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울지 않는 방

청년은 어쩌다 혼자 남겨졌나

by 김선철
고곡사.jpg 사진출처 :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프롤로그


밤이 되면 혼자 사는 이들의 창문에 희미한 불빛이 켜진다.
서울의 골목마다 수백, 수천 개의 창문이 있고, 그 안에는 똑같이 혼자 있지만 저마다 다른 얼굴의 외로움이 산다.


가끔, 그중 어느 창문 뒤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불빛이 꺼지고, 다시 켜지지 않는다.

이것은 그 방에 살던 이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는 신호다.
그는 왜 혼자서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을까?


고립의 시작 – '살기 위해'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


처음부터 혼자이고 싶었던 청년은 없다.
스스로의 고립을 선택한 이들은, 대부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관계까지 품을 여력이 없었던 이들이다.

29살의 정우는 작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7년째 살고 있다.
퇴근 후 좁은 방에서 혼자 컵라면을 먹으며 휴대폰을 켜지만, 아무 연락도 없다.

가끔은 엄마의 문자도 오지만, ‘괜찮아’라고 답장하고 나면 더는 말을 잇지 못한다.

정우는 살기 위해 혼자가 되었다.

월세를 벌기 위한 야근과 주말 아르바이트, 가끔 연락하는 친구들과의 만남마저도 ‘사치’가 되었다.

그의 외로움은 처음부터 개인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경제적 단절 – 관계를 포기하게 만든 ‘생존 경쟁’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끝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사회는 그 경쟁에서 밀린 이들에게 ‘실패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외면한다.


서울의 고시원에서 발견된 한 청년의 죽음도 그러했다.
통장 잔고 3,000원, 방세 체납, 수북이 쌓인 취업서류.
그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달렸지만, 끝내 사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의 주변엔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타인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가둔다.
혼자 있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사회적 단절 – ‘비교의 사회’는 마음마저 멀게 한다


한국 사회의 잔인함은 모두를 경쟁자로 만든다는 점이다.
학교부터 직장까지, 우리는 늘 비교당하고 평가받는다.
가장 가까운 친구조차 경쟁자가 되고, 서로를 위로할 겨를 없이 각자의 고립 속으로 밀려난다.


직장인 서연은 “내 삶의 고독은 회사 안에서 가장 깊어졌다”고 말한다.
업무 능력, 연봉, 사내 평판에 대한 압박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위험’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점점 사람을 피했고, 어느 순간 혼자가 되었다.
관계는 경쟁사회에서 ‘위험한 감정의 투자’가 되었다.

고립은 개인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관계 자체를 위험으로 인식하도록 만든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사회의 경고


고독사로 발견된 이들의 죽음은, 사실상 사회가 개인에게 보낸 경고다.
“이 사회에서 혼자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경고 말이다.

외로움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관계가 해체된 사회의 병이다.
청년이 혼자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사회는 분명 무언가 잘못됐다.


에필로그 – 혼자가 아닌,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고독사를 막는 것은 단순히 혼자 사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일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은,
혼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관계를 원하는 순간 곁에 누군가가 있는 사회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경제적 어려움이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
그리고, 타인의 손을 잡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위안이 되는 사회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관계의 완벽한 회복이 아니라,
홀로 남겨지지 않을 최소한의 믿음이다.


사회는 이제 이 믿음을 돌려주어야 한다.
청년들이 혼자서 삶을 떠나지 않도록,
우리는 서로의 고독을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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