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투자를 배운 세대가 치르는 대가

학자금 빚투가 번지는 시대, 우리 청년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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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류센터 새벽의 청구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61년 발표한 소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 늙은 대령은 은퇴 이후 15년을 같은 자리에서 기다린다. 국가가 약속한 연금을 알리는 편지가 언젠가는 오리라는 믿음 하나로. 먹을 것이 떨어지고 아내의 기침이 깊어져도, 그는 매주 강으로 내려가 우편선이 닿기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을 버티는 힘은 돈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2026년 3월, 물류센터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친 25세 이 씨의 스마트폰에는 미확인 알림이 쌓여 있다. 지난해 여름 생활비 대출금 200만원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합쳐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가 투자금의 약 70%를 잃었다. 상환일은 다가오고 있고, 투자 카페에는 오늘도 "연 1.7%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빌려 투자하라"는 댓글이 달린다. 그는 숫자를 바라보며 한동안 화면을 내려놓지 못한다.


대령과 이 씨는 모두 기다린다. 다만 한쪽에게는 시간이 있고, 다른 쪽에게는 상환일이 있다. 기다림의 조건이 달라지면 버티는 힘도 달라지는데, 그 조건을 가른 것이 무엇인지, 숫자들이 먼저 말한다.


2. 8506억원이 가리키는 것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생활비 대출 공급 규모는 2021년 5,450억원에서 2025년 8,506억원으로 증가했다. 4년 만에 약 56% 팽창한 수치다. 같은 기간 생활비 대출 연체 규모도 192억원에서 387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 기준이다.


한국장학재단의 생활비 대출은 주거비·식비·교통비 등 학업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2026년 현재 학기당 최대 200만원까지 연 1.7%의 고정금리로 빌릴 수 있다. 목적은 학업 환경 조성이었다. 그런데 이 자금의 일부가 주식과 가상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최근 33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1년 전 약 18조원과 비교하면 약 87% 증가한 수치다.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연 1.7% 대출이면 어디에 넣어도 이긴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유통됐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이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했고, 더 많은 대학생이 그것을 보았다.


대학생 강 씨(23)는 "SNS와 유튜브에서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었다는 사례를 보며 동경심이 생겼다"며 군 전역 후 학자금 대출을 "하나의 금융 도구"로 보고 S&P500 ETF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조 씨(21)는 학자금 대출로 금 관련 자산에 투자해 약 180만원의 수익을 냈다. 이 성공 사례가 커뮤니티에서 증폭됐다. 이 씨의 손실은 콘텐츠가 되지 않았다.


대출 공급이 늘고, 연체가 늘고, 레버리지 규모가 동시에 팽창했다. 세 수치의 동반 상승은 우연이 아니다. 조건 하나가 바뀌었다. '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오를 것이다'라는 확신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생겼고, 그 확신을 만든 것은 시장이 아니라 플랫폼이었다.


3. 빌린 돈이 망가뜨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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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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