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D+914 2016. 9. 1. (일)
ㆍ 전역 후에 학교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대학은 고작 한 학기밖에 다니지 않았고, 전역을 하고 나니 마침 각 대학에서 수시 모집 접수를 하고 있어서 경희대학교, 한양대학교, 인하대학교, 건국대학교, 한양대학교 ERICA Campus 등 내가 원하는 학과로 몇 개의 입학 원서를 제출하려 한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관광학이나 문화콘텐츠 학과이다. 수능 공부를 다시 하기에는 부담이 많이 따라와서, 수능 최저등급 제한이 없는 논술 전형으로 원서를 쓸 계획이다. 글은 꾸준히 써왔고, 글 쓰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고 느낀다. 다시 한번 큰 도전을 해보고자 한다.
ㆍ 군생활을 할 때 옆 자리에서 생활하던 현우는 "유럽에 가보고 싶다"라고 항상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입대 전 모아둔 돈으로 꼭 유럽을 갈 것이라고 말을 했었다. 이전에는 나도 유럽 여행은 언젠가는 꼭 가야지 생각했던 곳인데, 생각해 보니 그 언제가 언제일지 너무나도 막연했었다. 현우도 간다는데, 나도 꼭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다지고, 전역 후 '유럽'이라는 것 딱 하나만 바라보고 생활했다.
유럽 여행을 떠나려면 당연 여행 자금이 필요했다. 이왕 유럽 여행을 갈 것이면 최대한 오랜 기간 머물고 싶었고, 전역 후 다음 학기 복학까지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에, 가능한 여행 자금을 많이 벌어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단기 일자리를 두 개를 구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하나는 Screen으로 운영되는 야구장의 직원이고 다른 하나는 닭튀김 매장의 조리를 맡았다. 야구장에서는 오전 10까지 출근하여 오후 5시까지 근무하였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비품을 채우고, 쓰레기를 비우고, 매장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업무를 맡았다. 야구장 같은 경우에 사실 몸은 굉장히 편했다. 아침 시간부터 야구장을 들리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또 내가 맡은 시간대는 평일 오전이었기에 손님 없이 가만히 가게를 지키고 있으면 되었다. 감사하게도 매장에서 점심 식대는 제공해 주셨고 혼자 근무를 하는 시간이 많았기에 개인 공부를 하고 있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손님이 오셔도 경기를 진행시켜 드리면 약 한 시간 동안 알아서 경기를 즐기시니 노동 강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오후 5시가 되면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바로 닭튀김 매장으로 출근하였다. 닭튀김 매장에서는 내가 직접 요리해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되었다. 요리에 익숙한 것도 아니고, 요리법을 전부 외우고 있어야 했기에 난이도는 꽤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통상 새벽 2시쯤에 퇴근했다. 뜨거운 불을 앞두고 일을 하는 것도, 미끄러운 바닥에서 움직이는 것도, 날카로운 물건이 많은 것도 모두 조금씩 부담이었다. 그렇게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근무하고 나면 하루가 끝이 났다. 그리고 당시에는 다른 학교의 재입학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퇴근하고 나서 잠시 시간을 내어 대합 논술 입시 자료를 보거나 동영상을 보곤 하였다.
입학) D+915 2016. 9. 2. (월)
ㆍ 군대에서 만난 국립국악원 이대원 선생님,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아프리카 땅을 밟을 수 있다기에, 전역 후에 시간 내서 국립국악원으로 한 번 찾아뵈었다. 사실 선생님을 찾아뵐 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수차례 연락을 드렸지만 하루하루 일정이 너무나도 바쁘셔서 조율하고 또 조율한 끝에 겨우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공연장 같은 곳에 데려가 주시더니 대뜸 서울에는 왜 올라왔냐고 물어보셨다. 전역 후에 지인들 만나고 다닌다고 하니 쓸데없는 짓 하고 있다고 하셨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슬쩍 국악을 조금 더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묻지도 않고 광명초등학교로 일요일 열 시까지 나오라고 하신다. 선생님은 매주 초등학교 교사를 상대로 국악 강의를 하고 계신데, 그 강의에 오라는 것이었다. 전날 봉사 동아리 여름산타 MT가 있는데, 가평에서 광명까지 힘들긴 하겠지만 일단 가겠다고 했다.
여름산타 MT에서는 당연히 밤을 새우고 새벽 일찍 광명으로 향하는 ITX 새마을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밤을 새우고 떠나는 길이라 몸이 너무 무거웠다. ITX에서 거의 기절할 듯 잠을 잤고, 광명초에 도착해서도 꾸벅꾸벅 졸았다. 학교에 도착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국악기를 가지고 있는 여성분 한 명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니 어떤 선생님께서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고, 국악을 배우러 왔다고 하니 알아서 안내해 주셨다. 곧이어 선생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오셨다. 이대원 선생님이 소문을 어떻게 내셨는지, 들어오는 분마다 연예인이 어딨냐며 물으며 들어오셨고, 내 얼굴을 보시곤 방긋 웃으셨다. 그러더니 선생님들이 술과 간식 가득 권해주셨다. 처음에는 무언가 싶었다. 곧 이대원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곧이어 3주 이후에 국악 대회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나도 3주 후 그 대회에 나간다고 했다. 그러니 이번 3주 동안 몸을 만들어 놓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북채를 쥐어 주시더니 둥둥둥 계속 치라고 하신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밥 먹을 때까지 3시간 동안 북만 두드렸다. 북은 처음 잡아 보았는데, 북채가 두꺼워서 그런지 손이 자꾸 얼얼하고 물집도 잡힌 것 같아 너무 아팠다. 옆에 있는 선생님이 도와주시기도 했는데, 손이 아파서 정석이고 뭐고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전날 밤에 잠도 잘 못 자서 피곤하기도 하여 꾸벅꾸벅 졸며 북을 쳤다. 첫날부터 조는 학생이었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선생님들도 신경을 많이 써 주시고, 이대원 선생님도 잘 챙겨주셨다. 손이 욱신거리는 자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또 붙이고 하다 보니 내 손에는 반창고 투성이었다. 꽤 오랜 시간 북을 치니 몸도 힘들고 손도 아파 막 소리를 지르며 쳤다. 어차피 수십 명이 치는 북소리가 너무나도 커서 내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약 여섯 시간가량을 북만 두들기고 첫 수업이 끝이 났다. 마침 대회도 임박하여 첫 참석에 회식까지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덜컥 어느 고깃집에 데려가 주셨다. 광명초 주변 어느 고깃집에 들어가서 선생님들과 같이 고기를 먹으며 통성명을 했다. 선생님은 약 20분 정도가 계셨는데, 한 분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 분이었다. 유일한 남자 선생님이라는 중열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2주 후 주말에 경인 교대에서 만나자는 말을 끝으로 모임은 끝났다. 이렇게 이어진 국악 인연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입학) D+923 2016. 9.10. ~ 11. (토) ~ (일)
ㆍ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반딧불이에서 만난 승희에게 연락이 왔다. 승희는 토마토 활동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반딧불이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학교 밖 청소년 활동 주제는 완전히 자유였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예를 들어 타로 카드나 향수 만들기 같은 활동을 청소년 스스로 토의를 통해 고른다. 그렇게 활동이 정해지면 반딧불이는 그 활동을 지원만 하면 된다. 토의를 통해 학생들은 다음 주제로 ‘여행’을 정했고, 전주 한옥마을로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승희도 그렇고, 세은 선생님도 그렇고 여자 활동가들이 좀 있었지만, 남자 활동가는 모두 시간이 안 되기에, 승희는 혹시 내가 괜찮다면 여행에 동행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비용은 모두 지원을 해 준다고 하기에 흔쾌히 수락했고, 오랜만에 반딧불이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목적지는 전주 한옥마을이었다. 전주는 개인적으로도 내게 참 의미가 많은 도시이다. 수능을 치고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전주였기에 고3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한국 철도공사의 내일로 표를 끊어 향했던 곳이 바로 이곳, 전주이다. 전역하고 만난 전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활동가는 승희와 세은 선생님이 오셨는데, 청소년들에게 다들 정말 ‘선생님’처럼 행동했다 수직적인 질서가 있는 관계.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만 인솔 역할을 하는 터라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굉장히 친숙하게 대했고, 청소년들도 나의 그런 태도를 좋아해 줬다. 참 고마웠다.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인솔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전주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대구로 돌아오는 날, 전주에서 마지막 식사로 떡갈비를 먹었다. 맛도 있어서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갑자기 한 여중생이 내 앞에 앉더니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막 하다가 갑자기 휴대전화로 사진첩을 켜더니 내게 보여줬다. 그곳에는 초음파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무슨 사진인가 물으니 멋쩍게 웃으며 본인이 낙태한 아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 발언을 듣는 순간 겉으로는 내색을 안 했지만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이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왜 하는 걸까?’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내가 그래도 이 며칠간 아이들에게 친밀감과 신뢰감을 주었기에 이런 말을 나한테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자기 나름은 나에게 용기 내서 이야기를 했을 텐데,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적극적으로 그녀의 아픔을 공감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혹은 덤덤히 아무 일도 아닌 것인 듯 차분하게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차분하게 그 상황을 공감하며 지금은 상황과 심정은 어떤지 조용하게 물어봤었다. 혹시나 싶어 대화 주제를 재빠르게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렸지만, 사실 놀란 마음은 쉽게 진정이 되지는 않았다.
이 일이 있었던 것 빼고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여행이 끝나고 대구로 돌아와 세은 선생님, 승희와 같이 회식 자리를 가질 때 사실 청소년 중에 한 명이 내게 낙태 사실을 이야기했다고 전달했다. 하지만 의외로 청소년 전문가인 세은 선생님은 덤덤하게 반응했다. 대개 청소년들이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신뢰가 쌓여서 일수도 있지만, 본인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이야기했다. 순간적으로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런 주제를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고 크게 마음에 담아놓지 말라고 하셨다. 일단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다. 참, 여러모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입학) D+925 2016. 9.12. (월)
<지진>
ㆍ 집에서 가만히 쉬고 있는데, 갑자기 집에서 떨림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무언가를 잘 못 느꼈나 싶어 가만히 있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더욱 심한 진동이 온 집안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에 균열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리병이 떨리는 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충격파는 꽤 강했고, 식탁 바닥에서 머리를 잠시 보호하다가 떨림이 잦아들자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대피하였다. 학교 운동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경주 어느 지역의 옷 매장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모두 깨져 버리기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진파를 다들 처음 느껴본 터라 다들 충격이 커 보였다. 지진은 약 밤 8시쯤에 일어났기에 바로 대피소로 뛰어나갔지만, 다시 집으로 안 들어갈 수 없기에 밤 10시가 되어 다시 귀가했다. 처음 느껴본 지진은 느낌이 참 이상했다.
ㆍ 최근에 가족들과 커다란 보문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보문호반 달빛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달빛을 받으며 오랜 시간 산책하는 것도 좋았지만, 산책이 끝나고 B-BOY 행사와 같이 경품 추첨을 했는데 운 좋게 경품에 당첨되어 경주지역 농산품을 잔뜩 받았다. 건강과 행복을 두루 챙길 수 있었던 좋은 행사였다.
입학) D+938 2016. 9.25. (일)
ㆍ 국악 대회를 앞두고 웃다리 농악 연습 동영상을 열심히 챙겨 보아야지 다짐을 했지만, 오전 10시 출근에 새벽 2시 퇴근, 가끔은 새벽 5시까지 논술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살인적인 일정에 국악에는 잠시 소홀했던 것 같다. 영상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완벽히 숙지는 못 하고 대회 전 마지막 연습을 하고 경인 교육대학교 경인 캠퍼스로 향했다.
오후 4시가 연습 시작이었는데 4시까지 안양에 닿으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해서 새벽 2시 퇴근 후 2~3시간만 자고 바로 서울로 출발했다. 일단 버스라 자리가 너무 불편했지만, 안양으로 닿는 4시간 동안 버스에서 계속 졸았다. 안양역에 도착하니 오후 1시 부근이라 밥을 먹고 주변 카페에서 논술 강의를 보는 둥 자는 둥 하다가 3시 30분 즈음이 되어 경인 교대에 도착했다. 생각 외로 선생님 4분이 더 계셨다. 강경민 선생님께 칠채와 마당 삼채 등 북의 세부적인 부분을 잠시 배우고 연습을 시작했다. 그래도 동영상을 봐 놓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랜만에 북채를 잡으니 손도 약간 쓸리고 물집도 잡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북을 두드리는 노하우를 조금 터득했기 때문인지 팔이나 손목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후로 선생님들이 한 분씩 더 들어오셨는데, 나중에는 사람이 정말 가득 차서 국악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정말 웅장했다. 국악은 참 묘한 매력이 있다. 베이스와 멜로디가 나뉘면서 어우러지고 치고 나갈 땐 치고 나가고 빠질 땐 빠지고 하는, 배려하는 가락 속에 어울리는 리듬이 나오는 게 재미있고 신기하다. 어쨌든 대 여섯 시간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 그래도 얼추 리듬감도 다 익혔고, 가락도 다 외운 듯하다.
4시에 시작한 연습은 밤 10시가 다 되어 끝이 났다. 끝나고 안중열 선생님 차를 타고 선생님 댁으로 갔다. 전날 미리 하루 신세 질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선생님께서는 집 청소까지 싹 다 해놓아 주셨다. 저녁을 못 먹었기에 치킨도 한 마리 먹고, 맥주도 네 캔이나 사 와서 같이 마셨다. 그러면서 군대 이야기부터 우리 국악 동아리, 현재 연애 이야기 등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맥주를 마시고, 선생님께 타로 카드를 봐 드리고 하다가 새벽 2시 즈음이 되어 잠들었다.
우리는 분명 8시 즈음에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일어나니 아홉 시 반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연습을 위해 다시 경인교대 안양 캠퍼스에 갔다. 곧이어 이대원 선생님께서 오시고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었다. 어제 대부분 합을 맞춰 놓았기 때문에 크게 손댈 것은 없다고 하셨다. 합을 맞추며 북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니 묘하게 짜인 음악에 더 집중되기도 하고, 세게 북을 두드리면 스트레스도 확 풀리곤 한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보니 어느덧 일곱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집에 가려고 가는 길에 효정 선생님이 말도 없이 표를 사서 내게 선물해 주셨다. 참, 감사하다. 이번 주 토요일, 수안보에서의 대회는 어떨까.
입학) D+944 2016.10. 1. (토)
ㆍ 국악수업 세 번째 만에 국악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대회는 일요일 오전 충청북도 수안보에서 개최되어서 전날 합숙하며 연습을 하기로 했다. 경주에서 수안보로 닿는 차편이 아침 9시와 오후 2시가 끝이라, 지금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야구장 오픈을 도와드리고 조금 일찍 퇴근해서 수안보로 가는 차에 오르기로 했다.
수안보로 출발하는 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비 내리는 창가를 바라보며 버스에 올랐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옆에 앉으신 분이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셨다. 당연히 모른다고 말씀드리니 여기저기 물어보시더니 이곳이 구미인 것을 알고 내리셨다. 곧이어 버스에 승객이 타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유나 선생님이 계셨다. 유나 선생님과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양해를 구하고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유나 선생님이 갑자기 여기 수안보라며, 내리라고 해서 겨우 잠이 깨어 수안보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수안보 버스 정류장은 알고 보아도 모르겠더라. 슈퍼 하나가 서 있었는데, 그곳이 정류장이었다. 주위에 지금 장을 보고 있다는 선발대와 합류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로 갔고 장을 본 뒤 우리가 묵을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꽤나 큰 편이었다. 거실 하나와 큰 방 하나, 작은 방 두 개로 꽤 커다란 크기의 펜션이었다. 짐을 풀고, 장을 봐 온 고기를 구워 먹었다. 고기를 먹으며 선생님들과 맥주 한 잔씩 했다. 술도 한 잔씩 하며 웃고 놀다가 갑자기 들어와 국악 연습도 맞춰보고선 또 술을 마셨다. 밤에는 미리 가지고 간 타로카드로 선생님들께 타로 점을 조금 봐 드리다가, 다들 자러 방으로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우정 선생님과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 빠져들었다.
세 시간쯤 자고 일어나니 얼추 다들 깨어 있으셨다. 나도 일어나서 아침 식사 준비하는 것을 도와 드리고, 아침을 먹고 씻고 난 후 곧 있을 순번 추첨을 앞두고 연습을 시작하였다. 참 국악이라는 것이 배우기는 힘든데, 맛을 알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 대회 바로 전 연습이라 곡의 완성도가 아주 높았고, 나는 북을 치고 있었지만 정말 북소리, 장구소리, 쇳소리, 징소리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어느 정도 연습이 끝나고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처음으로 국악 무대 의상을 입어 보았는데, 등 뒤로 줄도 매고, 머리도 매만지고 하는 과정이 참 신기했다. 배에는 ‘배깍지’라는 것을 넣어서 옷매무새의 각을 잡았는데, 배깍지와 함께 몸을 꽉 조이니 숨 쉬기도 조금 힘들었다.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고 다른 차례의 무대를 구경했다. 무대로 가는 길에 골목골목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연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가에 둘러앉아 연습하고 있는 조, 들판에서 연습하고 있는 조 등 그날의 수안보는 곳곳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대회 장소에 도착해서 대회 분위기를 조금 살피고, 다른 순서의 공연을 조금 구경했다. 합도 잘 맞고, 정말 잘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잠시 구경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 연습을 한 후에 본격적인 연주를 하러 대회장으로 향했다. 모든 짐을 내리고 우리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래도 몇 번 무대에 올라봤다고 긴장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중에 도지사님이 오셔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무대에 들어섰다. 막상 무대에 올라서도 떨리지는 않았다. 외려 심사위원들에게 긴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억지웃음을 짓느라 혼났다. 여태 준비한 10분간의 공연이 순식간에 마무리되고 무대를 빠져나왔다.
같이 공연한 선생님들과 함께 주변 식당에 저녁 식사를 하러 들어갔는데 독특하게도 꿩만두를 팔기에 먹어보았다. 그리고 시상식을 기다리며 주변 목욕탕에서 씻고 시상식을 기다리는데 축하 공연에서 상모와 버나, 열두 발까지 온갖 재미있는 구성을 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시상식에 왔는데 주최 측에서 준비한 상보다 참가한 인원이 적어 참여한 모든 조에게 상을 준다고 했다. 입선부터 대상까지 있었는데 내가 속한 전국 교사 사물놀이 연합 ‘도개’는 동상을 수상했다. 살면서 내가 풍물로 상을 받는 날이 오는구나 싶었다. 수상의 설렘을 안고 이번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끝나고 나는 다음날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논술 시험이 있어서 서울로 올라갔어야 했다. 내 사정을 들은 이진선 선생님이 수안보에서 서울로 직접 데려다주시고, 숙소가 있는지 물으시고는 본인 집에서 하루를 재워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ㆍ 다음날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논술우수자 전형으로 지원해서 시험을 보러 갔다. 소설과 시를 세 편을 주고 세 글 사이의 논평을 쓰는 것이 주제였다. 논술이라는 것이 정답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다. 그래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쓰려고 노력했다. 결과는 많이 아쉽다.
입학) D+955 2016.10.12. (수)
ㆍ 전역을 기점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복학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으니 남은 시간에 알바를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유럽 여행에 보탤 거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새로운 학교로의 진학을 꿈꾸고 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2개 정도 시작했다. 원래 기회가 된다면 경주월드 놀이공원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아침부터 밤까지 꽉 채워서 일하고 싶었기에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이렇게 단기 일자리를 구했다. 오전의 일터는 스크린 야구장이다. 아침 10시 30분까지 출근하여 가게 오픈과 매장 청소를 하고, 전날 밤에 팔린 주류를 다시 채워 놓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등의 장사 준비를 전체적으로 하면 되었다. 사실 오전부터 스크린 야구장을 찾는 손님은 거의 없다. 동네 학생들 혹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오전에 여가 시간을 보내러 오는 노동자들, 가끔 커플들이 잠시 데이트를 하러 오는 것 말고는 오전에는 한가했다. 그래서 오전에 매장 정리를 하고 잠시 쉬고 있으면 매장을 관리하시는 사모님이 오시고, 같이 점심을 먹은 뒤 6시까지 같이 매장을 지키면 되었다.
그리고 6시가 되면 퇴근해서 곧바로 근처에 있는 닭튀김 가게로 출근했다. 가게를 오픈하고, 청소하고, 기름을 데우고 식자재를 준비하는 등 본격적으로 장사 준비를 하면 되었다. 일하다 보면 7시 즈음이 되어 사장님이 오셔서 일을 조금 도와주시고, 부족한 식자재를 채워주시고선 퇴근하신다. 그리고 나는 남아서 마저 가게 손님들을 보내고 마감까지 하면 하루의 일과는 끝이다. 아무래도 영세한 요리점이다 보니 일하며 내가 요기, 서빙, 청소, 계산까지 모두 맡아서 해야 했다. 그리고 거의 새벽 1~2시쯤 들어와 EBS에서 제공하는 입시 논술 강의를 수강했다. 그리고 잠시 잠에 들고선 또 급하게 일어나 다음날 출근길에 나섰다. 주말이 다가올 때면 수도권으로 올라가 국악을 배웠다. 일단 열심히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이다.
ㆍ 영세한 업장이다 보니 야간 수당이 따로 적용이 되지 않고, 사실 이렇게 밤에 자는 시간 빼고 하루종일 일을 하는데 손에 200만 원이 벌리지는 않았다. 200만 원의 벽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느껴진다. 하지만 뭐랄까. 군대에서 2년간 착실히 저축했다면 근 200만 원의 돈을 저축할 수 있었을 텐데, 사회에서 1달만 일하면 그 가치와 똑같다는 점을 느끼고선 조금 씁쓸함을 느꼈다. 유럽 여행까지 약 3달 남았으니 500만 원에서 600만 원가량을 저축하는 것이 일단 지금의 목표이다.
입학) D+979 2016.11. 5. (토)
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모님이 가끔 원두를 갈아 직접 커피를 내려주셨다. 처음에는 직접 내려먹는 커피가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직접 내린 커피는 맛도 좋아 점점 커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모님이 내려주시는 몇 개의 커피를 마셔보고선 바로 바리스타 자격증 응시 등록을 했다. 자격증 준비를 위해서 관련 책을 하나 사서 몇 번 읽어보고선 시험장에 갔는데 막상 시험장에 도착하니 나를 제외한 모든 수험생들이 같은 책을 보면서 공부하고 있었다. 무언가 정해진 시험 도서가 있나 보다. 황당했다.
그렇게 문제지를 받았는데 책에서 보지도 못한, 듣도 보도 못한 개념과 문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결국 필기시험은 몇 문제 풀어보지도 못하고 정말 처참하게 탈락했다. 커피는 아마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입학) D+986 2016.11.12. ~ 15. (토) ~ (화)
ㆍ 이전에 인솔자로 따라갔었던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반딧불이‘에서 다시 한번 여행을 추진하고 있는데, 같이 참여하며 청소년들을 인솔해 줄 수 있는지 세은 선생님이 여쭤보셨다. 일정 조절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기에 수락했고, 나는 반딧불이 덕에 오랜만에 다시 제주로 향하게 되었다. 일정에 늦게 참여하는 청소년이 있어서, 후발주자로 그 친구와 같이 제주로 향하게 되었다.
이전 전주 여행에서 이미 얼굴을 본 친구들도 있었고, 새로이 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세은 선생님이 미리 준비해 주신 여행 일정을 따라갔다. 서귀포의 ‘이중섭 거리’와 정방폭포를 보고, 제주도의 맛있는 음식인 고기국수를 먹어보고, 올레길을 걸어보는 등 다양한 체험거리를 준비해 주셨다. 하지만 여행길에 조금 문제가 생겼다. 이중섭 거리를 구경하고 정방폭로를 구경하고 있을 때쯤 한 청소년이 내게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한 청소년이 귀금속 가게에서 장신구를 하나 훔치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로서는 참 난처한 이야기였다. 나는 담당자가 아니라 잠시 업무를 도와주는 도우미의 입장이었고,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기에 무턱대로 잘못을 추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나는 담당 선생님들께 이 사안에 대해서 공유했고, 선생님께서 약간의 추궁을 한 결과 도난 사건은 사실로 드러났다. 결국 선생님께서는 그 물건을 들고 가게로 찾아가 사과의 말씀을 전했고, 썩 유쾌하지 못하게 하루의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여행인데, 청소년이 뭉쳐있는 특성상 온갖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그래서 여행 첫날 우리들끼리의 규칙을 항상 만들어 놓는다. 예를 들면 술 마시지 않기, 남자 방이나 여자 방에서 혼숙하지 않기, 상대를 비방하지 말기 등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들이지만, 다시 한번 되새길 겸 규칙을 정해놓는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 참 난감하다. 나를 비롯한 우리 조직은 선생님도 아니고, 부모의 역할을 할 수도 없기에 이런 일이 있을 때 훈육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싶을 때가 많다. 조용히 타이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그마저도 사실은 쉽지 않은 입장이다.
이 일이 있었던 날 밤, 모두가 숙소에 모여 자기 전에 이 사실에 대해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왔으니 가볍게 타이르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은 여행도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청소년들과 함께 올레길을 걸었고, 제주의 곳곳을 탐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 좋은 듯했다. 하지만 대구로 돌아가기 전 또 사건이 하나 더 터져버리고 말았다. 너무 정해진 여행 일정에만 따르다 보면 청소년도 당연히 지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3박 4일 일정 중 약 2시간 정도를 자유시간을 부여했다. 우리는 청소년들이 자율적으로 휴식을 취하거나, 주변을 탐방하고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잠시 동안 청소년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음주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고, 세은 선생님은 분노하셨다. 우리끼리 정한 규칙은 온데간데없고, 결국 이 짧은 시간 동안 일탈 행위를 하고 말았으니. 참 답답했다. 어떻게든 좋게 여행을 끝내고 싶었는데. 결국 그날 밤도 모두 모여 선생님의 심경을 모두 토로했고, 별로 유쾌하지 못하게 하루를 끝나게 되었다. 참 아쉬운 부분이 많다. 제주 여행에서 참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지만, 그러지 못한 추억도 많아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번 여행이었다.
입학) D+990 2016.11.16. (수)
ㆍ 유럽 여행의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사실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다. 일부러 해외여행을 피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갈 기회도 딱히 없었기도 했다. 해외에 그렇게 흥미가 있지도 않았고. 그런데 막상 눈앞에 다가온 유럽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살며 처음 밟는 이국 땅이 유럽이라, 당최 감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기에 자연스럽게 ‘패키지 여행’ 상품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반 자유여행’이라는 주제를 가진 여행이 있는데, 반 자유여행이란 일정과 교통, 숙소는 미리 정해져 있지만 참여자들은 그저 그 일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다만 여타 패키지 여행처럼 미리 짜인 일정에 모두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한 도시에 도착하면 여행은 자유롭게 하되 주어진 시간에 맞추어 지정된 숙소로 도착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가령, 프랑스 파리를 여행한다고 하면 사전에 여행사에서 파리 시내의 숙소는 예약해 주었고 우리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정해진 시간인 밤 10시에 숙소 내에 도착하면 되었다. 그리고 미리 예약된 교통편을 같이 타고 같이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일단 여행 자유도가 높다는 점과, 각 국가의 주요 도시들을 들린다는 점, 2030 또래들과 같이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점도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해당 프로그램에 신청했는데 신청서에 간단한 자기소개서 등을 요구하더라. 내가 내 비용을 들여서 여행사를 통해 여행 간다는데 자기소개서를 쓰고, 또 거기에 합격을 해야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웃긴 현실이었다. 사실 사측도 결국은 요식행위(要式行爲)겠지만, 여행을 가는 것에도 무언가에 합격 통보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 웃기고도 슬펐다. 곧이어 나는 Icoos라는 단체의 유럽드리머즈 60기에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ㆍ그렇게 합격해서 참가비를 내려고 하니 현금 결제를 해도 현금 영수증 처리가 되지 않는다기에 카드 결제를 하고 싶다고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서울에 있는 그 여행사에서 내가 살고 있는 경주까지 직접 결제를 받으러 사람이 내려올 거라고 했다. 나는 엄청 놀랐다. 일단 한 기수에 참여하는 인원이 50명에 육박하고, 한 기수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기수가 한꺼번에 진행하는 방식이라 참여자가 꽤 많은 편인데 나 한 명의 카드값을 받기 위해 이렇게 오는 걸까, 나를 찾아온다는 그분은 이런 식으로 전국을 유랑하는 걸까 싶었다. 사실 서울에서 경주까지 당일치기 왕복을 하면, 교통비도 교통비지만 하루를 그냥 도로 위에서 날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나 그 여행사는 인력이 많은 것인가 싶었다.
어찌 되었든 그건 회사의 사정이고, 여행사의 젊은 직원분이 친히 우리 집 앞까지 오시겠다기에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식사라도 한 끼 대접했다. 한창 알바를 하고 있을 때 담당자님께서 우리 매장을 찾아주셨고, 점심시간에 점심 한 끼를 대접해 드린 후 여행비를 결제해 달라고 카드를 내밀었는데 기계가 말썽인 탓에 결제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카드 역시도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처리되지 않았다. 결국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그 담당자님은 경주까지 오셔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식사만 하시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다 있나.
ㆍ 아버지의 생신이라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고구마 케이크를 샀는데 깜짝 엘리베이터에서 케이크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다 찌그러진 케이크로 초를 꼽고 생일잔치를 했다. 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아무렴 어떠랴. 맛만 좋으면 되지.
ㆍ여태껏 가지고 싶었던 DSLR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예전에도 하나 산 것이 있는데, 비 오는 날에 사진기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빗물에 다 젖어버리는 바람에 카메라 안 부품이 다 부식되었는지 더 이상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에 돈을 조금 벌게 된다면 가장 먼저 사고 싶었던 것이 이 카메라인데, 기회가 되어 마음에 드는 카메라를 바로 사버렸다. 작고 예뻐서 마음에 든다.
입학) D+1000 2016.11.26. (토)
ㆍ요즘 세상이 정말 시끄럽다. 시끄러운 이유는 물론 정치적인 것 때문이다. 골자는 현재 대통령이 본인의 권력을 본인 휘하에서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무단으로 조공을 당하듯, 국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정말 폭포같이 쏟아지고 있다. 개중에는 무당의 말을 듣고 국정을 운영했다는 말도 있고. 대통령의 위세를 등에 업고 국민이 모르는 누군가의 딸이 여태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는 기사가 매일같이 쏟아진다. 처음에는 나 역시도 이 소식을 듣고 말이다 되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여러 정황 등을 미루어보아, 모든 것이 점점 진실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사실 모든 국민이 이런 사항에 분노에 쌓여 있는 것 같고, 나 역시도 이런 황당한 국정농단에 한 명의 국민으로서, 또 주권자로서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평화를 상징하는 촛불시위대는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었고, 가장 큰 촛불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와 누나는 이런 시류에 같이 흘러가기 위해 촛불 집회에 참여하러 서울로 향했고,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여 촛불을 보탰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현 상황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여전히 청와대는 대문을 잠그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집회 중간에 가수 양희은 씨가 무대에 올라 ‘아침 이슬’을 불러 주었을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무언가 나도 한 사람의 국민이 되어 나라는 생각하고 걱정하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내 행동이 아주 극적인 변화를 내지는 않겠지만, 변화의 바람에 조금이라도 힘이 실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입학) D+1026 2016.12.22. (월)
ㆍ유럽여행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전역한 지 어언 두 달이 지났다. 밤낮으로 일하고, 국악을 배우거나 논술 시험을 치는 등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유럽여행이었다. 유럽은 물론 해외 자체가 처음이라서, 숙박부터 교통 항공까지 모든 것들이 막막했는데. 'ICOOS'라는 단체에서 자유여행 Package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참여를 하면 교통에 숙박에 항공까지 알아서 예약을 해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단체를 알게 된 후 단박에 신청을 했고 2월 5일부터 2월 28일까지 23박 24일의 여정을 떠나는 아이쿠스 유럽드리머즈 60기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12월 22일 유럽드리머즈 발대식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열린다고 해서 난생처음으로 국회로 향했다. 유럽 여행을 갈 것이라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녔는데, 전국 대학생 인문학 활동에서 만났던 성민이 누나도 같이 대뜸 자기도 가고 싶다고 같이 신청했다. 심지어 같은 조로 배정되어서 함께 발대식에 참석하러 갔다. 연명부에 간단한 사인을 하고, 유럽에서 꼭 하고 싶은 것 등에 대해서 설문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행사 간식으로는 김재규 떡 명장이 만든 떡도 한 상자씩 나누어 주셨다. 떡을 받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사회자분이 나오셔서 설명회를 진행했다.
간단한 놀이를 시작으로 이 행사를 주관, 후원해 주신 정운천 국회의원의 축사가 이어졌다. 축사가 간단히 진행될 줄 알았는데 정운천 국회의원 한 분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세네 분 정도 줄지어 진행이 되어서 약 2시간 동안 축사만 들었다. 진짜, 너무 힘들었다. 약 10분 정도 휴식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유럽여행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약간 아쉬웠던 건 이미 전자 우편으로 날아왔던 유인물과 별 다른 것이 없었다. 미리 읽었던 내용을 다시 복습한다 생각하고 들었다.
내가 참여한 것은 ‘ICOOS’라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Europe Dreamers라는 조직이다. 이 조직은 20개의 50여 명의 학생들이 같이 움직이며,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6명이서 한 조가 되어 움직이고, 성비는 남자 2: 여자 4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도중 두 번 정도 한국을 알리는 행사를 하게 된다. 이 행사를 진행할 때 크게 7개의 조로 나뉘어 행사가 진행된다. 시식, 전시, 한국문화 체험, 전통의상 체험, 독도 홍보, 전통놀이 체험, 공연 이렇게 7개로 나누어지는데 나와 성민 누나는 전시팀을 맡게 되었다. 각 조마다 조별 지원금이 나오는데, 시식조는 약 23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발대식 행사가 끝난 뒤에 조별 모임이 있었는데, 이번 발대식에서 유일한 소득이라면 조원들이 어떤 분들인지에 대해서 미리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행사 이후에 만남의 시간이 조금 짧긴 했는데, 워낙 개성이 뚜렷하신 분들이 우리 조로 배정이 된 것 같아 인상에 강하게 남는다. 약 1개월간 같이 지내게 될 조원들을 보니 쉽지만은 않을 듯한 유럽 여행을 할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았다.
발대식은 밤늦게 끝나서 성민이 누나가 집에 가는 것 보고 나도 집에 가려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는데 가는 길에 경주로 가는 막차가 끊겨버렸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같은 조원중 한 명이 새벽에 대구로 내려간다는 것이 기억났고, 상황을 설명한 끝에 같이 대구로 내려갔다.
입학) D+1028 2016.12.24. (토)
ㆍ원래 잘 안 울리는 핸드폰에 갑자기 단톡방이 하나 생겼다. 연말이니 올해가 가기 전에 수빈이 누나랑 수연이 누나를 포함해서 셋이서 한번 보자고 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때 뭐 하냐는 말이 나왔고 셋 다 애인이 없었기에,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낼 바에는 그냥 셋이 보자고 했다. 그런데 마침 야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낭만홍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님께서, 그날 자기 가게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기에 셋이서 같이 가기로 했다. 파티는 pot luck 파티라고 각자 먹을 음식을 가져와서 같이 나누어 먹는 파티라는데, 마침 핸드폰에 남는 케이크 기프티콘이 하나 있어서 파리바게트 케이크 하나 들고 낭만홍스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연령층이 다양했다. 경주로 여행온 가족, 임신한 아이가 있는 부부, 그냥 무작정 왔다는 예비 신부 두 분, 내일로 중이라는 동갑내기 친구 두 명, 나 따라서 온 누나야 두 명까지. 가니까 파티는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음식은 진짜 겁나게 많았다. 치킨, 탕수육, 과일, 케이크, 각종 샐러드랑 연어회도 있었다. 맥주부터 와인 양주까지, 양껏 골라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나도 가져온 케이크를 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가져왔던 것이라도 덕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 좀 나는 것 같았다.
간단한 식사가 끝나고 사회자분이 나오셔서 간단한 레크리에이션과 함께 빙고게임을 했다. 상품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직접 만든 소이캔들과 땅콩 잼이었는데, 혹시 선물 교환 같은 게 있을까 봐 가져 갔던 핸드폰 보조배터리를 하나 기부했다. 초성퀴즈와 노래 맞히기로 맞힌 사람이 원하는 번호를 지워서 5줄을 만드는 게 이기는 조건이었다. 다들 순발력이 어찌나 빠르신지, 노래를 맞추는 것은 자신은 있었지만 몇 개 맞추 지도 못했다. 열심이었던 수연이 누나는 양초를 하나 탔다.
그리고 나는 보조배터리를 기부해서, 감사하다는 마음에 잼을 선물로 받았다. 간단한 게임이 끝나고 사회자분이 약 한 시간가량 마술쇼를 보여주셨는데, 진짜 신기했다. 두 눈을 똑똑히 뜨고 뚫어지게 보고 있어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마술을 끝으로 남은 사람들끼리 조금 더 얘기하다가 자러 갔다.
남는 방이 없어서 나는 그냥 늦은 시간 우리 집으로 자러 갔다.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다. 어제 만난 누나야들과 같이 점심 먹으러 놋전 분식으로 가서 우동, 감자전 등을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주변에 첨성대가 있어서 잠시 산책했다. 보문단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씩을 나누고 청년공간 '빈둥빈둥'에서 한다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또 가고 싶어서 대구로 가는 수연이 누나 차에 몸을 실었다.
파티는 6시부터 시작한다고 했는데 조금 늦게 도착했다. 수빈이 누나는 집에 가고 수연이 누나랑 같이 또 다른 파티에 도착했다. 7시 30분쯤 도착하니까, 참석하신 분들은 자리를 점점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파티 프로그램은 다른 건 없었고 파티에 오신 분들이랑 마피아 게임을 하고 놀았다.
마피아 게임하고 놀다가 프로그램으로 케이크 만들기가 있었는데, 게임에서 이기는 팀이 케이크 토핑 재료를 하나씩 가져오는 규칙이 있었다. 생크림, 딸기, 후르츠 등 정상적인 재료도 있었지만 오이, 가쓰오부시, 캡사이신같은 괴상한 재료들도 있었다. [코드 네임]이라는 게임을 했는데, 약간 꼼수를 써가면서 하니까 대부분 좋은 재료들은 모두 우리 팀에서 가져왔다. 간단한 프로그램을 끝으로 파티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밤이 늦었으니 주변에 찜질방에나 묵어가려고 했는데 그냥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해서, 그냥 신나게 놀았다. 나름 알찬 성탄절을 보냈다.
입학) D+1051 2017. 1.16. ~ 20. (월) ~ (금)
<일본 여행>
ㆍ해외여행, 20여 년을 자라오면서 사실 나는 해외로 나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일본, 중국, 미국, 호주 등.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 줘도, 공감할 수 없었고 또 막상 나가려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1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나는 누나 따라 일본땅에 발을 뻗게 되었다. 가족이 같이 가서 무엇보다도 안심이 제일 많이 되었다. 출발하는 날이 월요일이었는데, 비수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김해공항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유 있게 3시간 전에 준비했는데도 시간에 딱 맞춰서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벨트까지 벗으라고 해서 놀랐다. 별 탈 없이 검색대를 통과하고 일본으로 이륙해서 한 시간 만에, Tokyo Narita 공항으로 도착했다. Tokyo에 간다면 GHIBLI 박물관에 꼭 가고 싶었다. 하지만 사전에 GHIBLI 박물관 예매를 못했었다. 일본 Lawson 편의점에서 현장 구매를 할 수 있다고 해서 편의점에 잠시 들렀지만, 아쉽게도 표는 이미 매진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후 숙소가 있는 신주쿠(新宿)로 바로 향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방법은
갖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그중 N’EX라고 불리는 나리타 익스프레스 [Narita Express ; N'EX] 전철을 타고 왔다. 일본에서 전철을 처음 타 봐서, 표를 살 때도 힘들었고, 타러 가는 길도 많이 헷갈렸다. 여행은 처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역무원과 긴 얘기를 해서 신주쿠 편도와 왕복표를 한 장 발권받았는데 표를 해석하지 못해서 큰일 날 뻔했다. 표에 '신숙'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느낌상 이게 신주쿠인 것 같아서 그냥 쭉 타고 왔다. 몰랐으면 아마 동경역에서 내렸을지도 모른다. 막상 일본에 도착을 했을 때, 안내판에는 다 한국어가 혼용이 되어 있어서 일본에 온 게 실감이 잘 안 났지만, 숙소에 도착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이 완전 박살이 났다.
가장 먼저 우리가 4일간 묵을 IBIS Hotel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큰 문제가 생겼다. 한국에서 미리 계산을 하고 왔는데, 성인 2명이지만 1명분 밖에 계산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방에 누나랑 나 둘이 묵으려면 매일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확인을 하고 왔는데. 재차 한국 Expedia에 전화 걸었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추가 요금이 많이 나오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지만 하루에 500엔 정도를 더 받았다. 크게 부담이 안 돼서 다행이었다. 추가분을 마저 지급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사실 우리는 첫날 바로 Disney Sea로 가서 야간 권을 끊고 놀라고 했는데, 막상 일본에 도착하고 보니 날씨가 너무 춥기도 했고 시간이 5시 30분을 지나고 있어서, Disney Sea로 갔다가는 이동하는데 시간을 다 쓸 것 같아, 그냥 표 값으로 주변에서 배부르게 먹기로 했다.
일본에서의 첫 끼니는 한국에서 들고 간 정보 책에서 추천해 준 라면집에 가 보기로 했다. 가게 이름은 'Menya Musashi'였는데 들어가니 진짜 일본인 주방장들이 "이랏샤이마세!"하고 인사해 주었다. 정말 신기했다. 처음에 그냥 무턱대고 자리에 앉았는데 주방장 사장님이 어디를 가리켰다. 이 가게는 특이하게도 구매자가 먹고 싶은 음식의 표를 사서 주방에 제출하는 시스템이었다.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긴 했지만 뭐가 뭔지 잘 몰라서 그냥 아무거나 두 개 시켰다. 처음 들어가 본 일본 음식점에서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근데 한국말이 들렸다. 처음 들어간 일본 음식점에서 한국말이 들려서 신기하긴 했지만, ‘다른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곳을 방문하는 나도 그저 평범한 여행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있으니 주문했던 기본 라면과 츠케멘(つけ麺)이 바로 나왔다.
인스턴트 라면 말고, 라멘이라고는 동네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먹어본 게 전부였는데, 현지에서 라면을 먹어보니까 ‘내가 여태 먹어왔던 음식들은 그냥 밀가루 덩어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진짜 맛있었다. 차슈(チャーシュー)라고 하는 큰 고기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조금 짠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생각보다 일식이 입에 맞아서 놀랐다. 수란도 겉은 탱탱한데 속은 완전 반숙이라 완전 내 취향이었다. 어떻게 하면 요리를 저렇게 만들까. 신기했다. 먹으면서도 계속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츠케멘은 소스에 찍어 먹는 면이었는데 이것도 이대로 맛있었다. 다만 이런 음식 자체를 처음 먹어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름기가 너무 강했다. 일반 라면은 다 먹었어도 츠케멘은 조금 남겼다.
배는 부르지만 달달한 음식이 먹고 싶어 주변에 유명한 경단 가게가 있다고 해서 경단을 먹으러 갔다. 경단을 사러 가는 길에 가는 길에 우연히 Shinjuku의 명물이라는 오모이데 요코쵸(思い出横丁)를 발견했다. 오모이데 요코쵸는 단풍잎으로 치장되어 있는 골목에, 외국인 현지인 할 것 없이 좁은 장소에 살을 부대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들어가는 순간, 정말 분위기에 취했다. 우리도 보이는 집 아무 데나 들어가서 생맥주 하나를 주문했다. 커다란 굴도 판다고 하시기에 주문해 보았는데 딱 2개 나왔다. 약 650엔 정도 했던 것 같다. 맛있었다.
계산하려고 일어났는데 영수증에 우리가 시키지도 않은 메뉴가 적혀 있었다. 주인아저씨께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자리세라고 하신다. 자릿세만 둘이 합해서 6,000원 정도이었는데 뭐 크게 먹은 것도 없는데 300엔 정도 적혀 있었다. 첫날은 이렇게 보내기 너무 아쉬워서 또 숙소 앞에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정말 일본식 분위기의 술집이었다. 이 맥주집에 들어오고 보니까 아까 그 선술집 가격이 엄청 비싸다는 걸 알았다. 여기 이자카야에서는 생맥주가 180엔인데 거기는 550엔 받았으니 말 다했다. 일본 문화중에는 조금 놀랐던 게 밥집이고 술집이고 그냥 사람들이 다 흡연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여기는 현지인이 많이 찾는 곳인 것 같았다. 옆 자리에서는 아저씨 두 분이 뭐 재미있게 얘기하고 있었고, 뒤에는 미팅을 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가 그냥 너무 좋았다. 여기서는 맥주랑 튀긴 크림치즈를 시켰다.
아침에 아홉 시가 넘어 일어났다. 알람을 맞춰놓았는데 게으름병은 여기서도 도지는구나. 알람 끄고 계속 잤다. 아침 늦게 일어나 바로 하라주쿠(原宿) 역으로 향했다.
아침을 못 먹고 와서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누나가 미리 알아온 가게가 있었는데, KBS의 배틀트립이라는 방송에서 소개해서 유명해진 집이 있다고 했다. 일단, 가수 성시경 님의 맛집이라는 '장가라 라멘' 가게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가 딱 10시 40분이었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알고 보니 10시 45분부터 연단다. 그래서 5분 정도 주변을 산책하고 왔는데 그새 사람들이 반쯤 차 있었다. 어쩌다 보니 이틀 연속 라멘을 먹게 되었다. 어제 먹었던 차슈가 너무 맛있어서 돼지고기를 추가 주문했는데 차슈는 기본으로 깔려있었고 돼지고기 두 점이 추가로 나왔다. 어제 먹었던 무사시 라멘보다 면발이 얇고 국물이 더 기름졌다. 맛은 되게 기름졌지만 풍미는 있었는데, 기름진 게 아직 입에 안 맞아서 그런가 다 먹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면발이 굵은 게 더 좋았다. 차슈랑 수란은 맛있었는데 너무 느끼해서 결국 마늘 소스를 엄청 넣어서 먹었다.
간단히 배를 채우고, 바로 앞 일본 청소년들의 거리라는 타케시타 거리(Takeshita Street)를 잠시 구경하기로 했다. 타케시타 거리는 그냥 딱 청소년들을 위한 거리 같았다. 크레페 등 길거리 음식이나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게 전부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크레페를 들고 서 있는 교복 입은 청소년들이 많았다. 청소년들의 거리라고 하지만 외국인이나 어른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사람들이 개성 있게 다니는 모습은 너무 좋았다. 심지어 지나가다가 장난감 쥐를 애완견처럼 끌고 다니는 사람도 봤다. 잠시 타케시타 거리를 구경하고 하라주쿠의 명소, 메이지 신궁으로 향했다. 사실 메이지 신궁은 우리 역사로 보면 정말 아픈 곳이지만, 역사적 의의가 있는 장소라 들리게 되었다. 본 전(殿)에 들어가기 전에 손 씻는 공간이 있었다. 아마 청결하게 입장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다들 두 번으로 나뉘어 손을 씻더라. 마셔도 되는 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간혹 이 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손을 청결하게 한 후 본 전으로 들어갔다. 메이지 신궁은 크게 동, 서, 남, 북 신문으로 4개의 길이 나 있었는데, 나는 정문으로 통하는 길인 남신문(南神門)으로 들어갔다.
신궁에서는 큰 통이 하나 있었는데, 그 통에 동전을 던지고 두 번 손뼉 치고 두 번 절한 후 짧게 기도를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해외에 더 자주 나오게 됐으면 좋겠다고 짧게 빌었다. 본 전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단체로 천황한테 절을 하는 전통 행사 같은걸 조금 구경했다. 본전에 잠시 머무른 후 서신문으로 나갔다. 서신문이 요요기 공원 쪽으로 이어지는 길 같았는데, 오히려 이쪽이 사람들도 확실히 적고 오솔길도 나 있어서 걷기 좋았다. 오솔길을 따라 걷고 또 걸으니 잔디 공원이 하나 나왔다. 마침 우리가 방문했던 날이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걸어도 별로 불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늘도 너무 화창했고, 날씨는 너무 따뜻했다. 해도 쨍쨍, 걷기 너무 좋았다. 메이지 신궁은 유치원생들이 소풍을 많이 오는 것 같던데 이 아이들이 곳곳에서 뛰놀고 있는 게 너무 귀여웠다. 메이지 신궁을 구경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일본은 특이하게 공공기관에서도 장사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 조금 우리나라와 차이점을 보이는 것 같다. 자그마한 우물을 보러 들어가는 것도, 인당 500엔씩 받았으며 본전 입구 쪽에 천황한테 소원을 비는 나무 조각을 사는데도 800엔씩 받았다. 아무리 미신적인 요소가 강한 나라라고 하지만, 이런 점은 참 아쉬웠던 것 같다. 메이지 천황은 우리나라에는 큰 아픔을 남겨준 천황이지만 당시에 그 위세를 절실히 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길거리 구석구석마다 명치왕이 지은 도로라고 표지판이 있었고, 도쿄 한 중앙 노른자 땅에 저만큼 크게 자신의 궁전을 지어 놓았으니 그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메이지 천황은 국경 개방에 힘쓴 인물이니 그의 힘은 곧 외세의 힘을 의미한 건 아닐까.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와서, 두 번째 목적지인 'Cat street'로 향했다. 쇼핑의 거리라고 알려진 'Cat street'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경리단길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예쁜 길을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옷 집이 즐비했다. 패션의 거리라고 할 만큼 예쁜 옷 가게도 많았다. 하지만 뭐가 눈에 띌 만큼 특색 있는 거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옷을 사러 간 것이 아니라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Cat street 중간에는 이렇게 자그마한 나무가 있었는데 꼬마 아이들이 이 나무에 타고 노는 걸 한참이나 재미있게 구경했다.
그리고 근교 다이칸 야마에 유명한 도넛 가게가 있다고 해서 바로 다이칸 야마(代官山)로 향했다. 다이칸 야마로 가는 길에는 지하철을 탔는데 급행열차를 탔는지 한 정거장을 지나쳐 나카 메구로(中目黑) 역에서 내려서 블루 도넛 가게까지 걸어갔다. 다이칸 야마 역에서 내려서 바로 갔더라면 시간적으로는 크게 이득이었겠지만, 나카 메구로역에서 도넛 가게까지 가는 길이 너무 예뻐서 너무 좋았다. 정말 드라마나 만화 영화에서만 보던, 길가에 전철이 흐르고 있고, 햇빛은 창창하고, 풍경에 빠져서 걷고 또 걷는 게 너무 좋았다. 조금 더 걸어 다이칸야마 블루 도넛 가게에 도착했다. 다이칸야마는 전체적으로 부촌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심지어 일본의 청담동이라는 이 거리는 그냥 여유가 넘치는 동네였던 것 같다. 우리가 들린 ‘블루 스타 도넛’에서는, 밑에 보이는 깔루아 도넛이 가장 유명한데, 도넛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통에 깔루아가 가득 들어있다며, 도넛을 먹기 전에 통을 짜서 도넛 안에 깔루아를 가득 넣으면 된다고 하셨다. 저녁때 즈음 돼서 도넛 집에 도착했는데 벌써 실내는 만석이라 자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바깥에 있는 좌석에 앉아 먹었다. 바깥자리에 난로가 있어서 별로 춥지는 않았다. 우리는 위에 보이는 깔루아 도넛과 패션 후르츠 도넛을 하나 주문했다. 커피와 함께 먹으면 맛있다고 해서 드립 커피도 하나 주문했다. 맛은 생각보다 너무 맛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평소에 도넛을 크게 즐기지는 않았는데 여기 도넛은 진짜 맛있었다. 특히 깔루아 도넛은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이런 도넛이라면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덧 어둑해져 다이칸야마에도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에겐 딱히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 걷다가 그냥 들어가고 싶은 음식점에 들어가기로 하고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걸었다. 다이칸 야마는 부촌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곳곳에 80년대의 달동네 느낌이 나는 곳도 있었다. 덕분에 분위기는 한 껏 고즈넉했다.
다이칸 야마의 경치를 구경하다가, 주변에 보이는 '소라노(Sorano)'라는 두부 전문점에 들어갔다.
고급져 보이는 입구, 두부가 밥이 될까 의아했지만 일단 들어갔다. 메뉴에는 전채 요리부터 두부, 디저트에 튀김까지 있었는데 우리는 전채 요리로 아보카도 두부와 버섯 샐러드, 두부 한 판이랑 튀김 두 개를 시켰다. 튀김은 새우튀김이랑 가지 튀김을 하나 주문했다. 가격이 450엔이 적혀 있길래 몇 개를 줄지도 감이 안 왔다. 일단 전채요리로 아보카도 두부와 버섯 샐러드가 나왔다. 아보카도 두부라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보카도 두부라길래 두부랑 아보카도랑 따로 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보카도에 절인 두부 같았다. 그런데 진짜 향도 그렇고 식감도 그렇고, 진짜 특이하고 맛있었다. 두부를 먹는데 밀도가 가득 찬 식감은 살면서 처음 느껴본 것 같다. 양은 작았지만 일본에서 먹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 중에 하나가 저것일 정도로 맛이 독특했다. 버섯 샐러드는 아는 맛, 아는 식감 그대로였다. 그리고 오늘의 메인 음식인 두부가 나왔다. 두부를 저렇게 작은 화로에 올려서 줬는데 화로 안에서는 숯이 타고 있었다. 두부가 완성될 때까지 20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 아까 주문했던 튀김이 나왔다. 20분이 지나고 두부가 완성되었다. 식사로 두부는 처음이었는데 먹다 보니 고소하기도 하고 포만감도 생기고 해서 좋았다. 먹다 보니 속이 금방 차서 자그마한 두부 한 판도 겨우 먹었다. 식사로 두부를 먹는 것도 괜찮은 듯했다. 그래도 배불리 먹고 가게를 나올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딱히 할 게 없어서 주변에 라이브 카페 같은 곳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전부다 사람들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기도 했고 분위기가 너무 음침하고 무서워서 들어가자마자 "실례했습니다" 하고 도망 나왔다. 문득 무서워진 우리는 그냥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숙소에서 마시기로 했다. 일본은 캔맥주도 진짜 맛있었다. 특히 누나가 생맥주 맛, 캔맥주를 샀는데 진짜 캔맥주에서 생맥주 맛이 났다. 신기했다. 나는 Green Label이라는 초록 맥주를 샀는데, 편의점에서 한자를 읽을 때 잘 못 읽는 바람에 매실이 70% 들어 있는 맥주인 줄 알았는데 숙소 와서 보니 보리가 70%인 그냥 평범한 맥주였다. 일본 와서 안 사실이 하나 더 있다면 국산 브랜드인 줄 알고 있었던 '칼비'라는 브랜드가 사실 일본 브랜드였다는 점이다. 편의점에 '자가비' 과자의 종류가 많길래 자세히 봤는데 칼비가 일본에서 나온 브랜드인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과자도 종류가 엄청 다양했다. 계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은 벚꽃 맛 감자칩도 있었던 것 같다. 괜히 돈만 버릴 것 같아 안 사 먹었는데 새삼 맛이 궁금하긴 했다. 하루종일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맥주를 마셔서 잠도 솔솔 오기도 하고 해서 오늘도 일찍 잠들었다. 이전에 한자를 배워놨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웬만한 간판이 다 읽히는 게 정말 신기하다. 하지만 너무 답답하다. 난 아직 카타카나도 제대로 잘 못 읽고 있었다. 뭐 어느 도시나 다 똑같겠지만 말이 통한다는 게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아예 언어를 하나도 몰랐다면 덜 답답했을 것 같다. 언어 공부가 진짜 중요한 것 같다. 집에 가면 바로 회화 공부부터 시작해야겠다 쓰기 과정까지 마치면 한국어, 영어, 일어 등 세 가지 타입으로 글을 써봐야지. 당장 유럽에 간다지만 일본어부터 조금 외워놔야겠다.
다음날 아침, 모든 일정을 소화하기 전 우리는 숙소 바로 앞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아침부터 햄버거를 먹는 건 처음이었지만, 바깥에서 보이는 햄버거의 비주얼이 너무 예뻐서 들어왔다. 주문을 한지 얼마 안 되어, 곧 음식이 나왔다. 맛은 생각보다 많이 맛있었다. 빵은 촉촉, 패티는 부들부들했다. 직접 수제로 만든 버거라는데, 확실히 한국에서 먹었던 프랜차이즈 버거랑은 달랐다. 음료수로 프룻 주스라고 초록색 주스를 시켰는데, 무엇이 들었는지 잘 가늠이 안되었다. 중간에 사과맛이 났던 것 밖에 구별이 잘 안되었다. 그래도 신선한 느낌, 좋다.
오늘의 주된 일정은, 점심에 일본의 커다란 수산시장이라는 '츠키지 시장'을 들렀다가 저녁에 오다이바 해변 공원에 가는 것이었지만 숙소 주변에 신주쿠 교엔(新宿御苑)이라고 커다란 공원이 있다고 하길래 거기에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오늘 날씨도 너무 좋았다. 적당히 따뜻하고 바람도 선선했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사람들도 얼마 없었다. 신주쿠 교엔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200엔. 표를 끊고 신주쿠 교엔으로 입장했다. 사실 겨울 즈음에 공원으로 가서, 꽃이 펴 있거나 하지 않아서 예쁜 풍경이라는 것은 사실 별로 없었지만 그냥 날씨가 좋고 숲이 우거져서 확실히 걷기 좋은 장소였다. 중간중간에 이렇게 전통 건물처럼 보이는 건축물도 있었다. 메이지 신궁과 비슷하게, 여기도 어린이들이 소풍을으로 많이 찾아오는 듯했다. 한참이나 길가에 서서 뛰어노는 어린이들을 구경을 했다. 괜스레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안녕"하고 말을 걸어 보았는데 우리를 거들떠보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신주쿠 교엔에서 자라나는 새싹을 하나 발견했다. 벌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일본에서 느끼게 되었다. 분위기도 좋고 날씨도 좋았지만, 어제 원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프기도 했고 늦게 간다면 츠키지 시장의 가게들이 거의 다 닫는다고 하기에 조금 일찍 자리를 떴다. 그리고 바로 츠키지역으로 향했다.
츠키지 역에 도착하자마자 츠키지 장외시장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츠키지 시장은 크게 장내시장, 장외시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장내시장은 당일 들어온 물건들에 대한 경매를 하는 곳이고 장외시장은 일반적인 시장처럼 음식이나 각종 물건을 파는 곳으로 구별되어 있다고 한다. 사실 장내시장은 일반인의 참관도 불가능하다고 하고, 새벽에 개시를 해서 아침 일찍 모든 일들이 끝난다고 한다. 우리가 쓰키지 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장내시장은 닫혀 있었고, 점심 즈음이다 보니 장외시장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츠키지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네다섯 살 아이의 몸만 한 생선 대가리가 모든 가게마다 하나씩 동상처럼 서 있었다. 참치 머리인 것 같던데, 정말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막 잡은 참치는 어떤 맛일까 참 궁금하기는 했다. 뿐만 아니라 츠키지 시장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가득했다. 어떤 가게에서는 가리비를 구워서 팔고 있었고, 또 어떤 가게에서는 게딱지만 구워서 팔고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이국적이어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사실 츠키지 시장에는 우니동(성게알 덮밥)이 가장 유명한데, 사실 이 성게 알이라는 게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한 그릇에 거의 5,000엔 정도 하는데, 누나랑 나랑 둘이 먹으면 한 끼 밥만 10만 원 정도가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미리 찾아 놓은 가게로 갔다. 하지만 막상 츠키지 시장에 오니까 미리 찾아놓은 가게가 보이지 않아서 인포메이션 센터로 들어갔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갔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그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주변에 둘러보다가 비슷한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기로 했다. 꼭 우니동을 먹고 싶긴 했는데 다들 가격대가 너무 비싸서 시장 구석에 '해양정'이라는 조그마한 가게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기본 덮밥 하나와 우니동 하나를 시켰다.
구석에 있는 음식점이라 그런지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곧 음식이 나왔다. 일본에서 덮밥을 처음 먹어 보았는데, 신기했다. 밥 위에 저렇게 큼지막한 횟덩이를 하나씩 올려주는데 그냥 밥이랑 같이 떠먹으면 되었다. 횟감은 방금 바로 잡아서 그런지 싱싱했다. 너무 맛있어서 정말 퍼먹었다. 우니는 생각보다는 느끼했다. 만약 우니만 담겨 있는 우니동을 먹었더라면 느끼해서 다 못 먹었을 것 같다. 미소 된장국도 한국에서 먹어본 맛이랑은 달랐지만 맛있었다. 순식간에 밥그릇을 다 비우고, 주방장 아주머니와 사진 한 번 찍고 가게를 나왔다. 시장 안에 한 가게 앞에 줄이 길게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엇인가 잘 살펴보니 계란말이를 파는 집이었다. 1개당 100엔이라는 착한 가격에, 우리도 그 줄에 합류했다. 그냥 계란말이가 아니라 요리 중간에 양념을 하던데, 정확히 어떤 양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양념을 해서 그런가, 간도 딱 되어 있고 좋았다.
다음 일정으로 긴자역에 가려고 했는데, 누나가 아끼던 장갑을 식당에 두고 와서 긴자역까지 갔다가 다시 츠키지 시장으로 되돌아왔다. 왔다 갔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긴자역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기로 하고 다시 긴자역으로 향했지만, 긴자역 근처의 커피 가게마다 모두 만석이었다. 겨우 한 곳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원체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좌석을 배정해 주는 직원이 또 따로 졍해져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다가, 긴자역으로 향했다. 긴자의 거리는 딱 강남의 확장판 같았다. 명품 브랜드의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우리나라 명품은 백화점에 들어가면 명품관이 따로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는 그냥 건물 하나가 명품 매장이었다. 이런 걸 보면서 정말 우리나라와 경제 규모 자체가 다르구나, 하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참 여기 골목을 돌면서,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하면서 헤픈 것인지 피부로 느낀 것 같다. 그중에 중국 부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한 명품 매장에 들어가서 두 손 가득 물건을 사서 나오기에 다른 사람의 몇 년의 노동력이 저렇게 한 순간에 구매가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에게 그렇게 재력이 집중되어 있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은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어서 오다이바 해변으로 향했다. 오다이바 해변으로 가려면 '유리카모메'라는 열차를 따로 타야 했다. '유리카모메'는 자가 부상 무인 열차로, 우리나라로 치면 대구 지하철 3호선과 비슷한 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유리카모메' 열차를 타러 신바시 역으로 출발했다. 신바시역에서 유리카모메 열차로 갈아탔는데, 일본에서는 '환승'이라는 문화가 없나 보다. 다른 열차를 타려면 다시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유리카모메 열차를 탔을 땐 점점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고, 퇴근이라 그런지 서류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밤이 되니 바깥이 너무 추웠고, 더욱이 바닷가에 간다면 더 추울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유리카모메에서 보는 야경이 너무 예뻐서 그냥 오다이바 해변에서 안 내리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시작점으로 오기로 했다. 유리카모메 끝까지 갔다가 다시 신바시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유리카모메는 무인 열차라 맨 앞자리에서 전망을 볼 수 있게 뻥 뚫려 있었고, 배차 간격이 3분이라서 조금만 기다리면 맨 앞자리에서 탈 수 있다고 해서 기다려서 탔다. 맨 앞자리에서 타면 뭔가 환상 열차를 탄 기분일 것 같았는데 조명이 너무 강해서 막상 앞의 야경은 잘 안 보이지 않았다.
야경 구경을 잘하고 다시 신바시역으로 돌아가 지하철역을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교통 카드가 작동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시작점과 종착점이 같으면 안 움직인 것으로 되어 그냥 기본요금만 받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기서는 종착역까지 갔다가 다시 온 왕복 기차비를 다 받았다.
숙소 주변에서 가볍게 밥을 먹고 맥주를 한 잔 하기로 하고 다시 숙소 주변으로 향했다. 그런데 주변에 마땅히 밥을 먹을 장소가 없었다. 겨우내 카레 가게를 찾아서 들어갔다. 카레집 이름은 '고고 카레'였는데 이 집도 무사시 라멘집처럼 입구에서 티켓을 구매해서 카운터에 제출하는 체계였다. 그런데 티켓을 구매하는 방법을 몰라서 입구에서 한참이나 헤맸다. 겨우 직원분이 가르쳐 주셔서 티켓을 구매하는 방법을 알았는데, 메뉴가 뭐가 뭔지 몰라서 예산에 맞는 대로 아무거나 막 시켰다. 나는 돈가스 카레를 주문했는데, 밥이 따로 안 나오길래 밥을 따로 주문했다. 그리고선 막 먹고 있는데 돈가스 밑에 밥이 깔려있었다. 정말 황당한 순간이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외국인이 비빔밥에 밥을 안 줘서 공깃밥을 사서 같이 먹고 있었는데, 비빔밥을 다 먹고 보니까 고명 밑에 밥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밥을 거의 한 공기만큼이나 무료로 받았는데 거의 먹지도 못하고 다 버리고 왔다. 주인아저씨께 너무 미안했다.
오늘도 그냥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서 간단하게 숙소에서 요기를 하고 금방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계속 눈여겨봐 왔던 핸드드립 카페에서 먹기로 했다. 일본 카페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카페에 뭐를 겸해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카페와 음식점이라던가, 카페와 옷가게를 같이 하는 식으로,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문화를 본 것 같다.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동경 한국학교로 나섰다.
동경 한국학교는 신주쿠에 있는 학교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 국민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교육하는 학교라고 했다. 여행지에서 학교를 찾아간 이유는, 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는 누나의 의견이 컸다. 사실 재일 한국인이라기에 학생들이 거의 한국어를 쓸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일본 동경학교에 도착했을 때 한국어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이 학교는 신기했던 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도 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가 점심시간이라 학생들이 모두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었는데 자그마한 운동장에서 초, 중, 고등학생들이 모두 뛰놀고 있으니 참 신기하긴 했다. 학교에 미리 연락을 안 하고 와서 교내를 견학하지는 못했다. 그냥 학교 겉모습만 구경하고 왔는데도 너무 좋았다. 특이했던 점은 여기도 한인촌이라 '국어, 수학 과외'와 같은 현수막이 한국어로 걸려 있기도 했고, 학교 안으로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들고 들어가는 외국어 선생님도 있으셨다. 신기하고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까지 와서 '초밥'을 한 번도 못 먹어 보았기에 시부야역 쪽에 있다는 회전 초밥 가게로 향했다. 좌석에 붙어 있는 모니터로 주문하면 설치되어 있는 레일로 가져다준다. 한 접시에 108엔으로, 실컷 먹어도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진짜 많이 주문했다. 확실히 어제 츠키지 시장에서 먹었던 식감과는 질이 다르긴 했지만 이 가게도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그런데 저렴한 가게로 알려져서 그런가 현지인보다는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 듯했다. 우리 오른쪽에도 계속 서양인들이 들어왔고, 우리 왼쪽으로는 한국인들이 계속 들어왔다. 어제 못 먹었던 성게도 여기서 실컷 먹었다.
배부르게 먹었으니 후식이 또 당겨서 미리 알아둔 지유가오카의 전통 찻집으로 가기로 했다. 지유가오카는 전통 일본과는 좀 더 다른 느낌, 서양식 느낌이 나는 동네였다. 그 가운데 일본 전통 찻집 '고소안'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청결하게 사람들을 맞자는 의미인지, 메이지 신궁에서처럼 입구에 맑은 물로 손을 씻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메뉴는 일본 전통 차인 말차와 일본식 '감주(甘酒)'라고 적혀 있어서 그걸 하나 주문했다.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조용한 데서 차 한 잔 하고 싶다면 이곳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일본 문화에 문외한인 나한테는, 일본의 차(茶) 문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주문한 감주와 말차가 나왔다. 감주는 우리나라 감주와는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도 처음 받았을 때 감주가 따뜻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감주와는 달리 점도가 상당히 질었다. 물이라기보다는 죽에 더 가까운 듯했다. 그리고 감주라고 해서 마냥 단 것만은 아니고, 쓴 맛 신 맛 단 맛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 달고 떫은 맛이 입 안에 가득 차는 것이, 무거운 식감이 느껴졌다. 누나는 마시자마자 "야 이거 딱 호박엿 녹인 맛이다!"라는 평을 했다. 그러고 보니 딱 그 맛이었다. 말차의 느낌은 우리나라의 녹차랑 비슷하지만 색감도 더 진했고, 위에 거품이 가득 떠 있었다. 맛은, 그냥 쓰디썼다. 아직 입맛이 어려서 그런가. 아직 잘 못 먹겠더라. 그래도 차(茶)의 깊은 맛이라는 게 어떤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감주를 주시며 옆에 시럽을 "쇼우가"하고 주셨는데, '슈가'로 잘 못 들어서 설탕인 줄 알고 거의 다 먹었을 때 확 부었는데, 알고 보니 슈가(Sugar; 설탕)가 아니라, 쇼우가(しょうが; 생강)이었다. 그리고 또 주변에 케이크 가게가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해서 또 케이크를 먹으러 나섰다. '몽상 클레어'라는 케이크집에 도착해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 두 개를 주문했다.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450엔 정도 했었다. 평소에 케이크도 그렇게 즐겨 먹지는 않지만 이런 케이크이라면 자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맛있었다.
몽상 클레어에서 나오면서 문득 갑자기 '외국어의 필요성'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그래서 누나랑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영어로만 대화를 하면서 걸어왔다. 마지막 밤이기도 해서 저녁 식사 대신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영국 풍의 술집이었는데 가격이 착해서 들어왔다. 아까 누나랑 영어로 대화하던 것을 계속해, 술집에서도 계속 영어로만 대화를 나누었다. 조금 마시다 보니, 옆 자리에 학생 같아 보이는 사람이 둘 들어왔다. 남자 두 명이었는데, 술 마시러 와서 서로 되게 어색해했다. 그래서 누나가 마지막 날인데 한 번 말을 걸어 볼까 말까 하다가 결국 한 번 걸어 보았다. "Can you speak English?" 하고 물으니 일본식 발음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쪽은 어떤 분인지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 대충 소개를 하는데 말이 잘 안 통해서 서로 번역기를 막 써가면서 겨우겨우 대화를 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고, 가족이고 이런 얘기를 했고 그쪽에서는 서로 직장인이고 뭐 이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분들도 재미가 있으셨는지 2차를 같이 가자고 하셨다. 우리도 그냥 따라 나갔다. 근데 우리가 가진 현금이 얼마 없어서 주변에 ATM기가 있는지 물었는데, 그분들이 사주신다고 했다. 한사코 거부했지만 결국 술집으로 들어갔다. 두 분은 되게 어려 보였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조금 있으셨다. 두 분 다 은행에 다니고 있는 은행원이었다. 나는 '츄하이'라는 메뉴가 있길래 편의점 캔맥주 '츄하이'를 생각하고 그걸 주문했는데 막상 받은 츄하이는 무색무취의 그냥 알코올 맛이었다. 알고 보니 소주랑 물을 합한 게 츄하이라고 했다. 같이 술자리를 하면서 한국식 주도(酒道)를 보여주니 놀라신다. 예를 들면 나이가 어린 사람이 술잔을 밑에 부딪히는 거라던가, 마실 때 고개를 돌려서 마신다 하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일본의 주도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두 분들이 자기소개를 해 주면서 종이에 이름을 써 주셨는데, 우리가 갑자기 도쿄 주변의 도시인 '에비스'를 써달라고 하니까 두 분 다 못 적으셨다. 그중에 아까 우리가 술집에서 영어로 대화를 하던데 왜 서로 영어로 대화를 했냐 물으셨는데, 민망해서 대답을 못했다. 서로의 문화가 어떤 지 안 되는 영어나 일어로 어찌어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벌써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다 되어 형님들은 귀가하셨다. 그전에 우리가 보낸 시간이 좋으셨는지, 서로 연락처도 교환했다. 오늘의 밤은 깊어가기에 숙소로 들어와서 쉬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러 도쿄역으로 왔다. 사실 시간이 조금 허락된다면 '네즈 신사'라는 곳에 들렀다 가려고 했지만 아침에 너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바로 도쿄역으로 향했다. 도쿄역의 모습은 서울역의 옛 모습과 유사했다. 다시 도쿄역에서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향했다.
모든 여행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점들이 참 많다. 사진을 보며, 지도를 살피며 다시 복기하겠지만 이처럼 피부로 많이 와닿는 활동을 했음에 감사를 느낀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확실히 선진국이고 강한 나라라는 것이 확 느껴졌다. 국민성도 그렇고, 여태껏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수는 시간이었다. 너무 좋았다. 그리고 버킷리스트에 일본여자와 연애하기가 추가되었다.
입학) D+1062 2017. 1.27. (금) ~ 2017. 1.30 (월)
<홍콩 여행>
ㆍ올해 설 연휴는 무지 길었다. 1월 27일부터 시작해서 대체 공휴일인 1월 30일까지 4일간의 연휴였는데,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연휴 때 다들 시간이 맞기도 해서 외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처음에는 베트남 '다낭'같은 관광지가 아닌 휴양지로 떠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홍콩'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목적지는 '홍콩'으로 정해졌다. 그렇게 일본에 다녀온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부산 공항으로 향했다. 항상 매스컴에서 보았을 땐, 명절 연휴에 공항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한 것만 봐서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줄 알고 출발 시간보다 네 시간 일찍 출발했지만,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놀랐다. 덕분에 여유롭게 준비하고, 면세점에서 쇼핑도 꽤 오래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한 시간가량 멍하니 있었다. 홍콩으로 떠날 때엔 홍콩 저가 항공사인 '홍콩 익스프레스'를 타고 떠났다. 내 자리는 날개 바로 옆 자리.
누나가 항공권을 예매할 때 기내식을 주문했는데 받고 보니 기내식을 먹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홍콩까지 가는 비행시간은 약 3시간이었는데, 잠시 자고 일어나니 홍콩 땅에 도착해 있었다. 정신없이 일어나서 입국 수속을 하러 공항을 나서는데, 공항이 얼마나 큰지 공항 전용 지하철을 타서 이동을 해야 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일단 짐을 넣으러 홍콩 시내로 나가는데, 공항을 나서자마자 내 코 끝으로 잔잔히 고수 냄새가 박혔다. 처음 맡아본 고수 냄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괜찮은 듯싶었다. 2층 버스를 타고 일단 우리가 예약한 호텔, '이비스 센트럴 성완'으로 향했다. 그리고 미리 예약한 음식점 '예 상하이(Ye Shanghai)'로 향했다.
원래 7시로 예약을 잡아놓았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시간이 7시를 향하고 있었다. 늦었긴 했지만 이미 예약을 한 상태여서 일단 '예 상하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에도 그런지, 명절이라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엄청 많았다. 다행히도 우리가 도착한 시간으로부터 15분 뒤에 자리가 난다고 해서 기다려서 들어갔다. '예 상하이' 음식점은 명품 백화점 안에 있었는데 예약을 미리 안 해 놓으면 엄청나게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고 회전율이 빨랐다. 소문난 음식점인 듯했다. 들어가서 미리 알아와 둔 음식 몇 개를 주문했다. 주문한 지 2~3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바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프와 치킨 살을 먹었는데, 기름기가 진하기는 했어도 맛은 있었다. 중국식 고기 요리가 어떤 맛인지 알 수 있었던 음식들이었다. 덕분에 배부르게 잘 먹고 '예 상하이'를 나왔다.
총 음식값은 1600HK$이 나왔다. 한국 돈으로 따지면 25만 원 정도였다. 홍콩 와서 첫 끼 식사에 25만 원이 나왔다. 우리가 홍콩에 온 날이 'Chinese Day'라고, 우리나라와 같은 구정을 지낸다고 했다. 홍콩에서는 빨간 봉투에 자그마한 과자나 돈을 넣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는 전통이 있다는데 덕분에 곳곳에 널려 있는 빨간 봉투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다음 일정으로 홍콩의 명물이라는 '피크 트램(Peak trem)'을 타러 나섰다.
'피크 트램'이란,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라고 홍콩에서 꽤 높은 산 위에 위치한 전망대가 있는데 그까지 트램을 타고 올라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야경을 보기 끝내주는 장소라고 말을 들어서, 기대가 많이 되었다. 기찻길이 산을 향해 나 있다. 피크 트램의 회전율은 7분가량으로, 7분가량 이동하면 빅토리아 피크 정상에 도착했다. 회전율이 빨라서 그런지 피크 트램을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랑 한국인 한 커플밖에 없었다. 빅토리아 파크에 올라가면 이렇게 야경이 펼쳐진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로 앞을 내려다보면 발 끝이 힘이 쭉 빠지고, 저릴 만큼 높이가 높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1/3은 한국인인 듯했다.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여기서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 한 장에 12,000원을 달라는 사진 기사도 있었다. 우리는 우리 사진기가 있기에 우리 사진기에 사진을 가득 담고 빅토리아 피크를 내려왔다.
도착해서 바로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앞 마트에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샀는데 한국 음식이 많이 있어서 놀랐다. 진라면, 신라면부터 시작해서 아이스크림, 사탕, 과자, 술까지 한국 물건이 가득했다. 그런 주전부리들은 외려 현지 물건이 적고 일본 기업인 칼비나 한국 기업인 롯데 물건들이 많았다. 그래도 물건을 한가득 샀음에도 불구하고 50HK$가 나왔다. 물가가 싼 건지 비싼 건지 가늠할 수 없는 도시이다.
ㆍ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었다. 빵과 우유, 시리얼 등 간단히 아침을 때울 수 있는 음식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식빵ㆍ팬 케이크부터 시리얼 샐러드 밥 심지어 김치까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숙소를 나섰다.
홍콩에 다니는 트램이나 버스는 모두 2층으로 되어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실어 가기 위해서 2층 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일본과 같이 오른쪽에서 운전을 한다.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왕조가 있는 국가에서는 오른쪽으로 운전을 한단다. 버스는 안 타봐서 모르겠지만 트램 이용 가격은 2HK$였다. 한국 돈으로 300원,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었다. 다른 소비 물가는 비싼데 비해 이런 생활 물가가 저렴하다 보니 당최 물가가 비싼 동네인지 안 비싼 동네인지 가늠이 잘 안 되었다. 그리고 트램 같은 경우에는 인도와 거의 밀착을 해서 운영하던데, 저러다 사람과 부딫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아찔하기도 했다.
오늘의 일정은 페리를 타고 침사추이(尖沙咀) 역으로 향해 구룡반도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침사추이로 넘어가는 오늘, 날씨도 너무 좋고 바다도 너무 예뻤다. 홍콩도 참 편리한 게, '옥토퍼스 카드'라는 교통 카드만 있으면 모든 교통수단들을 다 이용할 수 있었다. 페리를 타러 가서도 별 다른 티켓 구매 없이 옥토퍼스 카드만 태그 하면 바로 선착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가격도 엄청 저렴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 정도였다. 바다는 고요했지만, 머리가 이리도 흩날릴 만큼 바닷바람은 거셌다. 홍콩 섬에서 구룡반도로 들어가는데, 페리를 타고 7분이면 충분했다. 구룡반도에 도착하자면 커다란 시계탑이 우리를 반겨준다. 이 시계탑은 구룡반도의 상징물이자 주변에 페리 선착장이 있다는 뜻이란다. 모든 관광지를 구경하기 전, 길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고 시작했다. 시계탑 주변에 경치가 예뻐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SECURITY들이 오더니 길을 막았다. 오늘 밤에 구정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 행사를 준비한다고 했다. 우리도 못 들어갈 뻔했는데,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저지선을 뚫고 들어가면서 우리도 그 사이에 들어가 버렸다. 거의 우리를 마지막으로 시계탑 주변의 길은 완전히 막혔다. 시계탑 뒤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는데 경치가 너무 예뻤다. 좋은 경치를 구경하고 나서 딱히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걸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걷다 보니 1881 Heritage라는 곳이 나왔다. 1881 Heritage는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 해양 경찰들이 사용했던 부지를 리모델링해서 쇼핑 상가처럼 꾸며놓은 곳이었다. 역사적인 장소라기보다 인위적으로 화려함을 지어낸 느낌이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리고 여느 관광지와 같이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가족사진을 남기고 다음 일정인 '금붕어 시장'이 있는'Prince Edward' 역으로 향했다. 프린스 에드워드역은 중국말로 하면 '太子'였다. 그런데 Prince Edward역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비가 슬슬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꽃시장을 구경하고 금붕어 시장으로 가려고 했지만 꽃시장 입구 쪽에 대부분 문을 닫았기에 바로 몽콕시장 안의 금붕어 시장으로 향했다. 금붕어 시장에서는 물고기를 봉지에 주렁주렁 매달아서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 특유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와 약간은 혐오스러운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헛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개 물고기들이 살아 있기는 했지만, 더러 죽은 듯 보이는 물고기들도 많았다. 저렇게 물고기들을 보관하면 물고기들이 어떻게 숨을 쉴까 참 궁금했다. 이렇게 물고기들을 매달아 놓은 상가가 쫙 이어졌는데 참 고역이었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참 힘든 공간인 듯싶었다.
시장 주위로 보이는 거의 웬만한 건물들이 주상복합이었는데, 어찌나 건물들을 그렇게 빽빽이 지었는지, 햇빛이 한 줌도 안 들어오는 건물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전기선이 바깥으로 다 나와 있는, 아찔해 보이는 건물들도 정말 많았다. 특히 빈부격차가 정말 심하다고 느껴졌는 것이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 바로 뒤에 크기가 어마어마한 아파트가 풍채 좋게 서 있었다. 몽콕 시장을 한참이나 구경하고, 딤섬으로 유명한 '딤딤섬(點點心)'이라는 가게로 향했다. '딤딤섬'이라는 가게는, 대구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해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가게인 것 같았다. 오후 네시 즈음 도착했는데도 줄을 서야 해야 했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좌석을 배정받고, 모둠 음식를 주문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와서 그런지, 한국어로 번역된 메뉴판이 있었다. 사실 딤섬이라는 음식이 별다른 특이한 맛이 있고 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도 그런 것이 애초에 딤섬이라는 음식이 위장에 '점'을 찍듯 가볍게 먹는 음식이라고 해서 그렇다고도 한다. 그래도 그중 기억나는 음식이 있다면, 계란 프라이 밑에 덮밥을 준 것이 기억에 난다. 그릇이 작아서 비비는데 한참이나 고생이었다. 맛은 약간 걸쭉한 청국장 맛이 났는데 주변의 현지인들은 이 음식을 많이 먹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고수 향이 나기는 났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많이 풍기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맛있고 배부르게 잘 먹고 자리를 일어섰는데, 다시 몽콕 시장에서 풍기는 중국 향신료 냄새를 맡고 있노라니 머리가 약간 어질어질했다.
몽콕 시장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Avenue of stars'로 향했다. Avenue of stars로 향하는 길에 방향을 잃는 바람에 완전히 빙빙 돌아서 도착했다. 겨우내 도착한 Avenue of stars은 공사 중이었고 중요 건물들만 스타의 정원에 옮겨 놓은 상태였다. 홍콩 바다에서 펼쳐지는 Sympony of lights를 기다리면서, 잠시 카페에 들어가서 케이크를 먹고 쉬었다. 카페에서 쉬고 있는데, 바깥에서 무슨 북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소리를 따라나섰는데 오늘이 구정이라 그런지 도로에서 행진을 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행사는 단순 행진에 끝나서 오래 머물지는 않고 조금 있다가 자리를 떴다. 다시 야간 페리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은 마카오로 떠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마카오로 향했다. 홍콩과 마카오 역시 중국에 속해 있어서 나는 그냥 같은 나라 다른 도시인줄 알았는데 수속에 입국심사까지 진행하는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 아침 8시 30분 페리를 타고 홍콩에서 마카오로 건너가야 했기에 숙소에서 일찍 나섰다. 페리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리니 마카오에 도착했다. 페리가 파도에 휘청일 만큼 울렁거림이 심했는데, 전날 잠을 많이 자지는 못해서 그런지 완전 숙면을 취했다.
마카오로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용 탈을 쓴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매년 구정에는 용모양을 한 놀음을 하면서 올해에 끼친 악운을 떨치는 행위를 한다고 했다. 잠시 이런 광경을 보고 '세나도 광장(Largo do Senado)'으로 떠났다.
마카오에는 신기한 게 일반 버스는 잘 안 다니고, '호텔'로 가는 '호텔 버스'가 많았다. 시내에서 호텔로 내려주면, 관광객들이 알아서 호텔로 들어가거나 호텔 주변으로 흩어지거나 하는 자유가 주어진다. 가격은 모두 무료다. 정말 독특한 시스템을 가진 동네였다. 하지만 아무나 버스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호텔은 카지노가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호텔 버스를 못 타고 일반 버스를 타야 한단다. 나도 버스에 오를 때 미성년자인지 아닌지 계속 확인하셨다. 버스를 타고 마카오 시내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또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바로 세나도 광장으로 향하려고 했으나, 그냥 곧이어 바로 주변에 에그 타르트로 유명한 카페로 향했다. 하지만 이 카페도 설 연휴로 닫혀 있어서 그냥 주변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못 먹은 에그 타르트를 찻집에서 먹으며 달래고 있으니 곧이어 비가 약간 그치는 듯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바로 세나도 광장으로 향했다. 세나도 광장의 전경은 크지는 않지만 아시아의 작은 유럽을 볼 수 있었다. 포르투갈 풍의 모습과 중국 전통의 모습이 섞이니 참 독특한 장면이긴 했다. 포르투갈 인들이 노란색을 좋아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노란색이 강한 파스텔 색감이 진했다. 세나도 광장에서 조금 더 들어가니 '성 도미니크 성당'이 나왔다. 마카오 정 중앙에 서 있는 성당의 모습은 커다랗고 웅장했다. 참 이질적이면서 조화롭다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성당의 규모는 크지는 않았지만 존재감을 자랑하기에는 충분했다. 규모는 크진 않더라도 고즈넉하면서 그만의 매력의 있는 공간인 것 같다. 중화의 중심지에서 이례적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 독특했다.
성당의 겉모습만 잠시 구경하고 육포 거리로 향했다. 주교좌성당에서 조금만 더 가면 양 옆으로 작은 상가가 쭉 이어지는데 모든 가게에서 육포를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들이 커다란 가위로 육포를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사람들에게 시식하라고 막 나누어 주는데, 처음 딱 먹었을 때 특유의 중국 향신료의 향이 정말 가득했다. 난 두어 개 집어 먹고 포기를 했는데 가족들은 그 맛에 적응이 되었는지 잘 드시더라. 무서웠던 것은 우리가 먹고 있는 이 고기가 당최 무슨 고기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커다란 육포는 한 장에 만 원에서 만 오천 원 정도였다. 육포 거리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성 바울 성당(Ruins of St. Paul)'이 나온다. 성 바울 성당은 화재로 인해 내부는 소실되고 바깥채만 남아 있었다. 하늘 높이 입구가 솟아 있는 것을 보니 원래 크기가 얼마 정도였을까 가늠도 잘 안 되는 정도였다.
성당의 안쪽으로는 성당의 터만 남아있는 빈 공터였다. 근데 특이하게도 성당 안에서 '향 냄새'가 계속 났었다. 우리도 성당에서 나오는 길에 우연히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절을 발견했다. '나차 사원'이라고 해서, 옛날에 마카오에 역병이 돌았을 때 그 역병을 떼기 위해 '나차'라는 신에게 바친 사원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이 사원에서는 24시간 향초가 꺼지지 않는다고 했다. 위에 찍었던 커다란 초도 향초이며, 심지어 절 안에는 커다랗고 기다란 향초를 계속해서 태우고 있었다. 성당 바로 앞에 서 있는 사원의 모습이 참 독특하고 신기했다. 참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사원 바로 앞에 위치한 '연인의 거리'로 가는 길목 바로 앞의 풍경이 너무나도 예뻤다. 연인의 거리에 도착해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거리의 이름이 왜 연인의 거리이냐면, 거리의 풍경이 너무 예뻐서 남녀가 같이 걸으면 연인이 된다는 길이라고 했다. 이렇게 같이 사진을 찍고 놀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세나도 광장 주변에서 밥을 먹고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일정을 바꾸어서 마카오 아래쪽 호텔 주변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러 가기 전, 망고 주스로 유명한 '허유산' 가게로 가서 망고 주스를 하나 샀다. 우리는 테이크 아웃 잔에 음료를 주문했는데 앉아서 마시려면 직원이 와서 돈을 더 내야 한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음료를 들고 가게를 나섰고, 버스를 타고 오늘 저녁 일정이 있는 호텔 주변으로 도착했다. 'Venetian'이라는 호텔이었는데 크기가 어마하게 컸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이라고 했다. 참 건물을 둘러보면서 기가 막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건물 하나에 완전히 다른 도시를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건물 내부를 완전 이탈리아 베네치아 풍으로 꾸미고 심지어는 천장을 하늘로 표현이 되어있었다. 이걸 보면서 자본이라는 것이 참 대단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정말 자본주의의 끝을 보는 듯 한 느낌이었다. 이 공간이 정말 별났던 것은 분명 건물 안인데 강이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 곤돌라가 다니고, 곤돌라 운전수들은 진짜 베네치아 운하의 운전수처럼 배 위에서 노래를 불러 준다. 참 이걸 보면서 황당하고, 신기하고, 온갖 느낌이 다 스쳐 지나갔다. 건물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성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지노도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사람들이 '도박'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잠시 관찰하기도 했다. 이어서 'Dancing water'이라는 서커스를 보기 위해 City of Dreams라는 호텔로 향했다. 처음에는 서커스를 본다기에 단순 기예를 하는 것인가 생각을 했는데, 이건 내가 생각한 서커스의 상상 이상이었다. 서커스와 연극과 뮤지컬이 합한 형태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기예와 무대 전환과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종합 예술의 결정체였다. 무대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는데 작은 무대에서 물이 솟고 땅이 솟아오르고 배가 솟아오르고 하는 장면을 보니 정말 예술이었다. 단연 내가 봤던 공연 중 가장 최고였다. 서커스를 감상하는 내내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세계 최고 클래스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내 뇌리에 강하게 박아버린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황홀했던 1시간 30분의 공연이 끝나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는 길, 원래는 11시 59분 페리를 타고 떠나려고 했지만,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11시 30분 페리를 탔고 이내 홍콩으로 도착했다. 내일은 숙소 주변의 '소호 거리'를 걷기로 했다.
마지막 날은 푹 자고 일어나서 소호 거리로 향했다. 소호 거리는 세상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곳이었는데,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게 되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이나 올라가 정상에서부터 점점 내려오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0분 가량이나 타고 올라가야 정상이 나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터널 몇 개를 지났는데 터널마다 아주머니들이 쪼그려 앉아 무언갈 드시고 있으셨다. 소호거리는 우리가 여태 여행했던 홍콩과는 또 달리 한적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곳곳에 느낌 있어 보이는 가게나 건물들이 많았고, 그저 걷고 싶은 그런 동네였다. 걷고 있는 도중 뜬금없이 모스크가 하나 떡하니 우리 앞에 나타나서 한 번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니 모스크의 전도사 같은 분이 나오셔서 이슬람과 코란의 교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 주셨다. 모양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으며, 우주의 신비함은 모두 신으로부터 나왔다 하는 것이 주 골자였는데 여태 한국에서 들어왔던 교회와 성당의 교리와 별 다른 것이 없다는 점이 신기했다. 전도사님이 우리에게 음료수도 나누어 주시고 꼭 한번쯤 코란을 공부를 해 보라고 하셨다. 모스크에서 나와 소호거리 곳곳을 구경했다.
출발할 때는 날씨가 맑았는데 여기도 날씨의 변덕이 심했다. 이내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도 슬슬 고파와서 보이는 영국식 펍으로 들어갔다. 간단히 피자와 와인 한 잔을 즐기고 있으니 비가 어느 정도 그쳤다. 어느 정도 소호 거리 구경을 끝나고 IFC빌딩으로 향했다. IFC건물에서는 쇼핑을 했는데 들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그냥 의자만 보이면 계속 앉아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흐르고 점심시간이 되어 미리 알아 놓은 가게로 가려고 했으나 마침 휴점상태였다. 그래서 건물 안에 맛있어 보이는 아무 음식집이나 들어갔다. 늦은 점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에서도 웨이팅을 해야 했다. 우연히 발견한 가게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꽤나 유명한 가게라고 했다. 인기 메뉴 10개가 있었는데 거기서 몇 개 주문하고 또 우리가 먹고 싶은 것들 몇 개 더 주문했다. 대부분 우리가 먹었던 딤섬들은 미리 맛보았던 '딤딤섬'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음식은, '완탕면'이라는 음식. 저번에 먹었던 '탄탄면'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탄탄면은 자극적인 맛이 많이 섞여있었던 반면 이 완탕면은 순수 그대로 육수만 낸 느낌. 맛은 있었지만 여기서도 중국 특유의 냄새가 많이 나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맛있게 잘 먹고 일어났다.
그리고 아버지가 꼭 드시고 싶으시다는 'Jenny bakery'의 쿠키를 사러 침사추이 역으로 향했다. Jenny bakery는 공사 중이었는데, 공사장 앞에서 간이로 앞에서 쿠키를 팔고 있기는 했다. 이게 진짠지 가짠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속는 셈 치고 하나 샀다. 가격은 200HK$ 우리 돈으로 3만 원 돈이라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Jenny bakery를 들린 후 마지막 일정으로 발 마사지를 받으러 향했다. 길을 헤맨 끝에 마사지 가게를 발견했고, 이번 여행 간 고생 많이 한 내 발을 위해 찜질을 열심히 했다. 아주머니가 오셔서 직접 안마도 해 주셨는데 정말 신세계가 펼쳐지는 듯했다. 어떻게 그렇게 아픈 부위를 잘 알고 있으신지, 30분 정도 안마를 받고 나니 많이 시원했다. 발 마사지를 끝으로 우리의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여행의 마지막을 달래며 아까 샀던 Jenny bakery 쿠키를 꺼냈다. 입안으로 가득 퍼지는 버터향, 한 번 쯤은 먹어 볼 음식이기는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비행기가 있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일찍 준비해서 숙소를 나섰다. 부모님, 가족 덕분에 좋은 여행과 좋은 추억을 남기고 홍콩과 마카오를 떠나는 것 같다. 너무 감사합니다. 곧이어 유럽으로 떠나는데 부디 안전한 여행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입학) D+1069 2017.02.03. (금) ~ 2017.02.28. (화)
<Icoos와 함께하는 유럽 여행>
ㆍ 드디어, 6개월간 미치도록 살았던 끝에 열매를 맺는 시간이 왔다.
Icoos라는 단체를 통해 떠나는 22박 23일간의 여행을 위해서 나는 아침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매일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중간에 우여곡절과 좌절이 많았지만 드디어 내가 '유럽 여행'이라는 관문 앞에 서게 되었다.
2017년 2월 3일 밤 11시 40분, 인천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밤늦은 시간에 비행기를 타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이렇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도 처음이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Emirate 항공사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태 단시간 비행 밖에 해보지 않았기에 유럽을 가는 내내 무얼 하나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개인용 IT pad가 있었다. Pad를 만지다가 기내식 먹고 잠자고 하다 보니 금방 10시간이 지나 두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약 한 시간의 환승 대기 시간과 6시간 정도의 비행을 끝으로 총 20시간을 이동해 드디어 바르셀로나의 엘 프라트(El prat) 공항에 도착했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반갑게 보이는 Icoos의 팻말이 보였다. 앞으로 22일간 우리를 끌어가 주실 인솔자 님들이 계셨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에 타서 숙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인솔자님께서 간단한 자기소개와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해 주셨다.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돈과 가장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안전이라고 강조해주셨다. 약 40분을 달려 우리의 첫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입실을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정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비행기에서 만났던 내 옆자리 외국인이 그토록 추천해 준 '람블라(La Rambla)' 거리였다. 람블라 거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감도 잘 안 왔지만 그저 걸어보기로 했다. 숙소 앞으로는 바르셀로네타(Barceloneta)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스페인 바닷바람이었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너무 매서웠다. 바람에 밀리듯이 또 끌리듯이 람블라 거리를 향해 점점 나아갔다. 람블라 거리에 도착하기 전 너무나도 예뻐 보이는 골목이 하나 보였다. 우리 모두 그 골목에 홀린 듯 빠져 들어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지역은 '고딕 거리(Barri Gòtic)'라고 해서 로컬에서는 예쁜 거리로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로 와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대개의 건물들이 세련되고 웅장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우와! 저 건물 뭐야?’ 하고 Google maps를 들여다보면 노동조합의 건물이고, 시청 건물이고 그랬다. 이 예쁜 거리에서 우리의 첫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실 거리 골목골목이 너무 예뻐서 어디를 두고 찍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배경을 막 두고 찍어도 사진이 마치 그림처럼 나왔다. 숙소에서 고딕거리까지 쭉 걸어왔는데 보통 먼 거리가 아니었다. 내 기억엔 한두 시간을 내리 걸었던 것 같았다. 금방 배가 고파져서 바로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가는 기준은 딱히 없었다. 그저 느낌으로 들어갔기에 Google maps에도 검색이 되지 않는 작은 경양식점에 들어갔다. 사실 서양에서 영어를 써 본 적이 없어서 내 발음을 알아듣긴 할까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아주 수월하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양이 얼마나 나올지 몰라 여섯 명이서 세 종류의 음식만 시켰는데, 샐러드 하나, 피자 하나, 스테이크 하나 이렇게 나왔다. 여섯 명이서 먹기에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아까 전까지 계속 움직임 없이 기내식을 먹어 왔기에 여섯 명이서도 푸짐히 먹었던 것 같다. 인당 3유로씩 부담했던 것 같다. 유럽의 맛이 어떤 것이구나 알 수 있었던 가게였다. 밥을 먹고 나니 밤이 늦어져 그냥 바로 숙소로 복귀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내내 건물들의 생김새만 보면서 왔던 것 같다. 그냥 감탄의 연속이었다. 너무 멋있게 생긴 건물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건물들의 용도가 노동조합이고, 시청이라는 것에 또 놀랐다. 곳곳이 그림이라, 왜 유럽으로 다들 오는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별 다른 추가 일정 없이 숙소로 들어와서 쉬었다. 무엇보다도 '구엘 공원(Parc Güell)'이라는 곳이 오전에 무료 개방을 한다고 해서 아침에 일찍 갈 생각으로 모두들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9시 정도에 조식을 먹고 간단히 준비를 한 다음 10시쯤이 되어 숙소를 나섰다. 어제 미리 얘기한 대로 첫 번째 목적지인 '구엘 공원'으로 바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근처에 내려서 구엘공원으로 걸어갔는데, 생각보다 올라가는 길에 경사가 짙어서 가는 내내 힘들었다. 도착하고 보니 구엘공원 바로 앞까지 다니는 버스가 있었다.
표지판이 안내하는 대로 걷고 또 걷다 보니 겨우 구엘 공원에 도착했다. 우리의 첫 여정기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처음 온 우리를 반겨준 것은 바로 탁 트인 풍경이었다. 게다가 날씨까지 너무 좋아서 해안선이 다 보일만큼 시야가 깨끗했고 눈이 부셨다. 구엘공원 구석구석에는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생각 외로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예쁘다, 아름답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냥 곳곳이 그림이고 곳곳이 Photo Spot이었다.
그리고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한 커플이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현지인인지 여행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데이트를 하면 없던 사랑도 돋아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나도 멋졌던 구엘 공원을 뒤로하고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공간인 '사그리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로 향했다. 우리나라말로 '성 가족 성당'으로 불리는 이 성당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여행 전에 본 한 다큐멘터리 덕분이었다. 빛으로 가득 둘러 쌓인 성당의 내부는 영상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그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는데 버스에서 별 다른 안내 방송을 안 해주어서 제시간에 못 내릴 뻔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근처로 오니 점심시간이라 뭐라도 먹고 구경하기로 했다. 성당 주변에 있는 작은 에스프레소 바에 들어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중국인이셨다. 게다가 영어를 잘 못하시는 바람에 주문하는데 아주아주 애먹었다. 그림을 보여주며 겨우겨우 시켰는데 맞게 주문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음식을 받고 보는데 예쁘게 생긴 음식이 나왔다. 하지만 이것도 양이 얼마나 나올지 몰라 2 인당 1 접시로 주문했는데 굳이 앞으로도 적게 주문할 필요는 없는 듯했다. 맛은 엄청 있었지만 딱 부족할 만큼의 양이 나왔다. 그래도 음식을 싹 비우고 성당으로 향했다.
건물이 원체 거대해서 아주 멀리서도 건물의 생김새가 다 보였다. 이렇게 큰 성당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규모가 어마무시했다. 신기했던 건 이 어마무시한 건물에 기둥 하나하나가 다 조각으로 새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눈앞에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 풍경이었다. 표를 구매해서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완전 탄성을 질러버렸다.
정말 말 그대로 오색 빛의 향연이었다. 옛날 유럽인들은 신을 '빛'으로 인식해서 성당 안으로 최대한 다양한 색의 빛이 들어오게 했다는데 정말 성당에 들어오니 세상에 존재하는 색들을 모두 모아 놓은 모양이었다. 너무너무 멋지고 예뻤다. 중간에 기도하는 공간이 있기에 그냥 따라 들어가 자연스레 기도를 했다. 성당 안에는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냥 좋았다. 너무 멋있었다.
그래도 한 시간쯤 구경하고 나니 다들 지쳐 보였다. 너무나도 멋지고 황홀한 공간을 지나 주변에 있다는 보케리아 시장(Mercat de Sant Josep de la Boqueria)으로 향했다.
우리의 오늘 마지막 일정은 '몬주익 성(Castell de Montjuic)'이었기에 시간이 많이 있지는 않았다. 그냥 보케리아 시장에서 젤라토를 하나 구매하는 것으로 구경을 끝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젤라토를 먹고 있는데 공지사항이 하나 올라왔다. 지금부터 '땅따먹기'라는 것을 하는데 미션을 어느 정도 수행한 팀에 대해서 상금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도시별로 미션이 정해져 있었는데 지금 위치한 바르셀로나에서는 '츄러스 먹기'가 있었다. 앞 뒤 잴 것 없이 바로 츄러스를 사 먹으러 람블라 거리로 향했다.
츄러스의 맛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츄러스를 먹으며 약간 걷다 보니, '카탈루냐 광장(Plaça de Catalunya)'이 나왔다. 유럽에서 처음 온 광장이었는데 광장은 완전히 비둘기 세상이었다. 광장을 가득 메울 만큼 비둘기가 많았고 그 모습이 신기해서 동연이 형은 비둘기를 여기저기 날리고 놀고 있었다.
여기저기 비둘기의 먹이를 챙겨주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여기의 비둘기는 친구처럼 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원래 몬주익성은 저녁 일몰 때 가야 예쁘다고 했는데 점점 해가 지는 시간이 되어서 몬주익성으로 급하게 택시를 타고 향했다.
몬주익성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풍경에는 바르셀로나 시내에 있는 모든 집들이 일몰 때의 햇살을 받아 모두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너무 좋았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고, 너무나도 행복했다. ‘행복하다’라는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이 없었다. 얼추 시간이 지나니 하늘은 분홍 빛으로 물들었고 곧 해가 기웃하더니 저물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거의 2시간을 몬주익 성에서 머문 듯하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몬주익성을 꼽겠다.
몬주익성에서 해가 지고 나서야 식사하러 슬슬 시내로 내려갔다. 아까 받은 땅따먹기 미션 중 '빠에야(Paella) 먹기'가 있었는데, 이 빠에야가 뭔지 몰라서 택시 기사님에게 여쭤보니 무작정 한 가게에 내려주신다. 어쩔 수 없이 택시 아저씨를 믿고 한 가게로 들어갔다.
'Salamanca'라는 식당이었는데 외관부터 고급져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빠에야를 먹으러 왔기에 당당히 들어갔지만. 처음 보는 단위의 가격에 놀라고 말았다. 빠에야 한 접시에 거의 35유로씩 받고 있었다. 약간 부담스러운 가격이긴 했지만 여행 초반이라 금전적 여유도 있었고, 유럽 온 김에 기분 내 보자는 조원들의 의견에 따라 빠에야를 주문하기로 했다. 우리가 주문한 빠에야는 온갖 해물이 다 들어간 화려한 음식이었다.
이 가게는 원칙이 1 인당 1 주문이라서 생선 고기에 고기 모둠까지 주문했다. 받고 보니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게다가 접시에는 랍스터까지 담겨 있었다. 내 인생의 첫 랍스터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먹고 죽자는 생각으로 미친 듯이 먹었다. 하지만 원래 먹을 수 있는 양이 원체 많아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놔두고도 다 먹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게다가 직원분이 너무 친절하셔서 너무 고맙고 감사히 식사를 했다. 심지어 종업원 분이 랍스터 껍질까지 손수 다 벗겨주시기도 했다. 개 중에 토끼 고기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질기거나 독특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본격적인 유럽 여행 첫날 이렇게 배부르게 식사도 하고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좋았다. 사실 빠에야는 그렇게 비싸고 고급화된 음식은 아니라던데 우리가 특이한 케이스이긴 했다. 맛있게 빠에야를 먹고 가게 앞에 펼쳐진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숙소로 복귀해서 매니저님과 간단한 면담을 가진 후 오늘을 마무리했다. 오늘 총합해서 4만보를 걸었단다. 우리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식을 먹은 후 프랑스의 입구 쪽에 있다는 도시 '아를'에 도착했다. 아를에 도착해서도 별다른 규칙 사항이 없었다. 그냥 우리끼리 자유 여행을 출발하면 되었다. 숙소 앞으로 나오자마자 커다란 광장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웬일인지 높게 솟은 오벨리스크 위로 새떼가 줄기 차게 날고 있었다. 아를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라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오늘도 역시 느낌을 따라 음식점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음식 주문을 하려고 했으나, 여기는 프랑스였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겨우내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직원에게 겨우 신체 언어를 이용해서 음식을 주문했다. 사실 주문이랄 것도 없이 거의 모두가 점심 특선을 먹었다.
반 피자, 반 샐러드인 메뉴였는데 유럽의 맛 치고는 생각보다 그렇게 짜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나라와 달리 Topping이 정말 정직하게 치즈와 토마토 등 정확히 시킨 그대로 나오는 게 신기했다. 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먹을만하면서 매력 있었다.
밥을 먹은 후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에게 간단한 한식 홍보 미션을 수행한 후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그림을 그렸다는 강가로 향했다.
고흐의 영감이 되었다는 '혼느 강(Le Rhone river)'으로 가는 길에 외국인으로부터 인종 차별을 당했다. 우리 보고 원숭이 자세를 취하며 "우끼끼" 하는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앞에 서 있어서 보지는 못했는데 직접 차별을 당한 조원들은 기분이 많이 상한 듯 보였다. 하지만 우리 앞에 펼쳐진 혼느강은 그 기분을 모두 잊게 할 만큼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저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은 작은 강가지만 정말 고흐가 보고 감명을 받았을만한 모습이었다. 마침 해도 뉘엿뉘엿 지고 있었기에 강가에 반사되는 해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사진 같은, 풍경 같은 한 폭의 예술에 감탄하며 한참이나 혼느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를은 작은 도시라 그다지 크게 구경할 거리는 없었는데 그냥 골목길 사이사이를 거닐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프랑스는 참 특이한 게 자신의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무척이나 강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 구석구석에 프랑스 국기가 많이 걸려 있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자신의 국기를 사랑하는 나라라, 참 멋있는 국가인 듯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한 잔 하고 있는데 매니저님이 당구나 한 번 치자면서 우리를 불렀다. 종목은 'Pocket ball'. 동네 당구 물 30을 치는 나였지만, 동연이 형이 술에 많이 취하는 바람에 그냥 내가 큐대를 잡았다. 나조차도 처참히 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예상을 깨고 1승을 거두었다. 상대는 당구를 300친다는 고수였는데, 참 운이 좋았다. 이어서 승하 누나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큐대를 잡더니 결승전에서 이겨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상품으로 샴페인 한 병을 탔고, 결승에서 맞붙은 1조와 나눠 마셨다. 오늘 밤은 뜨거웠고, 완전 기분 좋았다.
다음 날도 버스에서 자고 일어나니, 리옹에 도착해 있었다.
리옹에서 배치받은 숙소는 시내에서 멀기에 약간 일찍 출발해야 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 표를 끊고 리옹의 중심, 벨쿠르 광장(Place Bellecour)으로 향했다.
벨쿠르 광장에 도착했을 때 탄성부터 나오고 말았다. 내가 바랐던 '광장'이라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구나 싶었다. 광장 중앙에 태양왕이었던 루이 14세의 동상이 웅장하게 서 있었고 주변으로 커다랗게 광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광장 옆으로 커다란 관람차도 자리 잡고 있었다. 보기보다 규모가 커서 엄청 멋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도시에 도착했을 때가 점심시간 부근이라 먹자골목이라는 '마로니에 골목(Rue des Marronniers)'으로 향했다. 오늘도 밥집에 들어가는 조건은 단 하나, '느낌'으로 들어갔다. 마로니에 골목을 지나고 있는데 어느 식당에서 한국인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방금 자신들이 식사했던 곳이 괜찮았었다고 추천해 주시길래 그쪽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역시 영어가 통하지 않았고 심지어 영어 메뉴판도 없었다. 그냥 느낌으로 시켜야 했는데 여자 조원들은 '타르타르(tartare)'라는 메뉴가 있기에 그걸 주문하고 나는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서 '소고기'라고 나오는 메뉴를 시켰다. 그 결과 충격적인 음식이 우리 앞으로 나왔다. 육회 같은 음식이 바로 '타르타르'였다. 다들 생선가스에 나오는 '타르타르' 소스를 기대하고 주문했건만, 뜬금없는 육회가 나왔다. 맛은 있었지만 몇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와서 그런지 다들 속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였다. 모두들 먹기는 먹었지만 내내 핫소스를 가뜩이나 뿌려서 먹더라. 내가 시킨 소고기는 먹을 만은 했지만 많이 질겼다.
식사 같지 않은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 벨쿠르 광장으로 돌아왔다. 아까 본 그 관람차를 한 번 타보자는 얘기가 나와 우리 조원 모두가 그 관람차에 올랐다. 관람차는 꽤 높기도 했지만 이게 고정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 빙빙 돌아가서 꽤나 무서웠다. 밑으로 내려가면 요원 아저씨가 타고 있는 관람차를 팽팽 돌려주셨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성민이 누나는 정말 기겁하듯 무서워했다. 꽤나 높은 곳에서 보았던 리옹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관람차를 뒤로하고 이번 여행의 필수 관광지인 노트르담 대 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을 향해서 나아갔다.
보나파르트 다리(Pont Bonaparte)를 건너니 바로 '리옹 대성당(Cathédrale Saint-Jean-Baptiste)'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성 가족 성당만큼 운치가 있거나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느낌이 있는 성당이었다.
리옹 대성당을 뒤로하고 이어서 바로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 (Basilique Notre-Dame de Fourvière)'으로 향했다. 노트르담 성당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 경치를 구경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한데, 가는데 꽤나 높은 언덕을 올라야 해서 가는 길이 고난의 언덕이라고 불린다. 우리는 One day 교통권을 끊었기에 그냥 Trem을 타고 올라갔다.
경로를 잘못 찾아서 같은 구간을 두세 번 반복한 후에야 겨우 노르트담 대 성당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성당 외부에서 보는 풍경이 아주 예술이었다.
리옹이라는 도시의 정말 독특했던 점은 모든 건물의 지붕이 빨간색으로 색칠되어 있었다. 도시에 색감이 감돈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넋을 놓고 한참이나 구경했다. 결코 잊지 못할 풍경이 될 것 같다. 너무 좋았고, 보는 내내 너무 행복했다. 노르트담 성당을 뒤로하고 구 시가지로 나아가는 길, 우연히 광장을 발견해 잠시 들리게 되었다.
광장에는 커다란 분수가 하나 있었는데, 이 분수에 우리의 소원을 하나씩 빌어서 동전을 하나 던져 넣기로 했다.
안쪽에 던진다고 넣긴 넣었는데 정확히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의 소원을 빌어서 넣은 동전이니 좋은 결과를 안겨 주었으면 좋겠다. 분수에 동전을 넣자마자, 신기하게도 분수에 불이 들어왔다. 예상하지 못 한 곳에서 너무나도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광장 주변에는 Shopping mall이 많아서 조원들과 같이 산책하는 기분으로 주변을 돌았다.
사실 벽화 거리로 유명한 크루와루스 거리(La Croix-Rousse)도 들렀지만 어둠이 지는 바람에 그냥 바로 숙소로 되돌아와서 쉬었다.
사실 리옹이라는 도시는 큰 기대가 없었던 곳이다. 하지만 생각 외로 너무 멋지고 예쁜 풍경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더욱이 깜짝 놀란 도시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보석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단연 리옹이라고 답하리라. 그만큼 리옹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인상적이었고, 풍부하게 다가왔다.
다음 날도 자고 일어나니 파리에 도착해 있었다. 파리라는 도시는 무척이나 아름답기도 하고, 그만큼 위험하기도 한 도시라고 모두가 일컬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파리를 겪은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말을 전했다. 다른 도시에서는 정신 팔고 다녀도 되지만 파리에서 만큼은 정신을 차리라고 모두들 이야기했다. 이런 말을 해 줄 만큼 무서운 도시기도 했다. 얼마나 무서운 도시인지 두고 보자고.
오늘도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나섰다. 파리에 도착한 시간이 2~3시 즈음 시간이 애매하기에 식사를 한 후 그냥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오늘 최대한 다 보기로 했다.
동연이 형이 갑자기 '케밥'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서 일단 주변에 위치한 케밥 가게로 향했다.
살면서 여태 케밥을 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이 '케밥'이라는 것이 내가 상상한 생김새와는 많이 달랐다. 샌드위치와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중국냄새가 났었다. 그래도 내 음식은 냄새가 덜해서 먹을만했는데, 나머지는 아니었다. 겨우내 먹고 숙소 주변에 위치한 몽마르트르 언덕(Montmartre)으로 향했다.
몽마르트르 언덕 앞에 '사랑해 벽(Le mur des je t'aime)'이라고 있는데 몽마르트르 언덕을 들리기 전 그쪽에 잠시 들렀다가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사랑해 벽 근처에 가니 자꾸 GPS가 흔들리는 것이었다. 마침 주변에서 8조 사람들을 만났는데 마침 우리와 동선이 겹치기에 같이 이곳을 찾아가려고 했다. 나는 8조 조장님과 잠시 정보 교환을 한다고 정신을 그쪽에 팔고 있느라 우리 조원들이 어디 있는지 신경을 잘 못썼다. 덕분에 우리 조원들이 약간 서운한 듯 보였다.
겨우내 사랑해 벽에 도착을 했지만 마음 상한 조원들은 그냥 먼저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가겠다고 발길을 돌렸고 그에 처음으로 의견 충돌이 있었다.
욱하고 번진 충돌이지만 거진 빠르게 화해를 했고 '사랑해 벽'을 지나친 채 본래 목적지인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향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갈 때는 나비고(Navigo; 파리 일일 교통권)가 있으면 그냥 트램을 타고 올라가면 되는데, 우리는 따로 교통권을 끊지 않았기에 그냥 걸어 올라갔다.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소매치기가 많다고 소문나서 지갑을 꽉 움켜쥐고 갔는데 생각보다 소매치기보다는 흑인 잡상인들이 많았다.
우리 조원 앞으로 외국인 두 명이 빠르게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는데 같은 한국인이 그새 소매치기를 당한 듯했다.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몽마르트르에서 일몰을 보려고 했지만 구름과 안개가 끼는 바람에 일몰은 보지 못하고 그냥 원래 목적지인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이 위치해 있는 샹젤리제 역(Champs-Élysées–Clemenceau)에 내리자마자 갑자기 우리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옆으로 한 남자가 어떤 사람을 제압하더니 Police! Police~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순간 내 뇌리를 스치고 간 생각으론, 우리 시선을 뺏어 순간 우리 물건을 소매치기하는 줄 알고 빠르게 도망갔다. 개찰구를 나오고 보니 같은 조원인 현지의 핸드폰이 없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방금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는데. 프랑스어도 안되니 방법이 없어서 그저 샹젤리제 역에 서 있어야 했다.
어느 순간 자신이 경찰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이 사람이 경찰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개찰구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현지의 핸드폰을 들고 나타나 주셨고 그제야 진짜 그분이 경찰임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사복 경찰이셨고, 마침 소매치기를 하는 모습을 포착해서 바로 소매치기범을 제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매치기 범들의 소매치기 수법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었고, 진술서와 고소장을 씀으로써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우리도 많이 당황스러웠고, 놀래서 같이 눈물을 훔치는 조원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사태가 잘 해결됨에 감사했다. 원래는 그냥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왕 샹젤리제까지 왔으니 개선문은 보고 가자는 현지의 의견에 개선문을 보러 나갔다.
밤의 개선문은 정말 커다랗고 웅장했다. 하지만 방금 있었던 일 때문에 카메라나 핸드폰을 꺼내기가 겁났다. 그래도 용기 있게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고, 또 찍어준 사람과 함께 같이 사진도 찍었다. 개선문을 보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정신이 너무 힘들었다. 빨리 쉬고 싶었다.
둘째 날은 우리 조의 남자 두 명과 8조 조원들이 같이 다니기로 했다. 마침 8조 조원들이 인솔자를 따라 관광을 한다기에, 우리가 따라가는 모습이 되었다. 너무 좋았다.
일정은 평화의 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평화의 벽은 그냥 다른 것 없이 벽 한 면에 '평화 평화 평화'라고 끝없이 적힌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평화의 벽 뒤로 칙칙한 색의 에펠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본 에펠탑은 그렇게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심지어, ‘에이 저게 에펠탑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이 없었다.
그냥 파리 시내에 커다란 철골 덩어리가 커다랗게 솟아 있는 것 같았다. 이게 그렇게도 중한 명소인가. 에펠탑에 왔지만, 에펠탑에 온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느낌이 싱숭생숭했다. 이 에펠탑을 예쁘게 볼 수 있는 장소가 그래도 몇 군데 있어서 바로 밑에서도 봤다가, 샤이오 궁(Palais de Chaillot)에서도 봤다가 했다.
무척이나 기대했던 에펠탑을 뒤로하고 어젯밤에 보았던 개선문을 좀 더 자세히 보러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은 밤도 매력 있었지만 낮도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유명한 촬영 장소라는 신호등 사이 거리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러 나섰다. 샹젤리제 거리는 별다른 것 없이 그냥 쇼핑의 거리였다. 내가 느끼기엔, 일본 긴자의 축소된 곳으로 보였다. 쇼핑하고 싶은 사람들은 쇼핑하고 아닌 사람들은 그냥 간단히 구경하는 것으로 샹젤리제 거리를 뒤로 하고 한국인들의 메카인 몽쥬 약국(Pharmacie Monge)으로 향했다. 몽쥬 약국에서 어머니와 누나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마지막 코스인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으로 향했다.
사실 혼자 왔었더라면 박물관에 들어 올 생각은 추호도 안 냈겠지만, 마침 오늘이 금요일이라 무료입장 혜택을 누릴 수 있다기에 따라 들어왔다. 루브르 박물관은, 정말 컸다. 그리고 수많은 작품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림에 혼이 다 빠져나갈 만큼 작품 수가 어마하게 많았다. 집중 안 하고 그저 스쳐 지나 지나가는데도 거의 2~3시간 가량을 그곳에서 돈 것 같다. 그냥 수많은 그림들에 혼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거기서 모나리자도 보고 밀로의 비너스도 봤지만 기억은 잘 안 나고 외려 파니니가 그린 'Modern Rome'이라는 한 가지 그림만 뇌리 속에 박혀 있다.
수많은 작품들에 혼이 빨렸기 때문일까, 사실 아무것도 신경을 쓴 것이 없는데 오늘 하루가 너무 지쳤다. 왜 이럴까. 오늘 함께했던 8조 조원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저녁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마지막 음식인 '염소 치즈 펜네'는 입도 못 대었다. 살면서 '염소 치즈'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보았는데 정말 이토록 느끼한 소스는 처음 먹어보는 듯했다. 그래도 대부분 음식들은 맛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오늘 여행의 일등공신인 김영호 인솔자님, 그가 있어서 너무 좋고 행복했다.
다음 날은 7조와 같이 다니기로 했다.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에서 만나서 이동하기로 했기에 콩코드 광장 앞에 있는 성당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여느 성당과 다를 바가 없었던 마델린 성당(Église de la Madeleine)을 뒤로하고 7조 조원들을 만나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돌아다녔던 일정은 어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는데 특이하게도 '신 개선문'이라는 장소에 들렀다.
신 개선문은 파리 시내에 위치한 개선문과 달리 현대적인 느낌이 아주 강했다. 게다가 신 개선문의 용도는 회사 사무실이라고도 했다. 날씨가 좋으면 신 개선문부터 샹젤리제 거리까지 쫙 보인다고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지 사실 외관은 흉했다. 7조 조원들과 같이 신 개선문 앞에 Shopping center에서 같이 물건을 사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들과 함께라서 너무 좋았지만, 대부분의 관광지가 어제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기에, 인상적인 하루는 아니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인솔자님이랑 함께 하는 인솔자 관광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들 피곤해서 그런지 아침 늦게 일어나 파리 대학가의 '코스 요리'를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사실 프랑스 하면 요리로 유명한 나라인데, 사실 정식으로 코스 요리를 먹으려면 2 ~ 3 시간은 먹어야 한단다.
우리가 들렀던 가게는 약식으로 운영하는 가게로, 전채 요리 - 메인 요리 - 후식으로 코스 요리를 운영하는 가게였다. 전채 요리는 무엇을 먹을지, 메인 요리는 무엇을 먹을지 등, 매니저님의 도움을 받아 이것저것 일단 주문했다. 내 앞으로 나온 첫 번째 요리로는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Escargot)가 나왔다.
기구를 이용해 껍질을 잡고 내용물만 꺼내 먹으면 되는데 달팽이를 어떻게 요리를 했는지 달팽이가 까맸다. 비주얼이 역해서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막상 먹고 보니까 쫄깃쫄깃하니, 식감이 괜찮았다. 먹는 내내 달팽이 생각만 안 한다면 전채 요리로 충분히 괜찮은 음식이었다.
향신료의 맛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에스카르고를 먹을 때 그저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향을 즐길 수 있었다.
그중에는 양파 수프가 머그잔에 담겨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독특하진 않고 꽤나 익숙한 맛이었다. 전채 요리와 메인 요리 사이에 3~4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조금 길었는데 조원들과 같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 음식이 나왔다.
나는 고기를 시켰는데 이게 'Rare'로 먹지 않으면 도저히 질겨서 잘 못 먹는다고 하셨다. 아직 한국 사람 식감에는 Medium이나 Well-done은 많이 질길 수 있으니 유럽에서 가능하면 Rare로 식사를 해야겠다. 고기가 나왔는데 간도 어느 정도 맞고, 음식을 즐기는 것에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옆에 앉은 동연이 형은 연어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베트남 쌀로 요리한 밥도 제공이 되었다. 약간 느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으니 맛이 괜찮았다. 거창한 음식들은 아니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식사 시간이었다.
마지막 후식으로 샤베트를 시켰는데, 맛은 패션 후르츠ㆍ라임ㆍ라즈베리 세 가지 맛이었다. 이게 코를 탁 때릴 만큼 상큼해서 여태 먹은 기름기를 딱 씻어주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맛이 너무 강해서 전부다 먹지는 못 했다. 총합 20유로 정도 나왔지만 그만큼 가치를 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어서 주변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 성당에 가기로 했다.
이 '노트르담'이라는 단어가 프랑스어로 '마리아'라는 뜻이라는데, 이게 특정한 지역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서 프랑스 어느 도시에 가도 이 '노트르담' 성당을 하나씩은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역시도 크기는 엄청나게 컸고, 사람도 어마하게 많았다. 구불구불하게 서 있는 입장 줄을 기다렸다가는 오늘 꼬박 하루 다 샐 것 같아서, 노트르담의 명물인 'Paris zero point'만 밟고 가기로 했다.
파리의 시작점이라는 Zero point. 이 성당 앞에 있는데 Zero point를 밟으면 반드시 파리에 다시 오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Zero point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주변을 잠시 거닐었다.
노트르담 성당 주변에 '시청(Hotel Ville)'이 있었는데 시청 건물도 엄청 웅장했다. 특히 자유의 상징인 듯 시민 동상의 손에 EU기와 프랑스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던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에펠탑의 야경을 보러 다시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확실히 밤에 보는 에펠탑이 훨씬 예쁘고 인상 깊었다. 유럽을 겨울에 오는 딱 한 가지의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럽의 야경을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파리를 여름에 온다면 밤 11시가 되야지만 해가 진다는데, 겨울에 오니 야경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참고로 여름에 야경을 본다면 치안은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빛나는 에펠탑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이 되자 에펠탑이 완전히 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7시 ~ 7시 30분 사이에 하는 행사라고 하는데 눈부시게 반짝이는 에펠탑을 바라보니 너무 예쁘고 황홀했다. 이렇게 예쁜 야경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 풍경을 보는 순간 샹젤리제 역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던 것도, 사랑해 벽 앞에서 처음으로 다투었던 것도, 비 오는 날 비 맞으며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던 것도, 처음 본 에펠탑 앞에서 약간 실망했던 것도, 커다란 루브르 박물관을 걸으며 온몸에 진이 빠졌던 것도 모두 씻기듯, 저 멀리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예쁜 광경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도 감사함을 느꼈다.
정말 행복하고 정말 좋았다. 주변에 파리로 가겠다는 사람이 생긴다면, 반드시 에펠탑의 야경을 추천해 주어야지. 너무나도 아름다운 에펠탑을 끝으로 우리의 파리 여행은 끝이 났다. 오늘의 여행 역시도 김영호 인솔자님 덕분에 행복한 여행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인솔자님 정말 감사하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행복하게 보내고, 다음 날 디종으로 넘어왔다.
이 디종이라는 도시는 어떻게 보면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 잠시 들렀다 가는 쪽으로, 가볍게 즐기는 도시라고 생각하면 쉽다고 했다.
사실 도시 자체도 그렇게 크지 않아서 충분히 발 닿는 대로만 걸어도 한두 시간 정도면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오늘 디종에 도착한 시간도 점심시간 부근이라, 일단 점심 식사부터 먹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마침 휴식 시간에 걸리는 바람에 결국 리베르떼 거리(Rue de la Liberte)에 있는 McDonald's에서 점심을 때웠다.
리베르떼 거리는 유명 상표의 가게도 많고, 가격도 저렴한 만큼 쇼핑의 메카였는데, 쇼핑을 하고 싶다는 여자 조원들의 의견에 오늘만큼은 여자 조원, 남자 조원 따로 다니기로 했다. 마침 8조의 남자 조원들도 따로 다니고 있기에 4조, 8조 남자 조원 4명이서 같이 다니기로 했다. 우리 4명의 오늘의 여행 주제는 딱히 없었다. 그저, 발길 가는 대로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닿은 곳은 '다르시 정원(Parc et Jardin Darcy)'이라는 곳이었는데, 이곳은 '다르시'라는 사람의 이름을 빌어 만든 공원인 듯했다. 날씨가 좋고 정원 중앙에 커다란 연못이 있어서 시원하기도 하고 해서 좋았다. 유럽의 여유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인 듯싶었다.
따뜻한 풍경을 보며 따스한 날씨를 잠시 느낀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발길 가는 대로 걷다 보니 막다른 길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교외로 조금 많이 빠져나왔나 보다. 그 순간 우리 앞으로 축구장이 하나 보였고, 거기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꼬마 아이들을 발견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야 쟤들이랑 축구 같이 해볼래?"라는 의견이 나왔고 그 길로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 같이 축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14살이라고 했는데 나보다 키가 더 큰 학생도 있었다. 어쨌든 이 아이들과 축구를 시작했고 군대 전역한 이후로 이렇게 세차게 뛰어본 것은 처음일 정도로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녔다.
운동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고, 원체 발재간이 좋지 않아서 축구를 잘 못하는데 그래도 나름 성인이라고 14살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상대가 되었다. 동연이 형이나 영주 형이 축구를 꽤 하는 편이라서 이기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는데, 굳이 이겨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결국 막판이 다 되어 계속 골을 먹혀 주었다.
어쨌건 유럽에서 만난 학생들과 이렇게 같이 땀 흘리고 운동하고 같이 웃고 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좋고 행복했다. 나도 형들도 몸은 힘들었지만 얼굴만은 계속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만큼 재미있었고 유럽에서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라 그 순간이 너무나도 짜릿했다.
축구 경기를 끝나고 고생한 아이들에게 젤라토를 하나씩 사 주기로 했다.
젤라토 가게로 이동하는 동안 서로 서투른 영어로 계속해서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게임 같은 사소한 공통점을 찾아내서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예뻤다.
개중에는 페이스북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형들이랑 페이스북 친구를 맺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꼭 한국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감동받았다.
중간에 젤라토 가게 어르신이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이 어르신께 우리나라 한식 홍보를 해 보기로 했다.
사전에 한국 음식 홍보 재료로 약과와 강정을 준비해 갔는데 외국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어 하신다. 감사했다. 어르신으로부터 간단한 소감을 받은 후 조원들을 만나러 다시 리베르떼 거리로 향했다.
리베르떼 거리에서 조원들을 만나 숙소로 돌아왔다. 밤이 되자 흑인들이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열기도 했는데, 분위기가 험악해서 조금 무서웠다. 여기 시위의 방식은 그냥 길거리에 라커로 글씨를 쓰고 도망을 막 가는 방식이었다. 한바탕 집회가 끝나고 난 뒤의 거리에는 빨간색 라커로 써진 글씨가 길거리 곳곳에 가득했다. 참 독특하면서 신기한 문화였다.
밤에 조원들이 내게 틴트를 발라 주었다. 발색이 지워지지 않아서 그냥 입술에 틴트를 칠한 채로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은 스위스, 알프스 산맥으로 대표되는 만년설의 도시이자 인터라켄에 도착을 했다. 원래 생각에는 아침 일찍 스위스에 도착하면 융프라우(Jungfrau)를 본 다음 잠시 하이킹을 하려고 했지만 오후 1시쯤에야 인터라켄에 닿는 바람에 융프라우만 구경하고 오기에도 빠듯했다. 인터라켄 오스트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기차부터 끊어서 융프라우로 출발했다.
처음 타보는 융프라우 기차라 어떻게 타는지도 잘 몰라서 한참이나 헤매었다. 겨우겨우 길을 찾아가며 기차를 아슬아슬하게 탔다.
기차를 타고 조금만 위로 올라가도 멋진 풍경이 우리 앞을 맞이한다. 뒤쪽으로 설산이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작은 마을이 오밀조밀하게 형성이 되어 있다. 참 귀여우면서 멋있는 동네였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수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절경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날씨가 너무나도 맑아 스위스의 산맥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환승 지점이 있는데, 그중 '클라이네 샤이텍(Kleine Scheidegg)'이라는 지점에서는 leisure sports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꽤 많이 보였다. 세계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leisure sports를 하면 기분이 어떨까. 참 멋있고 부러웠다. 게다가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책상에만 앉아 있는 우리나라의 학생들과 달리 자유롭게 스키를 타면서 이곳저곳을 누비는 이곳의 교육 문화가 정말 마냥 부럽기만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약 1시간가량 넘게 올라가면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한다.
융프라우 정상에 도착하면, 한국 쿠폰을 이용한 사람들에 한해서 '신라면'을 제공한다.
그런데 융프라우는 자체가 실내로 되어 있어서 칼바람을 맞으면서 라면을 먹지는 않고 테이블에 앉아 설산을 구경하며 먹으면 되었다. 그래도 느낌이 참 이국적이고 맛이 있었다. 참 독특한 경험을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 라면을 먹고 빠르게 융프라우를 돌아다녔다.
융프라우 투어는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고 그냥 안내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쭉쭉 걸으면 된다. 어차피 융프라우의 핵심은 '전망대'이기에 우리는 전망대 하나만 보고 꾸준히 나아갔다. 사실 길을 못 찾아 안에서 엄청 헤매었지만 그래도 결국 전망대를 찾아갔다.
전망대에서 본 융프라우는 정말 예술 작품이었다. 칼바람이 시리기는 하지만 사방이 눈으로 다 둘러 쌓여 있고 알프스 산맥이 풍기는 특유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풍경 하나하나가 그림이고 예술이었다.
사실 전망대가 넓지는 않았지만 이곳저곳 구경을 하면서 꽤나 오래 머물렀다. 그저 입 밖으로는 "행복하다."는 말만 나왔다.
아찔하고 짜릿하고 행복했던 풍경을 뒤로하고 나머지 관광을 이어나갔다. 융프라우를 알리는 요소들은 거진 비슷비슷했지만 그나마 기억에 남는 것은 '얼음 동굴'이다. 말 그대로 동굴이 얼음으로 되어 있었다. 스케이팅을 타듯 발을 구르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그중에 'Top of Europe'이라고, 유명한 명소가 있는데 거기서 잠시 머무른 후 기차 시간에 겨우 맞추어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표 검사 하는 아찌가 초콜릿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다시 인터라켄 동역으로 내려오니 어느덧 어둑어둑한 밤이었다. 하루 종일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 했는데 이대로 숙소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 주변 식당가에서 밥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가장 눈에 먼저 띈 중식당으로 일단 들어갔다. 나는 볶음밥을 주문했다. 중식당이라기에 중국 향신료 냄새가 많이 나면 어쩌나 약간 고민했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중국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고 심지어 맛도 있었다. 양도 엄청 푸짐했다. 하루 종일 굶었기에 마구 먹어서 겨우 한 접시를 비웠을 정도였다. 볶음밥 한 접시 거의 13,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스위스 물가가 실감 나는 한 끼의 식사 시간이었다. 정말 행복한 스위스 여행이었다. 내일은 맥주의 도시 독일로 떠난다. 내일 펼쳐질 나의, 우리의 여행은 어떨까.
다음 날 점심시간 즈음, 독일로 도착했다. 오늘은 우리 조원들과 따로 다니기로 했기에 나부터 일찍 준비해서 1조 조원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오늘도 1조 조장님인 주식이 형이 이리저리 데려다주셔서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숙소가 중앙역 부근에 있었는데, 숙소에 나가자마자 시내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반기고 있는 작은 인형을 발견했다. 뮌헨 시내의 입구를 알리는 작은 문 사이로 들어오니 세련된 거리가 우리 앞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그 거리 가운데에서 감미로운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리의 악사들이 칼스플라츠(Karlsplatz) 중앙에서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광장 안으로 저 피아노를 어떻게 옮겼을까 궁금했다. 거리 가운 곳을 수놓고 있는 연주자들의 화음이 너무나도 좋았다. 뮌헨에 도착하자마자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인디 음악의 선율이 주로 흘러나왔던 우리나라 홍대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대부분 클래식의 선율이 많이 들렸다. 클래식을 어느 정도 즐기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황홀한 공간이었다. 형의 계획은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에서나, 성 피터 성당(St. Peter's Church)에서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 도시 전체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향한 프라우엔 교회의 전망대는 공사 중이라 바로 성 피터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성 피터 성당의 전망대에서는 전망대를 열고 있었는데, 국제 학생증을 이용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학생증이 없었는데 주식이 형이 자신이 사용 한 다음 빌려줘서 이용하고 들어갔다. 전망대까지는 계단이 306개나 있었는데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없었다. 헉헉거리며 겨우내 성 피터 교회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멋졌다. 앞에 작게 철조망이 쳐져 있었는데 약간 걸리적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풍경은 아주 멋졌다. 아쉬웠던 점은 전망대 자체가 너무 좁아서 지나갈 때마다 계속 힘들게 지나가야 했다. 전망대에서는 파리 시청과 마리엔 광장이 다 보였는데, 갑자기 마리엔 광장에서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알고 보니 오늘 바이에른 뮌헨과 아스날 간의 UEFA Champions League 16강 경기가 있다고 했다. 독일에 도착한 날짜가 너무 좋았다. 같이 있는 조원들과 조금 있다가 축구 경기가 열리는 Allianz Arena로 가기로 하고 일단 고픈 배를 채우러 성 피터 성당을 내려왔다.
마리엔 광장 앞 시청에는 인형이 들어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매일 오전 11시, 12시, 오후 5시 인형극을 한다고 했다. 마침 시간이 오후 5시 부근이라 보고 가려고 했는데 오후 5시가 지나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기에 그냥 밥을 먹으러 독일식 족발인 슈바인스학센(Schweinshaxe)을 먹으러 학센바우어(Haxnbauer)로 향했다.
사실 뮌헨에 올 때까지 '학센'이라는 음식이 뭔지 몰랐다. 독일에 오면 꼭 학센을 먹어 봐야 한다기에 기대가 많이 되었다.
기대하는 우리 앞으로 커다란 고기 요리가 나왔다. 냄새부터 생김새까지 완벽 그 자체였다. 너무 맛있어 보였다. 가장 먼저 감자부터 하나씩 나누어 줬는데 분명 감자였지만 감자가 아닌 것 같았다. 전분이 얼마나 가득하던지 감자가 마치 찹쌀떡처럼 쫄깃했다. 감자에 이어서 본격적으로 학센을 먹었는데, 겉은 무던히도 단단하고 질긴데 안의 속살은 너무 부드럽고 쫄깃했다. 세상에 이런 맛이 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고의 맛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음식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학센을 꼽을 정도로 새롭고 맛이 훌륭했다.
게다가 맥주를 한 잔 시켰는데 우리나라 생맥주와는 정말 차원이 확실히 다른 듯했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무엇보다 지저분한 끝맛이 하나도 없고 그냥 깔끔히 넘어갔다. 정말 학센은 맥주 안주로 딱이었다. 너무 맛있었다. 밥을 먹다가 행복하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맥주가 그냥 맥주가 아니라 직접 내린 맥주였기에 이게 도수가 조금 강하긴 했다. 약 9 ~ 11도 정도라고 하는데, 그 정도 도수의 술을 500ml 정도 마시니 약간 취기가 올라왔다.
너무 행복했던 식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오늘 Champions League가 열리는 Allianz Arena로 향하기로 했다. 그 전에 8조 남자 조원 두 명과 마리엔 광장에서 만나 같이 가기로 했기에 다시 마리엔 광장으로 향했다. 마리엔 광장에서 형들을 만나 바로 Allianz Arena로 향했다.
사실 여기서 암표를 구할 수 있을까 없을까 반신반의하며 Allianz Arena로 갔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지하철 역에 내리자마자 암표상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장에 120유로를 요구했는데 생각보다는 가격대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혹시 몰라서 200유로 정도를 가져왔는데, 생각보다 낮게 형성된 뒷골목 가격에 놀랐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른 암표상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찾아다닌다기보다는 암표상들이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개중에 200유로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120유로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운 좋게도 겨우 100유로에 표를 팔겠다는 사람을 찾았고 살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그냥 사기로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이 파는 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입장할 때까지 우리 옆에 있어달라고 했다. 다행히도 우리가 산 표는 가짜는 아니었다. 덕분에 무사히 Allianz Arena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여기서는 정규 경기도 보기 힘든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Champions League 경기장에 오게 된 것이 너무 신기했다. 게다가 세계 정상급의 두 팀이 붙는다는데 어찌 기대가 안 되었을까 싶다. 경기 시작까지 약 1시간이 남았지만 떨려서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
곧이어 운동장으로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이 보였고 경기장은 관객으로 가득 찼다.
바이에른 뮌헨 선수가 몸을 풀러 경기장으로 들어오면 온 경기장이 환호로 가득 찼다. 더욱이 내 가슴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나는 영주 형과 같이 1층 좌석에 앉았다. 3층에 앉은 사람도 있고 1층에 앉은 사람도 있고 같이 갔던 우리는 다 떨어져서 앉게 되었다. 경기 시작이 다가오자 선수들이 입장하고, Champions League의 상징인 대형 축구공 상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기장은 환호로 가득 찼고 내 가슴도 심벌처럼 흔들렸다. 홈 팬들이 바이에른 뮌헨의 깃발을 열심히 흔드는 모습이 결코 잊히지가 않는다. 경기가 시작되고 곧 이어서 아리엔 로벤 선수가 골을 넣었는데 분위기가 열광으로 가득 찼다. 골을 넣으면 경기장에 꽉 들어선 약 70,000명이 팬들이 모두 일어나서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며 환호를 한다. 나도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옆에 앉은 할아버지와 얼싸안았고, 방송에서 나오는 득점자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다행히도 오늘 바이에른 뮌헨의 컨디션과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무려 5:1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와버렸다. 그에 Allianz Arena의 모든 사람들은 떠나갈 듯 환호했다. 나 역시도 독일 축구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원래 스페인의 축구 종가인 바르셀로나 같은 팀들은 자국민보다 오히려 외국인 팬들이 더 많다고 하는데 바이에른 뮌헨은 거의 90% 이상이 자국민 팬인 듯했다. 다들 같은 언어로 하나의 노래를 부르니 정말 장관이었다.
내 삶의 최고의 경험이고,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것 같다. 오늘부터 바이에른 뮌헨 팬이 되었다. 세상 가장 짜릿했던 Champions League 경기가 끝나고 밤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같이 축구를 본 사람들과 함께 맥주 한 잔씩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옛 나치 수용소로 이용되었다는 '다하우 수용소(Konzentrationslager Dachau)'로 가기로 했다. 내일의 독일은 어떨까.
다음날 아침 일찍 다하우 수용소로 향했다. 20살 때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으며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었는데 이걸 실사로 보게 되었다. 나치 수용소는 기념 공원처럼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 서대문 형무소처럼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했던 만행들을 전시하는 장소였다. 그때 썼던 물품들도 전시가 되어 있고 그때의 상황이 사진으로 담겨 있기도 했다. 참 분위기가 엄숙한 곳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화장터도 있었는데 분위기가 싸한 게 많이 음산했다. 여기에서는 별로 사진을 찍고 싶지도 않았다. 애도하는 마음으로 다하우 수용소를 한 번 돌고 밖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이 되어,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 식사를 할지 그냥 다하우에서 식사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냥 다하우에서 식사를 해결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Goolge maps를 켜고 아무 장소나 들어갔다. 음식 사진이 맛있어 보여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여기가 독일식 커틀릿 요리인 슈니첼(Schnitzel) 전문점이었다. 어제는 학센을 먹어 보았으니 오늘은 슈니첼로 정했다. 2인당 하나씩 총 3개를 주문했다.
학센이 독일의 족발이라면 슈니첼은 독일의 돈가스라고 하는데, 음식을 기다리는 우리 앞으로 두툼한 슈니첼이 하나 나왔다. 느낌은 학센과 비슷했다. 밖은 질기면서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촉촉한 질감이었다. 여태 먹어 온 일본식 돈가스랑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하지만 기름에 오래 튀겼는지 기름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어쨌든 익숙하면서 친숙한 맛에 빠져들어 한참이나 슈니첼을 먹었다. 슈니첼은 신기하게 밑으로 볶음밥을 깔아 놓아서 왠지 일식으로 먹는 느낌이 미묘하게 났다. 신선하고 바삭하고 촉촉한 맛이 한꺼번에 느껴지니 신기했다. 정말 배 터지도록 먹었다. 학센 다음으로 슈니첼이 두 번째로 인상에 깊다. 슈니첼을 먹으면서 이야기가 나온 게 그냥 뮌헨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하우에서 하루를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사실 다하우는 관광 도시가 아니라 딱히 뭔가를 할 것은 없었지만, 아무렴 좋아서 그냥 시가지를 걷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동네 자체가 파스텔 색채가 강했고, 평화로웠으며 고요했다. 시간이 약간 지나니 해가 하늘에 거뭇거뭇 걸리면서 하늘이 발갛고 파란 것이가 동시에 묻어났다. 도시 자체가 너무 평화로워서 너무 행복했다. 다하우라는 도시는 딱히 볼거리가 있진 않았지만, 유럽의 색채를 품은 채 평화롭게 있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갔던 도시 중 상위 5 순위 안에는 든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내게 편안함을 주는 도시였다. 행복하게 다하우를 여행하고 와서 밤이 샐 듯 열심히 놀았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날, Icoos에서 준비한 '안녕 코리아 축제'를 하는 날. 어쩔 수 없게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조은 외국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시식시키는 일을 맡아서 별 다른 고생은 없었는데 공연하는 조는 비를 맞으며 공연을 하느라 고생했다.
'안녕 코리아 축제'는 유럽 여행 중 하루 날을 잡아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미'를 보여주는 날이다. 나는 '시식' 조로 배정되어 우리나라에 있는 음식들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해 주는 일을 맡았다. 부피도 작으면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식으로는 단연 전통 과자가 딱이었고, 우리 조는 떡볶이 과자와 약과, 그리고 유자차와 미숫가루를 준비했다.
지나가다 관심을 가지는 외국인들에게 다과를 나누어 드리고 그들의 반응을 기록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관심을 가져주는 뮌헨 시민들은 10%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분들이 따뜻하게 우리를 대해 주셔서 정말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기꺼이 참여해 주신 외국인 분들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고, 모든 축제를 기획한 Icoos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사드린다. '안녕 코리아 축제'를 끝 마친 오늘은 나에게 안식일을 주기로 했다. 마침 비도 오고 있었고 오늘은 조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지낸다기에, 그냥 나는 방에 들어와서 푹 잤다. 저녁 6시쯤 되어서 성민이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들 지금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라는 술집에 에 있으니 오라고. 잠에 취한 몸을 겨우 일으켜서 씻고 출발해서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도착하니 7시쯤 되었다.
자리가 거의 끝나는 분위기라 나도 대충 맥주 맛만 보고 왔는데 맥주 맛이 정말 맛있었다. 레몬 맥주였는데 달콤하면서 깔끔한 게 내 취향이었다. 시간만 있었으면 한 잔 마시고 갈 텐데, 아쉬웠다. 그래도 맛을 본 것에 만족했다. 무엇보다도 오늘 내가 뜻있는 60기들을 한 자리에 모으려고 계획했었다. 호프브로이하우스에 이어서 뮌헨 3대 맥주 가게가 있다는데, 뢰벤브로이 켈러(Löwenbräu keller)와 아우구스티너 켈러(Augustiner Keller)가 잇는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모여서 맥주를 마시고 싶은 사람들을 '뢰벤브로이 켈러'라는 맥주집으로 불렀는데, 이게 어떤 단체에서 뢰벤브로이 술집 자체를 대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발을 돌렸다. 비가 와서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걸어갔는데, 그곳에 들어갈 수 없으니 많이 아쉬웠다. 차선책으로 찾은 아우구스티너 캘러에서는 그래도 자리의 여유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즐길 수 있었다.
아우구스티너 켈러에서 마감 시간인 밤 11시 30분까지 열심히 놀고 또 방으로 들어와서 밤이 새도록 같이 게임하고 놀았다. 우리 방에 방음이 잘 안 되어서 옆 방에 외국인들이 시끄럽다고 항의가 들어왔는데, 그래서 거의 속삭이듯 3 ~ 4시간을 이야기하고 게임하고 놀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밤 중 하나로 기억한다.
맛있는 음식이 있었기에, 뜨거운 사람이 있었기에, 도시에 멋이 있었기에 나는 독일과 뮌헨에 열광했고 또 결코 잊지 못할 도시가 될 것 같다. 내가 3조 조원들에게 타로 카드를 봐드리니 3조 분들이 우리 조에게 그림을 그려 주셨다. 감사합니다.
맛과 멋의 도시 뮌헨을 뒤로하고, 다음 날은 프라하로 넘어왔다. 한국에 있을 때 외환 은행에서는 체코의 화폐인 코로나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냥 현지 환전을 생각하고 프라하로 넘어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시내로 나가서 환전을 한 후 '땅따먹기' 목록에 있는 '굴라쉬(Goulash)'라는 음식을 먹으러 어떤 음식점에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웨이터분이 장난을 쳐 주신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여쭤보니 3일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약 5분쯤 있으니 자리를 안내해 주셨는데 신기하게도 좌우로 모두 한국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블로그에 유명하다고 소개된 집인지 아니면 종업원이 일부러 이쪽으로 앉힌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신기했다.
굴라쉬는 수프에 빵과 고기를 찍어서 먹는 것 같았는데, 약간 퐁듀와 비슷한 느낌이 났다. 빵은 싱거운데 거기에 짭짤한 수프를 찍어 먹으니 간은 딱 맞았다. 무엇보다도 체코에도 맥주가 유명하다는데, 특히 'Pilsner'라는 것이 체코 정통 맥주 양조 방식이라고 했다.
맛있는 세계맥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이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을 생맥주로 하나 주문해 보았다. 받아 든 맥주는 거품이 반이었지만 거품도 거품 나름 부드러운 맛이 좋았다. 독일의 맥주와 비교하자면 뒷 맛이 깔끔한 것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필스너 우르켈 맥주가 좀 더 질감이 무겁게 느껴졌고 상대적으로 도수도 높아 보였다. 독일 맥주는 그래도 500ml는 너끈히 마셨지만, 필스너 우르켈은 약간 힘들었다. 굴라쉬를 먹으며 첫 끼를 먹은 후 바로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간식을 사 먹었다.
체코의 붕어빵이라는 굴뚝 빵, 뜨르들로 (trdlo). 꽈배기처럼 생긴 음식인데 바깥에는 설탕을, 안에는 원하는 소스를 발라준다. 내가 주문한 뜨르들로는 안에 바닐라 크림이 들어 있었는데 나름 맛이 괜찮았다. 우리나라 꽈배기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꽈배기는 글루텐 성분이 많아 쫀득쫀득한 질감이 있는데 뜨르들로는 부드럽고 바삭한 질감 있어서 먹기 좋았다. 뜨르들로를 먹은 후 주변에 있는 바츨라프 광장(Václavské náměstí)으로 향했다.
바츨라프 광장 입구에는 바츨라프 4세의 동상이 커다랗게 솟아 있었다. 아쉽게도 그 뒤쪽으로는 공사 중이라 광장이 뒤쪽으로 탁 트여있지는 못 했지만, 광장 앞으로는 탁 트여 있어서 좋았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오늘의 일정은 별 다른 것이 없어서 그냥 주변에서 쇼핑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정은, 아이쿠스 60기의 김영호 매니저님 주관 하 실시되는 '친해지길 바라' 프로그램이 우리 조인 4조와 6조 사이에 계획이 되어 있었고 매니저님이 맛있는 소시지 야채 볶음을 만들어 주셔서 덕분에 우리는 밤이 늦도록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다음 날은 아침에 프라하 성에 가는 것으로 모든 일정이 시작되었다.
사실 프라하 성이라고 하면 넓기도 넓으면서 볼 것이 엄청나게 많은 곳인데 관광을 하려면 대부분의 장소에서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프라하 성은 그 존재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웠다.
성당도 들어가려면 코로나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오후에 '안녕 코리아 축제'가 계획되어 있었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어서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빨리 구경하고 빠져나왔다.
그래도 전체적인 느낌이나 분위기는 아주아주 좋았다. 특히 프라하성이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프라하의
전체적 풍경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프라하 성을 잠시 구경한 뒤 '안녕 코리아 축제'가 열리는 한 멕시칸 식당으로 향했다. 멕시칸 식당에서도 시식팀으로 참여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맛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파리에서는 미숫가루를 전적으로 밀었지만 오늘은 유자차를 외국인들에게 선보이기로 했다. 조원들이 유자차에 넣을 물을 사 온다면서 잠시 나갔다가 왔는데, 탄산수를 사 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유자차에 탄산수를 넣었는데 유자차에 달콤함에 청량감이 더해지니 정말 맛이 있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처음 접해보는 맛이었겠지만 거의 호의적인 반응을 내어 주셨다. 이 차(茶)의 재료가 뭐냐길래, 뭐라 대답할지 몰라서 오렌지를 짰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외국인들은 매운 떡볶이 과자보다 달콤한 약과를 선호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약과보다 떡볶이 과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기하게 내가 먹기에도 약간 알싸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잘 드시는 외국인 분들이 신기했다. 멕시칸 식당에서 한 때를 보내고 60기, 62기 전체 기수가 함께 모여 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이 났다. 축제가 끝나고 우리는 그냥 강을 따라 쭉 걸었다.
말갛고 아름답던 낮의 프라하는 금방 사라지고 빛으로 빛나는 밤의 프라하가 곧 찾아왔다. 저녁 일정으로는 체코식 족발인 '꼴레뇨(Koleno)'를 먹으러 갔다. 꼴레뇨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나는 성민이 누나랑 둘이서 하나를 주문했는데도 양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실수로 그랬는지, 웨이터분이 빵 칼을 주셨는데 빵 칼이다 보니 고기가 정말 잘 안 썰렸다. 억지로 먹다 못 먹겠어서 날카로운 칼을 받아서 먹었다.
대체적으로 맛은 있었다. 학센에 비해서 꼴레뇨는 족발 껍질이, 돼지 껍데기 같은 느낌이 많이 났다. 학센 껍데기는 그냥 질겼었는데 꼴레뇨는 쫄깃한 맛이 있었다. 속살의 느낌은 거의 비슷했지만 먹기에는 꼴레뇨가 먹기 훨씬 힘들었다. 일일이 다 잘라서 먹어야 했는데 자르고 또 자르다 보니 손이 너무 아팠다.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학센이 꼴레뇨보다 조금 더 나았지만 꼴레뇨도 나름 만족했다. 무엇보다도 돼지다리 한 개가 통째로 나오기 때문에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양이 많다. 혼자서 꼴레뇨 하나를 주문한 정화 덕분에 동연이 형이 많이 신났다. 문제는 계산할 때였는데, 영수증이 체코어로 되어 있어서 어떤 메뉴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느라 한참이나 골머리를 쌌다. 알고 보니 서비스로 나온 줄 알았던 빵도 가격으로 받았고 꼴레뇨 대자를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뭐가 뭔지 파악하는데 오래 걸렸다. 게다가 종업원이 팁을 강요를 했지만 딱 우리 먹은 만큼만 계산하고 나와버렸다.
숙소로 가기 전에 프라하 중심에 있는 시계탑도 들리고, 카를교도 걷고 추위에 벌벌 떨며 존 레넌 벽도 들렀다. 오늘 하루도 다들 무척이나 고생 많았다. 밤에 숙소에서 조원들이랑 같이 안마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날에는 정화와 둘이서 다니기로 했다. 지역 시장인 '하벨 시장(Havelskétržiště)'이라는 곳이 있길래, 우리나라 시장과 느낌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그냥 골동품 골목이었다. 여기서 정화가 사고 싶다는 물건 몇 개를 사고 뭘 할까 하다가, 그냥 일단 주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크게 이름도 없는 음식점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거기에 피아노가 하나 있었다. 음식을 하나 주문해서 먹고, 사람들도 없기에 그냥 거기서 정화와 피아노를 치고 놀았다.
밥 한 끼 먹었을 뿐인데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야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프라하 성 근처에 보이는 '페트린 타워(Petřínská rozhledna)'로 향했다. 페트린 타워로 향하는 도중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페트린 타워에 도착했을 때는 운영시간이 종료되어서 그냥 헛걸음을 하고 다시 내려왔다. 어쨌든 비를 피해야 해서 아무 레스토랑에나 들어갔는데, 그곳이 마침 Jazz 레스토랑이라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오늘 큰 일정이 없었던 이유는, 우산도 없는데 비가 너무 많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숙소로 가는 길에 1조 조원들이 같이 저녁을 먹자고 불러서 숙소를 가는 길에 발길을 식당으로 되돌렸다. 1조의 유리가 줄을 기다려 줬는데 오늘 우리 조가 저녁에 '친해지길 바라'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어서 늦게 온 우리에게 먼저 순서를 양보했다. 메뉴는 스테이크였다. 엄청 맛있거나 색다른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맛있게 저녁을 즐길 수 있었던 집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스테이크보다는 후식으로로 시켰던 케이크가 더 기억에 남는데, 그러고 보니 파리 이후로 후식을 먹은 게 처음인 듯싶었다. 초콜릿으로 무스 된 케이크였는데 엄청 달았지만 엄청 맛있었다.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방에 들어와서 8조와 '친해지길 바라' 프로그램을 하는 것으로 일정이 끝났다. 술자리는 두세 시까지 이어지고, 이야기가 끝이 없어 결국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은 새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알차고 재미있었던 순간이었다.
프라하에서의 순간순간은 내게 많은 감명을 안겨준 것 같다. 프라하 성도, 필스너 맥주도, Jazz도. 내일은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로 넘어간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30분 자고 일어나서 바로 '잘츠부르크'로 이동한다. 잊지 않을게요, 프라하.
전 날 30분 밖에 잠을 자지 못해서, 버스에 정말 골아떨어졌다. 잘츠부르크 숙소에 도착해서도 한참이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도착한 지 약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길을 나섰다. 잘츠부르크는 내게 딱 한 가지 목표만 있었다. 저번에 홍콩 여행 갔을 때 봤었던 서커스 'Dancing of Water'가 너무 뇌리에 남아서 유럽에 갔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공연을 하나 보고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도시로 알려진 잘츠부르크에서 격일에 한 번씩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를 한다고 했다. 목표는 단 하나,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Mozart Dinner Concert).' 그것 하나만 바라고 숙소를 나섰다.
중앙역에 도착해서, 모차르트 생가까지 발길 가는 대로 걸었다. 걷다 보니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었던 '미라벨 정원(Mirabellgarten)'이 나왔다. 사실 1조 유리가 모차르트 생가 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저 스쳐 지나가듯 구경을 하고 지나갔다. 강가를 따라 걷는데 전날 비가 왔는지 물색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래도 지나가다가 자물쇠가 엄청 걸려있는 다리도 지나쳤다. 남산 전망대가 그러하듯, 각기 다른 언어로 자물쇠 위에 글이 써져 있었는데, 한국어로 적힌 글씨도 생각보다 꽤 많았다.
모차르트 생가 주변 샌드위치 가게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콘서트의 시간이 다가와서 각자 갈 길을 향했다. 유리도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를 가고 싶어 해서,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디너 콘서트장에 가는 길, 방향을 잃어서 헤매고 있는 가운데 어떤 한국인 가족분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셨다. 사진을 한 장 찍어드리니 그쪽에서도 우리를 한 장 찍어주시기도 했다.겨우겨우 길을 찾아서 디너 콘서트장으로 들어왔다. 공연은 성 페터 대주교청 교회(Stift St. Peter Salzburg)의 내부 식당에서 진행되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는 않은 상태였는데, 조금 기다리면 티켓 오픈이 된다고 했다. 학생증이 있으면 1인당 50유로 정도를 받았는데, 국제 학생증이 아니라도 그냥 일반 학생증을 제시하니 학생으로 인정을 해 주셨다.
직원분의 안내로 표를 구매하고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아 있으니 슬슬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차니, 앞 쪽에서 종소리가 두 번 들렸다. 한 순간 조용해지더니 바이올린 3분, 첼로 1분, 콘트라 베이스 1분 등 악기를 든 다섯 명의 악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불이 꺼지더니 이내 연주가 시작 되었다. 연주에 더불어 연기자가 나와서 Semi opera를 를 했는데 이탈리아 어로 노래해서 무슨 뜻인지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는 총 3막으로 되어 있었는데 한 막이 끝나면 전채 음식을 제공하고, 또 한 막이 끝나면 메인 음식을, 마지막 막이 끝나면 후식을 제공하는 순으로 되어 있었다.
첫 번째 장은 오페라의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눈치로 두 커플이 갈등이 생겼다가 풀리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장면의 내용이 궁금해 옆에 앉은 외국인 손님에게 물어봤는데, 그분들도 독일 사람이라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했다. 어느덧 1막이 마무리되고, 전채 요리가 나왔다.
일종의 수프였는데 설명서에는 치킨이라고 적혀 있었다. 맛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공을 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먹었다.
다음으로는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이라는 막이었는데 그래도 조금 익숙한 곡이 들려서 좋았다. Instrument 한 곡과 오페라 세 곡을 들었는데, 연기자가 관객석을 왔다 갔다 하면서 관객과 함께 무대를 즐겨 주셔서 분위기가 딱딱하지 않아 좋았다. 무엇보다도 콘트라 베이스가 중심을 잘 잡아 주어서 넓지 않은 무대에 웅장함이 가득 찼다. 재미있었던 2부 무대가 끝나고 메인 음식이 나왔다.
메인 음식으로는 치킨 스테이크와 감자 요리가 나왔다. 딱 기본에 충실한 맛이었다. 정직한 재료, 정직한 맛이 느껴졌다. 내 옆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아주머니가 앉으셨는데, 음악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했다. 메인 음식을 먹는 중에 목이 말라서 칵테일 하나를 주문했는데, 칵테일에 드라이아이스를 하나 넣어서 주셨다. 빨간 칵테일 위에 흰색 기체가 넘치고 있으니 예쁘기도 예뻤고, 맛도 있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여기서 가장 오래된 메뉴라고 설명을 해주시기도 했다.
마지막 3악장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인 'Eine kleine Nachtmusik'가 나왔다. 한국말로 하면 '작은 밤의 음악'이라는 제목을 가진 곡인데, 누구나 이 곡을 들으면 알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모차르트의 도시에서 직접 '작은 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게다가 이어진 오페라는 '마술피리'의 한 장면으로, 마술피리 도 어느 정도 익숙한 오페라였기에 음악을 즐기는데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가 좋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3악장이 가장 좋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아이스크림과 체리 요구르트를 먹는 것으로 모든 코스는 끝났다.
전체적으로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는 정말 좋았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는 아니었지만 악사들의 실력이 수준급이었고, 바이올린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독특한 연출에 놀라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좋은 장소에 좋은 사람과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강력한 임팩트가 있는 활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기억에 남을 경험임은 확실하다. 비록 내가 이탈리아어 대사를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지금 듣는 곡이 무슨 곡인지 모르더라도, 그저 좋고 행복했다.
함께 이 자리에 있어준 유리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모차르트 초콜릿을 파는 집이 열려 있으면 사서 가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다 닫혀 있었다.
디너 콘서트가 늦게 끝나서 숙소에 밤 11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오늘 한 것 같다. 오늘은 그저 행복하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너무 재미있다.
내일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베네치아로 떠난다. 그곳의 풍경은 어떨까. 기대가 많이 된다.
다음 날, 드디어 우리가 여행하는 나라 중 가장 마지막을 장식할 이탈리아로 넘어왔다. 지금의 기분은 시원 섭섭하다고 하면 꼭 맞을까. 몸도 마음도 이미 유럽에 적응을 했기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도시처럼 생각이 들긴 했지만 여행의 끝이 다가오면 올 수록 현실도 맞닥뜨리는 것 같아 약간 괴롭기도 하다.
베네치아는 오후 즈음이 돼서야 도착했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베네치아 만까지 셔틀버스를 운영한다고는 했지만 우리는 준비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기에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충분히 준비의 시간을 가지고 베네치아 만으로 향했다. 버스를 한 두어 번 갈아타니 베네치아 만으로는 금방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자그마한 운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것은 물이 그리 깨끗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오늘 역시도 점심시간을 약간 넘어서 도시에 도착했기에, 영호 형이 추천해 주는 음식점에 들어가기로 했다.
'트라토리아 포볼레도(Trattoria Povoledo)'라는 음식점이었는데, 백작 분장을 한 직원이 나와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러더니 한국인인지 물어본 후 다짜고짜 네이버 카페에 글을 써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일단 음식을 먹은 후 업로드를 하겠다고 하니 잠시 비켜주신다. 하지만 메뉴판이 전부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주방장님께 추천을 받아서 음식을 주문했다. 너무나도 생김새가 멋진 음식들이 나왔다. 정말 먹는 내내 감탄하며 먹었다. 이탈리아는 파스타의 본류라는데, 정말 그런 말이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내가 먹어본 파스타 중 단연 최고였다. 짭조름함과 해물 맛이 거의 동시에 입에서 어우러졌다. 그렇다고 마냥 짜지는 않고, 간도 적당히 배겨 있으면서 향미가 느껴졌다. 감동적인 맛이었다. 하지만 관광 도시이다 보니 가격은 한 접시에 12유로 선으로 약간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자리를 일어섰다.
이어서 가게 앞에 젤라토를 파는 가게가 있길래, 밥 먹자마자 바로 젤라토를 샀다. 젤라토를 사서 먹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버스킹 반주에 맞춰 기차놀이를 하고 있는 무리를 발견했다. 먹던 젤라토를 잠시 제쳐두고 나와 동연이 형은 기차놀이를 하러 뛰어갔다. 방금 밥 먹은 것을 전부 소화할 만큼 재미있게 놀았다. 기차놀이가 끝나자 내 뒤에 있는 여성분이 내게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해서 손바닥을 세게 쳐 버렸다. 서로 아파하면서도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원래는 돌아다니면서 곤돌라(Gondola)를 탈 의향이 있었지만 40분에 80유로 정도를 달라고 해서 그냥 걸어 다니는 여행만 하기로 했다. 베네치아는 운하가 흐르는 강 쪽도 매력이 있었지만 반대로 광장 쪽도 느낌 있는 공간이 많았다. 사실 베네치아는 생긴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지층 기반이 약해서 점점 땅으로 가라앉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100년 뒤에는 완전히 가라앉는 것으로 예측한다는데, 그 때문인지 베네치아에는 비어 있는 집이 엄청 많았다. 산타 루치아 역(Stazione di Venezia Santa Lucia)에서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를 향해 걷고 또 걷다 보니 베네치아에도 금방 어둠이 찾아왔다.
베네치아는 밤이 되니 정말 아름다운 풍경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강에 반사된 물빛 하나하나가 형형색색으로 춤을 추고 있었고,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베네치아는 거리의 악사들이 가득했다. 마음에 드는 선율이 들리면 잠시 멈추어 서서 음악을 감상하곤 했다.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선율이 함께하니, '베네치아'라는 도시는 그저 아름답게 보이기만 했다.
게다가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가게 유리 안으로 전시된 음식을 보고 홀린 듯 멈추어 선 곳이 무척이나 많았다. 피자 하나를 사서 먹으며 베네치아 거리를 걸으니 이 순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모든 거리의 하늘에서는 샹들리에가 빛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미학의 도시라는 것에 결코 부정하는 사람이 없을 듯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리알토 다리'라는 곳인데 거창한 야경은 아니었지만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가를 바라보고 있으니 소름이 돋기도 했다. 독일의 '다하우'의 느낌처럼 고요하지만 은은한 인상이 남았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에 갔는데 무대가 열리더니, 갑자기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신이 난 우리는 막춤을 추기도 했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너무 신나고 너무 재미있었다. 베네치아에 와서 가장 신난 순간이었다 무대에 올라온 외국인들과 같이 춤추고 놀면서 오늘의 하루를 끝 마쳤다. 내 인생에서 베네치아는 결코 잊히지 않을 도시로 남을 것 같다. 베네치아, 덕분에 너무 행복했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
다음 날은 피렌체로 이동했다. 여행이 정말 막바지로 다가오고 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즐기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피렌체에서는 굵직하게, '먹거리' 중심으로 돌아다니로 했다. 피렌체에 출발하기 전 성민이 누나가 티본스테이크를 꼭 먹자는 이야기를 했는데, 피렌체 여행에 다른 건 다 못하더라도 이 '티본스테이크'는 꼭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피렌체에 도착한 오늘 역시도,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때 즈음 도착을 했다.
피렌체도 관광 도시이긴 하지만 점심 휴식 시간이 있는 가게가 많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려면 어디든 빨리 서둘러야 했다. 원래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영호 형이 추천해 준 가게에서 마침 티본스테이크를 판다고 하기에 피렌체에 내리자마자 음식점을 향해 바로 내달렸다. 아슬아슬하게 휴식 시간을 피해서 음식점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음식부터 주문했다.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무조건 티본스테이크부터 달라고 했다.
티본스테이크는 티(T) 자로 생긴 뼈(Born)가 붙어 있는 스테이크라 티본스테이크라고 한다고 했다. 이 집에서는 별다른 향신료를 쓰지 않았는지 고기에서 아무런 양념 맛이 나지 않았다. 그냥 고기를 구워서 가져다준 모양이었다. 뭐 레몬즙을 뿌려 먹으니 그럴 만큼 먹을만했지만, 또 획기적인 맛은 아니었다. 그냥 고기를 씹고 있으면, '입 안에 육즙이 고기가 있구나'하는 느낌만 들었고 별다른 맛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오늘 여행의 주제는 '식도락'이기에 티본스테이크를 금방 먹은 뒤 또 영호 형이 추천해 준 '곱창 버거' 가게에 들렀다.
곱창 버거라기에 향미가 엄청 강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았다. 맛은 있었지만 왠지 곱창 향 보다 양꼬치의 향이 더 났던 것 같다. 곱창 버거를 다 먹자마자, 피렌체 중앙시장 앞쪽에 있는 광장에서 젤라토를 하나 샀다. 젤라토를 먹고 있으니 큰 광장 쪽에서 박수 소리 비슷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광장에서 시위를 하는 줄 알고 엄청 긴장했는데, 사실 알고 보니 우리가 피렌체에 도착 한 당일, '뮌헨글라트바흐'와 '피오렌티나'라는 팀 사이에 UEFA Europa League를 한다는 것이었다. 경기는 밤 9시에나 있을 예정이었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광장이 시끄러웠다.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 게, 사실 우연히 닿은 도시에서 Champions league나 Europa League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는 두 번이나 마주치게 되었으니 어찌 되었던 경기 관람 운은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성적으로 흥분한 사람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우리 갈 길을 향했다.
근처에 가죽 시장이 있었는데 단체로 팔찌를 맞추자는 의견이 나와서 팔찌를 하나 맞추었다.
팔찌를 맞춘 후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으로 가 보자는 성민 누나의 의견에 따라 다들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했다. 피렌체 중앙시장 쪽에서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레푸블리카 광장 (Piazza della Repubblica)’을 지났다. 광장 한가운데 회전목마가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다. 레푸블리카 광장을 지나면서 줄이 길게 서 있는 집을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또다시 젤라토 집이었다. 줄이 길게 서 있으니 유명한 가게이겠지 하며 젤라토를 하나 더 사 먹기로 했다. 사실 젤라토라는 간식은 어느 가게에서 사 먹던 늘 평균 이상은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왠지 느낌으로는 피렌체의 가게의 젤라토는 조금 더 달콤했던 것 같다.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지나, 점점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다가갈수록 해가 저물어 갔고 결국 미켈란젤로 광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꽤 많은 Icoos 참가자들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오모 성당부터 베키오 다리까지 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는 모든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말 멋진 공간이었다. 그동안 같이 고생한 조원들과 같이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피렌체에서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로 피렌체에서 베키오 다리와 아르노 강(Fiume Arno)을 바라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여태 내가 유럽에 오기 전에 했었던 일들, 유럽에 와서 겪었던 일듯, 그리고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전부 되돌아보니 '감사'와 '고마움' 뿐이었다. 사실 피렌체까지 오는 것만 해도 엄청 굴곡이 많았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끝까지 버티면서 여행을 이어 나간다는 자체가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 미켈란젤로 광장에서는 '감사'와 '소중함'을 또다시 새기며 자리를 떴다.
원래는 미켈란젤로 광장 주변에 있는 Jazz 바에 가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 있어 급하게 칵테일 바로 방향을 바꾸었다. 우리가 들렀던 곳은 'MAYDAY CLUB'이라는 곳이었는데 처음 겪어보는 칵테일 바라 느낌이 엄청 새로웠다.
칵테일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사장님께 그냥 메뉴판의 아무 곳이다 가리키며 이거를 달라고 했는데 내 것이 가장 도수가 높고 가장 썼다. Jazz 음악이 나오는 칵테일 바에서 좋은 사람들과 칵테일을 마시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게다가 이 칵테일 바 주인아저씨가 너무나도 친절하셔서 우리의 안주가 떨어진다거나 불편 사항이 있을 때마다
그저 "Enjoy~" 하라고 하셨다. 칵테일바에 머무는 약 한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재간둥이 승현이가 우리 먹으라고 김치 치즈 볶음밥을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이대로 자기는 아쉬워서 여자 조원들이 나와 동연이 형에게 여장을 시켜 주었다. 근데 결과물이 너무 예뻤는지. 이에 관심을 보인 영주 형도 우리와 같이 화장했고 예쁜이 3 자매가 탄생했다. 오늘 너무 재미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피렌체 주변에 위치해 있는 '피사'로 향했다. 이유는 단 하나, '피사의 사탑(Torre pendente di Pisa)'이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겨우 표를 끊고 피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약 한 시간쯤 지나니 금방 피사에 도착해 있었다. 피사에 도착하니 비가 슬슬 내리고 있었다.
밥도 먹고 비도 피할 겸 한 음식점에 들어가기로 했다. 영어 반, 몸짓 언어 반을 섞어서 겨우 주문을 마쳤다. 우리 앞으로 파스타 몇 접시가 나왔다. 대체적으로 맛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가 이탈리아에 도착한 첫날 베네치아에서 먹었던 파스타가 너무나도 맛있었기 때문에 이번 식사는 대체로 그냥 먹을만하다고 느낀 것 같다. 파스타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냥 기본이 제일 낫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대부분 영어가 안 통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잘못 시키면 정말 엉망인 요리가 나올 수도 있기에 그냥 익숙하고 우리 입맛에 더 맞는 음식을
시키는 게 제일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것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된 것 같다. 밥을 먹다 보니 어느덧 날씨가 조금 개어 피사의 사탑 쪽으로 향했다.
원래 피사의 사탑에는 소매치기가 그렇게 많다고 하던데, 비도 약간 내렸고 무엇보다 피사 앞에 깔린 잔디밭에 들어갈 수 없으니 그냥 사탑만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모두 거진 비슷한 포즈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탑 자체는 생각보다 정말 많이 휘어져 있었다. 각도상으로는 4.5도라고 하는데 정말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많이 휘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앞쪽과 뒤쪽의 기둥 길이가 달랐던 모습이 기억난다. 보수 공사를 몇 번 했어서 앞으로 더욱 휘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 한다. 어쨌든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믿길 만큼 신기한 장소이긴 했다.
날씨도 계속 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해서 좋지 않았고 생각보다 피사에 머무른 시간이 길어서 일찍 숙소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에 어떤 파르페 가게의 간판이 보여서 들어갔다.
파르페의 모양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맛은 정말 없었다. 하얀색 아이스크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생크림이었다. 두 개를 주문했는데 가격은 20유로 정도로 받았다. 우리 돈으로 2만 5천 원 하는 돈이라 별수 없이 다 먹긴 했다. 겨우겨우 파르페 두 개를 비우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우리끼리 간단히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이면 우리의 마지막 여정이 될 도시 로마로 떠난다.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힘내서 열심히 지금을 사랑해야겠다.
다음 날 비몽 사몽한 상태로 우리 유럽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
우리의 마지막 도시에 도착을 했지만 왠지 조금 더 자면서 쉬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빠르게 밥을 먹고 숙소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빨리 쉬고 싶어서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빨리 밥을 먹었다. 내가 먹은 건 양고기였는데, 맛도 그렇고 질감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먹을만한 음식이었다. 빠르게 밥을 먹은 후 모두들 기절하듯 숙소에 들어가 잠에 빠져 들었다.
원래 3시쯤 일어나 출발을 하려 했지만 다들 5시쯤이 다 되어 잠에서 깼다. 사실 별 목적지도 없었는데 로마에 왔으니 콜로세움(Colosseo)이라도 보고 가자는 의견에 바로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콜로세움 바로 앞으로 '콜로세움' 역이 있어서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마자 콜로세움을 바라볼 수 있었다. 콜로세움 옆으로 작은 개선문도 하나 나 있었다. 그나마 유럽 문물에 조금 익숙해졌다고, 콜로세움이 감명 깊게 다가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크고 웅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다른 문화재를 바라보듯 휙 보고 지나칠 만큼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트레비 분수(Piazza di Trevi)는 재미있었다. 트레비 분수에는 한 가지 속설이 있다고 했다. 등을 돌리고 동전을 하나 넣으면 로마에 다시 오고, 두 개를 넣으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를 넣으면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고 하는데 나는 뭐 사랑은 지금 별 관심이 없으니 그냥 한국 돈으로 동전 하나만 집어넣고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포세이돈 가까이에 있는 곳으로 넣어야 된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전을 던지는지 1년에 무려 7억 5천만 원이라는 동전이 쌓인다는 말이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 이어서 주변에 있는 Jazz bar에 갔다가 숙소로 가려고 했는데 Jazz bar에서 한 사람당 20유로씩 입장료를 요구했고, 지금 당장 앉을자리가 없다고 해서 그냥 숙소로 바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유럽에서 Jazz bar에 한 번 가 보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와서 동연이 형에게 Jazz bar를 가자고 졸랐다.
동연이 형은 흔쾌히 승낙했고 밤 11시쯤에 숙소에서 나와 바티칸 근처에 있는 Jazz bar로 향했다. 입장료 및 음료값 10유로를 내고 들어가서 있으니 한 5분쯤 있다가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었다.
나는 영화 'lala land'를 보면서 Jazz에 대한 환상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했었던 완전한 Free jazz가 아닌, 어느 정도 합을 맞춘 Jazz였지만 아무렴 좋았다. 특히 악사들의 기술이 정말 대단했다. 손가락을 어찌 그렇게 빨리, 잘 움직이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콘서트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갈 정도로 Jazz 음악이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 곡과 앙코르 곡은 테크닉이 정말 화려하고 좋아서 그냥 홀리듯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연주가 끝나고 색소폰 연주자 분과 사진도 한 컷 찍었다. 너무 멋있었던 분이다. Jazz의 감흥을 가슴에 안고 바티칸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숙소까지 걸어서 들어왔다. 숙소에 들어와 개운한 마음으로 푹 잤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면서 2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원래 바티칸 시국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매월 마지막주 일요일에는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원래의 목적지가 '바티칸 시국'이었는데, 혹시나 주말이라 미사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찍 숙소에서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늦잠을 자 버렸다.
조금 늦게 바티칸에 도착했는데 먼저 온 8조가 줄을 서 있길래 그냥 거기에 끼었다. 대기 줄이 벽 네다섯 개를 가득 메울 만큼 줄의 길이가 어마무시했다. 사실 우리가 서 있는 줄이 어느 줄인 줄도 모르고 그냥 막 섰다. 입장하고 보니 바티칸 박물관으로 가는 줄이었다. 일단 줄을 섰기에 바티칸 박물관으로 입장하고 봤다.
바티칸 박물관을 통해 가로질러 바티칸 성당으로 가보려고 했는데 도대체 성당으로 나가는 길이 안 보였다. 그래서 바티칸 박물관 여기저기를 돌다 보니 어느샌가 한 바퀴를 다 돌아 있었다.
바티칸 박물관도 루브르 박물관과 같이 작품 수가 어마하게 많았다. 정말 놀랐던 것은 한 면의 천장 전부가 다 작품인 장소도 있었다. 지금도 정말 어마어마하고 당대에는 정말 대단한 공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바티칸 박물관과 바티칸 성당은 완전히 분리가 되어 있었다. 바티칸 성당으로 향하는 문이 아예 다르게 위치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박물관을 나가 성당으로 향했다.
매주 일요일 12시에 교황님이 집무실에서 교우들에게 간단한 기도를 해 주신다. 일요일의 바티칸 시국에서는 교황님의 얼굴을 보려 하는 사람들로 가득 모여 있었다. 낮 열두 시가 딱 되면 교황님이 창문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놓으시고, 이탈리아 어로 교우들에게 기도를 해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에게 열광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8조 사람들이 추천해 준 근처의 이탈리안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로마의 심장에 위치해 있는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으로 향했다. 잠이 쏟아진다고 말을 하던 동연이 형이 진짜 나보나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곳이나 앉아 쪼그려 졸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보나 광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서 너무 좋았다.
광장에서는 악사들이 조용하게 공연을 하고 있었고 곳곳에서는 독특한 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뛰놀고 있었다. 정말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장소였고 그리 넓지 않은 나보나 광장에서 두 시간가량을 머물면서 유럽의 느낌을 가슴속에 한 껏 담을 수 있었다. 나보나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성 천사 성을 배경으로 우리들의 마지막 해는 저물면서, 유럽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노을이 찾아왔다. 정말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간식으로 수제버거를 먹었고, 높게 솟아 있는 판테온에서 우리의 모든 여행 일정을 마무리했다.
4조 8조가 함께 모여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으로 우리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사실 마지막 밤이다 보니 끝 마무리를 잘 내고 싶었지만 마지막 날에 우리 조 내부적으로 싸움이 생기면서 깔끔한 마무리를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이번 유럽 여행을 하면서 어느 누구 마음고생 심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긴 하다. 정말 다들 마음고생 많았고,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만 남기고 싶다.
ㆍ 전체적으로 나에게 아이쿠스란 '성장의 장'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 전혀 다른 문물을 접하면서
'세계는 넓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게 하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또 개인과 개인, 개인과 단체, 개인과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그뿐만 아니라 약 20일간을 처음 만나는 사람과 여행하며 내가 맺어왔던 인간관계들을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상대하고 세계를 맞이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Icoos에 고마움을 느끼고, 또 살아가면서 결코 잊지 못할 추억과 인간관계를 만들고 가게 되어 기쁘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할 때도, 저녁 7시 눈부시게 반짝이는 에펠탑을 볼 때도, 리알토 다리에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베니스를 느낄 때도, 매일 밤 조원들과 와인 한 잔으로 여독과 회포를 풀 때도, 그저 우리라서 나는 너무 좋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