노래합니다.
* 시인을 소개합니다 *
함민복 시인 (1952년 ~ )은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으로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따뜻한 시선과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시들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꽃바람", "바람소리", "어둠", "산"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