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D-DAY 2014. 9.15. (월)
ㆍ 입대 날, 부랴부랴 일어나서 진해로 떠났다.
연병장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온몸에서 땀이 줄줄 나기 시작한다. 멀리서 군악대가 보이고, 입영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입영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들. 그래도 애써 웃는 장정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ㆍ 입대 행사 시간 30분여 전, 모든 입대 장병들이 모두 연병장에 모이고 어느새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너무나도 무더운 땡볕 아래 시간만 꾸역꾸역 보내고 있었다. 정시가 되자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축사 등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향한 경례로 가입영식을 마쳤다.
훈련장 까지는 부모님과 같이 이동할 수 있었는데, 가족들이 날 못 찾아와서 약간 겁먹기는 했다. 저기 멀리 지나가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고 부리나케 달려가 마지막으로 배웅을 맞이할 수 있었다.
ㆍ 사실 훈련소 안으로 들어가면 교관들이 욕부터 할 줄 알았는데, 그들은 각 잡고 소리만 지르더라. 어쨌든 땡볕을 맞으며 물품, X-RAY 번호를 지급받고 또 땡볕 아래 앉아 있는 게 그렇게 고역이더라. 가소대 배치받고 이상한 인성 검사 후 첫 짬을 먹었는데 생각보다는 너무 맛있었다.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 비웠는데 그때 먹었던 단호박 국이 참 기억에 남는다.
첫 짬을 먹고 처음 보는 직각 보행을 어설프게 따라 했다. 다시 교육관으로 들어가 나라사랑카드 교육, 사제 용품 제출 등을 하고 생활관으로 들어왔다. 2층으로 침대(해군에서는 닭장이라고 부르더라.)를 배정받고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 취침했다. 하지만, 모포가 너무 두꺼웠다.
ㆍ 게다가, 작은 신발을 신고 와서 그런지 물집까지 잡혀서 욱신욱신하고 발바닥은 가렵고 잠 못 이루는 동기들은 뒤척이고, 눈치 없는 누군가의 손목시계의 알람은 계속 울리기만 하고. 한 시간이나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다. 힘내자!
입대) D+1 2014. 9.16. (화)
ㆍ 6시 기상, 기분이 뭣 같다. 일어나자마자 종대로 모여 교관에게 교육받고 계속해서 대기, 대기, 대기.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데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엄청 고역이었다. 시간, 엄청 안 간다.
ㆍ 불침번을 섰다. 첫 불침번이었는데 잠자다가 깨니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아! 여기 군대였지! 하는 느낌이 확 들었다. 드디어 군대 온 게 점점 실감이 났다.
입대) D+2 2014. 9.17. (수)
ㆍ 어제보다 시간은 잘 간다. 근데 발이 너무 아프다. 살이 째져서 진물이 막 나오는 상태인데도 아침 구보를 했다. 발이 째지는 줄 알았지만 겨우 제시간에 통과를 했다. 좀 큰 신발을 신고 올 걸 그랬다. 그냥 신발을 신고만 있어도 너무 아프다.
ㆍ 그래도 제식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다. 차렷 자세부터 모든 소대원들이 발맞춰서 걷기까지, 진짜 군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ㆍ 한 소대에 70명가량씩 있는데 인성, 신체 재검사자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우리 소대도 70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55명만 남아 있다. 목요일인가, 1차 귀가 조치를 한다는데 얼마나 많은 인원이 이탈할지 가늠이 안 된다.
입대) D+3 2014. 9.18. (목)
ㆍ 점점, 적응되는 것 같다. 시간은 점점 빨리 간다. 동기들은 모두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벌써부터 자대 배치, 전역을 꿈꾸고 있다. 나는 그냥 이번 주만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ㆍ 교관들 눈은 점점 매서워지고 있다. 그에 비해 소리 한 번 안 치는 우리 소대장이 너무 좋다.
ㆍ 사회에선 몰랐는데,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힘들다. 1주 차라 그런지 대기, 대기, 또 대기. 아침 점호도 40분가량 차렷 자세로 대기하는데 춥고, 배고프고,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진짜 짜증 난다. 시간 나면 조는 게 일이다. 그나마 자면 시간이라도 빨리 간다. 신기한 건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알이 배긴다는 사실이다.
ㆍ 그나마 군대 일찍 오길 잘한 것 같다. 머리가 더 굵어서 이 짓 하라고 하면 진짜 못할 것 같다.
ㆍ 빨리 주말 왔으면 좋겠다. 미사 보고 간식 먹고 싶다. 특히 '초코파이' 너무 당긴다.
ㆍ 4일째 금연 중인 동기들을 보면 너무나도 불쌍하다. 다들 얼굴이 노오랗다. 담배 안 피우길 정말 잘한 것 같다.
ㆍ 생각해 보면 교관들도 불쌍하다. 잠도 못 자고 소리 지르고 땡볕 밑에서 같이 고생한다. 어떻게 보면 참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ㆍ 밥은 정말 생각보다 맛있다. 맛도 있고 무엇보다 시간이 잘 간다. 일기 써도 시간이 잘 가니까 자주 써야겠다.
ㆍ 병준이 형의 All of me를 한 번만 더 듣고 싶다. 자꾸 생각난다.
ㆍ 빨리 휴가 나가서 군대 안 간 친구들 놀리고 싶다. "어휴, 시간 진짜 안 가는데 어쩌냐.. 사회랑 단절돼서 주는 밥 먹고 이상한 정신병 테스트 같은 거나하고..." 먼 훗날의 일을 혼자 상상해 본다.
동운이가 군대 오면 어떨까? 중현이는? 대환이는? 윤이는? 상상만 해도 웃기다. 그래도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생각해 보니 너무 괴롭다.
ㆍ 군필자들은 다들 대단한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군필자들이 우러러 보인다.
입대) D+5 2014.9.20 (토)
ㆍ 지금은 불침번 당직. 3-4시 근무다. 4-5시 최악은 피했지만 그래도 차악이다. 하루에 8시간씩을 꼬박꼬박 잤어도 낮에는 엄청 잠 온다.
ㆍ 하루가 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하루의 시작은 아침밥을 먹으며 느끼고 하루의 끝은 저녁밥을 먹으며 느낀다. 하루 약 16시간 이상을 온전히 깨어 있는데 그래서 하루가 긴 듯하다. 깨어난 지 6시간이나 지났어도 이제야 오후 12시이니 시간이 더디게 갈 법만도 하다.
ㆍ 정식 소대 배치를 받았다. 가소대의 옆 소대인 6-6 소대에 편성받았다. 무학고 선배를 만났다. 소름이 돋았다.
ㆍ 발에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진물은 계속 난다. 보급 운동화를 신으니 더 이상 무리가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ㆍ 사실 해군에 올 때 '정훈병'을 생각하고 왔었다. 근데 병과에는 '정훈병'이 없는듯하다. 병과 고민을 새로 해 봐야겠다. 갑판병만은 되기 싫다.
ㆍ 오늘 저녁으로 닭개장이 나왔는데 국물이 다 떨어져서 팅팅 불은 고깃덩이나 몇 개 받았다. 반찬 다운 반찬은 그것 하나뿐이었는데. 맛은 있었지만 더 서러웠다. 왜냐하면 맛이 있었기에.
ㆍ의류대에 완전 군장하고 집합을 했다. 힘들어 죽을 뻔했다.
ㆍ TV에서 계속 군가나 나온다. 익숙해지고 세뇌당하는 것 같다. 어느새 흥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ㆍ 생각하면 할수록 교관도 3D 직종인 것 같다. 무슨 죄지은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나이가 되었다.'라는 이유로 군대에 들어온 생판 모르는 아기들에게 고함치고 얼차려 주고 해야 하니까. 본디 사람에게는 '불인지심'이라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게 있다고 맹자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교관들에게도 그런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ㆍ 나도 생각이 참 많이 바뀐 게, 수많은 개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것 같다. 어차피 교관들 눈에는 그놈이 그놈 같아 보일 테니깐 1300명 중 1명을 따로 컨트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단체를 움직이는 주체이기에 단체에만 잘 따르면 될 것 같다.
ㆍ 방금 일반병들은 거의 갑판으로 빠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ㆍ 방금 머리를 백구로 잘랐다. 내 머리살이 만져진다. 사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마저 사라졌다. 머리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기분 엿 같다.
ㆍ 점점 사소한 것에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어제 불침번을 섰으니 오늘 푹 잘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게다가 마지막 시간대에 근무를 서게 되면 이틀이나 불침번을 안 서도 되니 너무 좋다. 이런 걸 보면 점점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ㆍ 지금은 땡볕 아래 앉아있다. 진해 날씨는 진짜 이상하다. 햇빛이 있으면 엄청 덥고 햇빛이 없으면 너무 춥다. 진짜 이상한 곳이다.
ㆍ 오늘 점심에 '사과 스퀴즈'가 나왔다. 집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이 맛, 정말 꿀 같은 맛이었다.
ㆍ 6개월 배를 탄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이번 대학 생활 6개월간 무엇을 했는가? 엄청 많은 일을 했었고 엄청 길었다. 고생길이 보인다.
ㆍ 내일 드디어 주말이다. 종교 활동을 하면 간식을 줄까? 단 게 먹고 싶다. 빨리 주님을 만나고 싶다.
ㆍ 자세히 보니까 머리에 땜빵도 있고 앞머리 4-5가닥만 3cm 정도로 남겨 놓았다.
ㆍ 처음으로 개인 얼차려를 받았다. 교육관에서 발목을 꼬고 있었던 게 이유였는데 별로 쪽팔리지도 않았다. 일상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입대) D+6 2014.9.21. (일)
ㆍ 진해의 하늘은 무척이나 파랗다. 그리고 굉장히 덥다.
ㆍ 오늘 5시에 기상해서 종교활동을 했다. 큰 기대를 역시 저버리지 않았다. 천주교 성당에선 콜라와 초코파이, 몽쉘을 줬다. 진짜. 미친 단 맛이었다. 주변에 안 먹는다는 동기 것까지 받아 대 여섯 개를 순식간에 흡입했다. 진짜 달기는 달다.
ㆍ 미사에는 훈련병부터 군 간부까지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우리 옆에는 갓 수료한 617기 선임들이 있었는데, 너무 깐족깐족 대더라. 얼마나 얄밉던지! 그래도 그들은 여유 있어 보인다. 진짜 엄청나게 부럽다. 나도 한 달 뒤에는 저러고 있겠지?
ㆍ 미사가 끝나고 신자들끼리 모여 틀어주는 영상을 두어 개 보았다. 첫 번째 영상은 우리들의 입단식, 가족들의 영상편지 등이 담겨 있었다. 일주일을 회고하며 열심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와 누나 얼굴이 나왔다. 밥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지내라는 게 주 내용이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나왔다. 끝에 파이팅! 해주는데 진짜 울뻔했다. 가족이 너무 보고 싶다.
ㆍ 동기들은 너무 시끄럽다. 시간만 나면 진짜 미친 듯이 떠든다. 그리고 혼난다. 또 떠들고 또 혼난다. 진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ㆍ 교관들 너무 불쌍하다. 휴일도 없이 우리들 교육한다고 야간 근무까지 하고... 어떻게 보면 진짜 감사해야 할 존재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나는 이 일을 절대 못 할 것 같다.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른 통에 목이 쉬어버린 교관도 있으시고. 여하튼 정말 사서 고생하는 감사한 분들이다.
ㆍ 땡볕 아래 20분 동안이나 얼차려를 받았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교관 불쌍하기도 하지만 이런 사이코 같은 교관은 싫다.
ㆍ 일주일 동안 몰랐는데, 점호대형에 설 때면 창문 밖으로 바다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게 보인다. 우리는 어찌 보면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바다는 그저 평화롭게 흐르기만 하고 있다. 바다를 보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빨리, 바다로 가고 싶다.
ㆍ 친구들 보고 싶다. 친한 친구들이 체육복을 입고 멍청하게 앉아 있는 상상을 자주 한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일반병으로 지원했기에 아마 배를 탈 것 같다. 한 번쯤은 타보고 싶긴 한데, 6개월은 너무 길어 보인다.
ㆍ 오늘 불교 갔던 인원 중에서 어떤 훈련병이 담배를 피웠나 보다. 담배는 남자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입대) D+7 2014. 9.22. (월)
ㆍ 오늘 아침에 입단식을 했다. 어젯밤까지 연습한 입단식에는 기초군사교육 대장인 준장이 왔다. 장군이 오는 자리라 그런지 다들 엄청 예민해 있었다. 여하튼 오합지졸 618기, 무사히 입단식 마쳤다.
ㆍ 참, 어제 입단식 연습할 때 일인데, 어젯밤에 간식으로 초코파이와 몽쉘, 음료수를 받았다. 나는 거의 맨 뒤쪽에 앉았었는데, 비쩍 마른 나를 보고 불쌍하다며 초코파이, 몽쉘을 건강 소대원들이 한 움큼 모아 주었다. 한 여덟 개를 5분 만에 먹은 것 같다. 배 터지는 줄 알았다. 또 먹고 싶다.
ㆍ 오늘 병기 보급을 받았다. 살상 무기를 손에 잡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평화주의자도 군대에 가야 하는 이상한 나라다.
ㆍ 군대가 무슨 고등학교 같다. 행동 하나하나에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고, 점수가 높은 훈련병은 마치 점수가 높은 고등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가듯 원하는 부대에 배치되는 특전을 가진다.
ㆍ 헌병 우선 선발 병에 뽑혔다. 물론 자원은 안 했다. 군인이 되는 것에 우선 선발이 있다니, 다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헌병이 되면 배도 안 탈 수 있고 개인 시간도 많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나는 짠 바다 내음을 맡고 싶다.
ㆍ 마음 같아서는 영상 특기병으로, 연예병을 가고 싶다. 가고 싶은 지역은 포항이다. 울산에도 부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는 듯하다. 정훈, 항공, 연예, 이 중 무엇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ㆍ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속보를 들었다,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다.
ㆍ 1300명이나 모아 놓아서 그런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두바이에서 왔다는 동기부터 요리 국가대표라는 동기까지 보았다. 전공하는 학과도 정말 수없이 다양하다.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ㆍ좌학이 정말 편하다. 앉아서 받는 교육이 많은 이번 주가 너무 좋다.
ㆍ 안경을 오래 써서 그런가, 귀 위쪽이 아프다. 하긴, 깨어 있는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안경 쓰는 시간도 길다.
ㆍ 생각해보니 하루 16시간 이상을 매일 깨어 있는다. 하루가 긴 이유가 따로 없다. 곧, 하루 16시간을 빨간 모자와 함께한다. 이제는 빨간 모자만 보아도 털이 쭈뼛 선다.
입대) D+8 2014. 9.23. (화)
ㆍ 아침에 처음으로 전투 구보를 했다. 일어나자마자 뛰는데 진짜 너무 힘들었다.
ㆍ 방수 비닐, 2층 침대에 올려놓고 잃어버린 줄 알았다. 식겁했다.
ㆍ'이순신 리더십 교육'을 받았다. 자다 깨다 했다. 교육관에는 앉기만 해도 잠이 온다. 끝에 깨서 들었던 수업은 재미있었다.
ㆍ 솔직히, 군대를 아무 생각 없이 왔다. 그냥 승화 형이 "정훈병 편하니까 그걸 해라!"라는 말을 듣고 막연히 정훈병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어서 통정, 병기, 갑판, 조타병 등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선택지 5개 중 모두 포함되어 있다. 너무 안일한 생각만 했던 것일까? 조금 편하게 군 생활을 하고 싶긴 한데.
지금으로써 가장 좋은 선택은 보급병이 되는 것이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될까?
ㆍ 오늘은 종일 좌학만 했다. 몸이 편한 게 정말 좋은 것이구나... 다시 생각했다. 시간은 엄청 빨리 간다. 정신 차리니 저녁시간이다. 빨리 밥 먹고 싶다.
ㆍ 이제 교관들이 밥 먹을 때까지 건드린다. 밥 먹다가 팔을 식탁에 댔다는 이유로 벌써 과실을 받은 동기가 있다. 밥 먹을 땐 조금 놔주었으면 좋겠다. 해군이 진짜 빡세다는 것을 느낀다. 밥 먹고 나오자마자 교관들은 바로 얼차려를 준다. 진짜 스트레스 받는다.
ㆍ 생활관 같은 소대 옆자리 친구들과는 꽤나 친해졌다. 그래도 마음 맞는 동기들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ㆍ 주변 동기들도 짬 날 때마다 다들 뭔가 끄적대고 있다. 생각보다는 생산적은 친구들이 꽤 많다.
ㆍ 태풍이 오는 새벽부터 남해안을 강타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많이 왔으면 한다. 아침 구보는 하기 싫다.
입대) D+9 2014. 9.24. (수)
ㆍ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얼차려 받았다. 피곤하다. 비가 오긴 왔다. 전투 구보를 안 했다. 행복하다.
ㆍ 오늘은 하루 종일 좌학이다. 별로 잠은 안 오는데 몸이 편해서 그런지 어느샌가 자고 있다.
ㆍ 훈련도 생활도 생각보다는 심플하다. 신검 + 좌학 + 야교대 + 전투수영. 야교대나 수영은 종일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시간은 잘 갈 것 같다. 빨리 수료하고 싶다.
입대) D+10 2014. 9.25. (목)
ㆍ 보급병 꼭 되고 싶다. 보급병 꼭 되어서 포항병원이나 국군 복지단에서 일하고 싶다.
ㆍ 밥을 먹고 퇴식구에 나가면 교관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얼차려를 준다. 밥을 배불리 먹고 나왔는데 소화가 바로 된다. 기분이 나쁘다.
ㆍ 내일 야전 교육대로 떠난다. 떨린다.
입대) D+11 2014. 9.26. (금)
ㆍ 야전 교육대 가기 전까지 총 들고 온갖 얼차려를 다 받았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 지끈하다. 나는 언제 저 교관들과 웃으며 사진 찍을 날이 올까?
ㆍ 한창 얼차려를 받다가 너무 힘들어 눈을 감으면 사회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것인지 몰랐다.
ㆍ 매일 밤마다 '인터넷 편지'나 소포를 훈련병들에게 나누어 준다. 벌써 여럿 받은 동기들도 있지만, 나는 아직 하나도 못 받았다. 끝까지 못 받는 건 아닐까? 서럽다.
입대) D+12 2014. 9.27. (토)
ㆍ 야전 교육대 첫날. 기분도 엄청 나쁘다. 교관들은 잠이 들라 치면 소리 지른다. 깨면 기분이 좋지 않다.
ㆍ 방금 헌혈을 했다.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는지, 초코파이를 위해 피를 흘리는지 모르겠다. 초코파이는 맛있다. 언제 먹어도 맛있다.
ㆍ 초코파이 하니까 생각나는데, 내일 종교 활동도 약간 기대가 된다. 달달한 음식을 너무 먹고 싶다.
ㆍ 내가 왜 해군에 왔을까?
입대) D+13 2014. 9.28. (일)
ㆍ 훈련소 들어온 지 거의 반 정도 지났는데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에 아주 까마득하다. 야전교육대 들어왔는데 주말이 껴 있어서 쉬고 있다. 내일 종교활동이 끝나면 어느덧 3주 차로 넘어간다. 사실 극기주 (3주차)만 버티면 할 만 한데, 앞으로 펼쳐질 일주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약간 두렵다.
ㆍ 빨리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아니, 소식이라도 듣고 싶다. 왜 아무런 연락이 없을까.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잠도 푹 자고 싶다. 빨리 이 생활 청산하고 싶다. 진심으로.
ㆍ 화생방 CS가스는 어떤 맛일까? 얼마나 지독하기에 눈물 콧물이 다 나올까? 왜 모든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가스를 마셔야 할까? 정말 싫다.
ㆍ 훈련병들의 공통적 목표는 아마 '3주 차만 버티자!'일 것이다. 근데 야전 교육대의 시간은 너무도 안 간다. 밥도 맛없다. 가끔 맛있는 게 나오기도 하는데 대부분 맛이 없다. 땡볕에 있으면 오만 생각이 다 난다. 옛날 생각이 거의 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에피소드도 있다. 추억이 많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평안이며 힐링이 된다.
ㆍ 차설, 과연 2016년이 오기는 할까? 22살의 권기윤은 어떤 모습일까?
입대) D+14 2014.9.29. (월)
ㆍ 본격적으로 훈련이 시작되었다. 유격 체조까지는 그래도 뭔가 할 만했는데 목봉 할 때 울었다. 목봉을 들었을 때 진짜 오만 생각이 다 났다. 엄마 보고 싶다. 너무 서럽다. 아직도 3주나 남았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울 날이 많이 남았나 보다.
ㆍ 또, 밥을 먹는데 '밥'이 없어서 한 시간이나 대기했다. 결국 2시간이나 걸려서 식사를 마무리했다. 야전교육대는 또다시 오기 싫다.
ㆍ 엄마 편지가 왔다. 내용은 역시 별것 없었다. 아들 보고 싶고,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게 골자였는데 기다리고 있었건 것이 왔기 때문인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서럽기 때문인지 편지를 읽자마자 울었다. 엄마 보고 싶다.
ㆍ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야간 비상훈련을 받았다. 한 시간 동안 앉았다 일어서기, 도핑 테스트를 했는데 비틀비틀할 때까지 얼차려를 받았다. 끝날 때 모든 중대원들이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았는데 힘들기도, 엄마 생각나기도 해서 또 울었다.
입대) D+15 2014.9.30. (화)
ㆍ 방금 화생방을 끝냈다. 후기를 좀 길게 적겠다.
화생방에 시작하기 전, 영진이 형이 일러 준 대로 정화통 막고 조이기를 엄청 세게 하고 갔다. 그래서 처음 가스실에 들어갔을 때 CS가 코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런데, 곧 시작된 정화통 분리. 숨을 크게 들이켜고 정화통을 풀었다. 하지만 숨 참는 것도 몇 초, 곧 내쉬고 다시 들이켰다.
그때, 목부터 시작되는 미친 뜨거움. 관자놀이가 알싸했다. 그래도 그때까진 괜찮아 보였다. 산소가 필요해서 한 번 더 들이켰다. 그때부터 목이 미치도록 따가우면서 트림이 계속 나기 시작했다. 트림을 한 열댓 번 한 것 같다. 콧물도 나기 시작하고 방독면이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맨 앞자리였기에 바로 앞에선 CS 탄이 타고 있고 또 그 앞엔 교관이 지키고 있었다. 주변에선 소리 지르고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숨이 안 쉬어진다고 말하고 진짜 죽을 맛이었다. 곧이어 정화통 결합 때는 구멍을 못 찾아서 한참이나 헤매었다. 결국 옆의 동기에게 도움을 청했고 겨우 끼워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런데 코로는 들어오는 산소가 너무 부족해 어느샌가 입으로 숨을 쉬기 시작했고 그래도 그나마 괜찮아졌다.
그리고 이어진 2차 분리. 너무 하기 싫었지만 앞에 교관이 지키고 있어서 억지로 풀고 정화통을 팔로 막았다.
그러자 그걸 본 교관이 내 정화통을 가져가 버렸다. 깜짝 놀라 나는 그 교관을 미친 듯이 쫓아갔다. 그 교관은 내게 앉아서 기다리라고 지시했고 나는 자리로 돌아가 두 손들고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입으로 숨을 쉬는데 목 안쪽 폐가 있는 곳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입으로 숨을 쉬니까 살 만은 했다. 눈물과 콧물이 흐르고 가삐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정화통 결합 명령이 나왔다. 이번에는 순식간에 결합해 숨을 쉴 수 있었다.
ㆍ 모든 훈련이 끝난 우리는 모두 박수를 쳤고 주변의 전우들에게 고생했다고 다독였다.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미치도록 길었고 드디어 나갔을 때는 산소의 소중함을 격히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저 가스실에 처넣어 버릴까 봐 말을 순순히 잘 들었다.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다.
입대) D+19 2014.10. 4. (토)
ㆍ 화생방 훈련이 끝나고 문득 목이 아파지더니 이내 감기에 걸렸다. 목에서는 가래까지 끓고 의무대를 2번이나 다녀왔다. 확실히 야교대 침낭이 안 좋긴 한가 보다. 야교대 갔다 온 뒤로 기침하는 동기들이 꽤 많이 늘었다.
ㆍ 여하튼,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해군 훈련 중 가장 힘들다는 행군 훈련은 받지 못했다. 대신, 행군 훈련을 수행하는 동기들의 의류대를 옮겨주거나 잡 일을 하는 등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행군을 못 한다.'라는 생각에 되게 찜찜했었는데, 이제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ㆍ 기초군사교육단에 다시 돌아오니 진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일단 시설이 좋다는 것, 또 밥도 맛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닥이 아스팔트라 엎드리는 얼차려를 받더라도 손이 안 아프다. 매일 자갈길에 엎드려뻗쳐를 하다가 어느덧 손이 단련되었나 보다.
ㆍ 엄마랑 누나한테 편지가 왔다.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가족 보고 싶다.
ㆍ 기초군사교육단에 와서 계속 제식 훈련만 한다. 제식, 너무 재미없다.
입대) D+22 2014.10. 7. (화)
ㆍ 기대했던 전투 수영은 내 생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특히, 25M 수영 완주를 못 한 나는 4급에 배정받았고, 얼차려 비슷 한 체조를 하루 내내 받았다. 자유형은 숨이 너무 차서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재빨리 배영으로 갈아탔는데, 한 시간 배운 후 바로 25M 완주를 했다.
3급으로 올라온 이상, 이제는 더 수행해야 할 것은 없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후련하고 수료를 차차 기다린다. 어느새 같은 소대 동기생들과도 꽤나 정이 들었다. 막상 또 헤어질 생각을 하니 약간 아쉬운 느낌도 든다.
입대) D+23 2014.10. 8. (수)
ㆍ 사실 D+가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훈련소 생활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도 맞지만, 이성에게서 떨어져 있는 일수 와도 같다. 곧, 23일째 이타 성과 분리되어 있다는 말인데, 이상하게도 생각이 잘 안 난다. 콩나물에 정력 감퇴제가 들어 있다는데, 매일같이 콩나물이 나온다. 진짜일까?
입대) D+28 2014.10.13. (월)
ㆍ 밥 먹기 전에, 10분 정도 얼차려를 받았었다.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해서 의무대 진료를 받았는데 열이 39도라고 하셨다. 내친김에 X-RAY에는 폐렴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보내주었다. 난생처음 구급차를 타고 해양 의료원에 도착해 4박 5일 동안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잠도 실컷, 책도 실컷, 훈련소 생활에는 상상도 못 한 TV도 보았다. 게다가 가족들과 통화도 하고, 도넛과 초콜릿 등 먹고 싶은 음식도 잔뜩 먹으며 정말 행복한 4박 5일을 보냈다. 아주 휴양한 느낌이다. 기초군사교육단 다시 돌아오니 수료까지 3일 남아있다. 조만간 수료다.
ㆍ 그리고 더 기쁜 소식으로, 보급병에 배정 됐다.
입대) D+30 2014.10.15. (수)
ㆍ 희망 근무지는 '서울'로 썼다.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 되길 바란다.
ㆍ 종합 실기평가까지 마무리되었다. 사실상 모든 과업이 끝났다. 개운하다.
ㆍ 생도대장님과 같이 식사를 했다. 밥 먹다 손뼉 치는 것을 보면서 여기가 북한인가, 착각했다.
입대) D+32 2014.10.17. (금)
ㆍ 드디어 수료했다. 진짜 길기도 길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진짜 수료하는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2일 가까이 수료식 연습을 하고 오늘, 부모님에게 정모수여를 받았다. 기초군사교육단을 아무 탈 없이 끝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다. 후반기 교육도 기대된다.
근무지는 결국 서울로 받았다. 그곳은 어떨까?
ㆍ 훈련소 교육을 받는 동안 국방 TV에서 '훈련병의 품격'이라는 영상을 매일 찍어 갔다. 수료 날 우리 소대에도 카메라가 왔었는데, 나도 몇 장면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