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공간 위에, 자유를 설계하다
석고가루가
천장에서 떨어졌다.
하얀 먼지 속에
시간의 무게가 내려앉았다.
김서준은 철거된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벽체는 드러났고,
기둥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었다.
“형님,
이 정도로 들어낼 줄은
몰랐어요.”
한기준이
초보 현장감독처럼 말했다.
“이제 시작이야.”
김서준은 낮게 말했다.
도면이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다.
공용 라운지, 층간 동선,
무인 체크인, 린넨 교체 로직…
그건 숙박업이 아니라
시간의 구조를 파는 설계였다.
첫 공정은
배수라인이었다.
예상보다 땅은 깊었고,
그 속은
썩은 시간처럼 무너져 있었다.
망치가 바닥을 찍자
먼지가 뿜어졌고,
녹슨 배관이
오래된 상처처럼 벌어졌다.
공사팀장이 말했다.
“이거, 배관을 전면 교체해야겠습니다.
관이 다 갈라졌네요.
오백쯤 더 들어가겠는데요.”
김서준은 대답 대신,
한숨만 쉬었다.
잠시 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엔
물때가 곰팡이처럼 번져 있었고,
단열재는 젖어 있었다.
팀장이 말했다.
“2층 방 위쪽,
물이 스며든 흔적이 오래됐습니다.
내부 단열도 전부 젖었네요.”
그때 누전이 터졌다.
전등이 깜박였고,
천장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
전기실에 내려가 보니
배선은 케이블이 아닌
덩굴처럼 엉켜 있었다.
김서준은 계산기를 내려두고
바닥에 주저앉듯 앉았다.
기계음은 조용했지만,
현장은 무너져 있었다.
김서준이 말했다.
“이건 단순 리모델링이 아니네요.
다 뜯어내고
다시 짜야겠습니다.”
그 말은
결정이 아니라,
피로한 결단,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구조였다.
그날 밤,
그는 견적서를
다섯 번 고쳐 썼다.
예비비는 사라졌고,
시간은 숫자보다 늘어졌다.
3주 차 공정.
한기준이 적색 표시가 줄지은
종이를 내밀었다.
“타일공 일정 맞추기 어렵대요.
인건비 300 더 든다네요.”
“자재는?”
“자가 발주로 돌려야 해요.
공사팀장이 자꾸 견적 부풀리는 것 같아요.”
김서준은 시공사 현장소장을 불렀다.
“김 소장님,
공사비가 계속 올라가네요.”
현장소장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인건비를 올려줘도
인력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요.”
김서준은 사정하듯 말했다.
"예산이 이미 초과됐습니다.
공사비를 좀 더 조정해 주세요.”
고민하던 현장소장이
낮게 말했다
“대표님. 그러면,
다시 체크해 보겠습니다.”
현장소장의 말엔 처음으로
‘내 일’이 담겨 있었다.
***
며칠 뒤,
3층 복도 타일이
빠르게 깔려 있었다.
“늦어진 만큼
공사는 빠르게 했네요.”
한기준이 다행인 듯 말했다.
그러나,
김서준은 줄눈 상태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틈은 벌어지고,
모서리는 들떠 있었다.
타일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텅, 텅’.
속이 비어 있었다.
눈은 마감에 닿았지만,
손끝은 정성을 찾지 못했다.
“숙련공 안 썼네요.”
김서준은 타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줄눈이,
사람 손이 아니라
기계처럼 지나갔어요.”
시선을 피하는 팀장에게
김서준이 말했다.
“철거하고,
다시 시공하세요.”
팀장은 인건비를 운운했지만
김서준의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사건건 비용을 얹어 달라는
공사팀장의 요구에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기가 식을 틈이 없었다.
공정은 이미 한 달이나 늦었다.
업체를 바꾸려 해도
골조가 반 넘게 들어선 현장을
인수할 사람은 없었다.
성수기 오픈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더는 싸움으로 남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품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김서준은 싸움을 접었다.
대신,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김 소장님, 이 공간은
방이 아니라 시간을 파는 곳입니다.
그 시간이 편하면,
그건 소장님의 시공기술 덕분입니다.”
김서준은 현장소장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나중에 고객들이 ‘잘 쉬었다’고 말하면..."
“그 말이, 소장님 덕분이라면,
그게 진짜 기술입니다.”
“기획은 제가 했지만,
현장은 소장님이 만드는 겁니다.
남는 건 브랜드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냐'는 말 한 줄입니다.”
현장소장은 말이 없었다.
소장의 눈빛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작아졌던 기술자의 책임감이
서서히 기둥처럼 다시 세워지고 있었다.
“비용은 제가 조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마감은,
소장님 이름 걸고 가시죠.”
현장소장은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 이름으로 남는
최고의 호텔이라...’
김서준이 말했다.
“소장님,
비도 오고,
오늘 공사, 더는 어렵겠는데
막걸리나 한 잔 하시죠?”
잠시 후,
김서준과 현장소장은
근처 파전집에 앉았다.
“저도 한때는 대기업 건설회사
기술팀에 있었습니다.”
김서준의 말에
소장의 눈이 가만히 멈췄다.
“어쩐지,
디테일에 집요하시더라.”
쌀뜨물 같은 막걸리가
금속 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냄새가 배인 작업복 그대로,
두 사람은 흙먼지 뭉친 하루를 마셨다.
“요즘은 다들 공사를 너무 대충 해요.”
소장이 먼저 잔을 들었다.
“줄눈은 엉망이고,
수평도 안 맞는데도
그냥 덮고 넘어가더라고요.”
김서준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면은 겉이고,
시공은 속입니다.
속이 틀어지면,
겉은 나중에 다 깨져요.”
소장이 웃었다.
“요즘 누가 그렇게 합니까?
시멘트는 반만 치고,
타일은 본드로 때웁니다.”
김서준이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린,
품질을...
기술자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거죠.”
소장은 잔을 내려놓고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나도 타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줄눈 한 줄 똑바로 맞추려고
한참을 앉아 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남이 몰라도
내 눈엔 보여야 했습니다.”
말은 짧았지만,
술보다 진했다.
김서준은 천천히 웃었다.
“그 줄눈 하나의 정성이
기술자의 이름이 남는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술자의 이름이 남는 현장이라..
오랜만에 듣는 말이네요.
기술자...”
그날밤은 기술자와 책임감이
한 마음이 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공사장엔 새 공정표가 붙었고
자재 창고엔
정리된 라벨이 붙기 시작했다.
작업일지 맨 아래엔,
‘기술자가 남는 공사,
다시 불리는 현장으로.’
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공사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이 공사를 ‘버틴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존심은 오래 갈수록 부러지고,
책임은 나눌수록 단단해진다.
그는 현장소장과 함께
깨닫고 있었다.
***
공사는 어느덧 골조 마감이 끝나고,
인테리어 공정에 접어들었다.
발주 착오였는지,
가구 납품이 늦었는지,
TV가 먼저 도착했다.
25개 객실에
TV가 일괄 설치됐다.
다음 날 아침,
한기준이 헐레벌떡 사무실로 뛰어들었다.
“형님, 벽걸이 TV가
화장대 자리를 막았어요.
가구 설치가 안 됩니다.”
김서준은 인테리어 도면을 펼쳐
TV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도면엔 ‘TV’라는 글자만 있었고,
정확한 위치 치수는 빠져 있었다.
대기업 건설사에서
디테일한 도면만을 봤던 김서준은
쓴웃음만 나왔다.
대기업 도면엔 있었던 그 30센티,
여긴 없었다.
작은 디테일은,
작은 현장에선 더 치명적이었다.
책임은 없었다.
팀장은 '확인받고 했다'라고 말했고,
한기준은 고개를 떨궜다.
눈치 보던 한기준이
TV 설치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다섯 번 만에 연결됐다.
“TV위치를 왼쪽으로 삼십 센티 씩
옮겨야 할 것 같은데요?”
“요즘 성수기라
설치기사 배치가 쉽지 않아요.
이 주일 후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설치기사 두 명 투입에,
이십만 원의 비용이 듭니다.”
한기준이 물었다.
“형님 어떡할까요?”
7월 성수기까지 이제
이 주일 남았다.
시간이 없었다.
김서준이 말했다.
“따블 준다고,
내일 설치 가능하냐고 바로 물어봐.”
TV는 다음날,
방 하나씩 재설치되었다.
공간은 점점 형태를 갖춰갔다.
인테리어 마감이 끝나갈 무렵,
김서준과 한기준은
마지막 승부수를 준비했다.
객실마다,
머무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모텔촌 가장 구석에 있는
입지적 약점을 보안하기 위해
객실에 대한 유인력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였다.
“기준아, 요즘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 있는 모텔들 공간구성 살펴보니
단순 숙박공간이 아닌
체험형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네”
한기준이 대답했다.
“야놀자, 여기 어때 등
숙박플랫폼 트렌드를 살펴보니
각종 테마룸들이
이, 삼십 대가 선호하는 룸이고
예약도 꽉 차 있네요”
김서준이 말을 이었다.
“공간임대의 활성화를 위해서
게임룸, 파티룸, 스터디룸도 구성하고
지방 비즈니스 고객을 위한
한옥스타일의 편안한 인테리어와
1인용 사우나룸도 배치해 보자.”
“요즘 유튜브 촬영이 가능한
콘텐츠 크리에이터 룸도
수요가 있을 것 같아요”
한기준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익산 모텔촌 어디에도 없는
65인치 TV가 각 방에 설치됐다.
모든 객실에서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같은 OTT는 기본,
쉬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2층에는,
셀프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작은 셀프 간식 공간이 생겼다.
그 옆에는
복사기와 프린터가 놓였다.
쉬면서 일하고,
일하다 쉬는 공간.
시간의 흐름이
목적을 바꾸는 구조였다.
“형님, 찾아오는 공간임대로
차별화하려면
바이럴 마케팅이 중요해요.”
“앱으로 친구 추천하면,
둘 다 20% 할인해 주고
10회 이용하면 1회 무료로 하는
마케팅을 적극 활용해 보죠.”
김서준은 한기준의 말에
한 가지 더 보탰다.
“공간임대를 구독서비스로 만들면 어때?
매월 10만 원으로
6개월 이상 구독하면,
비어있는 룸을
한 달에 5번, 4시간씩
사용할 수 있도록 해서
객실 운영률을 극대화해 보자”
익산 모텔촌 끝,
가장 어두운 골목에,
가장 기억에 남을 방을 만들기 위해
두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고 있었다.
***
7월 중순,
마침내 오픈 전날,
마지막 체크였다.
오픈을 앞두고,
김서준은 마지막 점검을 마친 뒤
사무실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 쇼츠.
2030 세대가 시간과 공간을 선택하는
진짜 ‘입구’는,
검색창이 아니라 피드였다.
‘호텔 쉼’ 계정을 열고,
“오늘,
방을 예약한다는 건
시간을 고른다는 뜻입니다.”
짧은 문장을 남겼다.
객실마다 다른 이름.
‘지각한 월요일’,
‘데이트 중인 금요일’,
‘휴직 중인 화요일’
각 방은 하루의 조각을 품고 있었다.
피드엔 조명이 퍼지는 벽,
복도 끝에 놓인 한 잔의 커피,
창밖으로 흐르는 KTX 불빛이
하나씩 올라갔다.
해시태그는 단순했다.
#호텔 쉼 #익산역도보5분
#무인체크인 #감성모텔아님
광고비 0원.
피드 하나로,
방 스물다섯 개가
사라졌다.
김서준은 생각했다.
‘시간을 판다고 했지만,
우리는 지금,
기억을 예약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김서준은 호텔 정문 앞에서
간판 불빛을 바라봤다.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시간과
기술자의 땀이
그 불빛 아래에 있었다.
삶의 흐름을 이어주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호텔 쉼’은
김서준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생각이 담긴 이름이었다.
다음 날 아침,
키오스크와 연결된 스마트폰 앱은
연이어 체크인 알림을 띄웠다.
25개 객실은
점심 전에 전부 팔렸다.
한기준이 말했다.
“형님, 마지막 방까지 끝났습니다.
첫날, 전부 팔렸어요.”
김서준은 말이 없었다.
대신,
손끝으로 화면을 넘겼다.
예약 명단,
입실 시간,
체크아웃 회전율.
숫자들이 움직이는 결을 따라,
흐름이 손바닥에 닿았다.
시간은,
이곳에서 수익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호텔 쉼’은
사람이 자는 곳이 아니라,
시간이 머물다 가는 곳이었다.
이제 그곳에선,
공간이 아니라
구조가 작동하고 있었다.
***
늦가을이 마지막 잎을 붙잡고 있는
10월의 마지막 날,
3개월간
벌었던 것과 남긴 것을 되돌아봤다.
리모델링 공사비 예산 5억.
예비비 3천을 넘어
추가공사비가 5,000만 원이 들어갔다.
부족한 2천은 한기준이 더 넣었다.
총 10억 8,000만 원이 투입된 ‘호텔 쉼’
3개월 평균 매출 4,800만 원.
순이익 1,800만 원.
전체 운영을 맡은
김서준의 몫은 70%인
1,260만 원이었다.
감격스러웠다.
이혼 후,
정확히 741일.
이름도, 직함도 없이
고독만 흐른 시간 끝에
월 천만 원의 흐름이 도착했다.
그건 돈이 아니었다.
찢겨나간 시간의 응답이었다.
그때,
회사에서 잘렸을 때,
와이프가 이혼서류를 내밀었을 때,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렸을 때,
그때를 버터내고 여기까지 왔다.
그는 매일 출근하지 않았다.
“우린 공간을 산 게 아니라,
시간을 굴리는 구조를 산 거야.”
한기준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호텔 운영이 안정화된 이때...
김서준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딸아이를 만나기로 했다.
딸아이 생일 한 번을
챙겨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 있게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하연이를 만나는
크리스마스 날이 되었다.
“하연아, 잘 지냈어?”
하연엄마가 하연이의 손을 잡고
잠실 롯데월드 입구에 미리 와 있었다.
손 흔드는 하연이는 어색해하지 않았다.
“아빠...안녕”
그 이름은
두 해 동안 단 한 번도 불리지 않았던,
그러나 단 한순간도 잊히지 않았던
그의 이름이었다.
하연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마침내,
그 작은 팔이 그의 목을 감쌌다.
김서준은 움직이지 못했다.
울음도,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품 안에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하나에
‘살아 있음’이라는 감정이
천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연아,
아빠 이제,
다시 누군가에게
‘사장님’이라 불리는 사람이야.”
김서준은 조심스레
명함 한 장을 꺼내
딸아이 손에 건넸다.
김서준의 명함 한 장.
하지만 그 속엔,
실패했던 시간들과
버텨낸 하루하루가
접혀 있었다.
“아빠가 사장이야?”
“응”
“그럼 아빠는 이제
매일 놀 수 있는 거야?
사장은 회사 안 나가도 되잖아.”
하연이는 물었다.
“그럼, 이제 매일 나랑
놀 수 있는 거야?”
김서준은...
하연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아빠는 이제...
매일 하연이 옆에 있는 사람이야.”
그 말은,
약속이 아니라,
참회였다.
옆에 있던 전처는
시선을 낮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원망이
먼지처럼 일더니,
서서히 흩어졌다.
하연이는
말없이 김서준의 손을 잡았다.
그 작은 손엔
두 해의 빈자리가,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얹혀 있었다.
김서준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주고,
놀이기구에 같이 줄을 서고,
불꽃놀이를 같이 올려다봤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기억은 고요히 쌓였다.
그는 처음으로
하루를 쓰지 않았다.
하루를,
함께 했다.
하연이를 와이프 집 앞에 내려주고
익산행 KTX 열차를 탔다.
어두운 창밖을 봤다.
놀이공원 불빛은
이미 멀어졌지만,
김서준의 손에는
하연이가 꼭 쥐어준
사탕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아빠, 오늘 진짜 재밌었어.
다음엔 더 오래 놀자.
메리 크리스마스]
김서준은
문자창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화면을 껐다.
말보다 먼저 다가온 감정이
그날 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말 한 줄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천천히,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움이 끝난 자리에
삶이 다시 올라왔다.
호텔 쉼의 사인이 보일 때쯤
익산 밤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전날 내린 비에,
이파리 몇 장이
호텔 간판 모서리에 붙어 있었다.
맞은편 편의점의 자동문은
몇 번 열렸다 닫혔고,
누군가는
따뜻한 국물을 사들고
호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 속에서
따뜻한 국물처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음화 예고]
협상 테이블에선 숨을 죽였고,
법원 복도에선 손끝이 늦었다.
자신이 잃은 건,
가격이 아니라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