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와 하이힐, 그리고 유럽의 목욕 문화: 오해와 진실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위생과 패션의 역사, 그 복잡한 진실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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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람들은 예전에 잘 안 씻어서 향수를 발명했대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입니다. 하이힐도 마찬가지죠. "더러운 거리의 오물을 피하려고 높은 굽을 신었다"는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요?

역사를 30년 넘게 들여다본 사람으로서, 오늘은 이 흥미로운 오해들을 하나씩 풀어보려 합니다.


유럽 사람들, 정말 안 씻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중세 유럽을 떠올리면 흔히 불결하고 지저분한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중세 초·중기 유럽 도시에는 공중목욕탕이 꽤 많았습니다. 고대 로마부터 이미 거대한 목욕 시설과 상수도·수로망이 발달해 있었고, 뜨거운 물·미온수·냉탕을 나눠 즐기는 목욕 문화가 일상이었습니다. 이 전통이 완전히 끊긴 게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중세 유럽의 궁정과 도시로 어느 정도 이어졌습니다. 귀족과 상인들은 정기적으로 목욕을 즐겼죠.


그렇다면 언제부터 달라진 걸까요?


14세기 흑사병이 전환점이었습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사라졌던 이 대재앙 이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모공이 열려 병균이 더 잘 침투한다"는 믿음이 퍼졌고, 공중목욕탕은 윤리·위생 문제까지 겹쳐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종교 개혁 이후 목욕탕이 '퇴폐의 상징'으로 공격받은 것도 영향을 줬습니다. 과학이 아닌 공포와 도덕 담론이 만든 위생 관념이었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혀 안 씻은 것"이 아니라, "씻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17~19세기, '드라이 클린' 시대의 위생법


18~19세기 유럽 상류층은 나름의 위생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신욕은 건강에 해롭다고 여겼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위생법은 대체로 이랬습니다.

얼굴, 손, 겨드랑이, 생식기 등 일부 부위만 물수건으로 꼼꼼히 닦기

몸에 가장 가까운 속옷·셔츠를 자주 갈아입기

겉옷보다 속의 흰 린넨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청결"의 상징으로 삼기


당시 기록을 보면, "흰 셔츠를 자주 갈아입을 수 있느냐"가 그 사람의 재산과 청결을 동시에 보여주는 기준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샤워부스에서 전신에 물을 끼얹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린넨을 통한 드라이 클린 문화"가 있었다고 보는 게 더 가깝습니다.


"물은 적게 쓰되, 옷과 특정 부위를 자주 관리한다"는 방식이죠. 지금 우리 기준으로는 부족해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꽤 신경 쓴 편이었습니다.


당시 파리의 중산층 기록을 보면, 매일 부분 세척을 하는 것이 꽤 일반적이었습니다. 즉, "샤워 부스에서 매일 물 샤워" 기준으로 보면 덜 씻은 게 맞지만, "당시 위생 수준과 관념" 기준에서는 나름 열심히 관리한 셈입니다.


왜 제대로 씻지 못했을까? – 인프라와 의학 인식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인프라의 부재입니다.

19세기 중반 이전, 런던·파리 같은 대도시조차 제대로 된 상수도·하수도 체계가 없었습니다. 깨끗한 물은 귀한 자원이었고, 물을 집까지 길어 오거나 배달받는 데는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도심의 상수원 자체가 오염되어 있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깨끗한 물 = 귀한 자원이었고, 들여오려면 인력·비용이 많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몇 가지 요인이 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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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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