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사진과 예상치 못한 손실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6월이었다.
같은 날, 같은 액수가
세 번째로 그의 계좌에 내려앉았다.
매달 어김없이 떨어지는 월세가
그의 삶을, 겨우 붙들고 있었다.
김서준은 입금 내역을 확인하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숫자는 차갑게 찍혔지만,
그 안엔 미지근한 기쁨이 있었다.
“이 정도면...”
말끝이 맴돌았다.
“…나도, 전문 투자자지.”
웃음은 나지 않았고,
그 말은 혼잣말처럼 사라졌다.
돈이 움직였다.
숫자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걸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가슴 깊은 데서부터 차올랐다.
서류를 정리하며 그는 생각했다.
“이젠, 대충 봐도 알겠어.”
안에서부터 우쭐한 기류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자신감은
자기 확신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어느새 속살은
자만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차피 다들 현장 가봐야 거기서 거기지.”
현장엔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이미 마음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웹지도와 로드뷰만으로
여름의 열기를 피해버렸다.
등기부는 온라인으로 확인했고,
전화로 중개사의 한두 마디만 들으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지난번 구로 오피스텔 때 만난,
석사중개사 한기준이 떠올랐다.
“싸게 받는 것보다,
권리의 순서를 보는 게 먼저입니다.”
그의 말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지만,
그땐, 그 말보다
내 판단이 더 단단하다고 믿었다
한 번의 성공이
모든 경험을 대체 해주었다.
그 자만은,
경고마저 가볍게 밀어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밤이 되자
문득 딸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웃는 얼굴.
앞니가 빠진, 장난스러운 표정.
함께 거닐던 공원,
도서관 책상에서 졸던 아이의 모습,
작은 손으로 아빠 손을 꼭 쥐던 장면.
그 기억들은
성공보다 깊고,
수익률보다 뚜렷했다.
하지만 지금,
그 웃음을 함께 나눌 수 없었다.
그는 거실 서랍을 열었다.
낡은 봉투 하나.
그 안에,
딸아이의 사진이 있었다.
그 웃음은
지금의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말없이 봉투를 닫았다.
그 공백은,
계좌의 숫자로 메워야 할 일이었다.
경매물건분석 사이트를 열었다.
‘역세권’, ‘오피스텔’, ‘2억 미만’
검색 조건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김서준은 그 조건에 맞는 물건들을
자신보다 먼저 들여다보는 이들을 알고 있었다.
사이트에서 쏟아진 물건 정보는
곧장 단톡방으로 옮겨졌다.
그 방의 중심엔
늘 신재욱이 있었다.
***
‘신박사’라는 닉네임.
유튜브에선
‘월 2천 수익 실현자’로 소개됐고,
강의도 다니고 책도 한 권 냈다는데
정작 읽은 사람은 드물었다.
숫자는 그의 말에 붙어 다녔고,
사람들은 그 숫자를 믿었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번 물건은 무조건 낙찰이다.
수익률은 100% 넘는다.
이건 정보 싸움이 아니라 속도 싸움이야.”
‘지나치다’는 생각이
눈앞에서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그 말은,
물처럼 그의 머릿속 틈새로 흘러들었다.
속도.
수익률.
100%.
그 단어들은
계산기 위에 내려앉았고,
그의 손끝은
그 말들을 따라 움직였다.
그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물건이 그의 눈에 걸렸다.
강서구 마곡동 오피스텔.
최초 감정가 1억 3,000만 원.
마곡역에서 도보 5분 거리.
임차보증금 8,000만 원,
단 하나,
‘내부상태 미확인’이라는 글자만이
칼끝처럼 남아 있었다.
현장 사진은 깔끔했다.
준공된 지 5년, 외관은 멀쩡했고,
주변은 정돈되어 있었다.
내부 구조와 상태,
세입자의 실거주 상태는
알 수 없었지만,
“마곡은 가본 적도 있고....”
현장엔 굳이 갈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화면 속 정보만으로도
모든 게 보인다고 믿었다.
그런 확신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게 했다.
김서준은 최근 거래 시세를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한달전 거래 금액
1억 5,000만 원.
최초 감정가가
2,000만 원이나 낮았고,
더군다나,
두 번이나 유찰되어
최저매각가격은
8,320만 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는 경매분석사이트의 정보와 시세,
그리고 현장 사진 몇 장.
그는 그 조각들만으로
‘기회다’고 결론 내렸다.
‘시세 1억 5,000만 원,
최저가격과 6,700 차이,
월세 100 이라면…'
계산기는 그의 손보다 먼저
확신을 내렸다.
그는 입찰가를
8,500만 원으로 적었다.
‘조금 더 써서,
확실하게 가져오자’
***
입찰 당일,
경쟁은 없었다.
단독입찰.
‘어? 뭐지?,
왜 단독입찰이지?’
그러나,
잠깐의 불안감은
금새 확신으로 변했다.
“시장은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거야.”
은행은 6,800만 원 대출 가능하다고 했다.
금리는 연 4%.
‘월 22만 원 이자,
월세 100만 원이라면
77만 원이 남는다.’
게다가 세입자 보증금 1,000만 원.
실투자금은 700만 원.
임대 수익률 132%,
시세차익은 6,500만원.
숫자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그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었다.
‘700만 원을 넣고,
928만 원이 돌아온다.
거기다, 시세차익 6,500만 원은
계산서 맨 아래,
따로 적힌다.
그는 이미
수익률 위에 앉아 있는
자신을 떠올리고 있었다.
***
잔금을 치르고 등기를 마친
그날 밤,
그는 책상에 앉아
다시 경매 서류들을 펼쳐 들었다.
법원 현황조사서.
그 안엔 ‘임차인 ○○○’라는 이름이
분명히 찍혀 있었다.
그 아래 칸엔
점유관계: ‘미상’.
기타: ‘소유자나 이해관계인을 만나지 못해
점유 확인 불가’ 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그 문장을
그때도 봤다.
하지만, 외면했다.
그땐 ‘설마’라는 말 하나로
그 모든 리스크를 덮어두었다.
배당요구현황도 다시 열었다.
임차인의 전입일은,
경매개시일보다 앞서 있었다.
그는 분명 그걸 봤다.
그런데도,
마음은 숫자를 희망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임차보증금이 8,000만 원이고,
낙찰가가 8,500만 원이니까
배당에 문제는 없겠지.'
숫자는 줄을 맞췄고,
마음은 그 줄 바깥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마음 한켠이
어딘가를 찔러댔다.
‘뭔가... 놓친 게 있진 않았을까.’
잔금은 이미 넘어갔고,
등기는 완료됐다.
***
6월의 끝자락,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다음 날,
법원 민원실.
김서준은 배당요구현황을 들고
법원 민원실 창구 앞에 섰다.
“이 임차인… 보증금이 팔천인데,
이 금액이 전액 배당되는 거죠?”
직원은 서류를 훑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선순위 근저당 칠천만 원이
먼저 배당됩니다.
남는 건 천만 원이고,
임차인은 그걸로 끝입니다.
나머지 칠천만 원은
낙찰자인 선생님이 인수하셔야 합니다.”
말은 공손했지만,
가슴은 벌겋게 타들어갔다.
그때 한기준의 말이 스쳤다.
“보이는 정보 말고,
보이지 않는 권리를 먼저 보셔야죠.”
그 말을 왜 그땐 그냥 넘겼을까.
그가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권리분석 실무』 책,
그 제목조차 지금은 가슴을 찔렀다.
‘나는 뭘 놓친 거지...?’
그는 단어를 되짚었고,
그 안엔 자신이 없었다.
7,000만 원.
남의 빚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무게가 없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권리분석 하나 놓친 대가.
숫자들은 숨었고,
심장은 깊은 곳으로 내려앉았다.
그는 얼핏 본 것을 믿었고,
자세히 보지 않은 것을 외면했다.
1억 5,000만 원 짜리를
8,500만 원에 낙찰받았다고 생각했었다.
6,500만 원이나 싸게 샀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선순위 근저당 7,000만 원이
임차인보다 먼저 배당된다는 걸.
그 구조를,
애초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8,500만 원의 낙찰가에,
7,000만 원의 인수금.
총 1억 5,500만 원.
그제야,
그는 눈앞의 숫자들이
거꾸로 서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싸게 샀다’는 착각은,
계산서 맨 마지막 줄에서
가장 비싼 수업이 되어 돌아왔다.
그의 수익률은
엑셀 속에만 존재했다.
현실은,
다른 언어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때 최도영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잘 아는 것 같을 때가 제일 위험해.
그때는 물건이 널 끌고 간다.”
최도영, 두 살 위 선배.
같은 회사 출신.
현장을 누구보다 잘 읽었고,
숫자 앞에선 망설이지 않았다.
회사를 먼저 나와
부동산 경매를 시작했고,
지금은 시행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잘했다’는 말 대신,
늘 결과로 답하던 사람.
그는 늘 웃었지만,
그 웃음은 칼날처럼 반듯했고,
자신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다.
나는 그를 존경했지만,
어딘가선 이기고 싶었다.
그 존경의 밑바닥엔
경험과 시간,
그리고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숫자들이 놓여 있었다.
권리의 언어를,
나는 읽지 못했다.
경매분석사이트의 정보만 믿었다.
'미확인'이라는 말에
나는 확인을 멈췄다.
선순위 채권,
전입일,
보증금,
대항력.
모든 게 거기 있었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아니,
넘겼다.
경매는 숫자가 아니었다.
활자 속 권리와,
그 권리 뒤에 숨어 있는
시간과 관계의 싸움이었다.
생각이 멈춘 채,
몸만 자리에 남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수익률이 아니라,
결국은 사람과 시간의 기록이 이긴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는 숫자만 믿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직접 보기로 했다.
자신이 놓친 것들이
아직도 그 집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피스텔 관리사무실을 찾았다.
관리비가 수개월 미납이었다.
서류엔 없던 고지서들이
현장에서 줄줄이 튀어나왔다.
관리소장은 말을 아꼈고,
현장은 냉랭했다.
그의 자만과 무지,
그리고 게으름은
모든 것을 비용으로 돌려줬다.
임차인 보증금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미납 관리비와 명도 및 이주비는 없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전달받고,
그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오랫동안 갇혀 있던 공기가
낮게 흘러나왔다.
한 발을 들이자,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침묵은 짙어졌고,
눅눅한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부서진 수전,
물 얼룩이 번진 벽,
틀어진 욕실 문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집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오래된 시간들이
바닥과 벽에 눌어붙어 있었다.
그는 문 앞에 멈춰 서서
낡은 집 안을 바라봤다.
“설마…”라는
그의 마지막 기대가
속절없이 꺼졌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숨조차 안으로 접혔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그 집은,
숫자가 아니라
눈과 손,
그리고 돈이 필요한 곳이었다.
손으로 짚은 모든 곳이
다시 태어나야 했다.
견적은 1,200만 원.
그것도 최소치였다.
계산은 침묵했고,
숫자는 시선을 피했다.
그날 밤,
그는 혼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엔 종이 몇 장,
주변은 정적,
그리고 마음 안엔
질문 하나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김서준은 습관처럼
유튜브를 켰다.
"수익률 100%!"
화면 속 신박사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수치들은 경쾌했고,
말은 빠르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 경쾌함은
이상하리만큼
현실을 비껴갔다.
화면은 움직였고,
그의 마음은 멈춰 있었다.
손끝이 화면을 닫았다.
반듯한 자막 위에
비뚤어진 그의 방이 겹쳐졌다.
숫자에 속았던 게 아니라,
숫자의 언어를 몰랐다는 걸
이제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책상 위를 정리하다
서랍 한 켠,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동산 투자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37가지 수익지표》
그는 표지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 안에
지금까지 외면해 온 언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책을 천천히 펼쳤다.
Cap Rate, IRR, NOI…
수익률 공식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숫자들이 눈앞에서
뿌옇게 흔들렸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책상 한 켠,
딸아이의 웃는 얼굴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웃음은,
지금의 그를 알지 못했다.
이제 그는
그 웃음 앞에
조금 덜 부끄러워지고 싶었다.
책상엔 숫자가 누워 있었다.
그 옆에,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다시 잡았다.
한기준이 말했었다.
“실무 지표는 현실의 언어예요.
기준 없는 숫자에선
누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는 숫자를 다시 배우려 했고,
누군가는 그 틈을
파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
7월로 넘어가는 새벽,
침대맡 휴대폰에
‘부동산 경매 고수들의 실전 노하우 공유방’이라는
초대 알림이 떴다.
그는 손가락을 올렸다가,
화면을 한참 바라본 뒤
천천히 꺼버렸다.
[다음화 예고]
실패는 그를 무너뜨렸고,
누군가는 그 틈을 노렸다.
‘100% 수익’의 말에
손끝이 흔들렸다.
그는 지금,
통장 비밀번호를 누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