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을 넘은 순간, 세금이 다가왔다
물치도 투자 사기를 피하면서
오피스텔 경매는 계속됐다.
같은 날, 같은 금액이
통장에 찍혔다.
구로 41, 신도림 48, 가산 67.
156만 원의 월세.
숫자는 규칙적이었고,
그만큼 단단했다.
삶은 버텼지만,
웃음은 멈춰 있었다.
***
어느덧 11월,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었지만,
그의 통장은
일정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세상에 없던 흐름이
그의 손끝에 머물렀다.
그러나,
살아 있음은
그것뿐이었다.
소액 오피스텔 경매가 늘수록,
임대는 수익이 아니라
관계를 조율하는 일이 되었고,
사람과의 마찰은
수익 위에 얹혀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1억 6천만 원으로 시작한 투자.
그 절반은
벌써 땅에 묻혔다.
손실,
예비비,
예상하지 못한 구멍들.
남은 건,
6천만 원.
그 돈으로는
더 큰 자산에 올라탈
발판이 되기엔
좁았다.
마음은 어느새
다른 길을 찾고 있었다.
그날 밤,
잠결 속에
낯선 방 하나가 열렸다.
사방은 숨죽여 있었다.
탁자 하나와
낡은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엔
두툼한 책 한 권이
검은 표지 그대로,
묵직하게 놓여 있었다.
『Principles, Ray Dalio, 2017』
금박 글씨가
작게 반사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백발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정장을 입었지만
화려함은 없었고,
자리에 눌린 주름만
그의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레이 달리오였다.
그는 책 위에 손을 얹고
말없이 서준을 바라봤다.
“자넨 지금,
벽을 사고 있군.”
목소리는 낮았고,
어디에도 감정이 묻지 않았다.
“공간을 사는 사람은 많지.
하지만…
흐름이 자라지 않으면,
그건 자산이 아니야.
그건 멈춘 비용이지.”
그는
책 한 페이지를 넘겼다.
그 안엔
‘구조는 감정보다 앞서야 한다’는 문장이
선처럼 그어져 있었다.
“자산은
가치로 사고,
시간으로 회수하며 성장시키는 거야.”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공간은 한 번만 팔 수 있지만,
시간은 계속 빌려줄 수 있네.
시간을 관리하면,
흐름이 생기고,
흐름이 자라면,
그게 곧 큰 자산이 되지.”
말은 단정했고,
사라지지 않았다.
“흐름의 성장이 없다면
자넨 결국,
세금만 남은 땅을
끌어안고 살게 될 거야.”
그 말은
벽처럼 막히고,
시간처럼 흘렀다.
책이 살며시 닫혔고,
레이 달리오는 일어나
빛 뒤로 사라졌다.
다시
형광등 깜빡이는
작은 방의 풍경이 돌아왔다.
그러나 서준의 머릿속엔
그 한 문장만이
묵직하게 남아 있었다.
“흐름의 성장이 없는 자산은
비용이다.”
비어 있는 방이 아니라,
시간을 팔고
수익이 자라나는
구조가 필요했다.
그때,
알람 하나가
서준을 깨웠다.
『익산, 4회 유찰, 감정가 15억 → 최저가 5.3억』
낯선 지방도시에
버려진 건물이 눈에 밟혔다.
***
연말,
눈은 서울에 쌓였지만
오피스텔은
속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주택 대출은 막혔고,
돈은 틈을 찾았다.
투자자들은
오피스텔로 몰려들었고,
구로는 1억이 넘었고,
가산은 1억 3천을 찍었다.
김서준은 생각했다.
'이쯤에서 손을 빼야 해.
흐름이 식기 전에,
더 큰 구조로 옮겨야 해.'
그는
양도세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한기준의 조언대로
매매사업자로 신고했다.
구로는 1억 1,000만 원.
신도림은 1억 2,500만 원.
가산은 1억 3,000만 원.
1년 안의 매각이었지만,
경비를 반영하고
매매사업자로 정리하면
세금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땐,
그렇게 믿었다.
***
해가 바뀌고, 2월.
세무사 사무실을 찾았다.
세무사는 서류를 넘겼다.
말투는 조용했고,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양도소득으로 나왔습니다.
국세청은 사업이 아니라고 봤네요.”
말은 짧았고,
공기는 무거워졌다..
“저… 뭐라고요?
전 매매사업자 등록했는데요…”
세무사는 서류를 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사업자등록은 하셨지만,
장부 기장도 없고,
거래명세서나 재고자산의
회계처리도 안 돼 있습니다."
"실질과세 원칙상,
‘단순 양도’로 간주 됐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뒤이어 나온 말은
더 무거웠다.
“그리고…
오피스텔도
주거용으로 쓰였다면,
아파트 포함 주택이
총 네 채라서,
다주택 중과세가 적용됩니다.”
그 순간,
세금이 아니라,
제도가 칼처럼 그를 내려쳤다.
법은 말이 없었고,
숫자만 붉게 웃고 있었다.
그날 밤,
김서준은 책상 위에
양도세 예정고지서를 올려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양도소득세 40,040,000원]
숫자는 체온이 없었다.
오피스텔 세 채.
양도차익은 5,720만 원.
그중 4천만 원이 세금이었다.
남은 건 1,716만 원.
마곡 오피스텔 실패까지
모두 따져보면,
지금까지의 투자는
남은 것도 없었고,
이룬 것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남은 건,
버려진 계산서 한 장뿐이었다.
그를 꺾은 건
세금이 아니라
제도의 구조였다.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개인으론
버텨낼 수 없다는 걸.
이제,
새로운 인격이 되어야
살 수 있었다.
그때,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알림음이 울렸다.
[하연이 생일]
작년에도,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채
그날을 넘겼다.
‘하연이 앞에서,
아빠라 말할 수가 없어.
이룬 게, 없으니까.’
문자를 쓰다,
지웠다.
[하연아, 생일 축하해.
아빠가 곧 만나러 갈게]
그 문자도
보내지 못한 채
화면 위에서 깜빡였다.
숫자는 움직였지만,
그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마음으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움은 손끝에 맴돌았고,
문자 한 줄은 끝내
보내지 못했다.
그때,
현실이 다시 그를 불렀다.
전화가 울렸다.
한기준이었다.
“형님, 요즘 분위기면
법인이 낫습니다."
"거래세율 낮고,
세금 구조 예측도 가능합니다.
다만,
법인은 법인대로의
원칙을 지켜야 해요.
등록, 장부, 세무, 전부요.”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하연이의 생일보다
그 말이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그는,
살아야 했다.
더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
이름을 새로 달았다.
주식회사 AMD.
Asset Management Development
자산, 관리, 개발.
그 세 글자를
이제는,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등기부에 찍힌
대표이사 김서준.
세무사는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모든 걸
장부로 남겨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증빙이 판단합니다.”
그 말은
높지도 낮지도 않았지만,
무게는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한기준을 만났다.
“기준아,
이젠, 공간을 임대하는 것이 아닌
시간을 임대해서
성장하는 흐름에 투자를 해야겠어”
한기준은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조금 움직였다.
“생각하신 물건이 있으세요?”
김서준은 태블릿을 꺼내
지도를 펼쳤다.
서울은 어두웠고,
화면 속 익산은
흐릿한 불빛 하나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전북 익산역에서
도보 15분 거리,
낡은 3층짜리 모텔.
객실은 25개.
대지 250평.
건평 300평.
감정가는 15억 3,600만 원.
4회 유찰.
최저입찰가는 5억 2,700만 원.
김서준이 말했다.
“평당 213만 원.
땅값만 쳐도 싸,
건물은, 그냥 덤이지.”
한기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가격은 좋은데,
이력을 살펴보니
이 모텔은 2005년에 경매,
2008년에 공매에 나왔던 물건이네요.”
“망했고 또 망했던 물건인데,
괜찮을까요?”
“익산역 상권도,
거기서 좀 떨어져 있더라고요.”
김서준은 말이 없었다.
그때, 한기준이 말을 이었다.
“근데, 저희 교수님 말씀이요…
죽어있는 상권도
매력도가 생기면
다시 살아난다고 하시더라고요.”
김서준이 물었다.
“어디 교수님이?”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김선철 교수님이요.”
“대학원 수업 때 늘 강조하세요.
‘상권은 고정된 게 아니라,
흐름에 따라 회복된다’고요.”
김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이 낡은 골목에 건넨 지도 같았다.
“그래서 직접 봐야지.
상권은 눈으로 봐야 해.”
그날 밤,
그는 익산행 KTX 표를 예매했다.
낯선 도시의 낡은 모텔 하나.
하지만 마음은 묘하게 가벼웠다.
오피스텔 열쇠들을 넘길 때는
뒤를 돌아봤지만,
이번엔
앞만 보였다.
***
다음 날 아침,
기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이
과거처럼 지나갔다.
생각은,
미래처럼 달렸다.
하지만 현실은
기차보다 더 느리고,
더 무거웠다.
익산역에 내리자
한기준이 먼저 와 있었다.
낡은 골목길을 지나,
간판도 이름도 지워진
모텔 앞에 도착했을 때,
그제야,
미래는 아직 멀다는 걸 알았다.
상당기간 영업이 중단된 모텔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간판은 기울었고,
철제 프레임은 바람에 흔들렸다.
주차장은 잡초가 점령했고,
바퀴 자국보다 뿌리가 더 깊었다.
현관 유리는 당연하게도 깨져 있었다.
실내는 곰팡이 냄새에 젖어 있었고,
천장은 비에 물들어 있었다.
한기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이거 완전히 철거하고
새롭게 지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상태가 너무 심각한데요.”
김서준은 관점이 달랐다.
그는 벽이 아니라,
뼈대를 봤다.
철근콘크리트는,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는,
뼈대를 두고
다시 짓는 법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전체 리모델링을 예상했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관심 있는 상황은
고객의 접근성이었다.
익산역을 둘러싼 모텔촌은
기차역 광장에서 걸어서
20분 이내에 속한다.
익산역은,
하루에도 수천 명이
멈췄다 떠나는,
유동의 교차점이었다.
KTX와 완행열차,
버스와 사람,
그 흐름이
매일 이곳을 스쳤다.
역을 주변으로
형성된 먹자골목에는
20·30대의 젊은이들과
지방 출장자, 여행객 등
다양한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물건은 모텔촌에서도
가장 뒷골목에 있었다.
어떻게 이 구석의 모텔까지
고객을 끌어들이느냐가
관건이었다.
“기준아,
주변 모텔들,
그리 멀쩡해 보이지 않지?”
낡은 간판 아래
시든 커튼과 빛바랜 외벽을
김서준이 바라봤다.
한기준이 말했다.
“역 주변 신축 모텔들은
공실이 거의 없답니다.
요즘은 2~3만 원 더 내고라도
깨끗한 곳을 찾는다네요.”
그는 익산역 인근
중개사무실에서 들은 말을
조심스레 전했다.
“업무용 룸, 게임룸, 파티룸 같이
쓸모를 나누고,
트렌드 한 내부 인테리어에
무인 체크인 시스템으로
접근성을 개선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머릿속으로
공사비의 항목을 분해하고,
견적을 맞춰가고 있었다.
버려진 3층짜리 건물 속에,
‘시간의 임대’ 수요가
촘촘하게 존재하는 듯했다.
서울로 돌아온 날,
두 사람은 다시 마주 앉았다.
한기준이 말했다.
“형님, 입찰해 볼 만하긴 한데...
경락 대출은 괜찮아도,
리모델링 자금이 변수입니다.”
김서준은 말없이 노트북을 열고
‘모텔 경락잔금 대출’ 검색 결과를
그에게 보여줬다.
“경락잔금대출업체가 이렇게 많은데,
조건만 맞으면 가능할 것 같아.
시간이 없어.
입찰가, 공사비, 예비비...
계산부터 하자.”
밤은 길었고,
그들은 한 장의 엑셀로
미래를 조율했다.
***
법원경매 당일,
최저입찰가에서
300만 원을 얹어
5억 3,000만 원에 입찰했다.
예상한 대로,
결과는 단독입찰.
낙찰.
서류는 깔끔했고,
절차는 간단했다.
김서준은
웃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행운이 아니라
무언가의 공백일지도 모른다.
“기준아,
우리가 뭔가 놓친 거 아닐까?”
그 말은 그를 향했고,
되묻는 듯 허공에 닿았다.
한기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이제 되돌릴 수 없어요.
지금은
불안보다 준비가 먼저입니다.”
“두 가지만 집중하죠.
하나는 경락잔금대출과
리모델링 공사비 대출,
다른 하나는
리모델링 콘셉트.”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는 복잡했지만
마음은 한 줄로 정리됐다.
“그래,
네가 자금 대출을 맡고
나는 공사계획을 세워볼게.”
그들은
흔들림 속에서
일을 나눴다.
한기준은
수십 군데 대출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
며칠 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님,
경락잔금은
90%까지 가능하대요.”
“근데...
리모델링 자금은
안 된답니다.”
“모텔은,
은행에서 리스크로 본다네요.”
김서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말 대신,
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숫자는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낡은 간판’엔
돈이 묻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최도영.
시행사 대표.
먼저 회사를 나와,
먼저 살아남은 선배.
그리고,
어쩐지
스스로보다 위에 있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
김서준은 주저 없이
그의 번호를 눌렀다.
통화음은 짧았다.
“선배, 저 모텔 하나 낙찰받았어요.
근데... 리모델링 공사비 대출이
하나도 안 잡힙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받아들이는 기척이 있었고,
익숙한 한숨이 따라왔다.
“너 또 그렇게 덜컥 들어갔냐.”
말끝이 낮게 흘렀다.
조언인지, 견제인지 모를 어조였다.
“사전조사 없이,
감정 앞세워 낙찰받는 건
신참들이나 하는 거야.”
그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나, 끊지는 않았다.
잠시 뒤
말은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뭐…
사람 하나 소개 해줄게.
K씨, L씨. 한 번 연락해 봐.”
전화를 끊을 때까지
감정은 섞이지 않았다.
의도도, 애정도 없이
그냥…
선을 하나 던져준 느낌이었다.
김서준은 손끝으로
번호를 눌렀다.
K씨는,
기획료로 선불 3천만 원을 요구했다.
말은 컸고,
계약서는 없었다.
L씨는,
리모델링 전 공정을
자신에게 위임하면
대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단호했고,
자신감은 넘쳤지만,
책임을 묻는 말엔
눈을 피했다.
두 사람 다
확신처럼 말했지만,
그 확신엔 증거가 없었다.
조건은 무거웠고,
신뢰는 흐릿했다.
그럼에도,
김서준은 따질 수 없었다.
시간이 없었고,
기댈 곳도 없었다.
경락잔금 납부일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가진 시간은,
지푸라기보다 얇았다.
그는 결국
한 문장만을 남겼다.
“뭐든 빨리만 해결해 주세요.”
그 말은
체면이 아니라
처절한 부탁이었다.
***
며칠 뒤.
문자 하나가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알아봤는데, 어렵네요.]
그 한 줄이
기다림을 잘랐다.
큰소리친 말만큼
기대는 컸고,
기대한 만큼
무너짐도 깊었다.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화면은 꺼졌고,
가슴은 꺼지지 않았다.
기대와 시간,
믿음과 조급함,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스러졌다.
시간만, 날렸다.
그날 밤,
책상 앞에 앉은 그는
서류들을 다시 펼쳤다.
신용등급, 담보가치, 감정평가서...
문서들은 말이 없었고,
그동안 아무도 이걸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다들 말만 했지.
읽은 사람은 없었어.”
한기준이 연락했던 곳도,
K와 L이 소개한 곳도,
모두 똑같았다.
“경락자금은 가능합니다.
공사비는 어렵습니다.”
리모델링이라는 말은
그들의 언어 바깥에 있었다.
그제야 그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전화와 소개가 아닌,
정보의 가장 안쪽을
스스로 파야 했다.
그는 키보드를 꺼내 들었다.
검색창엔
이전과는 다른 문장이 입력됐다.
‘관광지 모텔 리모델링 대출 시공사’
‘경락잔금대출 외 시설보강 대출 시공사’
‘시설기반 숙박업 대출 가능 시공사’
찾는 건
대출이 아니라,
살아날 틈이었다.
눈은 마르지 않았고,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한 겹씩
지나가던 어느 날.
낯선 검색 결과 하나가
그의 눈에 멈췄다.
‘모텔 리모델링 전문 시공사 - 공사비 대출 가능’
작은 업체였다.
포털 상단도 아니었고,
광고도 붙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이트엔 견적서와 시공 사진,
그리고 ‘모텔 리모델링 자금 가능’
이라는 문장이 또렷했다.
김서준은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말수가 적었고,
조건을 먼저 말했다.
“금리는 좀 높습니다.
그래도,
실행은 가능할 겁니다.
관련 서류를 보내세요”
그제야 알았다.
기회는 바깥에 있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깊이에 있었다.
한 가닥 희망 트였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자금 실행은
서류 검토 후,
2주쯤 걸릴 겁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그 말은 너무 늦었다.
납부일은 일주일 후였고,
대출은 그다음 주였다.
시간은 어긋나 있었다.
대출이 잡혔지만,
잔금 납부일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법원은,
사정을 묻지 않았다.
오직,
기한으로만 말하는 곳이었다.
그 기한을 넘기면,
그 모든 시작은
아무 기록도 없이
사라졌다.
김서준은 숫자를 세었다.
5,270만 원.
그가 가진 전부였다.
그리고,
그 전부가 위험에 놓였다.
***
다음 날,
그는 법원에 전화를 걸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세 번째 연결음 끝에
낮은 목소리 하나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는 무표정했고,
규정은 간결했다.
“사유서를 내시고,
지연이자 납부하셔야 합니다.”
그 한마디가
귀에 살아 박혔다.
잘린 단어 틈에
살 길이 비쳤다.
그는 마른침 넘기며
서류를 폈다.
프린터의 열기,
잉크 냄새,
조심스럽게 눌러 적은 문장.
‘자금 확보 과정의 착오’
‘대출 실행 지연’
‘완납 의사 명확’
단어는 짧았고,
문장은 간절했다.
말끝마다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사무실 복사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울렸다.
그는
서류를 봉투에 담았다.
법원은 조용했고,
계단은 낡아 있었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접수창구 앞,
그는 마지막으로
서류를 들여다봤다.
그 안에
지나온 시간이 담겨 있었다.
기대와 실망,
검색과 거절,
그리고 이 서류 한 장.
그렇게,
낙찰은
겨우,
마무리되었다.
손끝은 떨렸고,
잔금은
마지막으로 찍힌 도장 위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정적이 고였다.
잔금도, 마음도,
간신히 채워 넣은 채였다.
그제야,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5억 3,000만 원 낙찰.
8억 5,000만 원.
대출 한도였다.
2억 1,000만 원.
그들이 쏟아부은 현금이었다.
그중,
김서준은 1억 6,000만 원을,
한기준은 5,000만 원을 냈다.
3억 2,000만 원.
잔금으로 빠져나갔고,
5억,
리모델링 공사비로
예정된 금액이었다.
예비비는 3,000만 원.
견적이 아닌 불확실성의 몫이었다.
총합,
10억 6,000만 원.
그 숫자들이
하나씩 자리에 눕자,
가슴 깊은 곳에서
무거운 숨이 새어 나왔다.
한기준이 서류를 접으며
고개를 들었다.
“형님,
쉽지 않을 거란 건
애초에 알고 있었습니다.”
말투는 담백했지만,
그 안에 눌린 결의가 있었다.
“계산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버텨낸 시간만큼
시간으로 자유를 벌어야죠.”
[다음화 예고]
낡은 모텔의 뼈대 위에
망치가 내려치자,
구조가 비명을 질렀다.
무너진 벽체, 끊긴 배관, 타는 전선…
이건 투자가 아니라,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