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는 왜 비어 있는가

건물을 이전하면 도시도 따라온다는 믿음은 왜 흔들렸는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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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도를 기다리는 도시


1953년 파리의 작은 극장에서 초연된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끝내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무대에는 큰 사건도, 화려한 장치도 없다. 다만 기다림만 남는다. 베케트의 이 연극은 1953년 1월 파리 테아트르 드 바빌론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2026년 4월, 경북 김천혁신도시의 역전 상가는 그 기다림을 닮아 있었다. 김천구미역 앞 상가에는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고, 24시간 마트와 식당조차 문을 닫은 곳이 눈에 띄었다. 첨부 기사에 따르면 한국부동산원 기준 2025년 4분기 김천혁신도시 집합상가 공실률은 43.0%로 제시됐다.


도시는 사람을 기다리고, 상가는 소비를 기다리고, 정책은 2차 이전을 기다린다. 문제는 기다림 자체가 아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기다림이 도시를 비게 만든다.


2. 이전은 끝났고 상가는 남았다


혁신도시는 수도권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 지역 성장거점을 만들겠다는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산물이었다. 정부는 2003년 공공기관 이전 구상을 발표했고, 2019년 12월까지 153개 기관의 지방 이전을 완료했다는 보도가 확인된다.


그러나 기관 이전이 곧 도시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김천혁신도시는 준공 이후에도 계획인구에 미치지 못했고,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인구가 2만 3383명으로 당초 계획인구 2만 6715명보다 적었다. 또 2024년 순이동 인구는 369명 순유출, 전입 인구도 최근 5년간 연평균 8% 줄었다고 보도됐다.


상가 공실은 김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집합상가 기준 혁신도시 공실률은 김천 43.0%, 광주전남 36.2%, 대구 31.7%, 충북 27.8%, 전북 26.2%, 원주 15.4%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 10.4%와 비교하면 일부 혁신도시는 상권 자체가 정상적인 임대시장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는 다시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약 350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전 가능성을 검토하고, 상반기 내 기본계획 수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겉으로 보면 답은 단순해 보인다. 더 많은 기관을 옮기면 더 많은 사람이 오고, 더 많은 사람이 오면 상권이 살아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혁신도시의 공실은 기관의 수가 부족해서만 생긴 문제가 아니다. 이제 행간을 읽어야 한다.


3. ‘지으면 온다’의 붕괴


혁신도시 공실의 첫 번째 원인은 수요를 도시 내부에 붙잡아두는 힘이 약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직원이 출근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그 도시에서 소비하고, 거주하고, 아이를 키우고, 주말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KTX와 고속도로가 좋아질수록 혁신도시는 지역거점이 아니라 수도권과 기존 도심을 오가는 통근 거점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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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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