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끝에서 거주의 힘을 알다
1년이 흘렀다.
시설은 안정됐고,
야놀자 리뷰는 4.9점을 유지했다.
출장자와 커플,
가족 단위까지 고객층도 다양해졌다.
구독 기반 예약 시스템을 도입한 뒤,
객실 가동률은 90%를 넘겼고,
성수기엔 95%에 닿았다.
‘익산에서 묵을 곳’
검색 첫 줄에 ‘호텔 쉼’이 떠올랐다.
그 무렵,
인근 모텔 건물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그 호텔,
주차장이 늘 꽉 차 있더군요.
후기도 좋고,
입소문도 난 것 같고…
혹시, 매각 생각 있으신가요?”
김서준은 한기준과 상의했다.
“기준아,
우리 손으로 만든 구조가
이제는,
다음 흐름을 만들 타이밍이 아닐까?”
한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수익으로 치면 17억은 받아야죠.
우리가 만든 구조니까요.”
김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단순히 수익으로만 가치를 정하면
진짜 의미를 놓칠 수 있어.
이 구조가 가진 시간과 흐름까지
온전히 평가받아야 해.”
한기준은 눈동자를 흔들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럼… 그 가치를
어떻게 하면,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까?"
김서준은 잠시 고개를 떨궜다.
건설회사 시절,
흑자 도산에 몰린 협력업체의
매각 실무를 맡았던 기억이 스쳤다.
그때 그는 알았다.
숫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구조를 정리해야,
비로소 ‘가치’가 보인다는 걸.
“내가 아는 M&A 회계사가 있어.
구조화 작업은,
그 친구랑 상의해 보는 게 좋겠어.”
다음날,
회계사 사무실.
이기영 회계사는
오랜만에 만난 얼굴을 보며 웃었다.
“이게 얼마 만이에요.
회사 그만두고 호텔업 한다는 얘긴 들었어요.”
김서준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호텔업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오래된 모텔 하나,
다시 뜯어본 거예요.”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김서준은 지난 1년간의 흐름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매출, 수익률, 객실 운영 데이터,
그리고 무엇보다
‘구조화된 시스템’에 대해 말했다.
이 회계사는 서류를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규모의 숙박시설들은
보통 중개사가 대략 흥정해서
손바닥 위에 숫자를 그려 넣는 방식이죠.
그런데 서준 씨 호텔은…
조금 다르네요.”
이 회계사는,
독립 전까지 국내 3위 회계법인에서
10년 넘게 기업 M&A를 담당했다.
그는 손끝으로 수치를 짚으며 말했다.
“연 매출 5억 8천.
영업이익 2억 1,600.
영업이익률 37%.
이건 모텔 업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숫자예요.
익산에선… 전무하겠는데요.”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 매수 의사자가 있습니다.
흥정이 아니라,
기준 위에서 대화하고 싶어요.
객관적 가치평가 보고서,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이 회계사는 말없이 재무제표를 훑었다.
수익과 비용,
DM 예약 비중과 OTA 의존도,
무인 시스템과 고객 재방문율.
숫자보다,
흐름이 먼저 들어왔다.
이 회계사는 말했다.
"숫자자 잘 나왔군요.
제 방식으로, 다시 짜보죠.”
***
일주일 후,
긴 테이블 위엔 숫자 대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투자자 셋,
김서준, 한기준,
그리고 이기영 회계사.
회의실은 조용했고,
말보다 먼저,
시선이 움직였다.
이 회계사는 노트북을 열고,
하얀 종이에 프린트된 보고서를
천천히 테이블 중앙에 놓았다.
『DCF 기반 구조화 가치 평가 보고서』
굵은 제목이 먼저 말을 걸었다.
“DCF 기준으로,
호텔 쉼의 이론 가치는
27억입니다.”
“EBITDA는 연 2억 1,600만 원,
할인율 10%,
성장률은 2%로 설정했습니다.”
종이는 고요했지만,
그 위의 숫자들은
귓속말을 시작했다.
세 명의 매수희망자.
그들이 상상한 수치와
지금 눈앞의 숫자 사이엔,
9억의 간극이 있었다.
숫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들의 눈빛만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회계사는
말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종이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회의실 공기는
점점 무게를 더해갔다.
“물론, 이 금액 곧 매각가는 아닙니다.”
그는 펜을 들어,
페이지 한가운데
수평의 선 하나를 그었다.
『조정 항목별 감액 내역』
[설비 감가상각 및 시설 노후: –1.8억 원]
[향후 5년간 예상 리모델링 비용: –2.0억 원]
[지방 환금성 리스크 및 브랜드 한계: –1.2억 원]
손끝은 멈췄고,
숫자만이 흘렀다.
“총감액은 5억
이를 반영한 구조적 매각가는
22억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덧붙였다.
“숙박업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현실적인 수치라 판단합니다.”
한 매수희망자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숫자 뒤에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22억은...
저흰 20억 도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 회계사는 그 말을 자르듯 입을 열었다.
“이건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닙니다.”
그는 숫자 대신,
문장을 내밀었다.
“무인 시스템 100% 구축,
전 객실 테마룸,
예약의 40% 이상은 SNS DM,
OTA 의존도는 10% 미만.”
그는 눈을 들었다.
“지방에선 유일한,
브랜드형 시스템을 파는 겁니다.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설계된 구조죠.”
펜을 놓는 손,
물 잔을 멈춘 손,
서로 다른 결의 정적들이
테이블 위에 앉았다.
그 침묵 끝에,
한 매수자가 말했다.
“…우리도 보고서를 받아야겠네요.
같은 언어로 대화하려면,
같은 기준이 필요하니까요.”
그 말은 담담했지만,
눈빛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
한기준이 물었다.
“형님, 매도가격…
너무 높은 거 아닐까요?”
김서준은
테이블 위 보고서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런 걸 ‘앵커링’이라고 해.
협상은 숫자가 기준이 아니라,
그 기준을 누가 먼저 놓느냐가
협상의 시작이니까.”
“근거 있는 높은 기준을 먼저 세우면,
협상은 그 기준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게 돼.”
한기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준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말했다.
“내 목표는,
18억 이상.
그 아래는,
대화가 아니라 흥정이야.”
***
며칠 뒤,
다시 그들이 마주 앉았다.
이번엔 매수자들도
각자의 리포트를 들고 있었다.
회계법인의 이름은 달랐지만,
숫자는 비슷했다.
17억 4천에서 18억 2천.
그 누구도
17억 미만의 보고서를
내지 못했다.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김서준은
속으론 웃었다.
하지만 겉으론,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흔들리는 건,
언제나
상대여야 하니까.’
그는
매수자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호텔 쉼은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닙니다.”
“예약의 40%는 DM.
OTA 의존은 10% 미만.
그건 숫자입니다”
“진짜 중요한 건,
그 숫자들이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천천히 덧붙였다.
“정리된 리듬,
반복되는 패턴.
사람들은
잠이 아니라,
그 편안함을 삽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흐름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보고서를 다시 펼쳤다.
“지금 여러분이 사려는 건
건물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흐름이 작동하는 시스템입니다.”
한 매수희망자가 말했다.
“이해합니다.
브랜드와 시스템의 힘도요.
하지만 22억은
감가상각과 보수 예측이
너무 얕게 잡혀 있어요.”
다른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구조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그게 더 중요한 문제죠.”
김서준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어디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비싸게 팔 생각 없습니다.
그렇다고 싸게 넘길 이유도 없죠.
이 구조는
시간 위에 지어진 겁니다.”
더 이상,
누구도 말을 잇지 않았다.
협상은
한 문장만 남기고 접혔다.
“그건 건물이 아니라,
흐름을 판다는 뜻입니다.”
결론은
3일 뒤로 미뤄졌다.
회의실엔
묵은 공기만이
잠시 더 머물렀다.
***
3일 후.
두 명이
매수 의사를 밝혔다.
한 매수예정자가
추가 평가서를 책상 위에 밀어놨다.
[브랜드 확장·부대시설 보강: –2.4억]
[신규 경쟁 호텔 입점 예정: –1.0억]
합계 –3.4억.
그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카페, 라운지, 피트니스 확충에
이 정도가 듭니다.
그리고 200m 인근,
중형 호텔이 들어섭니다.
준공은 2년 뒤.”
“이를 감안해
최종 금액을 제안합니다.”
김서준은 보고서 위 숫자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좋습니다.
이 가격이면… 시간을 사죠.”
숫자는 정리됐고,
그중 가장 높은 값이었다.
최종 계약금액 18억 6천.
김서준은
펜을 들었다.
잉크가 종이에 닿는 순간,
한 해의 구조가,
한 획으로 접혔다.
계약이 끝나고,
사람들 모두 나간 뒤,
회의실엔 둘만 남았다.
바람이
테이블 위 서류를
가볍게 흔들었다.
말보다 먼저,
침묵이 흔들렸다.
김서준이 입을 열었다.
“우린 건물을 판 게 아니야.”
“시간의 흐름을,
다른 틀에 옮긴 것뿐이야.”
한기준은 말이 없었다.
종이보다 더 얇아진 시간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서준이 다시 말했다.
“이제는,
더 크고,
더 단단한 구조를
우리 손으로 짓자."
창밖엔
장마가 물러갔다.
익산의 여름이,
맨살처럼 드러나 있었다.
7월 중순이었다.
장마가 물러난 자리엔
햇빛이 묻어 있었다.
‘호텔 쉼’의 잔금이
계좌로 들어왔다.
두 자릿수 숫자가
화면을 천천히 채웠다.
김서준은 노트북을 덮었다.
쉼은 팔렸다.
시간은
잠시 숨을 고르듯
다음 구조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통장은 채워졌지만,
발끝은
다음 방향을 망설이고 있었다.
엑셀 파일엔
1년의 흐름이
정확히 정리돼 있었다.
운영 1년,
총 순이익 2억 1,600만 원.
그중 그의 몫은
1억 5,120만 원.
김서준은
지난 1년의 가계부를 펼쳤다.
딸아이 보육비, 식비,
매달 300만 원 남짓의 생활비.
나머진
흩뜨리지 않았다.
한 달도 빠짐없이
모았다.
생활은 버텨졌고,
돈은 쌓였다.
이제 그의 통장은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살기 위한 계좌,
다른 하나는
움직이기 위한 계좌.
“형님 몫은
운영수익 포함해서
총 6억 9,720이에요.
전 2억 9,880이고요.”
한기준은
말없이 수첩을 덮었다.
약속한 7:3.
계약서 하나 없이도
지켜진 몫이었다.
입꼬리를 올릴 힘도
남지 않았지만,
그 수익은
손과 발,
땀과 갈등으로
얻어낸 숫자였다.
김서준은
통장을 다시 확인했다.
처음 1억 6천을 넣었고,
지금은
7억이 조금 넘게
남아 있었다.
숫자는 정확했고,
그 안엔
견딘 시간이 숨어 있었다.
문득,
숫자 하나가 떠올랐다.
4억.
잔여 대출.
이자는 매달 127만 원.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는, 갚아야 하지 않을까.”
버텨낸 만큼은 줄이고 싶었고,
남은 만큼은 안심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 돈은
빚이 아니라,
흐름이었다.
과거엔
빚을 줄이는 게
안전이라 믿었다.
보이면 갚고,
갚으면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갚는 게
늘 정답은 아니라는 것.
흐름이 끊기는 순간이
더 위험하다는 것.
빚도,
타이밍이 있었다.
지금은
줄이는 게 아니라,
흐름을 탈 때였다.
그 흐름은
지식을 향한 자본이고,
다음 기회를 향한
예비비였다.
그는 통장을 열었다.
남은 돈은
움직여야 했다.
그 돈은
불안에 머물지 않아야 했다.
원금은 지키되,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어야 했다.
새로운 구조를 만났을 때,
즉시 반응할 수 있도록.
지금 시장에서
그런 구조는
월세가 붙은 아파트였다.
흐름을 이어가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정확한 방식.
김서준은
다시 경매 사이트를 열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과거 오피스텔을 낙찰받았던 그 자리.
이번엔
신축 아파트가 떴다.
준공 2년.
감정가 10억.
최저입찰가 8억.
시세는
10억 2천.
여의도 안산선이 개통되면
2호선과 맞물려
더블역세권.
여의도까지 20분.
그는 속으로 말했다.
‘이건,
14억 도 가능하겠는데...’
조회수 550.
숫자가 말하고 있었다.
'경매는 속도입니다.
10번 도전하고,
10% 낮게 쓰세요.'
유튜브에서 들었던 말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
법원 경매 당일.
법원 복도엔
입찰표를 든 사람들이
줄을 섰다.
게시판에는
해당 물건 입찰자 수가
붙어 있었다.
‘18명’.
김서준은
‘경쟁률이 이 정도였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생각했다.
‘최저가가 8억이니
대부분 8억 후반대...
그 언저리에 쓰겠지.’
그는 감정가 10억의
90%인 9억을 쓰려다
손끝을 멈췄다.
입찰표엔
9억 100만 원을 적었다.
‘백만 원.'
그 차이가
내 편이길 바랐다.
집행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단했다.
“2023타경 26454…
최고가 입찰자: 박은정.
입찰가: 10억 5,000만 원.”
최저입찰가 8억,
낙찰가는 그보다 2억 5천이 높았다.
김서준은
입찰표에 적은 ‘9억 100만 원’이
너무 작고
멀게 느껴졌다.
숫자는
틀린 게 아니라,
게으른 거였다.
몸은 피곤했고,
생각은 멀어졌다.
그는
법원 공원의 벤치에 앉아
목덜미를 문질렀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낙찰 결과가 적힌 입찰표를
식탁 위에 펼쳐두었다.
그는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딸아이의 방문 앞에
멈춰 섰다.
포스트잇 하나가
아직도 문에 붙어 있었다.
[아빠 방 출입금지]
그 종이는 바랬고,
그 의미는 아직 살아 있었다.
문을 열진 않았다.
다만, 그 문 앞에서
실패한 하루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낙찰가는 10억 5천만 원.
김서준은 9억 100만 원.
그 차이는
1억 4천이 아니라,
시장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내 마음의 거리였다.
숫자는 단순했지만,
그 간격은
상실의 깊이만큼이나 멀었다.
그는 침묵했다.
이 시장에선,
최신정보와 빠른 판단이 이긴다는 걸
이제야 알아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창밖엔 비가 흩날렸고,
그 비마저
예측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루는 지나갔지만,
그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었다.
***
골목 주점에서 마주한 한기준은
이야기를 다 듣더니,
입꼬리만 올려 한마디를 내뱉었다.
“형님,
서울 아파트 경매는
감정가 대비 105%가 평균이에요.
입지 좋으면
110%도 넘어요.”
김서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시세보다 비싸게
낙찰받는 게 말이 돼?”
한기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시세가 오를 거라
믿는 거죠.”
김서준은 반박하지 못했다.
말은 없었고,
마음속엔
무거운 문장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놓친 건,
가격이 아니라 흐름이었다.’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정보는 넘쳤지만,
결심은 느렸고,
흐름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테이블 위 입찰표가
시세의 벽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수익률, 감정가, 입지 분석.
그 모든 계산은
'결정'이라는 감정의 늦음을
이기지 못했다.
***
집에 돌아온 그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대출이자 변동금리 안내문이
놓여있었다.
기존 3.8%에서 4.1%로
금리 인상.
종이의 결이,
마음보다 먼저 차가웠다.
안내문 옆에
오래된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21세기 사전 – 자크 아탈리』
그는 중얼거렸다.
“삶을 소유하는 것과
머무는 건… 어떻게 다를까.”
무심코
‘거주’ 항목을 펼쳤다.
그 순간,
빛이 흔들렸고
낯선 목소리가
어디선가 흘렀다.
“당신은
소유를 믿고 살아왔지.
가진 것이
지켜줄 거라 믿었고,
벽이
삶을 막아줄 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어.
집은 이제
가지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야.”
“소유는
불안을 낳고,
거주는
관계를 낳는다.”
“흐름 속에 머무는 자만이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
말이 멈췄고,
책은 닫혔다.
묵은 먼지가
허공에 흩날렸다.
김서준은
꿈에서 깨어났다.
그 순간,
결심이 섰다.
소유는
전략이 될 수 없었다.
이제는,
거주가 전략이었다.
홍제동 삼익아파트.
혼자서 세 번의 겨울을 견뎠던 집.
그 집을
9억에 팔았다.
4억은 대출을 갚고,
남은 5억으로
가좌역 DMC파크뷰자이 25평,
전세를 얻었다.
공간은 줄었고,
이자는 사라졌다.
세금은
그를 부르지 않았다.
중과세도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그는,
‘무주택자’라는
강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
김서준은
호흡을 골랐다.
소유를 놓은 자만이
흐름 위에
설 수 있었다.
호텔 쉼은 팔렸고,
손에 남은 건 돈이 아니라
1년의 시간과
한 줄의 교훈이었다.
소유는 무게였고,
흐름은 방향이었다.
이해하는 자만이,
그 방향을 설계할 수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젠,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자.
돈이 아니라,
앎으로 설계된 구조를.’
[다음화 예고]
새판을 짜려면,
지식이 필요했다.
흐름을 설계하려면,
그 구조를 증명할 언어가 있어야 했다.
전문성을 얻기 위한 싸움은,
그 어떤 투자보다 치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