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어떻게 사느냐'보다, '무엇을 사느냐'였다
비가 오고 있었다.
약속보다 먼저 도착한 건
김서준이었다.
카페 옆 고깃집 문이 열릴 무렵,
한기준이 후드를 벗으며 들어섰다.
“형님, 기다리셨죠?”
그는 한기준의 격의 없는 ‘형님’이라는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오랫동안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는 틈이 생기고 있었다.
둘은 처음 앉는 자리 같지 않게,
물컵을 나누고 수저를 들었다.
고기는 익고 있었지만,
말은 아직 익지 못 했다.
“전... 사실 건축학 전공이었어요.”
한기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근데... 졸업도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 사업이 망했어요.
집도 넘어갔고,
어머니는 충격에 쓰러지셔서
병원에 계셨고...”
한기준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석사공인중개사’라는 간판 뒤엔
묵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그러다...
전세사기를 당하고,
전세금을 돌려받으려고
공인중개사 공부까지 하게 된 게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왔네요.”
한기준은 말하듯
고기를 뒤집었고,
김서준은 말끝을 따라가듯
젓가락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한기준의 말끝에
그가 지나온 날들의 굴곡이
묻어 있었다.
김서준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 침묵이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한소장…
사실, 권리분석 말해줬을 때,
그냥 넘겼어.
마곡 오피스텔 말이야.
제대로 안 보고 들어갔다가…
엉망이 됐어.”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엔 또렷한 후회가 있었다.
“전재산이나 다름없는데.
진짜, 어찌할 바를 몰라서…
한소장 생각나서 연락했어.”
말이 끝나고,
잠시 불 위만 지글거렸다.
한기준은 말이 없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깐 불을 바라봤다.
“내부수리는 다 하셨어요?”
“응, 공사 끝내고,
한 달째 비어 있어.”
한기준은 맥주를 한 모금 넘겼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름엔 원래 거래가 적어요.
금융비용을 버틸 수 있다면
조금 더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고...”
“그렇지 않다면,
가격을 낮춰서 처분하고
그 자금으로
다시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해요.”
말은 차분했지만
속은 흔들렸다.
그의 조언은
위로보다 정확했고,
격려보다 현실적이었다.
한기준은 잠시 맥주잔을 돌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실패가 또렷할수록,
다음 길도 또렷합니다.”
김서준이 물었다.
“무슨 뜻이야?”
한기준은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
“형님은 권리분석에서
실수하셨잖아요.
그게 명확해요.
어디서부터 다시 보면 되는지,
그걸 안다는 건 복이죠.”
김서준은 고개를 숙였다.
질책 같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한기준의 말이
어디선가 끌어주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말이 끝난 뒤
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그 고요는,
낯선 이들 사이의 침묵이 아니라
형과 동생 사이에서만 나오는
마음 깊은 동의였다.
두 사람은 잔을 들었다.
묵은 이야기 위에,
익은 고기와 따뜻한 술이 내려앉았다.
***
다음날 저녁,
오피스텔 현관의 희미한 불빛이
그의 자만과 착각을 비추고 있었다.
김서준은 총자본 1억 6,080만 원을 들고
이 시장에 들어섰다.
첫 투자에 쓴 건 2,000만 원.
안정적 현금 흐름에
안도했다.
이번엔 달랐다.
처음 계산은 8,500만 원이었다.
숨은 보증금과
묵은 수리비가 있었다.
최종 계산은
1억 6,700만 원이 되었다.
시세는 1억 5,000만 원.
빨간색 ‘투자손실 1,700만 원’에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처음 수익률 132%라 적었던
그 엑셀 셀은
지금, 말이 없다.
그날 밤,
다시 꿈은 그를 데려갔다.
어둠 속 서재,
먼지 쌓인 촛대 아래
책 한 권이 열려 있었다.
표지엔 『Real Estate Investment: A Strategic Approach, Andrew Baum, 2022』.
책장 틈으로
낯선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은빛 안경테,
그리고 영국식 억양이 묻은 말투.
“나는 앤드루 바움이다.”
김서준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책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 아니었다.
시간을 들고 온 사람처럼 보였다.
“자네는 경매를 배웠다지만,
투자를 이해하진 못했군.”
서재 벽이 서서히 수식으로 채워졌다.
NOI, IRR, Cap Rate, Leverage,
Risk Premium…
그리고 그 아래
‘Legal Risk’라는 항목이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수익률 132%?
그건 자네가 만든 착시의 결과야.
수치는 항상 말이 없지.
말 대신,
자네의 욕망을 따라 움직이거든.”
바움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권리분석은
투자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비재무적 리스크다.
대부분은 거기서 무너져.”
“등기부에 적힌 것은 정보지만,
해석은 지식이지.
자네는 정보를 봤지만,
구조는 보지 못했어.”
김서준은 고개를 떨궜다.
“임차인의 전입일, 근저당 순위, 배당 구조…
그건 수익률보다 앞서는,
생존의 전제야.”
서재에 적막이 흐르고,
바움은 다시 책장을 펼쳤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투자는 미래의 흐름을 사는 일이다.’
“법의 순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숫자는 반드시 자네를 배신할 거야.”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부동산은,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권리의 우선순위를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만
가치를 열어주지.”
말이 끝났을 때,
서재는 사라지고
책상 위엔
‘배당요구종기일’이 밑줄 쳐진 서류 한 장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김서준은 헛숨을 몰아쉬며 깼다.
이마엔 땀이 맺혀 있었고,
책상 위엔 『부동산 투자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37가지 수익지표』가
펼쳐져 있었다.
***
그날부터 그는 달라졌다.
엑셀을 닫고,
노트를 꺼냈다.
복잡한 수식을 손으로 써보며
의미를 되새겼다.
그림을 그렸고,
구글맵으로 거리의 흐름을 관찰했다.
매일 도서관에 나가고,
경제지표를 훑었다.
그는 손으로 수식을 써보았다.
Cap Rate, IRR, LTV, DSCR...
전엔 숫자였고,
이제는 살아남는 법이었다.
이제 그는 가격이 아니라,
구조를 보기 시작했다.
한 물건의 위치, 동선, 건물 연식, 임차인 구성,
매물의 수명주기까지 계산에 넣었다.
새로운 관점으로
마곡 오피스텔을 다시 봤다.
수요를 넘긴 공급,
쏟아지는 매도 물량,
그리고 기준금리의 동결.
그 말은,
‘기다려도 회복은 없다’는
무언의 예고처럼 들렸다.
한기준은 담담히 말했다.
“형님, 버티는 것보다,
덜 잃는 쪽이 현명해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리모델링 비용 1,200만 원을 감안해
인근 중개소에 매각을 의뢰했다.
***
3주 후,
1억 5,500만 원에 팔렸다.
1,200만 원 손실은 확정됐지만,
망한 건 아니었다.
그는 처음으로,
숫자 말고,
구조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뒤,
한기준을 다시 만났다.
카페 창가,
두 사람은 법원 배당표와 지도,
중개물건 자료를 꺼내놓고
논쟁을 시작했다.
"이 물건,
단열이 약한 구조예요.
층간 소음도 있고,
세입자 교체 주기 빠릅니다."
"입지는 나쁘지 않지만,
전세가 대비 월세 수익이 너무 낮아.
수익률보다,
유지 비용이 더 커질 거야. “
그들의 대화는 이제
전문가 토론에 가까웠다.
한기준은 말했다.
"형님, 이제 진짜 투자자 같아요.
전엔 감정으로 입찰했지만,
이제는 데이터로 판단하시네요. “
그 말에 김서준은 웃었다.
그 둘은 이제,
진짜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구로동 임장을 나섰다.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회복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발로 뛴 거리,
엘리베이터의 냄새,
햇빛의 방향,
그 모든 것이 종이 위 숫자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때,
단톡방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신박사 단톡방 공지 : 공동경매 투자설명회 초청
– 인천 무인도 핵심 섬 공개]
‘무조건 대박’이라는 메시지.
박수와 불꽃 이모티콘이
채팅창을 삼켰다.
김서준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한기준도 동시에 접속해 있었다.
‘섬이라…’
그 말 하나에
현실의 무게가 잠시 지워졌다.
***
설명회는 무대 같았다.
불빛은 강단만을 비췄고,
500여 명이 앉은 객석은
그림자처럼 고요했다.
강사는 신재욱,
일명 ‘신박사’였다.
깔끔한 정장,
무대에 선 듯한 손짓.
말투는 정제됐고,
PPT 속 숫자는 날카로웠다.
“이건 정보가 아닙니다.
확정된 미래입니다.”
“바로, 인천 동구 물치도입니다.
640미터 다리 계획이 이미 나와 있고,
인천시와 해양수산청 협의 완료된
유원지 예정지죠."
"공유지라 민원도 없고,
명도도 필요 없습니다.”
스크린에는
구읍뱃터에서 물치도로 이어지는
관광다리 조감도가 떴다.
붉은 선은 마치 미래를 그리는 붓 같았다.
“이미 2020년부터 인천시가
유원지 개발을 검토했고,
사업계획도 지방정부에 접수됐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공동으로 잡는 겁니다.”
강단 뒤,
‘물치도 공동낙찰 투자 시뮬레이션’이라는
타이틀 아래
연 수익률 120%,
지분당 배당, 개발 후 환금 가치…
그래프는 직선으로 치솟았다.
“입찰가는 94억입니다.
선착순 100명.
1계좌 6천만 원.
나머지는 대출로 확보 예정입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설명회가 끝나고,
두 사람은 근처 카페에 마주 앉았다.
“기준아...
이번 건, 진짜 터지는 거 아닐까?”
김서준의 말에
한기준은 잠시 웃었지만,
그 미소는 짧았다.
“형님,
투자는 말보다 먼저
사실확인 중요해요.
공시지가, 지목, 개발제한구역...
기초를 모르면,
그래프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요.”
***
다음날,
한기준은 등기부등본과 지적도를 꺼냈다.
지목은 ‘임야’.
개발제한구역 표시.
유원지 개발 신청은
2020년 기한 만료로 자동 소멸 상태였다.
‘이건 개발 못할 수 있겠는데?
한기준은
단톡방에서 공유된
계약서 PDF파일을 열었다.
마지막 페이지의 기타 항목.
‘본 투자의 책임은
전적으로 투자자의 책임이다.’
짧은 한 줄이었지만,
확인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모든 책임의 무게가 가슴을 짓눌렀다.
한기준이 투자의 리스크를
파악해 나갈 때쯤,
김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신박사였다.
“김서준 씨,
위험이 없으면,
수익도 없습니다.
그게 부동산의 진심이죠.”
“선택이 빠른 쪽엔,
몫이 조금 더 돌아갑니다.
결정은, 지금이 좋습니다.”
김서준은 말없이 화면을 봤다.
“지금 참여하시죠.
관리와 책임은,
제가 맡겠습니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목소리는 밀고 있었다.
점심의 카페는 시끄러웠다.
종이컵은 가볍고,
결정은 무거웠다.
그 시끄러움 속에서도,
그는 혼자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올려다봤다.
화면은 켜졌다가, 꺼졌다.
손가락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채였다.
입금 버튼은 눈앞에 있었고,
잔고는 명확한 숫자를 새기고 있었다.
오후 12 시.
마감까지 네 시간.
그는 창밖의 햇살을 가만히 보다,
잠시 눈을 감았다.
“숫자는 꿰맞출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은,
진실처럼 꾸며진다.”
“그러나 권리는...
문서에 적힌 대로만 존재하지.”
김서준은 꿈속에서도
입을 다물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땅을 사는 사람은 없다.
자네는,
등기부도, 개발계획도 보지 않은 채
투자를 하려 했지.”
말은 짧았고,
공기는 무거웠다.
“가치를 판단할 근거도 없이 하는 투자는,
도박과 다르지 않네.”
늦은 점심과 선선한 바람에
그 고요 속에서 잠깐 졸았을 때,
앤드류 바움이 나타나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질책했다.
“그 말은 꿈이었지만,
그 울림은 진짜였다.”
스마트폰 진동으로 눈을 떴다.
한기준이었다.
“형님, 관련 서류 살펴봤는데,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검토 자료 보내드릴게요.”
손끝이 떨렸다.
김서준은 카페 창가의 빛을 등졌다.
커피잔 위에 손끝을 올리자,
한기준이 보낸 메일 알림이 울렸다.
‘아직 개발 계획으로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구나.’라고
김서준은 중얼거렸다.
노트북 화면을 켰다.
먼저 ‘인천시 도시계획정보서비스’를 열었다.
검색 창에 ‘물치도’를 넣으니,
용도지역이 ‘해양관광’에서
‘해제(2024.12)’로 바뀐 이력표가 떴다.
다음은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홈페이지.
〈고시·공고〉메뉴에서
‘물치도’로 다시 검색.
‘물치도 개발사업계획 승인 취소(2025.02.05)’
붉은 제목이 모니터 한가운데 걸렸다.
첨부된 PDF를 열자,
“사업기간 경과로 승인 효력 소멸”이라는 문장이
검은 잉크보다
더 차갑게 박혀 있었다.
김서준은
법원 온라인등기소로 넘어갔다.
등기부등본에는
지목 ‘임야’, 소유권 이전 흔적만 네 번.
“관광지”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어 국토교통부 ‘토지이용규제정보서비스’.
녹색 바탕 지도 위,
물치도 전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겹칠 듯 덮였다.
마지막으로 토지이음 고시 검색.
해양수산부 고시 제2022-136호,
추가 협의 사항 ‘없음’
서류는 이미 길을 닫고 있었다.
김서준은 폴더 하나를 열고
‘임야·해제·취소’
세 단어로 파일을 정렬했다.
그 안에 PDF 다섯 장,
등본 한 장,
스크린 캡처 일곱 장이
겹겹이 포개졌다.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구나.”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창가 빛이 얼굴을 스쳤다.
멈춰 서 있는 것도,
오늘은 그의 선택이었다.
그제야 그는 “기회”라는
무거운 말이 아니라,
차갑고 분명한 “리스크” 위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노트북을 덮고,
그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입금 버튼 앞에서
망설이던 손가락을
천천히 치워 넣으며,
다시는 ‘운’에 기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먼바다 위로
안개처럼 떠도는 의혹 대신,
자신의 손으로 확인한
사실만이 남아 있었다.
***
세 달이 흐른 오후,
뉴스 화면에 자막이 떴다.
『물치도 공동경매 사기 의혹 - 수사 착수』
피해자 백여 명.
물치도 투자를 빙자해
1인당 수천만 원의 수수료 착취.
총 피해금 48억 원.
노후자금을 모두 쏟아부은
60대 남성은
문자 한 통을 남기고 극단적 선택.
유족들은
신박사의 ‘공문 위조’와
‘허위 자료 제공’을 주장했다.
물치도 유원지 조성 사업은
2020년 기한 만료로
자동 폐기된 상태.
640미터 다리 건설은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끝났다.
핵심 피의자 신재욱은
조사 중이었다.
김서준은 뉴스를 오래 바라봤다.
그 단톡방,
그 설명회,
그 확신의 그래프가
모두 사라진 화면 위로 겹쳐졌다.
“형님, 우리…
정말 막차 안 탄 게 다행이네요.”
한기준의 말에
김서준은 웃지 않았다.
다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 알림,
‘공동경매 투자설명회 초청’이라는
그 문장이 지금은,
살아남은 이유가 되어 있었다.
섬은 끝내,
침묵했다.
다리는 놓이지 않았고,
발길은,
그 언저리에도 닿지 않았다.
살아남는다는 건,
움직이지 않는 날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핵심 피의자 ‘신재욱’.
수사는 있었지만,
구속은 없었다.
[다음화 예고]
월세는 쌓였지만,
잔고는 비어갔다.
세금은 수익보다 빨랐고,
개인은 버티는 구조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