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D-101 2013.11.21. (목)
<반딧불이 토마토>
ㆍ 청소년 교육문화 공동체 '반딧불이'는 매년 수능을 마친 예비 대학생들을 상대로 작은 교육을 진행한다. 의무교육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와 너, 세상과 다른 무언가를 배우는 모임이다.
이 모임의 이름은 '토마토'이다. 왜 토마토냐면, 토마토가 식물인지 과일인지 구분하기 힘들듯, 수능 친 고3들도 학생인지 성인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단다.
어쨌든 고등학교 시절 정말 우연히 연이 닿아 축제를 기획하고 활동하게 된 청소년 단체 반딧불이에서 하는 마지막 활동, 20대의 시작을 알린 반딧불이 토마토. 경주에서 대구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6주간 왕복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엄청 느낀 점과 배운 점이 많은 활동이었다.
ㆍ 수능을 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빼빼로 데이로 기억되는 이 날, 처음으로 막 수능을 친 여덟 명의 학생들이 모여 토마토 활동에 대한 소개를 듣고, 세은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따끈한 어묵탕을 먹었다. 그곳에 나온 모든 친구가 토마토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처음 보는 자리라 수줍어하면서 인사했던 것들이 인상 깊다.
처음으로 우리가 한 활동은 과일, 식물, 동물로 나 자신을 표현하기. 다들 말도 안 되는 사물들을 집어놓곤 거기에 끼워 맞추느라 고생했다. 내 기억으로는 가지가 싫어서 가지를 골랐고, 무당벌레는 항상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는데 나도 항상 어딘가에 올라가는 성격이 비슷하다고 그랬다. 아무튼, 나를 다른 사물로 표현해 본다는 시도가 엄청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음으로 우리가 했던 활동은, 서로에 얼굴에 대해서 그려주기. 그림을 엄청 못 그리는 나는 지영이의 얼굴을 아주 못나게 그려놨고, 그 그림에 삐친 지영이는 먼저 가 버렸다. 어쨌든 이날은 서로에 대해 관찰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첫 발판이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쳐다본 적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곤 했다.
그다음으로 했던 활동은 MBTI 검사.
유형이 엄청 많아서 검사하는 데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내 성격을 내가 분석해 보면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정확하게 알고, 나와 정반대의 유형의 의견을 들어보며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력을 늘릴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생각보다 정확하게 들어맞는 MBTI는 재미있었다.
다음으로 했던 활동은 가장 기억에 남는 성교육. 다들 부끄럼을 무릅쓰고 성(姓)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나는 의외로 보수적인 성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전문 강사님에게 성의 개념과 sex, gender, sexuality의 단어에 관한 강의를 들으며 남녀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배워볼 수 있었고, 귀가 빨개질 때까지 성에 관해 이야기했던 그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ㆍ 다음으로 우리가 갔던 곳은 1월 1일을 맞아 찾아갔던, 팔공산 갓바위.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많은 분이 도착하셔서 부처님 앞에서 108배를 하고 있었다. 새해 첫날부터 다들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에 나도 엄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 팔공산 갓바위는 시험 기원을 잘 들어준다고 하지만, 일단은 시험에서 해방된 우리라 앞으로 1년 동안 더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들 한마음이 되어 부처님께 빌었다. 새해가 되어 우리는 합법적으로 음주를 할 수 있었고, 성인이 된 기념으로 갓바위에서 내려오며 파전과 막걸리를 마셨는데, 승희는 너무 무리하게 마셨는지 완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창밖으로 구토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다음으로 했던 경험은 장애인 인권에 관하여 교육을 받은 것. 이 활동 역시도 반딧불이 토마토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이다. 실제 몸이 불편한 장애인 강사님들에게 간단한 장애인 인권 교육을 받았고 이번엔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강사님들과 직접 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 대출해 오는 활동을 하면서 실제 장애인들이 겪는 고충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ㆍ 토마토의 마지막 행사는 MT였다.
MT는 화원 휴양림이란 곳으로 향했다. 화원 휴양림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무작정 게임부터 시작했다. 가위바위보로 그날 밤 요리를 할 것인지 다음날 설거지를 할 것인지 정하고, 윙크 게임이라는 생소한 놀이를 했었다. 그리고 그냥 마당으로 나가서 무작정 뛰어놀기 시작했다.
꼬리잡기 놀이를 했는데, 4명이 꼬리를 잡는다며 열이 나게 뛰어다녔지만 30분 동안이나 게임이 안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힘이 다 빠지도록 놀고 저녁을 먹은 후 밤이 무르익어 갈 때쯤 우리는 칭찬 샤워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말 그대로 촛불 사이로 사람을 앉혀놓고 여태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칭찬을 안 해도 상관없었기에, 가영 선생님은 여태 내게 담았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서운했던 감정들을 모두 토로하시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네가 있어서 나도 성장했다고 말씀해 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 모든 감정을 청산하는 자리였기에,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던 그런 자리였다.
다음은 느린 우체통이라는 프로그램으로, 1년 뒤에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었다. 정확히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무튼 일 년 후에 이 편지를 받았을 땐 또 어떤 느낌이 들까. 불꽃놀이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이 토마토는 끝이 났다. 물론 이 행사 이후에 밤새도록 술을 먹고 다들 네발로 기는 듯하며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무척이나 행복했고 고마웠고 한편으론 시원섭섭한 밤이 무르익었다.
20대 초반에 서서 이러한 값진 경험을 했다는 나 자신이 뿌듯하고 또 자랑스럽다.
토마토는 20대 기억에 간직한 첫 번째 경험이 되었다.
입학) D-13 2014.02.17. (월) ~ 02.20 (목)
<20살의 내일로>
ㆍ 수능도 끝나고 반딧불이 토마토도 끝난 시간.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고 친척분들이 세뱃돈을 많이 주셨는데, 귀중한 돈이기에 허투루 쓰기 싫어서 당장 DSLR 카메라를 하나 사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내일로, 전국 일주를 떠났다. 전국일주라 하지만 사실 큰 계획은 없었다. 그냥 이번 여행에서는 '전주 한옥마을을 가고, 제천에 사는 친구인 문주를 보러 것이라 큼지막한 계획만 짜놓고 두서없이 출발했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늘 그랬다시피 '무계획'이었다. 근 4박 5일의 여행이었지만 출발하기 전까지 잠자리 예약은 2박만 해놓고 출발할 만큼 대책 없이 출발할 만큼 대책이 없었다. 늘 여행을 갈 때마다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났었기 때문에 행운을 믿었던 감도 있었다. 2박까지는 재호랑 같이 여행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혼자 다니는 여행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첫 단추부터 문제가 생겼다. 기차 자유여행 상품인 '내일로 5일권'이 발권된다는 말을 듣고 역에 가서 5일권 발권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5일권은 안 판다고 했다. 5일간의 여행을 계획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7일권을 구매했다.
창 밖엔 아직도 녹지 않은 눈들이 남아있었는데 여행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설렌 마음 때문에 평범한 경치도 한 없이 예뻐 보이기만 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순천역이었는데 순천역을 가기 위해서는 부산을 들려야 했다.
부산 양산에 있다는 저수지를 들릴까 했었는데 시간이 엄청 애매하게 남았었다. 2~3시간 남짓 남았었는데 딱히 할 것도, 갈 곳도 없고 해서 부산 서면에 있는 백화점 노래방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부산에서 유명하다는 생 돈가스를 먹은 후 후식으로 벌꿀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순천으로 가기 위해 우리가 왔던 부전역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운 걸 먹은 탓일까 재호는 바로 설사를 했다.
어쨌든 우리는 순천행 열차에 몸을 실었고 지정석을 산 재호와 자유석을 타야 하는 나는 따로 앉아서 순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우연히 옆좌석에 앉게 된 분이랑 말을 섞게 되었고, 순천을 가는 세 시간 내내 그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연애 이야기부터 시사 이야기, 철학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길 나누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그렇게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처음이었다. 그분이 있었기에 순천으로 향하는 두 시간 반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우리는 무사히 순천으로 도착했고 원래 가보려 했던 순천만을 가보려 했지만, 최근 유행하는 조류독감 때문에 순천만을 임시 폐장한다는 이야길 듣고 대신 '와온해변'이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해가 질 기미가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바다에서 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와온 해변'으로 향했다.
와온해변은 진짜 갯벌 밖에 없었지만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갯벌과 솔솔 불어오는 바다냄새, 우리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볼 것도 없지만 밤이 될 때까지 와온 해변에서 놀았다.
와온에서 일몰을 본 후 기분 좋게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로 향했다. 밤이 늦어서야 우리의 잠자리인 '남도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숙박하는 게 처음이었는데 가자마자 외국인 매니저가 나와서 서투른 한국말로 이용 수칙을 설명해 주셨다. 짐을 풀고 쉬고 있는데 매니저 누나가 막걸리 파티 하자고 제안한다. 게스트들 모두 서먹서먹해 있었는데 막걸리 파티가 시작되면서 다들 안면을 텄다.
처음에는 다들 낯을 가리는 듯했지만 술 한잔 마시더니 모두 친구가 되어 편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했다. 의례적으로 술게임이 시작되고 즐거운 밤을 보냈다.
숙박객 중에는 미술대학 출신 형이 있었는데 갑자기 Face painting을 해주겠다며 물감을 들고 왔다. 그리곤 나보고 조커 분장 한번 해보는 게 어떻냐고 묻는다. 신선한 경험일 것 같아서 도전했고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같이 놀러 온 성준이 형은 아바타 분장을 하고, 나는 조커 분장을 했었는데 너무나도 신기했다. 어쨌든 다른 숙박객들과 너무나도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
순천에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정들었던 숙박객들을 뒤로한 채 우리는 전주로 향했다.
사실 '전주'는 우리에게 뭔가 환상과 같은 도시였다. 뭔가 고풍의 저택들이 거리에 가득할 것 같았고 맛있는 음식과 볼거리가 가득한, 전라도의 '꽃'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도 순전히 이 '전주' 때문이었다. Facebook에서 보았던 전주의 한옥마을 야경은 너무나도 예뻤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야경을 한번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번 4박 5일의 일정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전주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도시였고 또 기대를 주는 도시였다.
전주 역은 생각보다 너무 예뻤다. 순천에서 생각보다 빨리 전주로 떨어졌다. 전주에는 워낙 유명한 볼거리가 많아 어딜 갈까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전날 순천에서 만났던 분들이 추천해 주었던 '덕진 공원'부터 향했다.
전북대 미녀들이 가득하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이나 큰 기대를 품고 도착한 덕진공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슬금슬금 내리기 시작하더니 사람들도 하나둘씩 없어진다. 전북대 미녀를 보려 전주역에서 삼십 분가량이나 달려간 덕진공원에서는 전북대로 올라가는 다리 하나와, 조선 시대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그네만 타고 우리는 본 목적지인 전주 한옥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옥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전동성당이 보였다. 3 년 전, 전국 가톨릭 학생대회 때 들렀던 전동성당인데 이렇게 다시 와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참이나 전동성당을 구경하고 출출해진 배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전주시내로 향했다. 전주시내는 한옥마을에서 약 20분 정도 걸으면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전주시내 '걷고 싶은 거리'로 향했다.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형들은 조커 분장을 하고 이 시내를 걸어 다녔다는데 시내에 와서야 정말 간이 큰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시내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우리의 숙소, '크로싱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짐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13~14명가량의 정원이 있는데 오늘은 전부다 남자란다. 거의 또래밖에 없었던 어제와는 달리 분위기가 너무 딱딱할 것 같아서 사실 좀 걱정되었다. 그래도 별 수 있냐는 생각으로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한옥마을 야경을 보러 갔다. 전주의 명물인 풍년제과에서 초코파이와 다른 빵들을 사고, JIFF영화의 거리도 들렀다. 이름은 영화의 거리지만, 영화관 몇 개 있는 게 전부였다. 고생했다는 의미에서 재호랑 늦은 밤 치킨과 맥주를 먹고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생각지도 못했던 막걸리 판이 벌어져 있었다. 자연스레 우리도 합석해서 다른 분들과 한 잔씩 나눠마셨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갑자기 래퍼 버벌진트 닮았다는 형이 노래를 한 곡 해주셨다.
영채 게스트님의 노래 한곡으로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막내인 우리부터 한 곡씩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재호는 발라드를 불렀고, 나는 오승근 아저씨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트로트를 불렀다. 잘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게스트들이 좋게 들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익어가는 분위기 가운데 우리의 밤은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 날, 게스트 하우스에서 푹 자고 일어나 다음 여행지로 떠나려고 하는데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님이 콩나물 국밥을 한 사발 먹고 가라고 하셨다. 냉큼 수락했고, 전주 남부시장에 국밥으로 해장을 하러 갔다.
콩나물 국밥은 계란 노른자를 말아서 먹었는데, 따뜻한 국물에 콩나물은 시원하고 노른자로 간을 하니 달달했다. 전주에 가면 비빔밥을 먹지 말고 콩나물 국밥을 먹으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다만, 어제 과음을 한 데다, 아침에 시리얼을 두 그릇씩이나 먹어서 많이 먹지는 못하고 남겼다. 이것도 일주일 후 새신랑이 된다는 분이 사주셔서 감사히 먹었다.
재호와의 일정은 여기까지이다. 재호는 다시 경주로 돌아갔고 나는 '레일 바이크(Rail bike)'가 있다는 곡성으로 향했다. 곡성에는 타고 싶었던 레일 바이크가 있었던 것도 있지만, 게스트하우스가 무료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향했던 도시다.
곡성에 도착해서 노란 지붕, 처마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기고 레일 바이크가 있다는 섬진강 기차마을로 향했다. 섬진강 기차마을은 아기자기한 놀이공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알록달록한 색채 가득한 풍경이 너무 예뻤다. 하지만 날씨가 꽤 추웠기 때문에 사람들은 얼마 없었고 기차마을의 자랑인 꽃들이 다 시들어 있었다. 그래도, 경치 하나는 끝내주게 아름다웠다.
실제로 레일 바이크를 탈 수 있다는 옛 곡성역으로 향했다. 옛날에 실제로 쓰이던 역을 개조해 레일 바이크를 탈 수 있는 침곡 역까지 가는 간이역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곡성에서 약 10여분을 버스 타고 이동해 침곡역으로 도착했다. 하지만 레일 바이크는 최소 2인승 이용이었다. 혼자 온 나는 결국 혼자 타게 되었다.
처음 레일 바이크를 타서 앞으로 나아갈 땐 내 앞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옆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강 내음에 자연스레 기분이 상쾌해졌다. 왼쪽으로는 그림 같은 경치가 펼쳐져 있고, 산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탔다. 하지만 10분, 15분, 20분 시간이 갈수록 내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고 결국 엉덩이에 쥐가 났다. 나는 혼자 탔기에 제일 마지막 순서로 출발했는데 직원분이 내 뒤로는 증기 기관차가 따라오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즉슨 계속 달리지 않으면 기관차에 부딪혀 다칠 수도 있다는 말이었고 그래서 난 엉덩이가 터질 것 같아도 페달을 멈추지 못했다. 어떻게 종착역에 다다랐을 땐 사람들이 혼자 레일 바이크를 타고 이까지 달려온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셨다. 박수를 쳐주시는 분도 있으셨다. 어쨌든 곡성 레일 바이크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 왔었던 구 곡성역으로 돌아가려면 증기 기관차를 타야 했다. 곡성에 와서 난생처음 증기 기관차도 타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증기기관차는 정말 '뿌우~'라는 소리를 내며 달렸다. 외관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생각보다 빨라서 깜짝 놀랐다. 체감상 무궁화 호보다 빨랐던 것 같다. 섬진강의 예쁜 경치를 구경하고 다시 곡성역으로 올라와 곡성시장을 둘러보다가 붕어빵을 먹고 팥 칼국수를 먹었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바로 어제 만났던 숙박객을 곡성 게스트 하우스에서 다시 만났다. 우연히 다시 만난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며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형이 여행 오면 꼭 맛있는 것 먹어야 한다면서 교동 석갈비도 사주셨다.
처음 맛본 석갈비도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도 역시 처음 보는 숙박객들과 술자리를 같이 했다. 서울 중앙대에서 왔다는 형들과 경남 마산에서 왔다는 누나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밤이 샐 때까지 같이 한참이나 재미있게 놀았다. 밤에 우리끼리 너무 시끄럽게 놀아서 주민신고가 들어와 경찰한테 제지까지 받은 웃긴 일도 만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인연을 만들고, 또 그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움을 안겨준 곡성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전날 같이 보냈던 형들과 목욕탕에 가서 같이 씻고 아침을 먹고 우리는 각자 갈길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전라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충청도 '제천'으로 떠나는 것이다.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제천'이 목적지인 이유는 단순히 수험생활을 하면서 만난 문주를 만나기 위해서다. 문주는 고3 한창 수시를 쓸 때쯤, 교대 자기소개서의 정보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네이버 카페에서 하나의 글을 발견했고,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그 친구에게 망설임 없이 쪽지를 보냈던 게 인연이 되어 이번 기회를 빌어 한 번 찾아가 보게 되었다.
곡성에서 제천까지는 5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장정이었지만, 며칠 동안 고생한 탓에 환승역인 조치원까지는
기차에 등을 붙이자마자 끝까지 잤다. 잠시 들러가는 환승역 조치원에서 난생처음 튀김소보로도 먹어봤다. 소보로 안에 팥과 생크림이 있는 튀김 소보로를 처음 먹어보는 입장에서는 문화 충격이었다. 겉은 바삭바삭 하지만, 안에는 달콤한 팥이 들어 있어 달콤하기도 하면서 생크림이 어우러져 부드러운 맛을 내는 신기한 빵이었다. 어쨌든 엄청 맛있었다.
옆 자리에 앉은 분도 내일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나와는 다르게 기차에서 열심히 독서를 하시고 있으셨다. 딱 봐도 전국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말은 내가 먼저 걸었고 각자 겪었던 여행기를 이야기하면서 기차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은영 씨는 경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데, 그때쯤 딱 경주에 이례적인 폭설이 내려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고 추위에 떨다가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 모교를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내가 나온 중학교 주변엔 찜질방이 하나 있는데 찾기 힘들었다는 이야길 하셨는데 내가 그 중학교 출신이라고 하니까 또 깜짝 놀라신다.
어쨌든 은영 씨 덕에 두 시간가량의 제천까지의 이동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지만 제천에 도착했을 때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중 나온다던 문주가 날 찾아보라며 난데없는 숨바꼭질을 하는 바람에 결국 문주랑은 해가 거의 다 지고서야 만날 수 있었다. 제천엔 딱히 갈 곳 없다는 문주는 되려 내게 어디 갈지 물었었고 인터넷 검색 몇 번 끝에 향교 앞 벽화거리로 가기로 했다.
문주와 가볍게 벽화 거리 산책을 마치고, 우린 출출한 배를 채우러 치킨을 먹으러 갔다. 내일로 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이랑 치맥 하는 게 꿈이었는데 문주가 이뤄주었다. 치킨을 먹고, 후식으로 빨간 어묵이라는 음식도 먹었다.
빨간 어묵은 엄청 맵게 생겼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달아서 깜짝 놀랐다. 매콤하지만 달짝지근한 국물이 어우러져 달싹하고 칼칼한 느낌을 받았다. 매운걸 잘 못 먹는 나도 너무나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잠자리가 단양에 있었기 때문에 문주와의 만남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단양역으로 향했다. 단양에 위치한 리오 게스트하우스는 특이하게도 1층에서는 커피집을 2층에서는 숙박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근데 게스트 하우스이라기보다는 민박집에 가까웠다. 민박 집을 게스트와 같이 쓰는 구조였는데 내 룸메이트는 광주에서 오셨다는 25살 지웅 씨. 강원도를 여행하고 오셨다는데 강원도에 유명한 닭강정을 사 오셨다. 모인 숙박객들이랑 같이 먹으려고 꽤 많이 사 오셨는데, 구조가 민박집 처럼 되어 있어서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같이 묵은 손님들도 적어서 난감했었는데 같이 묵게 된 다른 게스트들에게 같이 사온 닭강정을 먹자고 제안해서 그분들도 합석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왔다는 성균이 형과 슬기 누나 그리고 지웅 씨와 같이 겪었던 여행 이야기를 하고 다른 이야기도 섞었다. 그날 밤도 여느 밤과 다르지 않게 술 마시고 또 같이 밤을 지새웠다. 전 날 같이 만났던 성균이형, 슬기 누나와 다음날 일정을 같이 하기로 했다. 같이 밤을 지새웠던 지웅 씨는 아침 일찍 먼저 군산으로 떠나 버렸고, 우리는 단양에서 관광을 하기로 했다.
늦게까지 푹 잔다음에 늦은 아침을 먹으러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아침밥으로 무슨 다슬기 해장국을 먹었는데 내 입 맛에 맞지는 않아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어쨌든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대충 먹고선 충주호에 유람선을 타러 갔다.
버스를 약 한 시간가량 타고 가니 기막힌 절경의 충주호에 도착했고 우리는 유람선이 들어올 때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근데 유람선은 곧 효도관광인가 싶을 정도로 어르신들이 많았고 실제로 배 안에 탔을 땐 성인 가요를 틀어주시더라. 단양 팔경과 트로트라 어울리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마냥 신나기만 했다.
우리가 유람선을 탔을 땐 얼음이 적당히 얼어 있었고, 그래서 배가 이 얼음을 가르면서 지나갔다. 배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해 놓아서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바깥으로 나가 경치를 구경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배가 지나갈 때마다 우두득하며 얼음이 갈라졌는데 눈도 신기했고 귀도 신기했다. 그리고 정면으로 불어오는 겨울 호수 바람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꽤 쌀쌀맞던 바람은 점점 차가워졌고 급기야 몸이 떨릴 만큼 추워졌다. 그래도 충주호 경치가 너무 예뻐서 배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냥 마냥 덜덜 떨면서 충주호 경치를 구경했다
같은 호수였지만 어디는 파스텔 톤이 났고 어디는 에메랄드 빛이 돌았는데 무척 진귀한 광경으로 지금까지도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선착장에 내려서 다시 한번 충주호 호수를 감상하다가,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고수동굴로 향했다.
고수동굴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덥기도 더웠지만 안에 습기가 가득해서 카메라를 꺼내면 10초 안에 렌즈에 물기가 가득 찼다. 또 계단이 꼬불꼬불 엮여있어서 심지어 슬기 누나는 어지럽다며 토할 것 같다고 계속 그랬다. 겨우 고수동굴에서 나와 칡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우리는 거기서 헤어졌다. 나는 단양역으로 돌아가 다시 제천으로 가는 제천에 몸을 실었다. 제천으로 돌아가 순천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묵었던 은진이 누나를 다시 만났다. 반갑게 맞아준 은진이 누나야는 제천의 명물 등갈비를 사주신다며 어디론가 데려가 주셨다.
곤드레 밥, 등갈비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 봤는데 곤드레 밥은 절밥 비슷한 느낌의 특유한 고소한 향이 입안으로 스며들었고, 등갈비는 알싸한 매콤함에 고기인데도 청량감이 있었다. 한 개씩 먹을수록 목이 시원한, 신기한 음식이었다. 누나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는 그제야 5일간의 내일로를 마무리 지었다.
많은 것을 느꼈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내 인생의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그 여행의 참 가치 많은 것들을 보게 해 주고 성장시켜 준 20살의 내일로.
입학) D+4 2014.03.06. (목)
<이딴 게 대학인가>
ㆍ 대학은 노는 곳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술을 마시는 곳인가? 그건 더욱 아니다. 내가 여태 생각했던 대학은 말 그대로 진리의 상아탑. 부족한 지식을 깨치러 가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다들 20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술 마시기이다. 그게 전부이다. 인생의 대략적인 계획도 없고, 허세가 가득한 인간이 한심한 정도로 많다는 것을 대학에 와서 깨닫는다. 물론 내가 어려서 그 친구들을 이해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모르겠다. 복잡하다.
입학) D+28 2014.04.30. (일)
<이런 게 대학이구나>
ㆍ 대학 초기 분노에 차서 펜을 든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간고사도 끝나고 1년의 반을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요즘 생활은 저 때보다는 나아진 것 같다. 생판 모르는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것에 적응해 간다는 것이 참 대단하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하여튼 그렇다.
일단 대학에 와서 느낀 것은 정말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갑자기 주어진 이 많은 시간 앞에 처음에는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갈피가 잡히는 것 같다. 내가 보았을 때 대학의 핵심은 주체성이다. 이 시간을 활용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모두 주체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ㆍ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섣불리 시작한 연애는 무참한 결과만 낳았고, 잃은 것도 많지만 또 내가 여태껏 인지하지 못했던 내 속물적인 근성까지도 직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느낀 것은 사람들의 범위가 엄청 넓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고,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점점 사람의 옥석을 가리는 안목이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이 익숙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만큼 많은 기회와 경험을 제공해 주는 곳이 바로 이곳인 것 같다.
입학) D+73 2014.05.02. (금) ~ 05.06. (화)
<수도권, 나란히 걷다>
ㆍ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주어진 황금연휴가 주어졌다. 5일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알차게 보내기 위해 짧은 여행을 준비했다. 내일로를 하면서 만났던 분들을 다시 찾아뵙기 위해 나는 수도권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처음으로 발걸음이 닿은 곳은 바로 대전이다. 대전은 고등학교 동창 태일이가 학교를 다니는 도시였고, 태일이 얼굴도 보고 기숙사에서 숙박도 해결해 준다는 말에 나는 바로 대전으로 떠났다.
대전역에 가는 동안 계속해서 잤는데 일어나니깐 대전역에 도착 예상시간에 10분 정도 지나 있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자는 동안 기차가 연착되었는지 겨우내 대전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전역에 도착했다.
대전역 역시도 세월호 추모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대전역에 도착하자 맞은 것은 노란 리본이었다. 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잠시 묵념을 한 뒤 대전의 명물 '성심당'을 찾으러 나섰다. 대전에 와서 약간 놀란 게 있다면 지하철에 들어갈 때 새소리가 난다는 점이었다. 기계적인 음이 나오는 대구 지하철과 달리, 새소리가 가득한 대전역은 산뜻한 느낌이 가득했다.
성심당에 가기 위해 대전시내 으능정이 문화거리에 도착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한산했고, 화창한 날씨에 따뜻한 햇살이 날 반겨주었다.
성심당에 도착했는데, 빵집인데도 꽤 큰 규모에 놀랐다. 대전 시내를 장식하고 있는 커다란 풍채가 성심당의 유명세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빵집에 들어가는데도 이렇게 두근거렸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설렜다. 성심당에는 많은 종류의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종류도 많고 크기도 큰 만큼 가격도 비쌌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 손 가득, 혹은 한 박스 가득 채워 사가시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그것이야 말로 성심당의 빵 맛을 보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도 해보았다. 나는 성심당의 꽃인 튀김소보로와, 위에 보이는 판타롱 부추빵을 하나 샀다. 그리고 주변 찻집에 들어가 기대했던 빵을 먹어보았다.
튀김소보로는 이게 왜 성심당의 명물인지 보여주는 맛이었다. 사자마자 바로 먹어서 그런지 따끈따끈한 겉 튀김에 생각보다 가득 들어있는 팥이 내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바삭바삭함과 부드러움이 한데 어우러져 내치는 맛은 놀랄 만큼 어우러졌다. 근데 두 개 이상은 못 먹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튀긴 음식이다 보니 하나 먹으니 속에 기름기가 가득했고 팥도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어서 하나 먹었는데도 포만감이 가득 찼다. 다음으로는 부추빵은 전형적인 옛날 맛이 났다. 부드러운 겉빵에 입에 감기는 부추는 안 어울릴 듯했지만 묘하게 어울렸다. 하루 종일 굶은 후에 빵을 두 개 밖에 안 먹었어도 이상하게도 배가 가득 찼다. 간단히 배를 채우고, 대전의 '한밭 수목원'으로 향했다.
생전에 수목원에 가본 적이 없어서 수목원은 무슨 재미로 다닐까 생각을 했었는데 한밭수목원은 그런 내 편견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다.
봄기운이 가득 찬 한밭 수목원에서는 갖가지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꽃들은 색이 정말 예쁘게 물들어 있었고 갖가지 색이 펼쳐져 있는 이 수목원은 내 눈을 황홀하게 만들어 주기 충분했다. 한밭수목원 중앙에 있는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놀러 온 관광객들은 시원하게 만들어 주기 충분했다. 호수에 처음에 학이 있는 걸 보고 여기는 새가 살만큼 물이 맑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그것은 모형이었다.
옆쪽엔 엑스포가 열렸다는 엑스포 과학 공원이 있었는데 한빛 타운은 그 명성이 자자한 대로 볼 게 없었다. 저기 보이는 타워 끝까지 올라갔지만 전망대의 유리가 너무 더러워서 사진은 찍지도 못하고 그냥 5분 정도 가만히 있다가 내려왔다.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고등학교 친구인 태일이를 만났다. 태일이는 대전에 오면 대전의 소주인 '오투린'을 꼭 먹어봐야 한다면서 만나자마자 술부터 샀다. 소주를 사고 저녁밥을 먹은 뒤 태일이가 살고 있다는 한밭대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한밭대학교 기숙사에서 도착해 태일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곳에서 하루간 묵었던 피로를 풀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중학생 때로 돌아가, 한창 '요코 이야기'사태로 시국이 심각해져 있을 때 당시 역사 선생님은 '반크'라는 사이트에서 영상을 하나 보여주셨다.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로 알려져 있는 '요코 이야기'는 알고 보면 허무맹랑한 가짜 이야기라는 게 주된 골자였는데, 선생님이 이 동영상을 가지고 시험 문제를 낸다고 하셔서 '반크'라는 사이트에 가입해 두 번 세 번 봤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까맣게 잊고 살았던 이 반크라는 사이트에서 e메일이 한 통 왔다. 반크에서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라는 걸 모집한다는데 거기에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건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과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패기로 가득 찼던 나는 e메일을 받자마자 소신 있게 지원했고 그 길로 홍보대사로 발탁되었다.
홍보대사 발대식에 갔을 때였다. 식이 시작될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옆에 앉으신 어느 한 어머니께서 어디서 왔는지,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등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내가 마음에 들으셨는지 저녁을 함께 먹자고 제안해 주셨다. 그렇게 그 어머님의 따님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고, 그 친구와 하루 얼굴을 본 그날 이후로 3년이 지난 지금도 대면대면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그 친구는 지금 고3이 되어서 경기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이번에 수도권에 올라간 김에 그 친구 밥이나 한 끼 사주겠다고 먼저 연락을 했다. 령진이와는 2시쯤에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12시 즈음이었다. 차편을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황금연휴 때라 기차는 이미 매진되었고 버스들도 한참 후에나 있었다. 령진이에게 이 사실을 솔직하게 전하고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대전 시외버스 터미널로 출발했지만, 날씨만은 놀랄 만큼 창창했다.
그날 대전은 그냥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분명 1시 30분 버스표를 구입했는데 2시 30분이 넘도록 안 올정도로 교통상태가 엉망이었다. 1시부터 차를 기다렸으니, 그냥 정류장에만 2시간가량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와야 할 버스가 한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기에, 내가 모르는 사이 놓쳐 버린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솟구쳤다. 1시 30분에 나타나야 할 버스가 3시가량쯤이나 되어 도착하고 최종 목적지인 안양에 도착했을 땐 무려 6시가량이었다.
령진이와 범계역에서 만나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한 끼 했다. 근처 보이는 초밥집에 들어가서 맛있는 초밥도 먹고 인생 이야기, 학교 이야기, 입시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시간을 나누었다. 령진이와 밥을 먹는 도중에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오랜만에 어머님 목소리도 들었는데, 학교가 외진 곳에 있으니 꼭 학교까지 데려다주라고 하신다. 그래서 저녁을 다 먹은 후에 령진이가 다니고 있다는 경기외고로 향했다.
경기외고는 아담한 캠퍼스처럼 전경이 너무 예뻤다. 건물들이 알록달록 예쁘장했고 걷기 좋은 산책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기외고까지 령진이를 데려다주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음에 보자, 안녕.
그날 밤은 수원에 있는 여관방이나 다름없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단양에서 만났던 슬기 누나랑 성균이 형을 만나러 서울, 홍대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앞에서 알짱대도 못 알아보던 슬기 누나는 나를 못 알아보았다. 성균이 형은 늦게나 온다고 해서 우리끼리 먼저 홍대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홍익대에 왔으니 홍익대안에 들어가 봐야 한다는 누나야의 주장에, 바람 쌩쌩부는 날씨에 홍익대 언덕을 거닐었다. 한 5분 정도 걸은 후 진이 빠진 우리는 이 정도면 구경 다했다고 그냥 내려왔다. 그리고 주변에 유명한 떡볶이 집이라며 '조폭떡볶이'에 데려가셨다.
떡볶이는 1인분에 3,000원씩이었다. 떡볶이치곤 너무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지방에서 3,000원이면 떡볶이 순대를 가득 살 수 있는데 떡볶이 1인분에 3,000원이라니. 그래서 너무 비싼 것 같다고 이야기하니깐 이게 서울에 평균 물가란다. 물가가 진짜 비싸긴 하구나.
어쨌든 떡볶이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섰다. 포크에 떡을 하나씩 밖에 안 집는다고 뭐라 하는 누나는 뭐라 했다. 그러면서 먹는 습성을 다 깨달았다며, 어린이 입맛에 어린이 식습관을 떡볶이 한 번 먹고 바로 들켜버렸다. 밥을 먹고 성균이 형을 만나 연극을 보러 대학로로 향했다.
무슨 연극을 볼까 한참을 고민하다, 내가 고른 연극 '행복'을 보러 가기로 했다. 연극의 내용은 기억 상실증 속에 키워가는 부부의 사랑 이야기였고 김동률 노래 '감사'를 메인 음악으로 사용했는데, 꽤나 내용과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일품이었지만 내용은 2류 사랑 내용으로 기억한다. 극이 끝나고 내용이 좀 더 좋았으면 정말 좋은 연극일 텐데 하는 아쉬움을 우리끼리 토로하며 달랬다.
연극이 끝나고 나니 하늘에서는 비가 슬금슬금 내리는 밤이 찾아왔다. 허기진 배를 채우러 우리는 치킨 가게로 향했다. 닭을 먹으러 가는 길에 많은 가수들이 홍대 거리를 수놓고 있었는데, 아버지뻘 되는 아저씨가 거리에서 기타를 하나 매고 연주를 하고 있으셨던 것이 인상에 깊다. 치킨에 맥주를 곁들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2차로 또 술집을 갔다.
대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꿀 막걸리부터, 유자 막걸리, 키위 막걸리 등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이 술집에는 요거트 막걸리라는 술이 있었다. 대체 이건 무슨 조합이지하는 궁금증에 하나 시켜보았다. 맛은 그냥 달달한 요구르트 맛이 났다. 술맛은 안 나고 끝맛만 약간 씁쓸한 정도의 KGB 맥주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방금 닭을 한 마리나 먹었지만 또 3차 장소로 이동해 녹두전과 막걸리를 마시며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우리 술상을 끝으로 우리는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나는 잠을 자러 중앙대에 있는 호영이 형 자취방으로 떠났고 형 누나야는 인천으로 떠났다. 신선한 경험을 안겨준 형, 누나 고마워요. 호텔 같았던 흑석동 센트레빌 호영이 형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오늘은 곡성에서 만났던 마산 누나들이랑 중앙대 형들을 만나러 갔다. 아침은 호영이 형 집에서 대충 시켜 먹고, 누나야들이 있다는 홍대술집 MowMow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술과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야들은 나 기다린다고 먹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긴 줄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안 먹고 기다리기만 해서 눈치가 조금 보였다고 했다. 이렇게 기다려준 누나야들이 고마웠다.
어쨌든 대낮부터 청포도 막걸리와 고기파전을 먹고, 본격적인 홍대거리 구경을 갔다. 이런저런 가게들에도 들어가 보고 수제 벼룩시장도 열길래 거기도 가보았다. 뜬금없이 커플양말을 맞추자며 양말가게에도 들어갔다가, 팔찌 맞추자며 팔찌 가게에도 들어갔지만 물건은 하나도 사지 않았다. 그냥 이것저것 구경하는 게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한참이나 걷다가, 덥기도 하고 출출하기도 해서 빙수가게에 들어갔다. 베리빙수를 시켰는 상큼하고 시원한 게 너무 맛있었다. 얼음과 딸기, 블루베리 등의 조합은 상큼함과 시원함을 채워주기 충분했다. 빙수 끝에 있는 곰모양 초콜릿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내 입으로 들어왔다.
빙수를 다 먹고 사진도 찍고 놀다가 중앙대 형들이랑 같이 모이기로 해서 홍대에 일본식 선술집으로 향했다. 다 같이 모여서 술도 한 잔씩 마시고 오랜만에 이야기를 하나씩 풀었다. 다들 기가 세서 그런지 형, 누나들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우물쭈물하다가 말실수도 몇 번 하고 그런 날이었다. 대충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밤을 새울 '맛있는 교토'라는 술집으로 향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 안 나고, 중간에는 졸려서 그냥 잤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무려 4시간 정도를 보낸 뒤, 다시 마산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누나들을 데려다주러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가는 누나들을 보내주고 우리는 다시 흑석으로 돌아가 호영이 형 집에서 잤다. 원래는 5박을 하려 했으나. 4일이 지나니 도저히 몸이 힘들어서 그냥 나도 경주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형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도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경주행 차는 약 2시간 후에 있었고, 그 시간을 그냥 낭비하기 싫어서 인하대학교에 다니는 승열이한테 연락을 했다. 어쩌다 보니 얼굴이나 보고 가자는 이야기가 되었고 나는 인천으로 향했다.
어떻게 어떻게 주안역에 도착했지만,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승열이를 만나 그냥 주변에 롯데리아에 들어가서
햄버거 하나 시켜 먹고, 바로 헤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승열이를 만나 좋았다. 다시 40분을 달려 경주 가는 차에 진짜 겨우 몸을 실을 수 있었고, 참 많은 일이 있고 많은 사람을 만났던 수도권 여행이 끝이 났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그 여행의 참 가치. 행복한 여행을 하게 해 준 모든 이에게 감사드린다.
입학) D+73 2014.05.14. (수)
<인생의 첫 연극>
ㆍ 영남대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 연극동아리, '천마극단'. 그곳에서 내가 처음으로 참여한 연극을 올리게 되었다. 극의 제목은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이라는 극이고, 내용은 약간 불륜을 미화하는 느낌이다. 어쨌든 대학 동아리에서 첫 번째 연극을 경험해 보게 되었다.
기획부터 시작해서 무대 소품을 직접 만들고, 후원 업체를 찾고, 무대에 쓰일 음원을 찾으며 연극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청나게 많은 수고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연극이 진행되었을 때 배우의 행동 하나하나에 웃는 관객들을 보며 느끼는 짜릿함. 물론 내가 직접 웃기지는 않았지만, 무대에서 느끼는 맛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이 연극을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고생했지만, 전혀 고생하는 티를 내지 않고 다들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를 느끼며 성장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연극이 무엇이 그렇게 좋냐고. 하지만 연기를 하며 관객들이 쳐다보는 짜릿함과 관객들이 웃을 때 느끼는 그 쾌감. 느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입학) D+86 2014. 5. 27. (화)
<신세계 지식향연, 고은 시인을 만나다.>
ㆍ '신세계 지식향연'이라는 행사가 우리 학교에서 열렸다.
지식향연이란? 신세계에서 전국 대학을 돌면서 명사들을 초청해 학생, 일반인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일종의 순회 강연회였다.
처음엔 이 행사를 알게 된 건 학교 주변에 홍보 포스터를 엄청나게 붙여놔서 관심 있게 봤는데, Line up에 평소 존경하던 고은 시인이 있었다. 이 행사에는 옛날에 맛 대 맛 프로그램에서 봤던 정지영 아나운서와 송동훈 문명탐험가, 그리고 얼마 전 끝난 밀회에 출연하셨던 신지호 피아니스트가 오신다고 했다.
기대를 품고 지식향연에 지원했고 운 좋게도 맨 앞자리에 표를 구할 수 있었다. Boarding pass라고 적힌 예쁜 표를 들고, 강연이 시작될 때까지 뛰는 가슴을 안고 기다렸다. 행사장 안에는 기다리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예쁜 손 글씨를 하고 있었고, 나 또한 예쁜 글씨로 쓰인 글귀를 한 장 받았다. 손 글씨 덕분인지, 강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5시가 되어, 정지영 아나운서의 발언으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우레와 같은 함성과 정지영 아나운서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 그리고 지식을 탐구하러 모인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빛들까지, 뭐 하나 잊히지 않는 것이 없었다.
정 아나운서님의 소개로 그토록 기다리던 고은 시인님을 볼 수 있었고, 4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삶이 압축된 시인 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단 강연은 고은 시인에게, 시란?이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고은 시인님은 이 질문을 바탕으로 45분간의 강의를 풀어가셨다. 고은 시인에게 시란, 선험의 진리를 함의한 것으로써의 고고의 지성이라고 말씀하셨고, 결국, 이 질문에는 정답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시의 연속성에 관하여 이야기하시며,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시는 불멸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 20세기의 근대 시의 개척자이신 최남선 시인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그중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시를 예로 들어 '철썩, 철썩'으로 표현되는 현대 시와 비교해, '터...ㄹ썩, 터...ㄹ썩' 으로 표현했던 그 시대의 언어로서의 비완성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고, 시를 탐구하는 것에 있어서는 우리 언어의 역사를 되새기는 일이라 말씀해 주셨다. 또한, 바이런의 시를 모티브로 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설명해 주시며, 고대부터 바다를 노래하지 않았던 민족에게, 최남선 시인의 바다의 노래는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를 찾는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도 저에게 남겨주셨다. 또한, 시는 혼자 지껄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줌, 심, 영혼, 육체의 접합체라는 말씀을 남겨주시며 시가 가지고 있는 사회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고은 시인의 말씀은 아주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주셨다.
"여러분들, 산에 가면 일기를 쓰시고, 바다에 가면 편지를 쓰십시오!"
멋진 말을 남겨주시며 강의를 끝내셨다. 역시 기대했던 만큼 고은 시인의 강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20살의 젊은 내게 이토록 많은 생각 거리를 남겨주신 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 깊은 강연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송동훈 문명탐험가의 짤막한 서양사 강의와 Grand Tour에 관한 설명, 신지호 피아니스트의 Mini Concert로 공연이 진행되었다. 손동훈 문명탐험가의 짧지만 흥미진진한 로마사 강의를 듣고, 마지막으로 신지호 피아니스트가 자신이 직접 작곡했다는 곡과 힘들 때 연주하곤 한다는 '몽환'이라는 곡, 또 앙코르곡으로 학교 종이 땡땡땡을 재즈 버전으로 편곡해서 연주해 주셨다. 덕분에 공연장 분위기도 자연스레 밝아졌고, 나 역시도 청한 피아노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강연이 마무리되고 해가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내 내가 봤던 강의를 다시 한번 되뇌며 한 번 더 강의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고 내가 오늘도 들은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다.
입학) D+94 2014. 6. 4. (수)
ㆍ 얼마 전 대학생 문화 선도기업 Ban:d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운 좋게 연극 '보고 싶습니다'의 초대권을 얻게 되었다. 누구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건지는 몰랐지만, 입장권 배부가 끝나고 무턱대고 사회자한테 가서 혹시 남는 입장권 있으면 한 장만 달라고 해서 얻은 입장권이다. 그렇게 용기 있게 얻은 소중한 표다.
표를 받았을 땐 공연이 3주가량 남았을 때였으니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약 한 달을 기다린 셈이다. 시간대를 계속 맞춰 보다가 이번 6.4 선거일을 맞아 한 달을 고대한 공연을 보게 되었다.
고도 극장에서 보는 첫 번째 연극인 만큼 두근대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등산길이라 명성이 자자한 극장은 5층에 있었고 입구까지 50 계단이 넘는다는 극장에 땀 뻘뻘 흘리며 도착했다. 친절한 하우스 매니저의 안내로 객석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일단, 극장에 딱 들어갔을 때 들었던 느낌은 무대가 상당히 예뻤다는 것이다. 아니 차라리 예쁘다기보다는 엄청나게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무대만 봐도 어느 배경인지 알 수 있었으며, 어떤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지, 어떤 캐릭터들이 어떤 연기를 보일지 대충 짐작이 갔다. 무대와 조명을 열심히 둘러보고 있는 사이 암전으로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오프닝은 개그콘서트의 '대학로 로맨스'를 차용했던데, 솔직히 말해 오프닝부터 패러디는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남자 배우가 엄청나게 열연했는데, 늘 봐오던 레퍼토리라 그리 익살스럽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프닝마저도 패러디해야 하나 하는 의문만 들었다.
공연장 수칙 역시도 연극으로 하는 것에 대해 신선하긴 했는데 다만 그뿐이었다.
여하튼 공연장 수칙이 끝난 뒤 암전으로 본 극이 시작되었다. 극은 막이 오르자마자 처음으로 지성과 지순이 나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과거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공연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깜짝 놀랐던 점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실로 대단하다는 부분이었다. 특히 극 중 지순은 진짜 시각장애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시각장애인 연기에 대한 섬세함이 살아있었다. 시각장애인 특유의 어중간한 시선을 깔끔하게 처리해 냈고 살아있는 눈빛과 캐릭터의 성격을 표정으로부터 잘 표현해 냈다. 단연 돋보였던 건 지순 역이었지만, 다른 배우들 역시 섬세함에 엄청난 공을 들인 게 확연히 보였다. 실제로 필자는 극의 초반, 봉숙이 노래하는 장면에선 뒤에 있는 배우들의 정교함을 보았다. 배우들은 왜 중간에 봉숙의 노래를 끊는지 충분히 이해될 만한 정교함을 보여주었다. 배우들의 살아있는 표정 연기가 섬세함에 한층 더 빛을 발했다. 그리고 무대를 폭넓게 사용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 무대 앞뒤 좌우를 집으로, 골목으로, 가로등 등으로 무대를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연극 내내 아쉬운 점이 많이 보였다. 먼저, 내가 느끼기엔 내용상 비약이 너무 많았다. 극을 보고 있을 땐 독희가 왜 돈을 훔쳤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냥 갑자기 훔쳐 가기에 '무슨 일인데 갑자기 조직을 배신하지?' 하는 혼란만 생겼었다. 나중에 팸플릿의 시놉시스를 보고 이해를 하긴 했지만, 다시 극을 되돌려봐도 내용상 논리는 맞지 않는다. 돈을 훔치고 나서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기에. 그리고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그 '돈'이라는 것이 내심 연극 전개의 한 매개체가 될 줄 알았지만, 그저 제삼자의 수중에 들어가고 끝이 나버리니 그저 허무한 화면구성이었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지성이 독희를 칼로 찌르는 부분에서도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상도가 지성에게 "너 사람 죽일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전개되긴 하지만 그 이후에 지성의 내적 갈등을 겪는 장면이 있었으면 관객들은 더욱더 흥미롭게 극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두 번째로 공연에 암전이 너무 많았다. 진행이 뚝뚝 끊긴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너무 많은 사건을 한꺼번에 보여주려 그런 것 같은데 지나치게 많은 상황의 반전으로 관객들에 혼란의 여지를 남긴 건 사실이다.
그리고 보통 극에서는 암전을 통해 관객들이 대략 기승전결을 이해하곤 하는데 『보고 싶습니다』에서는 암전이 너무 많아 플롯 진행의 이해도, 추측도 하지 못했었다. 아무튼, 암전이 길다는 것은 필연 연극의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리고 음향에서도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일단 하우스 곡에서는 대중음악도 좋지만, 극과 잘 어울리는 곡을 썼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내가 진짜 전하려는 핵심은 극 중 건달들이 싸우는 장면에선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에서 이용되었던 메인 BGM을 사용했다. 그런데 신세계의 조폭 느낌과 보고 싶습니다의 조폭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진짜 건달과. 바보 같은 양아치들. 물론 같은 건달이긴 하지만 건달들도 제각각 느낌이 있다. 부당거래에서나 나올법한 BGM을 이 연극에 사용하니 음악이 연극에 녹아들어 가야 하는데, 음악이랑 배우랑 따로 노는 느낌을 받았다. 음향 스텝은 연극 캐릭터에 좀 더 깊은 이해와 관찰이 필요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평을 내리자면 '도전이 많은 연극'으로 말하고 싶다. 연출이 색다른 연출법을 고안하려 했던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은 어떻게 뿌렸을까? 아직도 감이 안 올만큼 색다른 연출에도 신경을 썼다. 하지만 사건, 상황들을 빨리 압축적으로 보여주려 한 탓일까, 비약이 많아 약간 조잡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것으로 개인적 사견이 듬뿍 들어간 고도의 41회 정기공연 『보고 싶습니다』의 감상을 마친다.
입학) D+95 2014.06.05. (목)
ㆍ 영남대학교 연극동아리 천마극단에서 86회 춘계 정기공연으로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이라는 극을 올렸다. 영화가 원작이고 시나리오를 각색해서 만들어진 극이라는데, 시대극을 사용했단 점에서 아마추어 극단에서는 도전적인 시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연출의 생각은 이 극을 40~50년대 극으로 해석했던데,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일단 극 중 히피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히피는 60년 중반에 나오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연출에 의도에 따라 배우들의 의상이나 음향이 전체적으로 40~50년대식으로 더욱 시대에 뒤떨어져지기는 했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 보인다.
극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여자에게 실연당한 알렌은 친구 딕과 린다의 도움으로 다른 여자를 찾아다닌다. 그중 가상의 캐릭터 '보가트'가 나와 알렌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설정이다. 알렌은 딕과 린다의 주변인들을 닥치는 대로 만나지만 결국 린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불륜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난 후에야 알렌은 정신을 차린다. 린다는 자신의 친구의 아내라는 것을.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알렌은 엄청난 내적 갈등에 빠진다. 결국, 린다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린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기회를 엿보는데 린다가 먼저 그 얘기를 용기 있게 꺼낸다. 그렇게 둘은 헤어지고, 극은 끝난다.
내용만 대충 봐도 어떠한 반전이나 긴장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이런 무미건조한 극을 상영 시간 100분을 넘어가며 한다는 것은 100분 동안 관객들을 웃겨야 하는 배우에게도, 100분 동안 인내력 있게 바라봐야 하는 관객으로서도 둘 다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극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흘러갔다.
일단 연기가 엄청 익살스러웠다. 알렌역 배우가 캐릭터의 어리석음을 엄청나게 잘 소화해 냈다. 수시로 관객들이 웃는 것을 들으면서 아마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 냈다.
다른 배우들도 자신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 냈지만 내가 봤을 땐 단연 주인공인 알렌역이 돋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극이 진행된 '판 아트홀' 자체가 천장이 낮아 배우들 얼굴에 그늘이 자주 졌다. 공연 내내 연출자가 배우의 조명을 조정해 주느라 정신없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전체적인 평으로는 길었던 만큼 많은 내용을 품고 있으며 재미와 지루함의 굴곡이 컸던 극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에서 엄청난 연습량들이 눈에 띄었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엄청 자연스럽고, 익살스러웠다는 점에 덧붙여 앞으로의 공연에서는 공연장에 사전준비가 더 확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100분의 긴 상영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연기한 천마극단 가족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입학) D+98 2014.06.08. (일)
<Piano+ 정기모임>
ㆍ 며칠 전, 피아노곡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대구 피아노 동호회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대구에도 이런 동호회가 있구나, 신기한 마음 반, 또 의아한 마음 반이 들었다. 근데 문화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한 편으론 취지가 아주 좋은 것 같아 호기심에 가입 신청을 했다. 근데 생각보다 승급 조건이 꽤 까다로웠다. 정모를 1회 이상 참여해야만 어떠한 활동이든지 할 수 있었기에, 그 길로 나는 바로 정모 신청을 했고, 곡은 당시 스피커에 나오고 있었던 나르샤의 I'm in love로 결정했다.
그리고 6월 7일, 정모 날이 되었다. 일어나니 오후 2시 정기모임에 참석하기 전 라이프 사진전에 갔다가 가겠다는 목표는 산산조각이 났고, 아침도 점심도 거른 채 정모 장소로 향했다. 정모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회장이 "20살 권기윤 씨 맞으시죠?" 하시더니 명찰을 주시고 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어떤 분이 앞으로 나가셔서 'Let it go'를 막 현란하게 연주하셨다.
이어서 또 다른 분이 나와서 M.Y.M.P의 'Say you love me'을 연주하셨다. 두 곡을 듣고 나니 내 마음은 혼란과 초조로 가득 찼다. '저분들 앞에서 내가 감히 손가락을 놀릴 자격이나 있을까'하는 마음에 본 연주회가 시작될 때까지 그냥 마냥 불안하기만 했다. 본 식이 시작되고 한 분 한 분씩 나와 준비해 온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근데 막상 시작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그냥 다른 분들이 한 달간 열심히 준비한 곡을 듣고 있다는 자체가 난 너무 좋았고, 또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분도 연주를 주의 깊게 듣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여기 진짜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앞으로 나가 준비한 곡에 대해 대충 웅얼거리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쨌든 난생처음으로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페달을 밟으면서 연주하는데 갑자기 오른 다리가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 엄청나게 당황했고, 그때부터 눈은 악보에 가 있지만 온 정신은 오른 다리로 쏠렸다. 그리고 이내 오른 다리에 힘을 세게 주면 떨린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때부터 악보에 집중하랴 오른 다리 힘 조절하랴 정신없이 연주해 나갔다. 어찌어찌 곡을 마무리 짓고, '다른 사람들이 내 다리 봤겠지'라는 무안함과 '어쨌든 연주가 끝이 났구나' 하는 안도감에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래도, 내 연주가 끝나고 나니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고, 또 쉬는 시간엔 회원분들이 먼저 말 걸어 주셔서 너무 편안하고 좋았다.
2부 뒤풀이 연주까지 끝나고 진짜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갔던 술집에는 정말 상이 꽉 찰 정도로 밑반찬이 푸짐하게 나왔고, 종일 굶었다는 병준이 형은 그 음식들을 전투적으로 막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들 밥 먹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험 기간이라 2차까지 못해서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정말 재미있었고, 값진 경험을 한 것 같다.
입학) D+110 2014.06.20. (금)
ㆍ 천마극단 40기 홍택 선배님의 알선으로 Power4m에서 주관하는 뮤지컬 '태양왕'을 보게 되었다. 안재욱, 신성록 등 주연 배우들의 Casting도 돋보였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우상인 김소현 씨가 이 뮤지컬의 '프랑소와즈' 역할을 맡았다기에 너무, 너무나도 기대가 되었다.
김소현 님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처음 보았었는데, '엠마'역을 맡은 소현 님이 "한때는 꿈에"하고 노래를 부르셨을 때 이게 진정 사람의 소린가 싶을 정도로 청명하고 황홀한 그녀의 목소리에 홀딱 반해버렸다. 지금은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지만, 그녀는 내 맘속에서는 31세의 아리따운 엠마로 남아 있다. 어쨌든 공연 당일인 22일 날,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계명아트센터로 뮤지컬을 보러 갔다.
대구권의 문화계를 주름잡고 있는 계명대학교, 또 그 핵심에 있는 계명아트센터는 명성이 자자한 만큼 외관이 아름다웠다. 뮤지컬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주인공인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마자랭 추기경의 섭정으로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던 루이는 성년의 날을 맞이하여 화려한 대관식을 열고 "왕이 되리라-"하고 노래하며 조국의 영예를 위한 위대한 발걸음을 내친다.
그런데 이 '태양왕'은 루이 14세의 자체적인 활동으로 이어가는 게 아니라 모든 사건이 '여자관계'에서부터 기인하고 전개된다. 이 뮤지컬을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초반에는 첫눈에 반해버린 마리와의 사랑 이야기, 중반에는 마리가 암살당하고 난 후 위로 차원에서 접근한 몽테스팡 부인과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냥 오래전부터 자신을 위해 묵묵히 제 일을 열심히 도맡았던 프랑소와즈와의 사랑 이야기로 설명된다.
모든 사건은 '여자관계'에서만 설명이 가능하고, 사실 루이가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없다. 이렇게 날카롭게 표현한 만큼 이야기 부분에선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실망감이 컸다. 솔직히 말해서 극의 내용은' 표리부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분명히 루이 14세의 이야긴데 극은 끝날 때까지 '신데렐라'만 찾고 있다. 그렇다고 루이가 사랑에 빠진 이유도 섬세하지 않다. 루이가 사랑하는 이유는 단지 '그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같다. 극에서 전달하려는 '태양'이 결국엔 여색을 말하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전하려는 의도가 아리송하기만 하다. 여하튼 이야기는 엉망이었지만, 의상이나 무대 전환 같은 부분에서는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의상은 실제로 내가 중세시대의 프랑스를 보는 듯할 정도로 중세시대 특유의 의상을 잘 연출해 냈다. 의상 하나에서 그 사람의 신분부터 성격까지 지레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인물이 나타내려는 바를 의상에 정확하게 나타내었다. 고집이 세거나 기가 센 캐릭터들은 한결같이 깃이 높았다는 흥미로운 의상 연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대 전환도 무대의 앞, 뒤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것이 인상에 깊었다. 무대장치를 휙휙 돌려가며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켜 버리는데, 밤하늘에서 전쟁터로 바뀌는 것과 같이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완전히 색다른 장면으로의 연출을 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음악은 "왕이 되리라-" 하고 외치는 그 노래 밖에 기억나는 게 없다. 그만큼 임팩트 있었던 곡이 없다고 생각한다. 리고 무엇보다 공연장 자체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목소리가 크게 안 들렸었고 뮤지컬 배우라면 충분히 두성으로 올릴 수 있을법한 음역도 가성으로 처리해 버리니 음악들이 그렇게 인상 깊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종합적인 평을 내리자면, 겉보기는 화려하나 콘텐츠는 미약했던 뮤지컬이라 생각한다. 기존에 있는 극을 각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출가는 기존의 극이 무슨 의도를 표현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심화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여러모로 다듬으면 훌륭한 작품이 될 듯하지만, 극의 콘텐츠 차원에서나 배우들의 성량 차원에서나 많은 아쉬움이 묻어 나온 작품이다. 그래도 난 보는 내내 즐거웠다. 소현 씨가 내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너무 좋았으니까.
입학) D+121 2014.07.01. (화)
<대구 근대 골목을 걷다>
ㆍ 어색하지 않은 창고에서 인문학 스터디가 끝난 어느 날, 난 성익이 형 집에서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니 오후 한 시가량이었다. 성익이 형은 이미 출근하고 없었고, 늦게서야 잠이 깬 나는 대충 씻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밥이나 먹고 들어가자는 생각에 같이 먹을 사람을 물색하러 전화기를 만졌는데, 창고에서 만난 수진이 누나 번호가 눈에 띄었고 그 길로 곧장 전화해서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흔쾌히 수락한 누나야는 자기 학교인 경대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경대병원으로 달려갔다.
경북대 병원에서 누나를 만나 학교구경을 대충 하고 주변에 그나마 유명하다는 '한옥집 김치찜'이라는
맛집에 들어갔다.
김치찜이랑 라면을 먹었는데 진짜 놀랄 만큼 맛있었다. 그렇게 맵지도 않은 맛에, 시원한 김치찜까지 얹어주니, 어린이 입맛인 나도 한 그릇 뚝딱 비울만큼 맛이 좋았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누나는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울러'라는 단체를 알고 활동하고 있는 내가 그냥 마냥 부럽다고만 했다. 나를 보니 자기의 20대 초반은 그냥 생각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었던 것 같다며 한탄했다.
아니라며, 난 그냥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할 뿐이라고 어쭙잖게 누나를 위로하고 또 둘이 살아온 인생 얘기를
한참이나 나누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파란만장한 누나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누나가 여행을 가고 싶단다. 나는 남는 시간이 지금 밖에 없을 터이니 당장이나 떠나라는 정석적인 답변을 했고, 역시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하지 못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때 내 뇌리를 스쳐간 대구 근대골목을 돌아보자며,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그걸 오늘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렇게 우리의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뜬금없이 진행되었다.
처음으로 우리가 향했던 곳은 '진골목'이다. 사실 뭐가 있을까 기대도 안 하고 갔던 골목이었는데 생각보다 옛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고 이렇게 중간중간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벽화도 있었다. 생각보다 세련되게 설계된 진골목 모습에 많이 놀랐다. '정 소아과 의원'같은 경우에는 50년대 건물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덧붙여 이런 고풍 있는 집에서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골목에서 구경하고 있는 우릴 보시더니 진골목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신다. 막간으로 듣는 근대 역사강의였지만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다음으로 약령시장 안에 있는 한의약 박물관으로 향했다.
한의약 박물관에 도착했을 땐 5시 40분 정도였고,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관람 시간이 20분 밖에 남지 않았기에, 우리는 정말 급하게 구경했다. 눈으로 보는 건 모든지 다 넘기고, 체험 위주로만 이거하고 저거하고 다니니 15분이라는 시간 안에 한방 박물관을 한 바퀴 다 돌 수 있었다. 출구 쪽에 기념사진 찍으라고 한복을 준비해 놓았던데 우리는 옷을 바꿔 입었다. 나는 여자 한복을 입었고, 누나는 남자 한복을 입은 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한의약 박물관 앞에 있는 자갈밭에서 맨발로 달리기 시합하다가, 다음 목적지인 이상화 고택으로 향했다. 이상화 시인이 직접 살았다는 사랑방도 한번 돌아보고 게시되어 있는 시도 읽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으로는 계산 주교좌성당으로 향했다. 화창한 날씨 앞에 펼쳐진 성당의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계산성당 앞에는 커피가게가 하나 있는데, 더위도 식히고 다리도 좀 쉴 겸 앉아서 팥빙수를 먹고 커피명가 안에 있는 그림 공모전 구경도 좀 하다가 마지막 목적지인 '의료 선교 박물관'으로 떠났다.
그 유명하다는 90 계단 앞에서 사진도 찍고 선교사들의 묘지가 있는 묘소도 들렀다. 마침 주변 게스트하우스에서 주인분이 대구 투어를 나오셔서 청라언덕에 얽힌 이야기, '동무생각'이라는 가곡이 나온 이야기, 그리고 직접 '동무생각'을 불러 주셨다. 어쨌든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분의 노래로 우리의 근대골목 투어는 마무리되었다. 대구에도 이런 곳이 있을까라 놀랄 만큼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고, 재미있었고 또 의미 있는 하루였다.
ㆍ 며칠 전, 그냥 가보고 싶은 생각에 천마극단 지윤 선배와 함께 라이프 사진전에 다녀왔다.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이라는 표어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고, 약간의 충동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진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사진전은 당연히 미술관에서 열릴 거라는 단순한 생각에 나는 대구 박물관이 아닌 대구 미술관으로 향했다. 대구 미술관에 다다라서야 라이프 사진전이 대구 박물관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그냥 멍청히 울창한 초록 숲만 바라보다 미술관에서 빠져나왔다. 겨우내 어찌어찌 박물관에 도착하긴 했다. 박물관은 크게 인물, 역사, 인류에 대한 주제가 펼쳐져 있었는데, 살바도르 달리의 사진이라던가 하는 실제로 쉬이 보이 힘든 옛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인물 부분에서는 세계의 역사를 써 내려간 역사적 인물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감각적으로 잡아내어 히틀러와 간디와 같은 전혀 상반되는 매치에서부터, 무하마드 알리와 찰리 채플린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에서도 공통점이나 유사점을 캐치해 내어 사진전을 전개하는 것이 신기했다.
역사도 마냥 글로만 교과서로만 배웠던 그것이 아니라 직접 사진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들여다보니, 살갗에 닿을 정도로 상황과 정황이 납득 갔다.
아무튼, 처음 가본 사진전치고는 신기하고 또 많은 것들을 생각게 하는 사진전이었다.
입학) D+133 2014.07.13. (일)
<전국 대학생 인문학 활동>
ㆍ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전국 대학생 인문학 활동' 농촌활동은 많이 들어봤어도 인문학 활동은 생소했기에 뭔지 제대로 알아봤는데 농촌에 가서 책을 만들거나 신문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매력적인 활동임을 알고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또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감날 부랴부랴 써서 겨우 지원했다.
항목에는 이야기책, 연극, 문학, 벽화, 신문이 있었는데 연극동아리로 활동 중이라 연극을 1순위로, 또 사람 책으로 활동 중이라 이야기책을 2순위로 지원했는데 엉뚱하게도 '문학' 부분에 합격했다.
ㆍ 행사가 진행된다는 7월 7일. 농촌에서는 아마 침구가 제공되지 않을 거래서 기숙사에 있는 침대 요까지 꺼내서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모집 장소인 동대구역으로 도착했다.
모집 장소에 도착하니까 MBC에서 촬영을 나와 우리를 찍고 있었다. 버스를 타러 이동하더니 곧바로 칠곡 문화회관으로 이동했다.
버스를 탔는데 생각보다 시끄러웠고, 다들 먼저 친해져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길 나누는 동안 나는 맨 뒤에 앉아 텔레비전에 조에 족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만 보고 있었다. 인문학의 도시 칠곡에서 발대식을 했다. 거기서 티셔츠와 밀짚모자를 받고 보라색 공식 옷으로 갈아입었다. 식전행사로 할머니들의 합창, 연극이 있었는데 할머니들이 율동하고 노래를 부르시는 게 너무 귀여웠다.
중년의 아줌마부터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까지 있었는데 노년의 인생을 열정적으로 사는 저 할머니들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노년의 인생을 저리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많기는 할까? 는 생각이 들었다.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인디 053 대표님의 간단한 일정 브리핑과 군수님의 축사, 사진 촬영들이 이어졌다. 발대식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캠프 활동을 진행하러 분야별로 버스를 타고 떠났다.
내가 속한 마을은 왜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지천면 달서리. 동네에 슈퍼가 하나 없다는 두메산골이라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다. 에이 설마 동네에 슈퍼가 하나 없겠냐 하는 생각을 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도착한 마을회관 뒤로는 커다란 산이 놓여 있었고 회관 앞으로는 논밭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건물이라곤 옆에 있는 보건진료소 하나뿐 이곳에서 4박 5일씩이나 버텨야 한다니 앞길이 막막했다. 어쨌든 우리가 4박 5일간 지낼 달서리 마을회관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처음 보는 이들끼리 어색한 시간이 있었다. 곧이어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팀장님이 나를 뽑은 이유는 단지 사진 하나 가지고 뽑으셨단다. 증명사진으로 무슨 사진을 넣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이 사진을 넣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미친 짓이었다. 증명사진은 지원자를 알아볼 수 있는 수단인데, 선글라스를 낀 사진을 넣은 나를 본 팀장님이 또라이 같아서 합격시켰단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지원서에서 폭발한 똘끼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었다.
여하튼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앞으로 4박 5일 동안같이 할 팀원을 매치하기로 했는데, 나는 뭔가 동양적으로 생긴 서희 누나와 짝이 되려 서희 누나 뒤에 섰고, 처음 보는 사이에 춤까지 춰가면서 어렵사리 팀원을 얻을 수 있었다. 팀원을 다 구하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마을에서 전복 삼계탕을 주셨다. 저렇게 큰 생전복은 처음 봤을뿐더러 맛이 정말 기가 막혀서 순식간에 한 그릇 다 비워버렸다. 첫날 첫 식사부터 마을에서 너무 극진한 대접을 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저녁을 먹고 한 컷 찍고 인제야 다른 참가자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신 호애농원에서 한 장 찍고, 돌아올 땐 트럭에 몸을 싣고 갔다.
ㆍ 달서리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전날 준혁이 형이 과음한 탓에 오밤중에 구토하는 소리에 한 번 깼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닥에는 핏자국이 흥건했고 준혁이 형의 안경다리는 부서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준혁이 형의 다리와 발가락 사이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준혁이 형은 아침도 못 먹을 정도로 졸도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강사님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오늘부터 할 일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내가 맡은 '문학' 분야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지점토로 음식을 만든 후, 그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사람에게 초대장을 쓰는 활동을 했다. 강사님께서는 이러한 활동을 하는데 우리가 지켜야 할 양식이나, 어르신들이 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 같은 것들을 알려주셨다.
열심히 노트해 가며 적은 후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까지 잠시 남는 시간을 이용해 달서리 주변에 있는 절, 망월사로 향했다.
망월사에 도착했는데, 한 비구니분이 어르신밖에 없는 조용한 마을에 갑작스레 청년들이 많이 온 것에 대해 놀라워하시며 망월사에 놀러 온 우리에게 절 소개를 해주셨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에게 절하는 법도 가르쳐 주시고,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청년들을 위해 기꺼이 수박도 한 통 내어 주셨다. 망월사 구경이 끝난 후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어르신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오후 두 시가 되자,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마을회관으로 들어오시기 시작했고, 나와 서희 누나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어르신들을 우리 자리로 안내해 드렸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여갑연 할머니는 달서리의 최고령자셨는데, 연세는 나보다 4배 이상을 더 사신 인생의 도서관 같은 분이셨다. 할머니께서는 자글자글한 손으로 정성스레 송편을 만드셨고, 반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들에게 편지를 쓰셨다. 할머니께서는 아들이 80년대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으나, 계속되어 이어진 사법고시의 낙방으로 좌절하고 지금은 귀농하여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아들분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자식이 좌절하는 모습을 쭉 지켜봐 온 부모의 마음을 들을 때는 나도 몰래 눈물이 글썽거리기도 하였고, 또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자신의 인생을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셨을 때는 모성애라는 것을 위대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찾아오신 어르신들께 안마도 해드리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우리 할머니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밤에는 오늘 들은 이야기를 탈고하는 작업을 가졌고, 우리의 두 번째 밤이 깊어갔다.
ㆍ 달서리에서의 세 번째 아침.
오늘은 뜨겁게 밤을 지새운 종원이 형이 졸도해 있었다. 세 번째 날은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덧붙여 우리들의 이야기를 책에 넣는 활동을 했는데 어제 어르신들이 하셨듯, 우리도 지점토로 음식을 만들고 주변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에게 초대장을 쓰는 활동을 했다.
나는 전주에서 온 서희 누나에게 경주의 명물인 황남빵과 함께 경주로 놀러 오라는 초대장을 적었다. 그냥 황남빵만 만들기에는 뭔가 좀 심심한 느낌이 있어서 신라인의 미소 빵도 하나 넣었다. 만두를 만든 누나도, 초밥을 만든 형들까지. 음식의 장르는 참 다양했다. 음식, 초대장과 함께, 책에 오를 개인 사진들도 각각 다 찍었다.
오후 시간에는 어제 이야기를 못 나누셨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진행했는데 오늘 만난 할머니께서는 무척이나 유머 감각이 넘치셔서 하는 인터뷰 내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할머니가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말씀해 주시는데 결혼식장에 신랑이 나타나지 않은 사건부터 처음 '기차'라는 것을 본 사건, 또 기차표가 뭔지 모르고 부모님이 주신 종이를 냅다 버렸다가 기차에서 못 내린 사연들을 재치 있게 이야기해 주셨는데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 재밌어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같이 이야기를 나눈 할머니들과 이렇게 단체 사진도 찍고 우리에게 특히 애정을 보여주시는 할머니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마을 보건진료소에서 근무하고 계신 보건 선생님과도 활동을 진행했다. 재은 매니저님은 보건소에 놓여 있는 안마의자를 사용하며 신이 나셨고, 나는 신동우 강사님의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너무 강하게 누르셔서 반 죽을 뻔했다. 이렇게 보건 선생님과의 인터뷰도 마무리되었고, 밤에는 어제 했듯이 탈고하는 작업을 가졌다. 이렇게 우리의 세 번째 밤이 저물었다.
ㆍ 달서리의 네 번째 아침.
어젯밤에는 준혁이 형, 종원이 형에 이어 오늘은 만균이 형이 끼를 보여주시는가 싶더니 일찍, 또 작렬하게 전사하셨다. 어쨌든 2일 차로 대부분의 일정을 마무리 지은 우리에게 달서리 이장님께서 보트를 탈 기회를 제공해 주셨다.
날씨는 너무나도 화창했고, 시원한 호수 위를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내달린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호수를 가른 보트는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날씨가 너무 화창했기에 아무렇게나 셀카를 찍어도 그냥 다들 예쁘게 나왔다.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와서는 오늘 밤에 열릴 마을 잔치에서 할 장기자랑 연습을 했다. 크게 춤, 노래로 나누어졌는데 나는 오렌지 캐러멜의 카탈레나, 마법 소녀 춤을 추고 오승근 아저씨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기로 했다. 더운 날 땀 빠지게 연습을 하고, 저녁이 되어 본격적으로 공연 준비를 했다. 여장한 다른 형들과 함께 스테이지로 나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앞에서 깜찍한 춤을 췄다.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고 급하게 사진을 찍고 할머니들 앞에서 트로트를 불렀다. 덕분에 달서리의 스타가 되었다. 어둠이 진 다음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어울리는 춤판이 벌어졌고, 이렇게 달서의 밤은 무르익어 갔다.
이렇게 우리의 마지막 밤은 끝이 났고, 남는 건 사진뿐이라 사진을 찍으며 우리의 마음을 달랬다. 이렇게 우리의 인문학 활동은 마무리가 되었고, 해단식에서의 몇 가지 행사를 끝으로 정말로 모든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후기로는 이런 활동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정말로 크다고 생각한다. 인디 053은 젊은이들에게 선험의 지혜를 직접적으로 깨달을 기회를 제공하고, 또 우리는 그것을 수행함으로써 정신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커다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들을 문서로 정리하는 활동들도 좋았지만 처음 보는 청년들이 농촌에 한데 모여 4박 5일 동안이나 살을 부대끼며 생활하면서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진 우리가 더욱 서로에게 맞추고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를 갖출 수 있었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인문학 활동을 참여할 의향이 있으며 달서리에서 지냈던 5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입학) D+130 2014.07.10. (목) ~ 13. ()
ㆍ 얼마 전, 사람도서관에서 '놀고먹는 교사, 이중용'씨의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블로그를 시작했다. 물론 블로그에 문외한이었던 나였기에, 중용 씨의 블로그를 모티브로 삼아 나의 공간을 꾸며가기 시작했는데 중용 씨로부터 우연히 300 Project를 알게 되었고 그 길로 300 Project의 멤버가 되었다. 프로젝트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에서 '창의인재 더 청춘' 참가라를 모집하기 시작했고, 300 Project의 시작과 동시에 그에 추진력을 얻기 위해 '더 청춘'에 지원하게 되었다.
ㆍ 나는 대구에 살고 있으므로 그나마 가까운 지역에 위치해 있는 부산 이부승 멘토님을 지정받았고, 발대식이 있는 날까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발대식이 있기 3일 전쯤인가, 안타까운 비보를 하나 들었다. 부산 멘티들은 활동 기간 동안 꾸준히 모임을 할 계획이고, 대구에서 활동하는 나는 그 모임 중 90% 이상을 참여할 수 있다는 확답을 주기 힘드므로 '더 청춘' 활동을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활동을 하고 싶지만, 모임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이 멘토님께로 전해졌고 내 열정을 깊이 사주신 이 멘토님의 아량으로 멘토님이 직접 대구에서 멘토를 한 분 추천해 드리겠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리고 이 멘토님이 '자네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라는 한 마디에 잰걸음으로 부산까지 달려갔다.
ㆍ 서면에서 몇십 분 가량이나 길을 헤매어 도착한 드림 스퀘어 5층에는 부산 멘티들이 내뿜는 남모를 긴장감과 두근거리는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땀 뻘뻘 흘리며 앉아있는 내 앞으로 여유롭게 앉아 있으신 이 멘토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고, 다음으로 양옆으로 앉아있는 멘티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보였다. 이러한 모습이 내게 남모를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발대식은 Online brand diretor '강정은' 님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 강 대표님은 발대식의 개괄적 순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고, 강 대표님의 소개로 지식소통가 조연심 대표님이 강의를 시작하셨다. 조연심 대표님은 앞으로 변화해 갈 세상은 창조적으로 바뀌게 될 것과, '개인이 스스로를 책임지는 시대'가 왔다며 개인이 가져야 할 자주성에 대하여 강조하셨다. 32세부터 시작된 진짜 자기 인생의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셔서 강의 내용이 직접 살갗으로 와닿기도 했고, 특히 꾸준히 열정적으로 임하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기회와 훌륭한 결과가 찾아온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선험자이기에 좀 더 설득력과 전달력이 있었다.
사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끊임없이 세상으로 도전하려는 조 대표님을 보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이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정말 멋지고 매력 있는 일이라는 것을 직접 일깨워줘 주셨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당신과 거래할 의사가 있습니까?'라는 성찰적 의문을 남기며 강의를 마무리 지으셨다.
이후 위촉식과 블로그 셋팅법, 가수 인순이 씨의 응원 영상, 단체 사진을 끝으로 발대식이 마무리되었다. 명품강의를 해 주신 조 대표님, 이 멘토님, 그리고 리얼리스트 손대희 씨에게 감사드리며 이 행사를 준비하신 모든 분, 또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런 소중한 기회를 만나게 해 준 개인브랜드 How에 감사드린다.
부산 드림스퀘어에서 더청춘 부산지부 발대식을 마치고 시간이 조금 남기에 부산에 하영이 누나를 몇 년 만에 보게 되었다. 하영이 누나는 3년 전 그 모습이 아니었다. 누나야는 날 보자마자 무슨 행사를 밤 아홉 시까지 하냐고 약하게 구박하셨고, 배고픈지를 묻더니 경성대쪽 노랑통닭으로 데려가 주셨다. 누나야는 무려 3종 치킨을 사 주셨고 배가 고팠던 나는 진짜 마구 먹었다. 배에 뭐가 차고 나서야 최근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고, 저돌적이게 삶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우리는 워낙 늦게 만났기에 뭔가 이야기할 새 없이 빨리 헤어져야만 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다음으로 만남을 기약하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 '블루보트'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숙소에 갈 때 게스트들과 나누어 먹으려고 먹다 남은 노랑통닭을 챙겨갔었는데, 시간도 늦었고 숙박객들 전부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손님들과 같이 식사를 하거나 그런 자리는 만들지 못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다음날까지 인문학 활동 지원서가 마감하는 날이었기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을 꼬박 새 가며 인문학 활동 지원서를 작성했다. 부산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인문학 활동 지원서를 쓰느라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 사실 부산까지 왔는데 발대식만 하고 가기엔 너무 아쉬워서 한 바퀴 쭉 돌아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갈 동행이 있었으면 해서 바이트레인에 글을 살펴보았다. 마침 오늘 부산을 여행하다는 사람이 있어서 댓글을 달았고, 가보고 싶었던 감천 문화마을을 같이 가기로 했다. 같이 만나기로 한 토성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에서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성분이 한 분 내린다. 예상외로 동행은 혼자 온 여성분이었고 심지어 나보다 5살 누나였다. 혼자서 저런 카페를 통해 일종의 번개를 하는 이 누나가 처음에는 참 의아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는 처음 봤지만 같은 택시를 타고 감천문화마을로 향했다.
저번에 한 번 와 본 적 있다고 말하는 동행 누나. 그래서인지 길 찾기는 이 누나에게 맡기고 그저 누나만 따라 다녔다. 감천문화마을에는 한 바퀴 쭉 돌아볼 수 있도록 스탬프 투어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왕 이까지 온 김에 감천문화마을을 한 번 돌아보자는 생각에 스탬프 투어를 신청했다.
중앙대에 다니고 있다는 누나야는 지금으로 부산이 다섯 번째 여행이란다. 부산이 그렇게 좋은가 물었더니 그렇게 좋다고 했다. 첫인상은 되게 딱딱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얘기를 하면 할수록 코드가 맞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감천 문화마을을 두 시간 동안이나 처음 보는 사람과 돌아보았지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감천 문화마을까지만 같이 동행하려 했으나 코드도 맞고 나도 시간이 허락하니 조금 더 같이 돌아보기로 했다.
그다음으로 향했던 자갈치 시장이다. 뭔가 맛집은 현지인이 잘 알 것 같아 현지인에게 맛집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밥집에 들어왔다. 간판에는 만원이라 적혀있었지만 영수증에는 만 오천 원이라 적혀있었다. 도다리 물회는 만 오천 원이란다. 어쩐지 아줌마가 도다리 맛있는 게 들어왔다고 권유하셨다. 어쨌든 맛있는 도다리 물회를 먹고 자갈치 시장 안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 부산 시내를 한번 내려다보았다.
시원한 부산 바다를 살펴보고, 동행인이 가자는 달맞이고개로 갔다. 막상 달맞이 고개에 도착했는데 딱히 할 게 없어서 유명하다는 카페에 들어가서 수다나 엄청 떨었다. 저녁이 되어선 버스 타고 해동 용궁사로 향했다. 참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하루였다.
용궁사에는 야경이 유명하다고 해서 왔는데 절에 불을 안 켜줘서 야경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다시 부산 시내로 돌아와 국밥 한 그릇 먹고 각자 잠을 자러 갔다. 이렇게 된 김에 일 박을 더 하고 다음 날 누나가 서울로 출발할 때 나도 대구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다시 잠들려고 했지만 잠도 잘 안 오길래 주변에 보이는 해운대 성당에 들어갔다. 이번 여행 안전하게 하게 해 주셔서 감사 기도를 드리는 사이 성당에서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니 어느덧 약속시간이 다가오기에 다시 동행인과 만나 남포동 깡통시장에 가서 명물이라는 유부 주머니를 먹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기도 하고 유부주머니가 느끼하기도 해서 잘 못 먹기도 했다.
대구로 돌아가는 길에는 주먹만 한 슈크림빵을 파는 OPS라는 빵집에 들러서 슈크림빵을 산 뒤 부전역에서 각자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보는 동행인과 1박 2일간의 여행은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입학) D+135 2014.07.15. (화)
<첫 번째 사람 책 대여를 하다>
ㆍ 사람 책을 등록한 지 1주일가량 지났을 때, 스터디를 같이 하던 성익이 형이 대뜸 한 마디 던지셨다.
"기윤아, 이번 주에는 사람 책 필드로 나가자."
그 길로 대뜸 그 제안을 수락해 버렸고, 내 인생의 '첫 번째 강의'를 준비하게 되었다. 7월 7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람 책을 대여해 주러 경일중학교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성익이 형한테 전화가 한 통 왔다. 사람 책 진행 장소가 학교에서 사무실로 바뀌었단다. 마침 지하철은 반월당을 지나고 있었기에, 급하게 버스로 갈아타고 '어색하지 않은 창고'로 도착했다.
창고에 도착해서 오늘의 또 다른 책 '양해민'씨를 만났고, '어색하지 않은 창고'에서 어색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곧이어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창고에는 아이들의 말소리로 가득 찼다. 직접 이 아이들을 보게 되니 긴장 반, 설렘 반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오늘의 구독자 친구들은 경일중학교 학생 8명과 사서 선생님 1분. 성익이 형의 사람 도서관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과 오늘의 사람 책 소개로 본격적인 사람 책 책 대여가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처음 만나 자기소개, 책 소개를 간단히 했다.
사람 책은 첫 번째 팀, 두 번째 팀으로 나누어 진행했는데, 첫 번째 팀 친구들은 이야기 하나, 이야기 하나에 너무 잘 웃어주어서 말을 좀 더 조리 있게, 또 재미있는 부분을 더욱 강조해서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에 40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내가 준비한 이야기를 전부 하고 나서도 20분 정도 시간밖에 안 지났길래, 나머지 시간은 질문하고 자유 대화 시간을 가졌다. 20분 동안 꿈에 대해 떠들었는데 "선생님 첫사랑은 언제예요?" 하고 묻는 아이들. 딱히 할 이야기도 없고 해서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내 첫 연애사를 줄줄 이야기했다. 사람 책 이야기할 때보다 더 재미있어하는 아이들. 어쨌든, 생각보다 40분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또 다른 팀으로 사람 책을 대여하러 갔다. 사람 책을 한 번 대여해 준 결과,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재미있는 분위기가 아이들이 집중하는데 더욱더 효과적이라고 판단을 했고, 최대한 이 친구들을 웃기려고 노력을 했다. 이 친구들과도 20분 동안 사람 책 얘기, 또 20분 동안 QnA를 받았는데 역시나 질문은 연애에 관한 이야기였다. 단체 사진도 찍고, 색다른 경험을 한 즐거운 하루였다.
입학) D+138 2014.07.18. (금)
ㆍ 상상 Univ 대구 홈페이지에 1박 2일로 '추억 나드으리'라는 제목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았다. 흥미가 생긴 나는 바로 신청하게 되었고, 운 좋게도 '추억 나드으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침 열 시부터 상상 아틀리에에 모여 상상 초등학교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KT&G가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우리가 1박 2일 동안 진행될 것들을 간단하게 소개받고, 1박 2일 동안 같이 지낼 반을 뽑았다. 나는 2반 2번이 배정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반장까지 선출이 되었다. 26살 형까지 있었는데 반장이라니. 무거운 마음을 안고 영주로 출발했다. 영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내 짝지로 배정된 명진이 누나야 몇 시간이나 떠들었다. 처음 보는 누나와 이야기를 했지만, 의외로 통하는 것도 많고 겹치는 관심사도 많아 영주로 이동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몇 시간을 달려 KT&G 영주공장에 도착했는데 갔던 날이 초복이라 통 삼계탕을 한 마리 주셨다. 인문학 활동에 이어서 이게 무슨 호사인가 싶었다.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체험학습인 영주공장을 견학했다. 공장을 본격적으로 견학하기 전, 강사님의 진행으로 KT&G가 어떤 기업인지, 어떤 상품을 어떤 나라로, 국내외에서의 위상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셨다.
강사님의 짧은 강의가 끝나고, KT&G 영주공장을 한 번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아쉽게도 촬영 금지라 사진은 남아 있지 않지만, 평소 담배를 안 피우던 내가 공장에 들어갔을 때 맡은 그 역한 냄새는 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담뱃불 냄새보다 필터 냄새가 더 지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필터가 수십만 개 있는 담배공장 안에서는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공장 구경은 마다하고 기침이 너무 나서 약간 힘들었다. 담배 공정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공장 견학을 마무리하고, 공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체험활동은 마무리되었다.
ㆍ 그리고 우리가 하루 동안 묵을 영주 무섬마을로 이동했다. 무섬마을은 정말 예쁜 경치를 안고 있는 마을이었다. 낮에는 비가 약간 와서 걱정했었지만, 의외로 날씨도 화창하고 꽃들도 만개해 있어서 너무 좋았다.
무섬마을에 도착해서 이런저런 뛰어다니는 미션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더워서 그냥 힘들었던 기억밖에 안 난다. 줄넘기하고 딱지치기하는 등의 활동을 했는데 정말 제목에 충실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미션이 끝나고 무섬마을을 둘러보라는 의미에서 스냅 무비를 찍었는데, 솔직히 우리 조보단 귀여운 코스프레를 하고 찍었던 다른 조들이 기억에 남는다.
밤이 되어서는 준비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캠프의 마무리는 술자리로 첫날 일정이 끝이 났다. 밤에 게임을 하다가 팔에 상처가 나버렸다. 그리고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문자가 한 통 오더니, 해군병에 최종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나는 3주 있다가 입대하게 되었다.
ㆍ 다음날, 아침부터 진행된 프로그램 추억의 뽑기 만들기. 만드는 것은 힘들었지만, 아침부터 달콤한 달고나를 만들어 먹는 것도 처음일뿐더러 무척 재미있었다. 아침 프로그램이 마무리되고, 다들 모여 찍은 단체 사진으로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입학) D+145 2014.07.25. (금) ~ 08.06. (수)
<10박 12일, 입대 전 무계획 여행기>
ㆍ 군 입대를 3주 정도 남겨 놓았을 때,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 저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욕구가 갑자기 생겼다. 준혁이 형과 동아리 방에서 컴퓨터 뒤적거리며 이야기하고 있다가 20년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강원도'에서 지역 축제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이 내 눈에 띄었다. 참가비는 0원에, 상세 설명에는 숙식까지 제공을 해 주겠다고 적혀있었다. 입대 전 황금 같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늘 그랬듯이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오질 없는 모험심이 갑자기 생겨나 담당자님에게 전화를 바로 넣어봤다. 통화음 두, 세 번이 울리더니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기획봉사는, 상상 Univ 자체에서 '인턴 프로그램' 같은 게 있는데 거기 참여하는 인턴들 봉사시간 채워주려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거기에 대뜸 이상한 사람이 전화 와서 봉사를 하겠다니 놀란 눈치였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곧 군대 가는데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 싶고,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강원도도 가 보고 싶다고. 담당자님은 잠시 후 연락을 주겠다고 전화를 끊으셨고, 곧 문자 한 통이 왔다. 문자 내용은, 기획봉사에 참여해도 된다는 내용과 함께 상상 Univ 강릉지점의 주소까지 상세히 나와 있었다. 그렇게,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로 10박 12일의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 9시까지 상상 Univ '강릉'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기에, 나는 하루 전날 심야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나아갔다. 심야버스를 타 본적도 처음이거니와 강릉을 가는 길에는 태백산맥을 넘어야 했기에 춥기도 추웠다.
한 4시간을 걸려서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땐 새벽 1~2시 즈음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곧장 택시를 타고 주변에 아무 찜질방에 가 달라고 했다. 찜질방에 도착을 하니 갑자기 드는 생각이 '지금 자면 못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지레 겁먹고 찜질방에서 자는 것보다 그냥 사우나를 하고 피로를 풀고 가자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래서 나는 오밤중에 카운터에 가서 목욕만 하고 가겠다며 찜질방에서 목욕 티켓을 끊었다. 한참 목욕을 하고 나와도 고작 지나 있는 시간이 한 시간. 내심 '취침실'이란 게 있길 바랐지만 그런 건 없었다. 목욕탕 소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이 틀 때쯤 강릉 구경이나 해 보자며 찜질방을 나섰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강릉역' 뿐이었다. 게다가 강릉역 앞 골목은 소위 '홍등가'라 불리는 곳이라 박카스를 들고 있는 꽤 많은 아줌마들이 내게 말을 걸곤 했다. 사실 그 아줌마들이 무섭기도 해서 대꾸도 안 하고 강릉역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강릉역에 도착해선 틀어져 있는 TV나 조금 보다가 강릉역 주변에 펼쳐져 있는 경치를 구경했다. 산을 등지고 있는 강릉역은 아름다웠다. 어느덧 동도 트고 아침 시간이 되었을 때, 김밥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오므라이스를 하나 시켰다. 오므라이스를 먹고, 새벽공기 같은 아침공기를 마시며 상상 Univ '강릉' 지점으로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KT&G 강릉지점. 쭈뼛쭈뼛 들어가니 오래된 친구처럼 반겨주시는 담당자님과 같이 봉사할 인턴분들. 대부분 나이가 24세쯤 된 형, 누나들이었고 모두 다 같은 학교에 같은 과를 다니고 있었다. 간단한 대면식 후 3일 동안 지낼 강릉, '풍호마을'로 향했다. 이 '풍호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의 이름은 '기찻길 옆 풍호마을 연꽃축제'. 정말로 마을 옆으로 기차가 지나다녔고 좌우사방으로 연꽃이 가득 찰 정도로 흐드러지게 펴 있었다.
축제는 연꽃 주(酒), 연잎 밥, 감자전 등 연꽃과 관련된 각종 음식을 파는 장터와, 오리배 타기 체험, 옛날 그네와 투호 등의 민속놀이 체험, 그리고 연못 가득 만개해 있는 연꽃 구경이 전부였다.
처음 딱 가자마자 만났던 담당자 아저씨가 봉사활동 온 우리를 무슨 아르바이트생 보듯 해서 약간 기분이 나빴는데 더 놀랐던 건 축제준비가 아무것도 안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오리배 타기 체험인데 오리배는 저만치 버려져 있었고, 현수막만 세워져 있을 뿐 아무것도 안 되어 있어 황당했었다. 급한 대로 봉사활동 온 우리 젊은이들이 오리배를 옮겨 고여있는 물도 다 처리하고 연못 위에 띄웠다.
연못에서 조금만 시선을 옮기면 푸르른 논이 펼쳐져 있고, '강릉시'라고 적힌 간판을 보니, 내가 진짜 강원도에 와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한창이나 풍호마을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꼬꼬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은 강릉 주변에 사는 유치원생들인데 이 '풍호마을'로 견학을 왔다고 했다. 연꽃축제에서는 사생대회가 열렸는데, 아이들이 풍호마을에 펴져 있는 연꽃을 보고 자신이 본 대로 연꽃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담당자 아저씨가 내게 첫 일을 주셨는데, 이 아이들이 우물에 빠지지 않게 감독하면서 길을 잃지 않도록 길 안내를 하라고 하셨다. 어느 정도 관찰을 하더니 이내 돌아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물조물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나도 귀여웠다.
그중에 어떤 아이와 눈이 마주쳐 오빠 몇 살 같아 보이는지 물어봤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8살인 것 같다고 했다. 수염이 거뭇거뭇 징그럽게 나있는 오빠보고 8살이라니. 하긴 3~4 살 아이들에게는 8살이라는 나이가 많아 보이긴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강릉 풍호마을 연꽃축제는 아주 의미 있고도 특이한 기록이 있다. 바로 전국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축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익률은 다 언제 어디서 나는가 하면 바로 풍호마을의 밤에 마을의 마당에서 난다고 했다.
글의 서두에서 소개했듯이 풍호마을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연꽃 막걸리나 감자전을 팔았는데, 감자전은 녹두가 너무나도 촉촉하기도 하고 어머니들이 직접 정성 들여 구워주셨기 때문에 손맛이 더해져 정말 맛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하루종일 쪼그려 앉아서, 튀는 기름을 이리저리 맞아 가시면서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축제 말미쯤에 말씀해주신 거지만, 매년 이 축제를 하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봉사하시는데 이전까지는 서빙해주는 사람들도 없어서 무거운 음식도 한가득 들고 나르셨다고 한다. 올해 우리가 와 주어서 고맙다며 끝에는 눈물까지 훌쩍여 주신 여리고도 순수한 우리 어머니들이었다.
어쨌든 마당 한편에서 어머니들이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주시면, 마당 중간에서는 말 그대로의 '축제'가 펼쳐졌다. 우선 테이블이 쫘악 설치되어있고, 또 한쪽에는 무대도 설치되어 있어서 남녀노소, 가족 연인 커플 누구나 상관없이 올라와서 노래를 불렀다.
누가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던지 흐뭇한 미소로 무대를 지켜 봐 주시고 손뼉 치는 주민 분들이 있었기에, 정말 화목한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렇게 축제는 밤 10시까지 이어졌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철수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을회관에서 묵었는데, 사실 우리의 밤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상상 Univ 강원'에선 그래도 나름 고생한 우리들을 위해, 강원도에 유명한 각종 음식들을 챙겨주었다. 그래서 강릉에서 꽤 유명하다는 닭꼬치나 족발, 보쌈들을 배부르도록 먹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밤이 무르익었을 땐 우리끼리 오늘 봉사활동부터 시작해서 상상 유니브의 문제, 청년 문제까지 주제를 넘나들며 꽤나 진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갑자기 같이 봉사하는 지용이 형 보고 김범수를 닮았다며 뜬금없이 김범수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새벽 즈음인가 지용이 형과 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강원도에 오게 된 사유를 들으시더니 자기가 재워 줄 테니 자신이 살고 있는 춘천으로 오라고 했다. 한림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형은 어차피 졸업을 앞두고 한 번 자신이 살았던 춘천투어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 참에 같이 하자고 하셨다. 이렇게, 참 미안하고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지용이 형과 또 다른 2박이 이어지게 되었다.
2박 3일간의 짧기도, 길기도 했던 봉사활동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은 뒤 팀별로 헤어지기로 했다. 이번 봉사활동에는 '상상 Univ 강릉'팀과 '상상 Univ 춘천'팀이 모여서 봉사를 같이 했었는데, 처음에 내 계획은 봉사활동이 끝나면 강릉에 정동진 쪽으로 가서 바다 구경도 하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조금 쉴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봉사 마지막날 지용이 형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정동진에서 춘천으로 목적지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춘천까지는 '상상 Univ 춘천' 팀에서 춘천으로 데려다줄 수 있다고 해서 나는 춘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상상 Univ 춘천'팀은 친절하게도 지용이 형이 살고 있다는 한림대학교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지용이 형 자취방에 간단히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춘천 여행코스를 짠 뒤 바로 우리는 바로 집을 나섰다. 지용이 형은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어서 대부분 지용이 형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였는데, 처음에는 둥둥거리고 덜컹거리는 게 적응이 잘 안됐지만, 이내 그 재미를 알고 춘천시내를 환호성을 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분을 달려 우리는 '의암댐'에 도착했다.
의암댐에 도착한 지용이 형은 갑자기 대학교 1학년 때 수업 빼먹고 의암댐을 온 이야기를 해주셨다. 의암댐에 서려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주시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는 '스카이 워크(Sky walk)'로 나를 안내해 주셨다. 스카이 워크에는 '대구 234km'이라는 표지가 박혀 있었다. 234km라니, 운전면허도 없는 나는 감도 잘 안 잡힌다.
스카이 워크에서 조금 있다가, 우리는 다리 밑으로 내려왔다. 거기서 지용이 형이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운전면허도 없는 나는 출발도 하기 전에 시동이 꺼지는 게 대다수였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잘 타지도 못하는 오토바이를 타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다가온 저녁시간. 우리는 춘천의 명물인 '춘천 닭갈비'를 사 주시겠다며 같이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으로 갔다.
말로만 들었었던 춘천 닭갈비, 사실 나는 여태까지 춘천이 강원도가 아니라 충청도 쪽에 있는 줄 알았다. 어쨌든 널리 알려진 '춘천 닭갈비'의 본가는 명불허전이었다. 붉은 닭갈비는 알싸하지만 그리 맵지도 않으면서 향이 구수해 군침이 절로 돌았고, 막국수 역시도 면발이 탱탱해서 면을 씹는 맛도 일품이었다. 생각보다 가격도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었다. 전국 어디서 닭갈비를 먹을 때 내는 딱 그 가격 정도여서 좋았다.
밥을 먹고 나니 어느샌가 밤이 찾아왔다. 마침 내가 춘천을 갔을 때 '춘천 별빛축제'를 하는 기간이라, 우리는 춘천 MBC로 향했다. '춘천 호수 별빛 축제'에서는 춘천 MBC 내 모든 장식품들을 불빛으로 꾸며 놓았다.
가족, 친구, 연인 상관없이 아주 많은 사람이 찾았던 춘천 별빛축제. 그곳으로 우리도 한 걸음씩 성큼 발을 옮겨 보았다.
반짝반짝한 불빛이 가득한 그곳에서, 한참이나 구경을 하고 우리는 다시 한림대학교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시 지용이 형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 내가 지금 있는 이곳, 내 옆에 있는 사람, 내가 지금 있는 환경 등 나를 둘러싼 모든 어떤 것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한참이나 하다가, 또 옆에 있는 지용이 형과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잠에 빠져 들었다.
상상 Univ 프로그램 중에는 '상상 잡스쿨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직접 에서 실무 작업에 대해서 배우고, 또 직장 생활의 예절이나 여러 가지 취업 기술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마침 지용이 형은 이 '상상 잡스쿨링'에 참가하고 있는 중이었고, 상상 Univ 춘천 관계자분이 나도 '상상 잡스쿨링'을 구경하러 와도 좋다고 초대해 주셔서 우리는 '춘천 상상마당'으로 향했다.
춘천 상상마당은 어제 갔었던 춘천 MBC 주변에 있었는데, 밤에 봤을 때와는 달리 확실히 건물에 둘러진 색감이 두드러져 느낌이 색달랐다. 내가 갔던 그날은 'KT&G'에 대한 소개를 하는 날이었고, 모든 상상인턴 분들과 같이 상상마당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리님은 내가 어떻게 춘천에 오게 된 지 설명해주셨는데, 살면서 이렇게 독특한 녀석은 처음 보신다고 하셨다. 처음에 대구에서 올라온다기에 경쟁사 양담배 회사에서 스파이를 보낸 게 아닐까 의심까지 해 보셨다는 대리님은 말씀하셨다. 어쨌든 20살의 청년이 도전하는 것에 대해 응원한다는 말씀을 하시고 수업을 시작하셨다. 강의는 대충 KT&G가 어떤 회사인지부터 시작해서 역사와 경쟁력, 회사가 지향하는 비전 등을 설명해 주셨다.
40분의 강의가 끝난 후 우리는 춘천 상상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상상마당은 중앙의 복도를 중심으로 2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었는데, '나비'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했다. 나비모양의 건물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어, 시원하면서 탁 트인 풍경이 너무 좋았다.
각종 강의를 할 수 있는 최신식 IT 제품도 준비되어 있었고, 각종 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장과, 공연 연습을 할 수 있는 연습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 중간중간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예술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돌아온 영웅'이라는 전시회를 하고 있었고, 건물 곳곳에 이런 건담 프라모델들이 노려보듯 서 있었다. 비용을 조금 내면 직접 조립도 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안돼서 조립은 못했다. 상상마당 투어를 마치고 다시 춘천 시내, 상상 아틀리에로 돌아왔다. 상상 아틀리에로 돌아가니 같이 봉사활동을 했던 매니저님, 대리님들이 맞아주셨고, 어떻게 얘기를 들으셨는지 상상 Univ 춘천팀 팀장님이 외지에서 온 청년을 불러주셨다. 고향이나 학교를 물어보시던 팀장님은 상상 Univ 총대표가 우리 학교 동문이란 것을 말씀해주셨고, 총 대표님 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는 좋은 덕담도 해 주셨다. 팀장님과의 만남을 끝으로, ' 춘천'과 상상 Univ의 만남은 끝이 나게 되었다. 나중에 축제할 때나, 언제든지 놀러 오라는 말씀도 해 주시면서 여비도 챙겨주셨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또 따스한 추억을 간직한 채 '상상 Univ 춘천' 아틀리에를 떠났다.
상상 아틀리에에서 나온 후, 지용이 형이 강원대 주변에 유명한 치킨 가게가 있다고 가보자고 했다.
치킨 가게에 갔는데 같이 수업을 들었던 상상 인턴분들이 계셨다. 합석을 하려고 했는데 가게가 작아서 옆 테이블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지용이 형이 갑자기 자신의 팀원들과 약속이 잡혔다고 하셔서 1~2시간 동안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혼자라도 춘천을 마저 돌아다니기로 했다. 공지천 공원에서 잠시 산책을 하고 있으라고 하시고 2시간 후쯤 전화를 드리기로 했다. 그때부터 뚜벅뚜벅, 발길 가는 데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공지천 앞에 있는 공지숲 작은 가게도 들어가 보고, 가게 앞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다. 공원에 들어가니 어떤 외국인이 기타를 엄청 멋있게 치면서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리저리 걷다 보니 결국 산 중턱에 있는 KT&G 상상마당에 닿았고, 거기서 좀 더 들어가니 '라데나 콘도'라는 곳이 나왔다. 그냥 무작정 들어가니 맥주 가게가 나왔다. 500cc의 맥주를 한 잔 시키곤, 기본 안주로 나오는 뻥튀기랑 해서 꿀꺽꿀꺽 마셨다. 라이브 카페라 그런지 노래하는 분도 있었는데, 뛰어난 가창력에 깜짝 놀랐었다.
30분쯤 지나니 지용이 형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라데나 리조트라고 하니까 엄청 놀라 했다. 그래도 15분쯤 지나니 금방 데리러 오셨다. 지용이 형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움직였던 곳은 바로 춘천의 명물, 산토리니.
춘천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는 산토리니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춘천 시내를 한 번 둘러보았다. 중간에 엄청 큰 빛이 반짝이는 곳이 형이 다니고 있다는 '한림대학교'를 중심으로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빛나고 있는 춘천의 경치를 한참이나 구경했다. 산토리니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한림대학교로 돌아왔다. 다시 같이 침대에 누워,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이때가 영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에서의 4일 일정을 마무리 짓고 서울, 강남으로 건너왔다. 강남역이 세력권이라고 자랑하는 지수 누나를 만나러 강남으로 향했다. 강남에서 만난 누나야에게 풍호마을에서 받았던 연잎국수를 건넸다. 엄청 뜬금없고 특이한 선물에 당황해했다. 누나는 밥 한 끼 사주겠다며 강남에 유명한 매운 음식이 가득한 가게로 들어갔다.
메뉴는 스튜랑 파스타를 시켰는데 별로 매워 보이지 않는 생김새와 달리 엄청 매웠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 음식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계획 없이 왔기에 뭘 할까 얼청 고민했는데, 옛날에 중앙대학교에 지원했었다는 얘기를 하니까 누나야가 다니는 학교를 직접 구경시켜준다면서, 강남에서 중앙대학교로 향했다.
중앙대 법학관부터 입구까지 쭈욱 걸어보았는데 신기한 건 중앙대에는 운동장이 없단다. 캠퍼스가 작아서 그런가. 공사를 하고 있다는데 언제쯤 끝날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저번에 대학 내일 잡지에서 카우(CAU) 버거를 보고 먹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직접 사 먹으라면서 누나는 직접 버거집까지 데려다주셨다.
사실 카우(CAU) 버거라는 이름을 가진 버거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중앙대에서 파는 버거라서 카우 버거라고 했다. 중앙대 주변에 있는 북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 같이 마시고, 늦어지기 전에 누나야랑 헤어졌다.
다음으로 향했던 곳은 종원이 형이 다니고 있다는 서울 예술 대학교로 향했다.
이름은 '서울' 예술 대학교지만, 학교는 안산시에 있었다. '중앙' 역에서 내려 서울 예대까지 걸어갔는데, 보기보다 너무 멀어서 한참이나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서울예대에 도착했는데, 때마침 서울예대에서 '동랑캠프'라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고 그 공연에서 종원이 형이 활동하고 있다는 개그동아리 '밥'에서 공연을 한다길래 나도 들어가서 공연을 구경했다.
개그공연은 처음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개그 공연이 끝나고, 종원이 형은 나머지 연습을 한 후 밤에 만나서 같이 어묵탕을 먹으러 갔다. 형과는 전부터 계속 같이 한잔 하자고 했었는데, 마침 그날부터 슬슬 목이 따갑기 시작해서 음주를 했다가 몸이 완전히 상할까 봐 술은 같이 못 먹었다. 어쨌든 밤까지 종원이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새벽 늦게까지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그때까지 잠을 어디서 잘지 결정을 안 해놓고 있었는데, 결국 몰래 서울예대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들어가는 길에 경비 아저씨에게 걸려서 한 소리 듣기는 했지만,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통사정을 듣고 한 번만 눈감아 주신다고 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몸상태도 별로 안 좋아서 종원이 형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종원이 형과 같이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부터 종원이 형은 MT에 가야 해서 아침 일찍 헤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니 급격히 몸상태가 안 좋아서 종원이 형과 헤어지고 난 뒤 바로 주변에 있는 찜질방으로 들어가 수면실에서 기절해 버렸다. 몇 시간인가 푹 자고 일어나니 그나마 몸상태가 돌아왔고, 늦은 점심이라도 먹으로 찜질방을 나섰다. 힘들어서 늦은 점심도 아무렇게나 먹으려고 아무 집이나 들어갔는데 엄청 맛있고 저렴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강남에서 자취하고 있는 대구 PIANO+ 동호회의 회장인 쓸쓸한 병준이 형을 보러 '교대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맛있는 음식 안 사 오면 집에 안 들여보내준다고 해서 14번 출구 앞에 있는 마포 만두를 사서 형 집으로 갔다. 겨우 병준이 형 자취방에 갔는데 형은 나보다 만두를 더 반기는 것 같았다. 만두를 먹더니 갑자기 배고프다면서, 무작정 밖으로 따라 나오란다. 형이 향한 곳은 '교대 곱창'. 그래도 강남에서 엄청 유명하다고 했다. 바로 옆에 2호점이 있었고 크기도 엄청 컸다.
형과 나는 배고파 교대 곱창을 순식간에 흡입하고 주변 세계 맥주 가게에서 코로나 맥주를 한 잔씩하고 방에 들어왔다. 병준이 형이 살고 있는 고시원은 2평 정도 됐었는데, 어제와 같이 서로 꼭 껴안고 한 침대에서 잤다. 다음날 일어나니 형은 수업 들어가고 없었다. 나도 고시원방에서 대충 씻고 칠곡에서 만났던 경민이를 만나러 잠실로 향했다.
막걸리가 마시고 싶다는 경민이를 따라 막걸릿집으로 가서 막걸리와 파전을 시켰다. 경민이를 만나 일주일 가량 이어지는 여행기를 얘기하니 그 큰 눈이 두 배로 커졌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4일 후에 인문학 활동에서 만났던 남영이 누나, 은정이 누나가 국토대장정을 끝내고 서울로 온단다. 그때 어떻게 해서든지 4일을 버티고, 누나야들과 같이 대구로 내려가는 것으로 목표가 정해졌다. 같이 막걸리를 마시고, 경민이가 다니고 있다는 건대로 향했다.
가사가 헷갈린 덕분에 경민이가 다니고 있는 건국대도 한 바퀴 쭉 둘러보고, 학교 안 카페에서 딸기우유도 마셨다. 건국대 내부를 포함해 건대 거리도 한 바퀴 쭉 돌아보고, 그것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날 역시도 다시 병준이 형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같이 잤다.
다음날 아침에는 대통령 직속 청년 위원회 '창의인재 더 청춘' 활동을 할 때 부산에서 만났던 (주) MU 조연심
대표님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병준이 형이 같이 대구로 내려가자고 계속 그랬는데 그냥 서울에 남아 있기로 했다.
조연심 대표님께서는 분명히 공덕역으로 오라고 하셨는데 왜 때문인지 난 선릉으로 가고 있었다. 선릉역 거의 도착해서야 사무실이 공덕역인 것을 알았고 약속 시간까지 여유 있게 출발했었는데 겨우내 시간 맞춰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은 최근에 강남에서 공덕 쪽으로 이사를 하셨다고 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대표님은 책을 집필하고 계셨는데, 원고를 작성하시는 동안 나는 사무실 구경을 조금 했다. 원고 작성을 어느 정도 끝내시고 내 앞에 앉은 조연심 대표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셨다.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창의인재 더 청춘'의 현황에 대해서 여쭤 보시고 기록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간단한 말씀을 해주셨다. 이어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내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잡을 때 어떤 방법이 가장 이상적인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다. 가장 중한 것은 역시 '기록'이었다. 그저 전업 주부였던 대표님의 삶을 180도 바뀌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기록' 때문이었다고 하니 대표님에겐 이 글쓰기가 은인과도 같지 않을까 싶다.
30분 정도의 짧은 강의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 대표님은 점심 드시러 가셨다. 세상을 돌아다니는 야생마 같은 청년을 위해 조금의 여비도 챙겨주셨다.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허윤이가 추천해 준 '서울숲'으로 갔다.
윤이가 서울숲에서 자전거 타고 다니면 기분이 아주 좋다고 그래서 자전거 빌려주는 데를 찾아다녔다. 가는 길에 배가 너무 고파서 주변에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자전거를 빌린 후 서울숲을 돌았다.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돌다가 어디서 뮤지컬 음악이 나오길래 무작정 소리를 따라 따라갔다. 서울숲 한 중앙에서 '겨울 왕국'을 틀어주고 있었다. 너무 좋았다. 영화가 거의 끝바지라 자전거 안장에 앉아서 겨울 왕국을 끝까지 봤다. 겨울왕국 음악은 언제 들어도 너무나 좋다. 영화가 끝나고 무작정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어쩌다 보니 한강 쪽으로 빠졌다.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야경이 너무너무 예뻐서 사진도 엄청 많이 찍었다.
한강 바람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보니 나도 어느덧 서울에서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했다. 재미있게 자전거 타고 오늘 밤은 어디서 묵나 고민하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종언이가 생각이 났다. 아무 생각 없이 종언이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종언이가 지금 홍대에서 자취하고 있단다. 어이가 없었지만 뭐 서로 할 것도 없고 해서 만났다.
호주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종언이는 호주에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다시 한국에서 입시를 준비한다고 했다. 어학 특기자로 가톨릭대학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자기 혼자만 들어와서 돈이 없다고 했다. 잠은 종언이 자취방에서 자기로 하고 맥주나 마시러 나갔다. 같이 PC방에 가서 게임이나 하고 종언이 자취방 가는 길에 만두를 사서 같이 나눠 먹고 푹 잤다.
다음 날이 남영이 누나랑 은정이 누나가 국토대장정이 끝나는 날이라, 이번 여행도 오늘이 마지막 밤이구나
싶더라. 다음날, 국토 대장정을 마친 누나야 둘이가 장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대구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원래 약속은 서울에 있는 철홍이 형이랑 넷이서 만나서 밥 먹고 같이 내려가는 걸로 했었는데 당일이 되어서야 누나야들의 사정을 알았다. 아쉬운 대로 다음에 보기로 하고 마침 허윤이가 시간이 된다기에 종언이랑 셋이서 같이 커피나 한잔 마시기로 했다.
이날 밖에 비가 오고 있었는데 우산 없이 다니느라 카메라에 빗물이 조금 들어갔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 날로
고장 나버렸다. 윤이랑 만나서 커피 마시고 경주로 내려와서 쿨쿨 잤다.
입학) D+164 2014.08.13. (수)
<보컬트레이닝>
ㆍ '전국 대학생 인문학 활동' 이후 대외활동의 재미를 느끼고 이것저것 뒤져보다 알게 된 사이트 '상상 Univ'. 우연히 들어가 본 그 사이트에서 정말 매력적인 강의를 하나 발견했다. 바로, 보컬트레이닝.
노래 잘 부르는 남자가 그렇게 매력 있다길래 길거리에서든, 엘리베이터에서든 고래고래 노래 연습을 해보아도 늘지 않던 노래 실력이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상상 보컬 실전트레이닝에 지원했다. 마침 이런 강의에 흥미가 있던 대환이와 같이 지원했고, 운 좋게도 둘이 같이 선정되어 훈련에 참여하게 되었다.
ㆍ 첫 강의에는 강의에 참여하는 개개인들의 노래를 직접 들어보고 평가를 해보는 것. 다른 사람의 노래를 진지하게 듣고 내 나름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K-POP STAR나 슈퍼스타K에 나오는 심사자들의 청각은 역시나 예민하다는 것을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슨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음이 많이 올라가야만 부를 수 있다는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불렀다.
첫날 평가와 함께 6주간 같이 갈 팀원들을 정했고, 우리 팀은 남자 4명, 여자 2명으로 구성된 혼성팀으로 짜였다. 여하튼 우리가 6주간 연습해야 할 곡은 서인국, 정은지가 불렀던 'All for you'로 결정되었다. 이 노래를 처음 불렀을 땐 생각보다 서인국의 목소리 톤이 생각보다 너무 높아서 힘들게 힘들게 불렀던 것 같다. 여하튼 팀원들 각각 시간을 쪼개서 같이 노래방도 가고, 연습도 하고 하면서 실력을 점점 쌓기 시작했다. 한 주간 열심히 연습해서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하시는 말씀이 너무 몸을 흔들면서 노래를 부른다고, 발성하기 전에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시 말해, 기초부터 안 되어있다는 말이었다. 강사님이 벽에 몸을 붙이고 노래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노래방 가서 노래할 때는 언제나 등을 벽에 붙이고 노래를 하고 있다. 여하튼 그때 받은 조치를 시작으로 발성을 내는 방법, 고음을 낼 때 사용하는 목젖의 높이, 바이브레이션을 하는 법 등을 개인적으로 강습을 받았다. 물론 내재화하는 것은 내 몫이겠지만. 여하튼 같은 팀원들과 6주의 강습을 끝나고 마무리 영상을 찍는 것으로 강의는 마무리되었다. 어쨌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매주 강의가 끝나고 있었던 뒤풀이였다. 매주 무슨 의식처럼 있었던 회식이 있었기에 6주가 쏜살같이 지나간 듯하다. 상상 Univ 대구 보컬 실전 클래스 26기, 참 좋은 경험이었다.
입학) D+167 2014.08.16. (토)
<Piano Plus Membership Training>
ㆍ 대구 피아노 동호회 Piano Plus의 MT날이 다가왔다. 일단 밤새도록 술 마시고 와서 갔던 홈플러스 대구점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20분가량이나 지각한 탓에 우리 조는 마스터 셰프 피플을 진행할 때 사용할 5,000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어쨌든 처음 보는 회원 분들과 어색하게 장을 다 보고 대구역으로 기차 타러 갔다.
기차 안에선 김밥 한 줄 먹고 수빈이 누나야와 두 시간 반동안이나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피아노 동호회다 보니 피아노가 있는 펜션을 빌렸다. 펜션에 도착해서 승훈이 형은 일단 피아노부터 쳤고, 일단 먹고 보자며 라면부터 끓이는 형도 있었다. 덕분에 입과 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놀이 전에 이어진 Piano+ 보물찾기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을 먼저 갔기에, 무려 종이를 6장이나 찾았고, 본격적인 물놀이를 시작해서는 혜지 누나 물 먹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수영장 물을 계속 혜지 누나한테 먹였다.
물놀이가 끝나고 이어진 요리 대결에서는 흔한 맛이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골빔면과, 상큼한 맛이 일품인 방울토마토 카나페가 좋았다. 느끼하지만 계속 찾게 되는 영진이 형의 까르보나라와 감자 그라탕은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후로 이어진 미니 정모에서는 정말 혼신을 다해 피아노를 연주해 주었고, 한 회원님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감미로운 랩을 해 주어 밤을 장식하기 충분했다.
새벽녘이 되어서 진행된 이미지 게임에서는 '가장 안 씻을 것 같은 사람', '가장 방이 더러울 것 같은 사람'에 연속하여 내가 지목된 사실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제공된 라면 한 젓갈의 맛은 아주 달콤했다. 집에 오는 길에 목에 담이 오는지도 모르고 자던 그 기차 좌석의 향이 아직도 코 끝에 맴돈다.
입학) D+173 2014.08.22. (금)
지난달에 했었던 '전국 대학생 인문학 활동'을 마치고 한 달 정도 지난 뒤 인디 053의 매니저인 재은이 누나한테 "기윤아! 칠곡군 서포터스 하지 않을래?"라며 전화가 한 통 왔었다. 칠곡군 서포터스에 대한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었는데 문득 그때 뵈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른거려 서포터스에 참여하기로 했다.
2014년 8월 22일, 나는 그렇게 구미의 왜관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서포터스를 배웅하러 오신 금남리 이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서포터스 활동을 하기 위해 금남리로 이동했다. 금남리로 이동하는 중에 이장님이 칠곡 읍내를 구경시켜주셨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맛집들이 가득했다.
왜관 읍내를 지나 금남리 마을 회관에 도착했는데,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회관이 멋졌다. 일단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마을 회관은 성처럼 큰 풍채도 멋지지만, 정말 호텔 남 부럽지 않은 시설에 너무 놀랐다. 일단 머무를 수 있는 크나큰 방이 두 개나 있을뿐더러 각종 운동기구에, 심지어는 찜질방까지 있었다. 금남리 사람들은 집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마을 회관에서 복지 차원에서 마음껏 찜질을 누리고 있었다.
마을 회관 시설에서 행복한 하루 밤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금남리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갔던 곳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가실성당'으로 향했다. 가실성당에 도착하자마자 사실 조금 놀랐다. 빤짝 광이 나는 종과 멋진 장식품들을 보면서 도시의 성당은 시골의 성당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가실성당의 멋진 풍경을 구경하고 성당 옆에 있는 돌아가는 그네를 탔다. 살면서 빙빙 돌아가는 그네는 처음 타봤는데, 여타 놀이기구같이 너무 스릴 있었다. 그네를 타다 보니 어릴 때 놀이 공원에서 느꼈던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을 또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타다 보니 어지러워 토할 뻔했다.
외국 같았던 가실 성당을 뒤로하고, 금남의 젖줄 낙동강으로 향했다. 낙동강을 장식하고 있는 꽃도 구경하고 마을 회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의 모습을 한 벽화도 구경했다.
낙동강에서 이렇게 너무나도 행복했던 칠곡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입학) D+183 2014.09.01. (월)
<나에게도 찾아온>
ㆍ어느 날 가족끼리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서 군대는 언제쯤 갈 거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가야겠죠' 하곤 자리를 넘겼다. 그래 군대는 언젠가는 가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혹여나 내가 자라나는 사이에 통일이 된다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헛된 꿈도 잠시 가져본 적 있었지만 말 그대로 헛된 허상뿐이었다. 어쨌든 병역의 의무에 앞서 먼저 병역을 해결한 형들, 선배들로부터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주워 들었다.
대부분의 의견은 그냥 군대는 아예 빨리 가거나, 아예 늦게 가는 것이 제일 좋다는 의견이 많았고 가능하면 빨리 끝내버리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입대 신청을 한 번 시험 삼아해 보기로 했다. 지금은 입대 인원이 밀려서 군대에 가기 위해서 3수, 4수씩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군대 가는 것도 웬만한 대학 가는 것처럼 힘들다고 했다.
신체검사는 이미 받아놨다. 나의 등급은 3등급이었다. 별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몸무게가 낮은 편이라 면제가 아닌 3등급의 인증을 받게 되었다. 국가에 정식으로 입대 자원으로 선발되었는데 늘 그랬듯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육군, 해군, 공군, 해병 중에 병종을 선택할 수 있었다. 마치 대학에 원서를 제출하는 것처럼, 1에서 3 지망까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공군, 육군, 해군 순으로 지원했다. 제일가고 싶었던 군종은 공군이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여유롭다는 의견이 많았고 고학력자가 많이 몰리기 때문에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상식적인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3 지망인 해군만 서류 심사에 합격했고, 이내 면접을 보러 병무청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 이왕 가야 하는 것 어떤 곳이든 어떻냐는 생각에 면접은 보러 갔었다. 간단한 신원 조회를 한 후, 3칸으로 나뉜 작은 면접장에서 면접에 응했다. 면접장을 관리하시는 분이, 다이아 3개인 대위였는데 계급장을 보니 정말 군대에 가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면접은 까만 해군 정복을 입은 소령님과 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평소 대인 관계는 어떤지 등을 물어보셨고, 특별한 질문을 하나 해주셨다. 만약에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고 가정했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여쭤보셨는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최대한 말로 설득해 보겠다는 식의 답변을 했다. 그 질문을 마지막으로 면접은 끝났다. 마지막 질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서 친누나와 전화하며 이것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누나는 가만히 듣더니 아무래도 군인을 뽑는 자리이기 때문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다' 등의 답변을 원했던 게 아닐까 하는 답변을 주었다.
그리고 MT에서 선배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저녁에 문자가 한 통 왔다. 해군병에 합격했다고 당장 2주 후에 입대하라고 했다. 무언가를 합격하고서 이렇게 슬픈 적이 없었다. 선배들은 웃으면서 오늘은 아예 술을 기절할 때까지 먹어보라 했다. 모르겠다, 내가 군대라니. 당장 며칠 후 입대라니.
입학) D+190 2014.09.08. (월)
<입대를 앞두고>
ㆍ급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입대 소식을 알렸다. 급하게 기숙사에서 짐을 빼고, 학과 사람들이나 주변 지인들의 환송을 받았다. 천마극단은 한창 Workshop 준비로 바빴는데, 입대를 핑계로 모든 것들을 미뤘었다. 혹시나, 참여한다고 했다가 입대 때문에 모든 것이 밀려버릴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기 대신 Staff를 지원했었고, 그 사이에 Workshop도 큰 문제없이 막을 내렸다.
그래도 입대 전에 무엇이든 마무리되는 느낌이라서 좋았지만, 무언가 헛헛한 느낌은 계속 들었다. 요즘 잠시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있는데, 주변 지인들이 그녀의 외모를 보고 한 번 잘해보라면서 계속 바람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나는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아예 시도조차 안 하고 있는데 이런 기회 없다며 입대를 미뤄보라며 자꾸만 꼬드겼다. 그녀 때문인가, 아니면 군대에 가서 나에게 편지 하나 써 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마음은 계속 어딘가가 비어 있는 마음이 든다.
시끌벅적하게 하지 말고, 남은 시간은 조용하게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가 훈련소로 들어갈 예정이다. 그곳은 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