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 일지] #14. 이등병의 일기

by 여행사 작가 류익

입대) D+34 2014.10.19. (일)


ㆍ 후반기 교육장으로 이동했다. 이동 1시간 전까지 얼차려를 받다가 보급병 모두가 버스에 타서 어디론가 간다. 처음에는 '진짜, 이게 뭔가' 싶었다. 지나고 나니, 완전한 우리들의 낙원이었다.


ㆍ 일단, 수료하는 날 부모님께 정모 수여를 받고 한 열 시간가량 외출을 다녀왔다. 먹고 싶었던 고기도 실컷 먹고, 해양공원 구경도 가고, 먹고 싶던 치킨도 먹고 하다 보니 어느새 복귀 시간이 다가왔다. 그날 밤 푹 쉬고 후반기 교육장으로 이동했다.


ㆍ 일단 이곳으로 오니 몸이 너무 편해졌다. 솔직히 크게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당연히, 얼차려 주는 사람도 없다. '빨간 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정말 큰 행복이다. 약간 제한적이긴 하지만 전화 사용부터 흡연, 기타 등의 신체적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게다가 PX도 갔다 왔다. 먹고 싶었던 과자를 먹으니 너무 행복했다. 사실 이제는 더 바랄 것도 없다. 게다가 입교 초기라 해야 할 일도 몇 없어서 그냥 종일 휴식이자 대기이다. 가입영주, 첫 주 같은 느낌이다.


ㆍ 승화 형이랑 통화했다. 오랜만에 '사제 사람' 목소리를 들으니 좋았다. 중현이는 콜렉트콜로 거니까 바로

끊더라.


ㆍ 너무 할 게 없어서 수료주 날은 성경이나 열심히 읽고 있다.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입대) D+35 2014.10.20. (월)


ㆍ 오늘 해상병 619기 입영한다. 불쌍하다.

우리는 입교식을 시작으로 3주 동안 배울 교육의 첫 발을 뗀다. 무엇을 배우든지, 열심히 해 봐야겠다.


ㆍ 취침하고, 불침번 (갑판 당직)이 잘 없다. 6시 30분까지 꿀잠 잤다. 진짜 좋다, 여기.


ㆍ 요즘 계속해서 설사가 난다. 점성이 없는 변을 볼 때면 기분이 이상하다.




입대) D+36 2014.10.21. (화)


ㆍ 오늘부터 수업이 시작된다. 과목은 '보급학, 군수학, 정훈학'이다. 기대된다. 빨리 무언가를 배우고, 얻어 가고 싶다.


ㆍ 처음으로 '군대리아'를 먹어 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깜짝 놀랐다.


ㆍ 내가 가는 '국군 화생방 방호 사령부'는 여태까지 전례가 없다고 한다. 선임도 없다는 말이고, 후임이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사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일단,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휴가 나오면 연극이나 콘서트 같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입대) D+37 2014.10.22. (수)


ㆍ 일상이 지루하다. 진짜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책을 읽고는 있는데, 머리로 들어오는지 아닌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 시간은 진짜 안 가는데, 또 하루는 잘 간다. 이게 뭔가. 정신 차리고 보면 저녁이고 밤이다. 시간이 빨리 가서 좋긴 한데, 뭔가 '날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치스러운 아쉬움이다.


ㆍ 어제 군대 안 간 친구들과 통화를 했다. 시험 기간이라는데 다들 여유가 넘친다. 친구들 역시도 군대를 슬슬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디 가고 싶냐니까 다들 하나같이 '공군' 가고 싶단다. 그냥 빨리 다들 해군 들어와서 나의 힘듦을 모두가 느끼게 하고 싶다.


ㆍ 집에 가고 싶다. 갇혀 있는 건 너무나도 싫다.




입대) D+38 2014.10.23. (목)


ㆍ 후반기 오니까 수요일도 종교활동을 보내준다. 기초군사교육단을 지나가면서 새로이 입대한 619기를 언뜻 보았다. 불쌍하다.




입대) D+42 2014.10.27. (월)


ㆍ 어제 아래 이틀을 이용해 장병들에게 가족과 친지와 만날 수 있는 면회 시간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중국으로 간 부모님은 연락조차 안 된다. 치킨 먹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동기들이 부럽다. 서럽다.


ㆍ 일상은 그저 그렇다. 기초군사교육단 때는 짐승 취급을 했다면 여긴 중ㆍ고등학생쯤 취급해 준다. 빨리 외박 나가고 싶다.


ㆍ 첫 시험 성적이 나왔다. 75점. 목표 점수 85점에 턱도 못 미친다. 생각해 보니, 시험을 잘 본 적이 몇 번 없는 것 같다. 공부 방법이 잘 못 되었나 조만간 P.T. 를 5,800개나 한다는 게 사실은 조금 두렵다. 교관이 진짜 시킬 것 같다.




입대) D+45 2014.10.30. (목)


ㆍ 체력 검정을 하면서 3KM 구보를 했다. 폐가 아프도록 뛰었다. 너무 힘들어 한 바퀴를 덜 뛰었지만, 다 뛴 척 골인했다. 6등으로 골인했더라. 일단 통과는 했는데 찝찝하다.


ㆍ 종교 활동으로 교회에 갔다. 노래 부르면서 손뼉 치는 게 신기했다. 진짜 약간은 사이비 종교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성경도 읽어 보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냥 노래 부르고 설교 듣고 토스트 먹고 왔다. 참, 동기들은 몽쉘 먹고 싶었는데 토스트 줬다고 불평하는 애들도 있었다. 배가 불렀다. 여하튼 이번 주 주말은 '불교 견학'으로 정했다.


ㆍ 생각해 보니 해군, 좋은 것 같다. 육ㆍ공군과는 달리 병이 직접 군 장비를 타면서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참수리 고속정과 같은 배를 타게 된다면 엄청 힘들긴 하지만 큰 배를 탈 경우에는 무료로 세계 여행이나 소말리아 파병 등 잘만 활용한다면 인생의 좋은 밑거름이 될 것 같다. '화방사'도 물론 좋긴 하지만, 비전이 없다는 부분은 약간 아쉽다.


ㆍ 여기는 11월에도 모기가 다닌다. 겨울에 모기 물리니 기분이 나쁘다. 모기도 군인을 알아 보나보다.




입대) D+45 2014.10.31. (금)


ㆍ 벌써 11월의 초로 달려간다. 돌이켜 보면 생각보다는 빨리 간 듯하다. 들어올 때는 약간 선선했는데, 이제는 단풍도 들고 바람도 꽤 매섭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ㆍ 비 오는데 구보했다. 비 맞으며 뛰는 건 참 오랜만이다.




입대) D+49 2014.11. 3. (목)


ㆍ 이번 주도 저번 주와 같이 영내 면회를 실시했다. 면회하는 인원의 테이블이 모자라 P.X. 도 못 가는 우리가 직접 테이블을 날랐다. 치킨을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동기를 보니 자괴감이 들었다. 서러웠다.


ㆍ 종교 활동으로 불교에 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영화만 줄곧 보다 왔다. 종교활동 끝나고 몽쉘 5개 먹었다. 몽쉘을 질리도록 먹은 건 처음이다.


ㆍ 빨리 외박 나가고 싶다. 군대에서 썼던 칼럼도 게시하고 싶고 진짜 사나이 '해군 편', 얼마 전에 시작했다는 더 지니어스 '블랙 가넷', 한국시리즈도 보고 싶고 재호랑 술 한잔하면서 회포를 풀고 싶고, 엄마가 해준

갈비를 먹고 싶고, 집에 오는 길에 닭강정, 떡을 사외 TV를 보며 먹고 싶고. 느끼한 핫도그를 질리도록 먹고

싶고, 영화 '라붐' 속 소피 마르소를 보고 싶고, 집에 쌓여 있을 음료와 과자를 배부르도록 먹고 싶고, 마크 드웨인의 'SEE'와 브라이언 크레인의 'Andante Cantabile'를 듣고 싶고 그동안 마음 졸였을 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리고 싶다.




입대) D+50 2014.11. 4. (화)


ㆍ 시험 점수 80점이 안 되어 벌칙으로 'Jump Squrt'를 했다. 생각보다는 별로 힘이 들진 않았는데 동기들은 죽을라 했다.


ㆍ 갑판 당직을 섰다. 피곤하다. 후유증이 크다. 같이 당직 섰던 하사가 계속 무언가를 먹이더라. 새콤달콤, 곰돌이 젤리. 그러면서 계속 자기 주변의 여자 자랑을 했다.




입대) D+51 2014.11. 5. (수)


ㆍ 군대 와서 얻은 것이 있다면, 처음에 비해 글씨가 약간 예뻐진 것 같다. 지금 글씨체는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으니까 좋다.


ㆍ 같은 동기생인 정환이 형의 과거를 들었다. 약 3,500만 원을 꽃뱀에게 물렸다는데, 그 기분이 어떨까 도저히 상상이 안 되었다. 내가 본인이었다면 어땠을까.


ㆍ 군수 정산 평가 시험을 봤다. 다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험지를 받으니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라. 결국 시험은 망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70점을 불러주셨다. 감사해서 조수님께 '조지아 커피' 한 잔 사 드렸다. 꼴찌이긴 하지만, 살만한 세상이다.




입대) D+52 2014.11. 6. (목)


ㆍ 날씨가 좋다. 포근해서 아침 구보를 해도 상쾌하고 좋았다.


ㆍ 아침부터 총괄 평가를 쳤다. 사실 큰 걱정도 없었고 그렇다 할 준비도 안 했다. 그런데 시험 시작 후 정확히 15분 만에 모든 문제를 풀어내었다. (50개) 그렇게 답안을 냈고, 보란 듯이 성적 1등을 차지했다. 기분 좋았다.

드디어 수료다.




입대) D+57 2014.11.11. (화)


ㆍ 기술 행정 학교 수료식이 끝나고 꿀맛 같은 2박 3일 휴가를 다녀왔다. 가족과 대부분 시간을 보내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ㆍ 수능을 사흘 앞둔 현지를 만났다. 초콜릿만 전해주고 헤어졌는데, 아쉬웠다. 수능 잘 봤으면 좋겠다.


ㆍ 자대 배치받고 KTX 타고선 서울로 올라왔다. 진해 근처의 다른 부대로 발령받은 동기들은 부대에서 차량을 제공해 주어서 다른 부대 차량을 타고 이동했는데, 서울이나 대전 등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대원들에게는 기차역에서 KTX를 타고 자대로 알아서 이동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번에 우리 부대로 발령 난 동기는 나 포함해서 3명이었고, 우리는 행정보급관님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만 받아서 서울역으로 향했다.


ㆍ 한참을 달려 서울역에 도착하니 육군 전투복을 입은 원사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부대에서 제공해 준 작은 차에 가져온 짐을 모두 싣고 부대로 출발했다. 분명히 서울에 있는 부대라고 해서 나는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있는 건물에서 근무할 줄 알았는데 차량은 점점 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산 중턱에 우리를 내려주셨다. 부대의 위치가 강남에 있긴 했는데 강남 산 위에 이렇게 군부대가 있을지 몰랐다. 원사님은 우리를 산 중턱에 내려주시며 이곳이 서울의 마지막 Green belt라고 하셨다.


ㆍ 나는 이렇게 상경했다. 근데 여기가 서울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하긴, 군대에 갇혀 있으니 서울이 무슨 소용인가. 이곳은 원래 육군만 쓰던 부대였는데 최근에 육해공 통합부대로 신설되면서 해공군을 처음 전입받기 시작한다고 했다. 우리는 자대에 이동할 때 해군 정복을 입고 이동했는데, 육군 선임들은 우리 복장을 엄청 신기하게 바라보셨다. 선임들도 모두 육군, 간부들도 거의 다 육군이었다. 여태까지 해군식으로 교육받은 것도 다시 육군식으로 바꿔야 된다고 하셨다. 경례 방법부터 시작해서 육군 군가, 육군 문화와 상관에 대한 태도 등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어쨌든 여기는 신설부대이다 보니 어찌 보면 해군으로서는 왕고참이다. 군번줄 자체는 풀려도 너무 풀린듯하다. 게다가 행정병이니 순탄한 군 생활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입대) D+61 2014.11.15. (토)


ㆍ 덜덜 떨면서 사격을 했다. PRI를 했는데 100사로 (무릎 쏴), 200사로 (엎드려 쏴) 할 때마다 몸이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새로 받은 전투화도 사이즈가 약간 남아서 발뒤축이 너무 아팠다. 고로, 머리ㆍ어깨ㆍ무릎ㆍ발까지 전신이 다 아팠다. 분기에 한 번씩 사격한다는데, 끔찍하다.


ㆍ 그리고 K-1 소총은 소음이 꽤 커서 귀마개를 끼고 쏘는데, 귀마개를 끼니 간부들 목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잘 못 들었습니다!"를 연발하느라 고생했다.


ㆍ 국군 부대라 육군 체제를 따르는 우리 부대. 그래서 장ㆍ단점이 너무 뚜렷하다. 생활이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다.


ㆍ 이틀 전 수능 시험이 있었다. 내 주위의 모든 입시생들은 잘했을까?




입대) D+63 2014.11.17. (월)


ㆍ 자대에서 첫 주말을 보냈다. 과업이 없으니 그냥 TV 보고 자는 게 일이다. 진짜 TV 보고 사지방 갔다 잠만 잤다. 군대의 주말은 그래도 좀 할만하다.


ㆍ 천주교 가서 미사 봤다. 오랜만에 미사도 보고 좋았다. 특히 공군 15 비행장에서 운영하는 '착한 카페'의 와플 맛은 진심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맛있었다.




입대) D+64 2014.11.18. (화)


ㆍ 서럽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방귀를 뀌었는데 선임에게 매너 없다 혼났다. 어떻게 보면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놈인 것 같다. '군대'라는 곳에 와서 타인과 이야기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지레 겁을 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멀어질까 봐 다가가기도 힘들다. 그저, 이렇게 군 생활이 끝나갈까?


ㆍ 근무도 힘들다. 해야 할 장구도 너무 많고, 특히 안경 쓰면 귀 쪽이 너무 아프다 그렇다고 안경을 벗자니 잘 안 보인다. LASIK 수술하고 싶다.




입대) D+70 2014.11.24. (월)


ㆍ 오늘부로 신병 보호기간이 끝난다. 하루는 빨리 가는 것 같은데, 일주일은 더디게, 1년은 더욱 더디게 갈 것 같다. 아직 군 생활의 10%밖에 하지 않았다니, 끔찍하다.


ㆍ 명목상은 합동부대지만 결론적으로 육군 부대라 그런지 훈련이 꽤나 많다. 나는 해군이라 군생활 중에 위장크림 바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 찍어 발랐다. 위장크림 냄새가 너무 독해서 계속 토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해군이라 각개전투나 PRI는 안 할 것 같았는데, 전부 다 하게 생겼다. 슬프다.


ㆍ 오늘 국군 수도병원에 갔다 왔다. 군대 오고 병이 꽤나 많이 생겼다. 특히 발바닥에 무언가가 계속 난다. 약을 받아 왔으니, 꾸준히 발라야겠다. 하혈도 계속 있어서 약을 한 움큼 받아 왔다. 진짜 병자가 된 듯하다.




입대) D+72 2014.11.26. (수)


ㆍ 마음은 계속 공부에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 쉬어야 곧 있을 과업에 지장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해 나가야겠다.


ㆍ 각개전투, 열심히 기어 다니고 시계를 보니 흠집이 진창 나있다.




입대) D+80 2014.12. 4. (목)


ㆍ 12월이 되자마자 미친듯한 추위가 갑자기 찾아왔다. 갑자기 영하로 날씨가 떨어졌기 때문에 B형 근무복을 입기 시작했다. 생활은 점점 할만해진다. 솔직히 이제 욕먹는 것도 조금 익숙하고. 친한 사람도 생기고 무엇보다도 멍하게 TV 보는 게 다 이긴 하지만 개인 시간이 많아 편하다.

시간도 점점 빨리 가는 것 같다. 행정병이라 할 일도 없으면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보면 개중에 재미있는 글들도 많고 읽다 보면 시간도 빨리 간다. 근무도 CCTV 근무를 선다면 진짜 시간 많아질 것 같다. 마냥 힘들 줄로만 알았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ㆍ 와서 TV도 많이 보고 영화도 많이 본다. 영화 감상문이나, 쓰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귀찮아서 잘 안된다. 귀찮은 게 병이다. 칼럼도 쓰고 싶은 게 가득한데 생각만 잔뜩 실천은 잘 못하겠다.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ㆍ 감사 일기를 쓰고 싶다. 일상에서 감사할 줄 아는 현명한 청춘이 되고 싶다.


ㆍ 행보관님이 말씀을 참 잘하신다. 솔직히 나 정도면 인생에 대한 Plan이 어느 정도 있는 줄 알았는데, 더 깊이 더 자세히 고민해 보아야겠다.




입대) D+90 2014.12.14. (일)


ㆍ 군 생활이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선임들에게 깨지는 것도 어느 정도 일상이 되어 웬만한 큰 잘못을 하지 않는 한 멘털이 아프지도 않다. 군대 가면 사람 된다는 말이, 인내심을 기른다는 뜻일까. 여하튼 정신적으로 꽤 단단해진 것 같다.


ㆍ 이왕 군대 온 이상 성격을 조금 더 바꿔야겠다. 조용하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고 싶다.


ㆍ 위병소 근무를 섰다. 낮이라 사람도 없고 별로 춥지도 않다. 빨리 CCTV 경계근무 서고 싶다.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다.


ㆍ 조금 끔찍하다. 벌써 100일 가까이 되었다는 게. 100이라는 숫자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닌데, 700이라는 숫자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해 보인다. 진짜, 앞이 안 보인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긴 하는데, 무척이나 더디게 흘러가는 것? 앞으로 남은 군생활이 너무나도 광활하다는 것이 어렴풋이 짐작 간다.


ㆍ 생각할수록 군대 일찍 오길 잘한 것 같다. 만약 입영도 잘 안되었을 경우에 오기 전부터 스트레스를 앓았을 것 아닌가? 또 22살, 진짜 달려야 할 시기에는 달릴 수 있으니 제대 후의 삶을 위해 더욱 미리미리 준비해야겠다.


ㆍ 행정 계원은 CCTV 경계 근무를 설 수도 있다. 2시간 근무에 매주 평균 9회를 선다. 한 달이면 72시간, 3일이다. 1년이면 36일, 2년이면 무려 72일이라는 어마한 날짜를 CCTV를 보며 앉아 있어야 한다. 72일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약간의 의문이 든다.




입대) D+91 2014.12.15. (월)


ㆍ 눈이 펑펑 온다. 진짜 눈이 비 내리듯 오는 것을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위병소 근무를 서다가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입을 벌리면 입안으로 슉슉 들어왔다. 우박 맞듯이 눈을 맞은 것도 처음이다. 살짝만 얼어 있는 비를 생살로 받아 낼 때면 얼굴이 따끔따끔하다.


ㆍ 그나저나 눈이 많이 오니까 자연스레 제설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군대 와서 빗질하는 실력이 꽤나 늘었다. 빗질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정작 나 자신은 청결해지지 않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국토 대청결의 날'이라고 해서 군인 아파트를 청소했는데, 군인이니까 거리를 청소한다는 사실이 당연하기도 하면서도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다. 여하튼 청소라곤 책상 위 먼지를 떨어내는 게 다였던 나인데, 이렇게 청소를 많이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ㆍ 기록이 남는 것 같다. 여태까지 썼던 병영 일기들을 꼭 블로그에 남겨놓아야지. 현재의 이 감정을,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꼭 회상할 수 있기를.




입대) D+94 2014.12.18. (수)


ㆍ 이등병의 날 행사를 했다. 30년 짬밥의 주임원사님이 해 주신 스펙터클한 군 생활 이야기. 군 생활 중에 시신을 3구나 보았고, 부상자를 수없이 많이 보았다고 하셨는데 사람 다치는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웃으면서 하시길래 깜짝 놀랐다.

여하튼 버스 타고 영내도 한 바퀴 돌고 교회에 가서 목사님에게 인성 검사도 받았다. 계중에 그림 검사도 했는데, 내 그림을 본 동기들은 내가 정신병이 있는 게 분명하단다.

행사가 끝나고 고기도 먹었는데, 오랜만에 고기 구워 먹어서 좋았다. 거의 레어로 먹은 것 같은데, 옆에 민준이가 하얀 부분이 없어질 때까지 바싹 익혀 먹어서 뭔가 민준이 거를 뺏어 먹는 느낌이 들었다. 끝나고 교회에 가서 도넛도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은 도넛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목사님이 온 김에 예배까지 드리고 가라 하셨지만, 그냥 막사 와서 쉬었다.


ㆍ 눈이 얼어붙은 채로 굳어서 그 얼음 깨느라 식겁했다. 결국 염화칼슘 뿌리니 사르르 녹았지만, 여하튼 중대장님이 내 삽질, 빗자루질이 마음에 안 드시나 보다.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셨다.


ㆍ 중대장님 노트 밖 포스트지에 '특히 권기윤, 경례 불량'이라고 적혀있다.




입대) D+100 2014.12.24. (수)


ㆍ 그토록 기대했던, 첫 CCTV 근무이다. 생각과는 달리 당직사령ㆍ당직병 모두 안 자고 있다.


ㆍ 오늘 오후 CCTV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데 당직 사령님이 갑자기 부르시더니 치킨을 먹으라고 주셨다. 이유인즉슨 대대 간부 회식이 있는 오늘, 당직이 있어서 회식에 참여 못 하는 당직 사령을 위해 치킨을 2마리 사서 당직사령님께 드렸나 보다. 그 치킨을 먹을 때 우연히 내가 CCTV 근무를 서고 있어서 같이 먹었다. NSC 치킨 이후로 이렇게 '튀긴' 치킨은 세 달 만에 처음 먹는 것 같다. 오랜만에 먹어서 너무나도 맛있었다.


ㆍ면회장 청소를 하면 온갖 음식물 쓰레기가 다 나온다. 대표적으로 치킨부터 시작해서 김밥, 도넛, 초밥 등. 개중에 햄버거 같은 음식들은 P.X. 에서 사 먹을 수도 있긴 한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져 있으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입대) D+101 2014.12.25. (목)


ㆍ 군대에서 맞는 첫 성탄절. 나는 교회에 와 있다. 어제는 성당, 오늘은 교회. 정신이 성스러워지는 듯하다. 그래도 식복은 넘친다. 성당에서 음식과 선물까지 잔뜩 받고. 교회에서 주는 선물도 받았다. 입이라도 즐거운 성탄절이다.


ㆍ 어렴풋이 작년 이맘때 즈음이 생각난다. 인희 아버지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신 게 딱 작년 이맘때쯤인데, 무척이나 외로웠던 성탄절을 올해도 또 보내고 있구나. 내년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니 참 암울하다.


ㆍ 그래도 어제 성탄 예술제는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다. 중령 대령이 기저귀 차고 엉덩이 흔드는 것을 또 언제 보겠는가. 아가들이 하는 공연도 귀엽고 좋았다. 그리고 그중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이 와서 공연을 했다. 상큼한 그녀들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입대) D+107 2014.12.31. (수)


ㆍ 2014년의 마지막 밤, 2015년까지 1시간이 남아 있는 지금, 나는 CCTV 경계 근무에 임하고 있다. 이 시간만 아니길 내심 바랐었는데, 근무를 서면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윤, 9월에 입대해서 3달가량이나 모르는 이들에게 깨지느라 고생했고, 앞으로 1년 8개월의 군 생활 더욱 힘내자!


ㆍ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좀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를 좀 더 단련하자.


ㆍ 오늘부로 '일등병'으로 진급을 했다. 군대에 들어온 이후로 맞는 첫 번째 진급이다. 약간은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잘해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걱정이다.


ㆍ 매일 혼나다 보니 내 약점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난 생각보다 '사소한 것'을 잘 못한다.


ㆍ 오광택 상병님이 해ㆍ공군 중에 내 이미지가 제일 안 좋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도 그럴만하지.

내가 여태 저지른 자지레한 일들이 많으니. 느릿느릿 한 성격이 여기서는 큰 문제가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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