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세금이 아니라 국가 설계였다

제도를 수입할 때, 우리는 무엇을 빠뜨렸는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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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론을 수입한 사람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1961)에서, 대령은 국가가 약속한 연금을 55년째 기다린다. 제도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이 명단에 올라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정작 그 제도가 자신을 위해 설계된 것인지, 자신이 그 구조 안의 수혜자가 될 조건인지는 한 번도 묻지 않는다.


2026년 3월 2일, 이재명 대통령은 싱가포르 순방 중 "좁은 국토에서 부동산이 전혀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많이 배워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즉각 갈렸다. 국민의힘은 '1주택자 징벌적 과세'의 신호탄이라 공격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주거권 강화'가 본의라 방어했다. 논쟁은 며칠을 이어졌지만 아무도 꺼내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싱가포르는 어떻게 그 제도를 만들 수 있었는가.

해법을 수입하기 전에 먼저 봐야 할 것은, 그 해법이 어떤 조건에서 자랐는가다.


2. 설계한 나라, 물려받은 나라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은 1960년에 설립됐다. 독립 이전, 인구의 70% 이상이 판자촌에 거주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정부는 출발점에서 결정을 내렸다. 토지 수용 권한을 국가가 선점하고, 1966년 토지수용법을 토대로 국토의 약 90%를 국유화했다. 주택은 개인 자산 축적의 수단이 아니라 국가 설계의 핵심 인프라로 정의됐다. 처음부터 '결과'가 아니라 '전제'를 설계한 것이다.


이 전제 위에 지금의 수치들이 놓인다. 2024년 기준 싱가포르 자가보유율은 90.8%이며, 이 중 약 80%가 HDB 아파트에 거주한다. 공공주택은 대부분 99년 임대 방식으로 공급되고 분양가는 정부가 통제한다. 다주택 투기 수요는 추가구매자인지세(ABSD)로 억제한다. 두 번째 주택 취득 시 매매가의 20%, 세 번째는 30%, 외국인은 최대 60%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 시스템의 비용도 명확하다. HDB 운영 적자는 매년 싱가포르 정부 예산의 약 2%로 보전된다. 집값을 낮추는 일에는 공공재정이 개입한다.


한국의 조건은 다르다. 국유지 비중은 전체 토지의 25% 안팎이다.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전체 주택의 약 8% 수준(2021년 기준)에 머물고 있다. 자가보유율은 61.4%(2024년 기준)다. 지난 수십 년간 주택 공급을 주도한 것은 민간 건설사였고, 공공은 공급자가 아닌 규제자로 역할을 한정해왔다.

지금 정치권이 논의하는 싱가포르 모델은 이 구조적 거리를 건너뛴 채, 세율과 임대 기간이라는 결과물만 들여다보고 있다.


3. 세금이 아니라 전제가 다르다


국가가 설계자였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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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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