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바깥에서 세계는 이미 시작되었다

미네르바가 강의를 버린 이유, 한국 대학은 알고 있는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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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이 사라진 자리


1971년,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에서 이런 명제를 남겼다. 학교는 학생을 훈련시켜 출석을 학습으로, 학점을 역량으로, 졸업장을 능력으로 혼동하게 만든다. 배움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왜'라는 질문이다.


반세기가 지난 2026년 봄, 서울의 한 대학 강의실을 상상해보라. 200명의 학생이 스크린을 바라보고, 교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퍼진다. 질의응답 시간, 손 하나가 올라온다. "시험 범위가 어디까지입니까?" 아무도 '왜 이것을 배우는가'를 묻지 않는다. 질문해도 학점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미네르바 대학에는 그 강의실 자체가 없다. 그 선택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따라가면, 한국 대학 교육의 구조가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2. 숫자로 본 두 개의 교육


한국의 고등교육 취학률은 2022년 기준 73.8%다(e-나라지표).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 명 중 일곱 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치다. 그런데 이 숫자와 함께 자라난 또 다른 지표가 있다.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000억 원이었다. 사교육 참여율은 80%였으며, 학생 수는 줄고 있는데 지출은 오히려 늘고 있다(한국교육개발원).


OECD는 한국 학생들의 수학·과학 성취도가 최상위권임을 인정하면서도, 디지털 정보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능력과 자기주도학습 역량이 OECD 평균을 밑돈다고 지적했다(OECD 교육지표 2025). 높은 점수와 낮은 사고력이 공존하는 구조다. 이 모순이 대학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미네르바 대학은 반대쪽에서 출발한다. 캠퍼스 강의실이 없다. 모든 수업은 20명 이하의 온라인 세미나로 이루어지며, 학생들은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도쿄, 서울,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7개 도시를 순환하며 각 도시의 현실 문제를 직접 다룬다. SAT·ACT 같은 표준화 시험을 요구하지 않고, 대신 온라인 챌린지를 통해 논리·수리·확산적 사고를 평가한다. 2026년 기준 학부 재학생은 637명이다(WSCUC 공식 자료). 한국 중형 단과대학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지만, 이 학교가 제기하는 질문의 무게는 다르다.


이 두 개의 교육은 만들려는 인간상이 다르다. 한쪽은 지식을 전달하고, 한쪽은 사고를 훈련한다. 그 차이가 왜 지금 중요한지는 숫자가 아니라 구조를 봐야 보인다.


3. 드러나지 않는 구조의 문제


학위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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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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