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오피스텔, 첫 투자

숫자 속의 벽지, 낙찰가에 담긴 불안

by 김선철


“아빠, 우리 언제 다시 놀러 가?”


휴대폰 진동에 잠에서 깬 김서준은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딸아이는,

이제 같은 집에 없다.


은행 문자 하나가,

그의 현실을 짧게 끊어냈다.


[대출금 4억 원 실행 완료.

적용 금리 3.8%.

고객님은 소득증빙 미비로,

LTV 50%만 적용되었습니다.]


숫자는 냉정했고,

여백은 차가웠다.


그의 생존선은 분명했다.

월세로,

삶의 흐름을 되살리는 것.


‘내년, 딸아이 생일엔

다시 아빠라 불릴 수 있을까.’


창밖엔 서울의 봄볕이

아직 서늘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김서준은 스마트폰 화면을

느리게 쓸어 넘겼다.


8억 원 아파트. 4억 원의 대출.

기존 대출 2억 원의 상환.


생존의 최소비용을 되뇌었다.

'1년간의 생활비 2,400만 원,

대출 이자 1,520만 원, '


펜 끝이 노트 위에서

미끄러졌다.


‘남은 돈: 1억 6,080만 원’


숫자는 분명했고,

계산은 틀림없었지만,

그 계산을 마친 날은,

3월의 끝자락이었다.


그는 어디까지 이 돈이

자신을 데려갈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일단은,

초보자가 접근하기 가장 쉬운

1억 미만의 오피스텔 경매투자로

시작 해보기로 했다.


먼저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역세권 지역을 검색했다.


역삼역, 건대입구역, 서울대입구역, 신림역,

구로디지털단지역...


가격이 높은

역삼역, 건대입구역, 서울대입구역은

제외했다.


신림과 구로만 남았다.


도서관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부동산은 가격과 감정이

교차하는 자리에서만 움직인다.”


웹지도를 열었다.


지하철 노선과 접근성,

유동 인구와 전세 시세를 생각하는 순간,

마샬의 말이 떠올랐다.


‘입지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힘이 깃든 자리’


좌표가 아니라 흐름이고,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는 이유

그 자체라고 했다.


지도 위엔 선들이 겹쳐졌고,

그 선 위에

사람의 기억이 눌려 있었다.


그러나,

지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 위 숫자들은

그저 멈춘 그림이었다.


‘흐름이 없으면,

그건 멈춘 돈일 뿐이야.’

기요사키의 말이 따라왔다.


“흐름은, 화면 너머에 있다.”


손에 쥔 마우스를 놓았고,

몸이 먼저 일어섰다.


***


신도림, 구로...

그 역들 위로,

그의 발이 천천히 지나갔다.


현장의 결은,

수치로 옮겨지지 않았다.

데이터는 앉아 있었고,

삶은 걷고 있었다.


이동만 있는 곳은 피곤하고,

정착만 쌓인 자리는 노후되었다.


신림은 지나쳤고,

멈추지 않는 듯 했다.


구로만이 반복해서

돌아오는 발걸음을 지니고 있었다.


카페엔 앉은 사람들이 있었고,

편의점 앞에선 짧은 담배 연기가 맴돌았다.


낡은 건물 아래,

오후의 햇빛이 머무르고 있었다.


마샬의 말이 되살아났다.


“자산은 축적 위에만 세워진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좁고 퇴색한 길을 걸었다.


골목 어귀,

낯선 간판 하나가 눈에 걸렸다.

‘석사공인중개사’


문을 여니,

오래된 냉기가 흘렀다.


“어서 오세요,

어떤 물건을 찾으세요?”


책상 너머,

안경 너머의 남자.

젊었고, 말투는 단정했다.


“역세권 오피스텔을

경매로 낙찰받으려 합니다.

세입자 구하기 괜찮은지

알아보러 왔습니다.”


“이 동네는 1인 가구가 많습니다.

원룸은 금방 나갑니다.

월세만 적당하면,

오래 비어 있진 않죠.”


책상 위엔 『부동산 권리분석 실무』 책이

펼쳐져 있었고,

책상 명패엔 ‘소장 한기준’이라 적혀 있었다.


부동산학 석사과정 중이라고 했다.


“신림 쪽은 어떤가요?”


한기준은 잠시 망설이지도 않고 답했다.


“그쪽은 이자 뽑기도 힘들 걸요.

월세가 워낙 낮아서요.”


”구로3동은 1인가구 비율이 51%를 넘어요,

소형 주택, 고시텔, 공유 레지던스가

역세권을 중심으로 붙어 있고요.

유동인구만 하루 8만5천 명쯤 됩니다”


한기준은 말할 때,

숫자를 정리하듯 말했다.


목소리는 담백했고,

시선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는 그 전문성과 정직한 말투에

안심이 됐다.


“경매할 때는 권리분석이 중요한 거 아시죠?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저도 이번 학기,

경매 과목 실습 중이라서요.”


한기준의 말은 계산 같았고,

눈빛엔 빈틈이 없었다.


중개사 사무소를 나왔다.

스마트폰에

역 주변과 인근 중개소 간판 사진이 쌓였다.


***


4월로 접어들 무렵,

경매물건분석 사이트 검색창에

‘구로디지털단지역 500m 이내’를 입력했다.


하나의 물건이 떠올랐다.


소형 오피스텔. 세입자 없음. 관리비 저렴.

감정가 9,000만 원. 복층 구조.

채광은 좋았고, 계단은 좁았다.


벽의 낡음보다, 오가는 사람들의 리듬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마샬과 기요사키의 말처럼

입지는 시간을 품고,

자산은 흐름으로 증명된다.


지도는 좌표를 찍지만,

사람은 흔적을 쌓는다.

확신은 없었지만,

더는 밀어둘 핑계도 없었다.


이곳은 쌓이고, 움직인다.

그러므로, 남는다.


그는 한기준 소장에게

경매 물건의 의견을 물었다.


“경매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싸게 받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권리를 보는 겁니다.

등기부엔 안 나오는 권리가 문제 되는 경우,

싸게 받은 건,

그냥 싸게 망하는 겁니다.”


한기준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어디서도 듣기 어려운 단단함이 있었다.


“이 물건, 아마 명도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관리비 미납 내역이나 한 번 확인해 보시죠.”


그 젊은 중개사와 다시 마주하게 될 것 같은

묘한 예감이 남았다.


관계는, 문틈보다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스며드는 것이었다.


오래된 벽지, 삐걱대는 문, 낡은 수도꼭지.

최소한의 수선으로

그의 삶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


경매 당일,

법정은 어수선하면서도

긴장감은 팽팽했다.


감정가 9,000만 원의 오피스텔.

한기준의 말이 떠올랐다.


“좋은 물건을 낙찰받으려면,

감정가의 10% 이내로 쓰세요.”


8,100을 쓸까 하다가,

망설임은 짧았고,

손끝이 먼저 결정했다.


8,200만 원.

그는 자기 자신을 설득했다.


펜촉이 종이를 뚫을 듯 내려앉았다.

그 짧은 눌림에,

한 계절이 무너져 내렸다.


법정 안에서,

낙찰가 하나가 공기 속에서 부풀었다.


“구로동 오피스텔, 낙찰자 김서준,

팔천이백만 원.”


그 순간,

세상이 멎은 듯,

정적이 눌러붙었다.


2등은 8,150.

딱, 한 끗.


그 한 끗에 삶이 좌우되기도 했다.

법원 계단을 내려오며

손에 쥔 낙찰서를

몇 번이고 접었다 폈다.


복도엔 대출 브로커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잔금대출 필요하시죠?”

“금리 잘 맞춰드릴게요.”


명함이 손에 몇 장씩 쥐어졌다.


현실은 빠르게 그를 끌어당겼다.


잔금 납부일까지는 30일.

서둘러 경락 대출을 신청했다.


***


[시세의 70%, 금리 연 4%]


은행은 담담했고, 절차는 복잡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류를 넘기고,

등기소를 들락거렸다.


대출 실행이 떨어진 날,

은행 창구에서 잔금을 송금했다.


레버리지를 최대한 끌어당겼고,

남은 현금을 쥐고 은행을 나섰다.


그는 가볍게 걸었지만,

뒤돌아보는 횟수가 잦았다.


이 모든 게 처음이었다.

낯선 자리였지만,

놀랍도록 침착했다.


자신이 이런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낯설고, 또 선명했다.


그날 저녁,

이미 비어 있는 오피스텔 안에서

벽지를 뜯고 바닥을 닦았다.


실외기실엔 먼지가 수북했고,

거미줄은 오래 묵은 침묵처럼 매달려 있었다.


마른 수건으로,

지난 삶을 문지르듯 닦았다.

한 번 더는 붙지 못할 만큼.


벽지는 쉽게 찢겼지만,

그의 삶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하나씩, 벗겨지듯

그 안의 오래된 기억을 긁어냈다.


벽지는 전면 교체했고,

싱크대에는 시트지를 덧붙여

새것처럼 보이게 했다.


수도꼭지는 교체 대신

약품을 썼고,

낡은 몰딩은

흰색으로 다시 칠했다.


조명은

은은한 백열전구 빛 LED로 바꾸었다.


노란빛이 퍼지며

호텔방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번졌다.


예산은 300만 원이었지만,

끝내 500만 원이 들었다.


오래된 먼지가 걷히자,

낯선 온기가 방 안에 맴돌았다.

삶이 잠시 들른 방 같았다.


그는 석사공인중개사

한기준 소장에게 말했다.


“보증금 천, 월 육십이면 괜찮겠죠?”


한기준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건이면 3일 안에 나갑니다.

저희가 바로 계약 밀어드릴게요.”


입주 시기는 5월 첫째 주로 잡혔다.

사흘 뒤, 전화가 왔다.

계약이 됐단다.


통장에 찍힌 보증금과 첫 월세를 바라봤다.


‘이게, 생각보다 쉬운데...?’

그 순간,

책 속의 문장이 떠올랐다.


'흐름이 있는 자산만이 진짜'라고 했던 그 말.

지금은,

그 말이 내 통장에 붙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 순조로웠다.

모든 것이 정리된 듯 보였다.


그러나 삶은,

예상보다 늦게 반대편을 보여주곤 했다.


엑셀을 열었다.


낙찰가는 8,200만 원.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 1,000만 원을 반영하자

그의 실질 투자금은 2,375만 원이 되었다.


월세 수입은 연 720만 원.

은행 이자는 230만 원.

남는 돈은 490만 원 남짓이었다.

달마다 남는 건 41만 원.

수익률은 21%.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 수익률이,

삶을 다시 걷게 했다.


“이걸로 산다면, 살아지는 거겠지...”

그 말은, 오래 맴돌았다.


경매는 쉬웠고,

돈은 너무 쉽게 움직였다.


움직인 건 숫자였고,

흔들린 건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아직 정착이 아니었다.


우쭐함은 들떠 있었고,

불안은 더 커져만 갔다.




[다음화 예고]


월세는 들어왔고, 마음은 더 비어갔다.

숫자는 움직였지만, 그리움은 멈춰 있었다.


딸아이의 사진 한 장이, 그의 시간을 붙잡았다.




[참고 : 오피스텔 경매 투자 정산내역]

구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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