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304 2013. 1. 8. (화)
<반딧불이 여행과, 최근 드는 생각들>
ㆍ 고3이다. 2013 수능이 끝난 지 오래다. 예비 고3의 이름표도 무색한 1월 1일도 지났다. 노력도 왔다 갔다.
그저 알싸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광활한 바다를 수영하는 기분이다. 그냥, 그렇다고. 지난 29 - 30일 날 축제를 기획했던 반딧불이에서 금련산 수련원으로 부산 바다 여행을 떠났다.
이번엔 재호랑 같이 반딧불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재호와 반월당역에서 만나고, 반딧불이 사람들을 만나고 부산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산까지는 꽤 멀었지만 축제 전문 반딧불이는 버스에서 라디오 형식으로 우리를 재미있게 했는데 그래서 그런 지 3시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빨리 지나갔다.
이번 캠프의 주제는 '웹툰'이다.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선 5개 정도의 웹툰을 정주행 하고 왔어야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3개 정도만 읽고 참여하게 되었다. 부산에 도착해서 보니 1년 전 왔었던, 형미네 친구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를 스쳐 지나왔다. 추억이 새록새록 돋았다.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으로 경치 좋은 금련산 수련원에
도착했다. 밥 먹고 짐 풀고 게임하고 웹툰에 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낮 스케줄은 금방금방 지나갔고
밤에는 이번 여행의 백미인 광안리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라 정말 좋았다. 피가 끓는 인철이는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더만 이 추운 겨울바다를 첨벙첨벙 치고 들어갔다. 그러더니 희영이, 혜림이, 은미까지 줄줄이 끌고 들어가서 냉수마찰을 시켜주더라.
그 추운 날씨에 입수라, 미쳤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물놀이가 끝난 후 풍등을 날리기도 했다. 처음으로 풍등을 날렸는데 정말 예쁘고 신기했다. 풍등을 날려 보내고 난 후 사진을 찰칵찰칵 찍고 광안 바다와 안녕할 시간이 다가왔다.
숙소로 돌아와서, 다들 같이 바다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걸음씩 친밀해진 것 같다. 방에 돌아오니 다들 녹초가 되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뻗더라. 나도 얼른 씻고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아직 남은 프로그램이 있나 보다. 옆방에 다들 모여 이번 2012년에 이룩한 것들을 발표했다.
나는 반딧불이 축제 기획한 것, 혼자서 부산 여행한 것, 또 뮤지컬을 처음 본 것을 이야기했다. 다들 한 마디씩 하고 다 같이 게임을 했다. '딸기 게임'이란 걸 했는데 발음이 안 돼서 계속 "따기 따기!" 했다. 덕분에 계속 맞았다. 이후로 마피아 게임이 이어졌는데 사람들이 진짜 귀신처럼 마피아만 속속 잡아 내었다. 나도 마피아였는데 한 마디 했다가 바로 죽었다.
마피아 게임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덧 새벽 2시가 넘어갔다. 더 이상 게임을 하긴 힘들어서 그냥 은미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중에는 원래 사귀고 있던 희영이 커플이 있었고 오늘 처음 만났다는데 완전 찰싹 붙어있는 수현이, 인철이가 있었다. 나머지 애들은 자거나 다른 일을 했는데 막 자다 일어난 인희도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인희가 잠 온다면서 내 옆에서 잤는데 잠결에 목마르다고 물을 막 가져다
달라고 해서 얘기하다 말고 물을 갖다 주고 그랬다.
다음 날 인희는 전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을 못 하는 듯했다. 그냥 혜림이랑 은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빠야 미안" 한다. 미안하긴. 다음날 행복 캘린더 만들기라는 아침 프로그램이 있었고 이어서 롤링 페이퍼도 썼다. 1박 2일간 아직 한 마디도 못 한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많은 멘션은 없었다.
오전 프로그램이 끝나고 부산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1인당 5,000원 상품권을 주시면서 전통 시장을 이용해 보라는 취지였는데 돈도 많은 건 아니라 그냥 매운 떡볶이와 순대를 사 먹었다. 맛은 그닥이었는데, 우엽 선생님과 재호, 한빈이와 같이 먹어 분위기는 좋았다. 다 먹고 또 도넛 사 먹고 나가는 길에 씨앗 호떡을 또 사 먹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허겁지겁 먹고 모두들 모이기로 한 곳에 또 오코노미야키 집에 줄지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그걸 못 참고 또 오코노미야키 집에 들어가 하나를 주문했는데 맛은 정말 신세계를 경험하는 듯 맛있었지만 배도 부르고 금방 질려서 다 못 먹었다.
국제시장 프로그램까지 마무리되고 반딧불이의 공식적 행사가 다 끝났다. 오는 길에 버스에서 진짜 모두들 쥐 죽은 듯 잤다. 3시간을 내리 달려 도착한 대구, 모든 반딧불이 식구들과 인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재호랑 경주로 가서 승열이 만나 노래방 한 시간 부르고 집에 갔다.
며칠 후 밥을 한 번 사겠다고 약속한 인희와 다시 만났다. 인희 특유의 4차원 매력으로 연신 재밌게 해 주었다. 같이 영화 한 편 보고 집에 왔다. 이제부터 진짜 열심히 해야지.
수능) D-188 2013. 5. 4. (토)
<제4회 여기 애인상 수상>
ㆍ 수험 생활 6달째, 앞으로 몇 번 쓸 일 없을 것 같지만 5개월 만에 일기장에 끄적여 본다. 몇 달 전 여기 애인 (如己愛人) 독후감 공모전이 있었다. 작년에 호원이 형이 상 타는 게 부러워서 나도 이번에 참여를 해야지 마음먹고 결국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생각보다 글이 잘 안 써지고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까 귀찮기도 해서 처음 원대했던 계획과는 다르게 흐지부지 써서 내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장환정 선생님이 지원 사격을
해 주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미 냈는 작품을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일단 보낸 작품이라도 선생님 컴퓨터에
저장하라고 하셨다. 선생님 컴퓨터로 네이버에 들어가서 메일함을 들어갔는데 메일이 가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해서 메일이 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이건 정말 하늘이 준 기횐가 싶어서 다시 제대로 글을 완전히 새롭게 써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게다가 장환정 선생님께서 담임 선생님인 곽은영 선생님께 글 쓰는 걸 조금 도와달라고 하셔서 선생님도 도와주셨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고 선생님께 첨삭을 받으며 처음의 것보다 훨씬 나아진 글을 만들어 제출했다.
수상자 발표일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어느 날, 꿈에서 이승민이가 최우수상을 받고 내가 우수상을 받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수상자가 발표되었는데 소 신학생인 창교가 최우수상을 타고 나는 우수상을 타게 되었다. 정말 신기했다. 꿈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일치했으니. 어쨌든 수상 소식이 가톨릭 신문에 나오고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주셨다. 수상하는 당일 시상식장에 가러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까지 전부 하양으로 오셨다. 대구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시상식 장인 월성 성당으로 향했다.
시상식장에 가니 최지인 수녀님도 계셨고 우리 학교 선생님인 장환정, 이유정, 곽은영 선생님도 계셨다.
본 식이 시작되고 여기회 회장님의 말씀과 일본에서 오신 나자키 수사님의 축사를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상을 받고 상품을 받고 꽃 받고. 글 하나로 많은 것을 받았다. 그런데 회장님의 말씀처럼 이 선물들은 내가
글을 잘 써서 주는 상품이 아니고 앞으로 세계 평화에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상징품인 것 같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수능) D+114 2014. 3. 1. (토)
<20대의 출발에 서서.>
ㆍ 어느덧 고대하던 수능도 끝났고 나 포함 모든 이들이 자신의 성적표를 들고 자신의, 자신들의 인생으로
흩어졌다. 눈 깜짝하는 순간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고 그 가운덴 그저 '나'라는 한 존재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목적 없이 살길 어느덧 몇 달, 오늘 대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고교시절 5월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펜을 잡았다.
수능은 예상했던 대로 무척이나 어려웠고 고교시절 '최악'의 점수로 마침표를 찍었다. 특히 영어는 치면서도
문제가 너무 안 풀려 울고 싶었던 그때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어쨌든 난이도도 체감도 엄청 힘겨운
시험이었고 결과적으로 [ ] [ ] [ ] [ ] [ ]라는 이례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연극 계열 입시는 무참히 실패했고
모두들 그러듯 성적에 맞춰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다. 국제 통상학과라는 휘둥그레한 학과에 진학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놀고먹기 바빴던 것 같다. 난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내 인생을
만들어 가야겠다. 어쨌든 나는 영남대학교 국제통상학부로 20대를 열게 되었다.
수능 끝나고 고대했던 반딧불이 토마토는 결국 했다. 경주에서 대구 내당역까지 약 18번가량을 왔다 갔다 했고 돈도 엄청 깨졌다. 근데 고생한 만큼 배운 것도 많고 깨달은 것도 많고.
중간에 가영 선생님이랑 트러블이 생겨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끝까지 마무리했다. 어쩌다
보니 재호도 같이 했는데 영감을 많이 받은 걸까, 감사함을 많이 느낀 걸까 토마토에서 나아가 도움꾼까지 한다고 한다. 의지도 대단하고 아무튼 쉬운 결정이 아닐 텐데, 신기했다.
그리고 꼭 떠나리라 마음을 먹었던 내일로도 다녀왔다. 4박 5일의 여정이었는데 부산, 순천, 전주, 곡성, 제천, 단양 순으로 국토를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쭉 돌았다. 물론 본 것도 많고 먹고 듣고 한 것들도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사람과의 만남, 비록 휘발성이지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준 그들이 너무 좋다.
뭔가 길고 거창한 무언가가 나올 줄 알았으니 쓰고 나니 별게 없다. 그래도 앞으로 청춘을 스케치하며 삶을 살아야겠다. 누구 묘비 따라 '우물쭈물하다, 그렇게!' 되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