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의 천재, 발자크

우리는 왜 진짜 나를 숨기면서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는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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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빚쟁이를 피해 뒷문으로 도망치는 대문호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 평전》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자신의 허영심을 위해 평생을 불태웠다." 19세기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 그러나 그 찬란한 이름 뒤에는 빚쟁이를 피해 파리의 뒷골목을 전전하며 도망치던 한 남자가 있었다.


오후 네 시에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 발자크는 자정부터 다음 날 낮까지 하루 15시간씩 글을 썼다. 터키식 커피를 하루 30잔에서 50잔씩 마시며. 문이 두드려지면 하녀에게 "발자크 씨는 없습니다"라고 거짓말을 시키고, 지금은 박물관이 된 파리 파시의 집 뒷문으로 도망치곤 했다. 그 뒷문은 오늘날 '포도주 박물관'으로 통하는 골목이었고, 그곳에는 아직도 등불을 든 발자크 조각상이 서 있다.


소설 속에서 인간의 탐욕과 허영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해부한 작가가, 정작 현실에서는 가짜 귀족 문장을 마차에 새기고 귀족 행세를 위해 이름에 '드(de)'를 붙여 넣었다. 왜 그는 자신이 비판한 바로 그 모습을 살았던 것일까.


② 평민 발자크, 귀족이 되고 싶었던 허영의 연대기


1799년 프랑스 투르에서 태어난 오노레 발자크의 본래 성은 '발사(Balssa)'였다. 아버지가 좀 더 그럴듯하게 들리도록 '발자크'로 바꾸었을 뿐, 귀족과는 거리가 먼 중산층 가정이었다. 그러나 발자크는 훗날 아무 근거 없이 자기 이름에 귀족 가문만 쓸 수 있는 '드'를 집어넣었다. 오늘날 전 세계 서점에 깔린 그의 책 표지에는 그가 원했던 대로 '오노레 드 발자크'라고 인쇄되어 있다.


허영은 이름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남의 집 귀족 문장을 도용해 자기 마차와 식기에 새겼고, 거금을 들여 터키석이 박힌 황금 지팡이를 주문 제작했다. 빚에 쫓기면서도 최고급 흰 장갑을 365켤레나 주문해 하루에 하나씩 쓰고 버리듯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당시 진짜 귀족들은 "저 뚱뚱한 소설가가 또 귀족 놀이를 하는군"하며 뒤에서 비웃었다고 한다.


그의 사업 이력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출판사와 인쇄소를 운영했으나 모두 파산했고, 파리 근교에 파인애플 농장을 차리겠다며 유리 온실을 지었으나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대 로마 문헌 한 줄만 믿고 사르데냐 섬의 은광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돈 버는 감각은 마이너스였지만, "이번엔 대박이다!"라는 확신은 매번 흔들리지 않았다.


그 결과 발자크는 평생 빚에 시달렸다.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썼고, 글을 써서 번 돈으로 다시 사치를 부렸다. 20년이 채 안 되는 작가 생활 동안 90편이 넘는 장편과 중편소설을 쏟아낸 원동력은, 역설적으로 이 '빚'이었다. 소설의 세계에서는 자본주의의 흐름과 돈의 생리를 꿰뚫어 보는 대가였지만, 현실의 그는 돈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몽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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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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