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트렌드 성지'에서 '젠트리피케이션 교과서'로 전락할 것인가
성수동 연무장길, 주말 오후.
디즈니 팝업 앞 줄은 인도를 넘어 차도까지 밀려난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가 뒤섞인 대화 소리가 들린다.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로, 평당 3억 원을 호가하는 붉은 벽돌 건물이 서 있다. 서울시 공식 관광 사이트는 이곳을 "MZ 트렌드가 태어나고 퍼지는 진원지"라 부른다.
하지만 이 화려한 풍경 뒤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850㎡ 건물의 월세 2억 원, 하루 단위 단기임대료가 웬만한 소상공인의 한 달 매출을 삼킨다. 수제화 공장은 사라지고, 동네 카페는 체인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외국인 관광객의 '성수 열풍'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이 과열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성수동은 지금, 세계 도시들이 반복해온 '상권 버블'의 전형적인 궤도 위에 올라가 있다.
성수동 팝업 현상을 움직이는 동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수 MZ세대의 '경험 소비' 열풍이다. 짧고 강렬한 체험, SNS 인증 가능한 공간, 한정판 굿즈에 대한 갈증. 이들이 성수동을 첫 번째 팝업 성지로 만들었다.
그런데 2023년부터 두 번째 동력이 가세했다. 바로 해외 관광객의 급증이다.
K-드라마, K-팝, K-뷰티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성수동은 "서울에서 꼭 가봐야 할 핫플레이스" 리스트의 상위권에 올라섰다. 명동·동대문은 '쇼핑'이고, 강남은 '럭셔리'라면, 성수동은 '트렌디하고 로컬한 K-컬처 체험지'로 포지셔닝됐다.
문제는 이 글로벌 인기가 임대료 상승의 새로운 명분이 됐다는 점이다.
내수만 타겟으로 할 땐 "주말 유동 인구 3만"이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연간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 성수 방문율 15%"가 새로운 기준이 된다.
건물주와 중개업자에게 이 논리는 완벽하다.
"일본·중국·동남아 관광객이 성수를 찾는데, 임대료가 왜 안 오르나요?"
하지만 이 논리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다.
관광객 기반 상권은 내수 상권보다 훨씬 취약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2010년대 초반,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던 곳은 인사동과 삼청동이었다. 한옥, 전통 찻집, 갤러리가 '한국적인 것'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자 그 자리를 홍대, 이태원, 성수가 차지했다.
성수동이 지금 뜨거운 이유는 'K-힙'이라는 트렌드 코드에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공장 개조 카페, 감성 팝업, 로컬 브랜드. 이 이미지는 2020년대 초중반의 K-컬처 문법이다.
그런데 만약 5년 뒤, 해외에서 선호하는 K-이미지가 바뀐다면?
예컨대 "서울=미래 도시"라는 새로운 코드가 뜨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강남 코엑스나 잠실 롯데타워 쪽으로 몰린다면?
그때 성수동 팝업 건물주는 누구에게 월세 2억을 받을 건가.
내수 상권의 핵심은 반복 소비다. 동네 주민, 직장인, 대학생이 일주일에 두세 번 들르는 카페·식당이 상권의 뼈대를 이룬다.
하지만 관광객은 1회성 방문자다. 성수동을 다녀간 일본 관광객이 두 달 뒤 다시 성수동 팝업에 올 확률은? 거의 없다. 그들은 다음번엔 부산이나 제주를 갈 것이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내수 기반 상권은 공실이 생겨도 버틸 여력이 있지만, 관광 기반 상권은 유행이 꺾이는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진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2020년 팬데믹, 2022년 엔저 현상. 이 모든 사건은 한국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를 급격히 요동치게 만들었다.
만약 중국과의 외교 관계가 냉각되거나, 엔화 강세가 지속되거나, 동남아 경제가 침체되면, 성수동을 찾는 관광객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임대료는 이미 '외국인 유입 정점'을 기준으로 올라가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이 줄어도 임대료는 내려오지 않는다. 그 차이를 메우지 못한 상가들은 공실로 남는다.
뉴욕 소호(SoHo)는 성수동의 20년 선배다.
1960년대 공장지대였던 소호는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창조의 거점이 됐다. 그러다 이 '힙한 분위기'를 찾아 관광객과 명품 브랜드가 들어왔다. 임대료는 치솟았고, 예술가는 쫓겨났다. 지금 소호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쇼핑 거리 중 하나지만, 더 이상 '창조적인 동네'는 아니다.
소호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관광지가 되는 순간, 그곳은 '사는 곳'이 아니라 '파는 곳'이 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