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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Jul 05. 2024

인생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다면..

인생을 스스로 마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뉴스를 검색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기사 내용이 있었어요. 5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똑같은 시간에 세상을 떠난 이야기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네덜란드인 파버(70)와 엘스 반 리닝겐(71)입니다. ' 유치원서 만나 50년 해로한 부부, 한날한시 세상 떠난 사연 ' 뉴스 제목만 보면 마치 사고로 함께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나 이들 부부는 삶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운동선수와 코치, 사업으로 생을 살아온 남편 얀은 허리 수술을 했지만 근본덕인 치료가 되지 않아 큰 고통 속에 살아왔습니다. 많은 약을 먹다 보니 부작용을 겪으며 절망적인 나날을 보냈어요. 한편 아내 엘스는 교사로 은퇴를 했고 치매진단을 받았습니다.


부부는 남은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얀은 진통제를 먹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엘스는 과거의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주어진 시간들이 어떤 삶으로 바뀌게 될지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고심 끝에 부부는 안락사를 결정했습니다. 부부동반 안락사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얀과 엘스는 더 이상 남은 인생을 고통 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는 안락사와 조력 사망이 합법적인 나라입니다. 안락사는 12세 이상 불치병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경우, 환자 본인의 명확한 의사 표현, 의료진의 엄격한 심사·승인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고 하네요. 조력 사망은 의식이 있는 성인 환자가 승인 후 환자가 직접 약물을 복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현재 네덜란드 연간 사망자의 약 0.6%가 안락사 또는 조력 사망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안락사·조력 사망 사례는 암, 신경 퇴행성 질환 등 불치병 환자들입니다. 최근에는 정신 질환 환자의 안락사·조력 사망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안락사는 오래전부터 윤리적, 사회적인 논쟁이 되어 왔습니다. 사망허용의 기준을 명확히 잡는 것도 어렵고, 존엄사에 대한 법적인 해석이 모호해서 사법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어요. 또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라 안락사를 할 수 있게 되면 불평등을 불러오게 됩니다. 안락사는 종교와 문화적 가치관에 따라 크게 의견이 갈리는 민감한 문제예요.




제가 만일 얀과 엘스라면 남은 인생을 육체적 고통과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를 앓아가며 살아야 할지, 안락사를 하고 싶을지 생각해 봅니다.


우선 제 심정은 절망, 두려움, 분노, 슬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심리 상태일 겁니다.


치료로도 완화되지 않는 극심한 통증은 제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고, 매 순간을 고통스럽게 만들겠지요. 이는 단순한 신체적 고통을 넘어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져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질병이 진행됨에 따라 통증과 불편함이 더욱 심해져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있으니 저는 무기력감과 절망감에 빠져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겁니다.


아내 역시 사라지는 기억과 흐릿해지는 현실에 혼란과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은 사랑과 아픔이 공존하겠지요.

오죽했으면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돌보는 70세가 넘은 남편이 동반 자살 했다는 사건도 있겠습니까..


불치병과 치매인 부모를 자식들이 돌보는데 경제적 부담은 피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입니다. 치료비 부담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부모의 질병으로 인해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아마 저는 더욱 큰 죄책감과 부담감을 느끼겠지요.

저와 아내를 돌보는 가족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죄책감과 감사함, 그리고 안타까움이 밀려올 겁니다. 결론적으로 저와 아내 역시 가족에게 더 이상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안락사를 선택할 듯싶군요.




기사의 에 아들이 부모님과 함께한 마지막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하며 글을 마칩니다.


D-1 일, 아버지와 어머니는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 맑은 하늘에 파란 바다는 우리 가족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평온함을 주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해변을 거닐며 산책했다. 내 이름조차 기억 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옛일이 떠오르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곤 하셨다.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손주들이 강아지들과 모래사장 위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하나라도 기억에 더 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아버지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식사였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이라 생각하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부모님이 안 보시는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D-0일,  그날 아침 우리 가족과 부모님의 친구들은 지역 호스피스에 모였다. 2시간 동안 서로의 추억을 나누며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의사의 지시가 내려졌고 마침내 부모님은 우리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고통 없이 스스로 삶을 마치셨다.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렇게 보내드린 것을 ' 후회 '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으실 것이고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으니 ' 잘한 것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을 울다가 창가를 바라보니 며칠 전 찍은 사진 속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환한 모습으로 웃고 계셨다.



*  이 글은 2024.07.02. 조선일보 기사를 참조로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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