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엇에 놀라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걸까

by 임세규

➡️ <순천 박가네 소인배>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기억과 연결하며 존재의 슬픔을 깊이 있게 응시하는 시에요.


언니의 식당을 찾아온 깡마른 노숙자의 모습에서 그 이면에 숨겨진 삶의 상처와 굴곡진 세월을 따뜻하고도 서늘한 시선으로 읽어내는 작품입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맥이 잡혀 성장이 멈춰버린 영혼의 고통을 '우물'과 '피멍' 등의 이미지를 통해 시각화하며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드러내고 있어요.


꽃이 지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도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짊어진 채, 하루치의 밥에 의지해 삶을 견뎌내는 존재들의 비애를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순천 박가네 소인배 / 박은주

아직은 이른 저녁 언니의 식당으로 노숙자가 밥을 얻으러 왔다 나무 등껍질처럼 깡, 말라붙어 찌그러진 밥통 속으로 언니는 하얀 쌀밥 덩이를 밀어 넣었다

그는 누구였을까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내 나이 아홉 살, 어린 그 아이처럼 우물에 빠졌던 순간의 두려움이 지워지지 않아 우물 속을 가없이 떠도는 걸까

내 나이 열아홉 살, 가여운 그 소녀처럼 끔찍했던 순간의 종말을 뒤집어쓰고 어디선가 혼자 살아남은 사람일까

체증이 있는 자리가 자라지 못해 그 순간에 맥이 잡혀, 그 순간에 심이 박혀 그 자리에서 떨고 있는 걸까

넘어질 때마다 피멍으로 맺혀
어떤 마디는 벙어리가, 어떤 마디는 귀머거리가 되어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걸까

맥문동 꽃이 지고 있다
목덜미로 흐르던 물줄기 씨앗에 담으며 그 꽃 지고 있다 지는 꽃 받으며 노숙자는 다시 밥을 얻으러 왔다


그는 무엇에 놀라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걸까



어느 저녁, 해가 넘어가기 전 어둑어둑한 시간에 노숙자가 밥을 얻으러 식당으로 들어왔습니다. 시인은 노숙자를 보며 그의 과거와 현재를 상상하고, 그의 삶에 대한 연민에 마음 아파합니다.


첫 연의 시어들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직은 이른 저녁 > 노숙자가 아직 저녁이 되기 전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식당에 찾아왔습니다.

언니의 식당 > 주인의 친절함을 암시합니다.

등껍질처럼 깡, 말라붙어 찌그러진 밥통 속으로 > 노숙자의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표현합니다.

하얀 쌀밥 덩이 > 노숙자에게 주어지는 밥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이렇듯 시어 하나하나에 담긴 뜻을 해석하다 보면 시가 참 재미있어지는군요. 시적 화자를 찾아 그의 생각을 유추하고 상상해 보는 재미라고 할까요.

2 ~ 5연은 자신이 겪은 과거의 상황을 노숙자에게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그가 암울한 현실에 있음을 알 수 있군요. 그러나 6연에 반전이 있습니다. 맥문동 꽃이 지고 있지만 노숙자는 희망을 씨앗에 담습니다. 꽃이 지고 있지만 그는 꽃을 받습니다. 살아내기 위해 밥을 얻으러 다시 갑니다.

' 순천 박가네 소인배 ' 는 노숙자의 삶을 통해 소외 된 사회적 약자의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노숙자의 비참하고 어려운 삶을 묘사하면서도, 그의 삶에도 아름다움과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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