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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교양이 아니라 포트폴리오다

성인 독서율 43%의 시대, 우리는 왜 '읽지 않는 비용'을 계산하지 못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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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맛볼 책, 삼킬 책, 씹어야 할 책


1625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마지막 수상록 「학문에 관하여(Of Studies)」에서 독서의 쓸모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즐거움, 장식, 능력. 그는 "읽되 반박하려 하지 말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도 말라"고 썼다. 무게를 달고 숙고하라는 뜻이었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한국 성인의 종합 독서율은 43.0%였다.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독서자조차 연간 평균 3.9권에 그쳤다. 월평균 소득 200만 원 이하 계층의 독서율은 9.8%, 500만 원 이상은 54.7%―그 격차는 5배를 넘었다.

400년 전 베이컨이 분류한 '씹어 소화해야 할 책'의 자리에, 지금은 숏폼 영상이 들어앉았다. 문제는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읽지 않는 비용을 아무도 계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독서율은 떨어지고, 기술 수명은 짧아진다


한국 성인의 종합 독서율 추이를 보면 구조적 하락이 선명하다. 2013년 72.2%에서 2019년 55.7%, 2021년 47.5%, 2023년 43.0%로 10년 만에 거의 반토막이 났다. 1994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의 독서율은 15.7%까지 떨어졌고, 독서를 안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4.4%)'였다.


동시에 직업 세계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2025년 링크드인이 발표한 유망 직업 25개 중 상위권은 AI 엔지니어, AI 컨설턴트, 데이터 엔지니어 등이 차지했다. 3~5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비주류였던 직무들이다. 기술 역량의 유효기간이 짧아지는 반면, 고전이 훈련시키는 능력―복잡한 텍스트를 해석하는 문해력, 다층적 논증을 따라가는 사고력, 맥락을 읽는 판단력―은 산업이 바뀌어도 전이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24년 독서문화 통계에서는 출판 콘텐츠를 폭넓게 정의해 성인 독서율을 87.8%로 집계했다. 종이책 80.4%, 전자책 37.5%, 웹툰 41.4%. 숫자는 높아졌지만, 여기에는 웹툰과 웹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읽는다'의 정의가 넓어진 것이지, '깊이 읽는다'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고전을 읽는 행위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3.감가상각이 느린 자산이라는 역설


경제학에서 교육과 학습은 인적자본 투자로 분류된다. 핵심은 특정 직무기술과 범용 능력의 수명 차이다. 특정 소프트웨어 활용법, 특정 규정의 해석 능력은 그 소프트웨어가 교체되거나 규정이 개정되면 가치가 급락한다. 반면 복잡한 텍스트를 독해하는 힘, 논리적 구조를 세우는 힘, 상대방의 전제를 파악하는 힘은 산업과 직무가 바뀌어도 재사용된다. 투자론의 언어로 말하면, 고전 독서는 감가상각이 극도로 느린 자산에 베팅하는 행위다.


정보경제학의 관점에서도 고전은 작동한다. 현실의 시장은 정보 비대칭이 크다. 누가 유능한지, 누가 신뢰할 만한지를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호로 판단한다. 고전을 꾸준히 읽고 그 언어로 사고하는 사람은 장기지향성, 자기규율, 고급 문해력이라는 세 가지 신호를 동시에 방출한다. 특히 기획, 협상, 리더십처럼 정답이 없는 영역에서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성과를 가른다. 고전은 그 설명의 재료―개념, 비유, 논증의 프레임―를 제공한다.


인지편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반복 증명해왔다. 확증편향, 최근성 편향, 과잉확신, 손실회피. 문제는 이런 편향이 일상의 소소한 판단이 아니라 큰돈이 걸린 의사결정에서 치명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투자, 인사, 계약, 리스크 판단―대형 손실은 대부분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다. 고전은 인간의 욕망, 공포, 권력, 군중심리를 수천 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 반복 노출이 "나도 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메타인지를 만든다. 고전이 수익을 '늘리는' 도구라기보다, 대형 손실을 '방지'하는 장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래비용경제학의 시각에서 보면 더 명확하다. 코즈(Coase)가 정의한 거래비용―협상, 설득, 갈등 조정, 문서화, 분쟁―은 비즈니스의 상당 부분을 잠식한다.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고, 상대 관점의 논리를 재구성하며, 문장으로 합의를 고정시키는 능력이 올라가면 이 마찰비용이 줄어든다. 고전이 훈련시키는 것은 바로 이 능력이다. 복잡한 텍스트를 관통하는 연습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관통하는 연습과 구조가 같다.


네트워크 경제학의 관점도 빠뜨릴 수 없다. 고전은 세대와 직종을 넘어 작동하는 '공통의 레퍼런스'다. 공통 언어가 있으면 신뢰 형성 속도가 빨라지고, 대화의 깊이가 달라지며, 상위 인적 네트워크로 진입하는 비용이 낮아진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곧 관계 형성의 인프라를 까는 일이다.


고전은 수익을 올리는 도구가 아니라, 비싼 실수를 막는 보험이다.

숫자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사람이 책을 집어 드는 이유는 경제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4.사람은 효율이 아니라 불안 앞에서 책을 편다


기술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통제감이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이 3년 뒤에도 쓸모가 있을까. 내 경험이 다음 직장에서도 통할까. 이 불안은 합리적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고전이 제공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불확실성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해석의 뼈대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체제, 다양한 인간 유형을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낯선 상황에서도 '이건 전에 본 패턴이다'라는 프레임이 작동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실물옵션이라 부른다. 한 길에 올인하지 않고 여러 선택지를 유지하는 능력. 고전은 그 전환 옵션을 머릿속에 설치하는 작업이다.


기다림이 불안으로 바뀌는 속도가 빨라진 시대다. 3개월 전에 배운 툴이 이미 구버전이 되고, 1년 전의 전략이 시장 변화에 맞지 않게 된다. 그때 사람이 기댈 수 있는 것은 특정 기술이 아니라, 변화 자체를 해석하는 구조다. 합리적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려움인 결정들―지금 당장 트렌드를 좇아야 한다는 조급함, 뒤처지면 끝이라는 강박―은 고전이 수천 년간 반복해서 그려온 인간의 조건 그 자체다.


2023년 조사에서 성인들이 꼽은 독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마음의 성장과 위로(24.6%)'였다. 2019년과 2021년까지만 해도 1위였던 '지식과 정보 습득'을 밀어낸 결과다. 사람들은 이미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책이 필요한 순간은 정보가 부족할 때가 아니라, 기준이 흔들릴 때라는 것을.

그렇다면 고전을 읽는 행위를 개인의 취향 문제로 남겨둘 수 있을까.


5.읽지 않는 비용은 보이지 않는다


독서율 하락의 가장 위험한 측면은 그 손실이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기술을 모르면 업무에 당장 차질이 생기지만, 문해력이 낮아지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판단의 질이 떨어지고, 설명의 힘이 약해지고, 복잡한 상황에서 맥락을 놓치는 빈도가 늘어나는데, 그 원인을 '독서 부족'으로 연결하는 사람은 드물다.


소득과 독서율 사이의 5배 격차는 인과가 아니라 상관이겠지만, 그 상관의 방향은 시사적이다.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는 프레임의 유무에 있다. 고전이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 프레임이다.

문해력의 하락은 소리 없이 진행되고, 그 비용은 항상 나중에 청구된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6.읽지 않을 자유, 읽지 않는 대가


고전을 읽는 것은 교양인이 되기 위한 의무가 아니라, 기술 수명이 짧아지는 시대에 감가상각이 가장 느린 자산을 축적하는 행위다. 그것은 인적자본의 범용성을 높이고, 정보 비대칭 시장에서 신호자산을 만들며, 인지편향이 부르는 대형 손실을 사전에 차단하는 구조를 머릿속에 설치하는 일이다.

문제는 독서율이 낮다는 사실이 아니다. 읽지 않는 비용이 비가시적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기술을 모르면 당장 알 수 있지만, 판단력이 얇아지는 과정은 본인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전환점은 선명하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것'에서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 재정의하는 순간, 시간 배분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트렌드 스킬에 올인하는 포트폴리오는 시장 변동에 취약하고, 범용 사고력이라는 저변이 깔린 포트폴리오는 어떤 전환에도 옵션을 유지한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돌아온다.


"당신의 판단력은 지금 어떤 자산 위에 서 있는가. 그리고 그 자산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남았는가."




※ 참고문헌

Bacon, F. (1625). The Essays or Counsels, Civil and Moral. London.

문화체육관광부. (2024).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세종: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출판문화협회. (2025). 「2024년 독서문화 통계」. 서울: 대한출판문화협회.

Becker, G. S. (1964). Human Capital.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Kahneman, D. (2011). Thinking, Fast and Slow.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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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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