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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Oct 23. 2024

[인턴 일지] #22. 현장 일기 (첫 봄)

파견) D+232 2019. 3.27. (수)

 

<3월의 마무리>

  

ㆍ 마을에 파견된 지 벌써 6개월이 지나간다. 6개월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해야지 다짐했던 게 본의 아니게 이루어졌다. 아직 싱할라어는 멀디 멀었고, 영어 실력도 아직은 그다지이며, 그렇다 할 스리랑카 친구도 없고. 무언가 달성한 것은 뚜렷하게 없다. 평소 보고 싶었던 드라마와 영화나 실컷 보고, 여자친구 자주 만나고 있다. 정말 극적인 환경의 변화에서 나 자신은 소소하게 변화하는 중인 듯하다.

 

ㆍ서호현 위원님은 다음 달에 귀국하신다. 확실히 위원님이 오시고 나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완성되진 않았지만, 재배사와 마을 회관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또 부가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안겨 주셨다. 물론 힘든 점도 많았다. 사무실 분위기가 조금 강압적이거나 딱딱해진 부분. 호사가인 성격 탓에 모든 일에 보고 아닌 보고를 해야 했던 점 등. 아무렴 불편한 지점도 있기는 했다.

그래도 이내 곧 가신다고 하니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위원님이 가시고 나면 마을 생활도 8개월 차에 접어들 텐데, '나는 또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향해 나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ㆍ 스리랑카 생활은 사실 '2년'이라는 마침표가 있기에 사실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누구처럼 여기서 평생 오래 사는 것은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아직 인생은 길고, 시간은 많고, 선택권은 내게 주어져 있고. 조금 더 많고 다양한 경험을 이어가고 싶다.

 

ㆍ 2주 전쯤인가 여자친구와 콜롬보에서 Air BnB 숙소를 묵었는데, 그날 아주 약간의 혈흔이 침대 시트와 베개에 남았다. 당연히 세탁하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체크 아웃을 했는데, 그 이후로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 호스트들이 남긴 댓글을 보았는데, 우리가 여태까지 최악의 손님이었단다. 사실 나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누군가에겐 그토록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지 잘 몰랐었다. 사뭇 미안했다. 린넨과 베갯잇 등은 전부 버리신 듯 보였다. 오늘도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 조금 더 깨닫는다.

 

ㆍ 집 주변 Elephant bay hotel에 들려 커피와 콜라를 한 잔 마셨다. 카페가 전혀 없을 줄 알았더니, 그래도 곳곳에 호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앞으로도 자주 이용해야지. 셰이크 한 잔 마시고픈 날에는 부담 없이 찾아야지.

 


 

파견) D+244 2019. 4. 8. (월)

  

ㆍ 4월이 되었다. 스리랑카를 비롯하여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는 더위가 최절정을 달하는 날을 기준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국가가 많다고 한다. 이번 주 주말이면 스리랑카의 새해가 시작되고, 그 말은 즉 이번 주가 올해 중 최고 더운 한 주가 될 듯하다. 스리랑카의 전기는 대부분 수력으로 수급하는데, 찌는 듯한 더위에 비도 잘 오지 않아서 지금 여기는 극심한 갈수기를 겪고 있다. 물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전력 수급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고, 현재는 스리랑카 전국을 순회하면서 전기 단전을 시키고 있다. 무역, 정치, 외교의

중심지인 콜롬보에서도 자주 정전이 발생한다고 하니 말 다 했다. Kegalle 지역, 특히 사업지 부근은 8시 45분이 되는 순간 딱 정전이 되어 버리고, 점심을 먹는 12시 전후쯤이 되어야만 다시 전기가 들어온다. 컴퓨터로 처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인데 이렇게 매일 전기가 나가버리니 매일 오전에는 빈손이다. 참으로 답답한 하루하루가 아닐까 싶다.

 

ㆍ 그리고 이번 달 말에는 서호현 위원님이 귀국하신다. 장장 5개월이란 기간을 함께 보냈다. 힘든 부분들도 있기야 했지만 사실 지내면서 그렇게 큰 트러블 없이 잘 보냈고, 그리고 우리가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사무실 및 회의장도 멋지게 지어 주셨다. 또다시 동규와 나, 둘이서 사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ㆍ이번 주엔 JICA-KOICA가 협력해서 주최한 Beach Clean Up Campaign 행사가 있었다. 

KOICA에서는 단원들이 업무 시간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준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 KOICA 사무소와 곳곳의 관광지를 소개해주는 정보지 ‘Ceylon Zine’ 발행 활동이나 고아원 봉사활동, 태권도 대회 등을 기획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가끔 타 기관과도 협력하기도 하는데, 속성과 결이 비슷한 일본의 JICA와도 몇 번 활동을 같이 진행했었다.

올해의 협력 교류 활동은 ‘Beach Cleaning’을 주제로 콜롬보에 있는 한 바닷가의 해변 청소를 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나는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양 기관의 의견 교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따금씩 통역 업무를 도와주기도 했다.

Clean Up Campaign은 KOICA-JICA의 상당수가 모인 자리였는데, 같은 조에 배정된 '카토'씨와, 그리고 KOICA 인턴들과 조금 대화를 나누었다. 카토 씨와는 JICA 봉사자에 참여하기 전에 어떤 일을 했었는지에 대해 대화했는데, 이전엔 전문 사진사를 했었다고 한다. 일본 내 유명 연예인들과도 같이 작업을 해 본 적 있다고 하셨다. KOICA 인턴들과는 본인들이 하는 일과 복지 수준을 물어보았다. 많은 의견을 공유하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ㆍ자그마한 문제는 본 행사 이후 KOICA-JICA 교류회에서 생겼다. 행사는 조용히 잘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주용식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가르치며 "His girl friend is Japanese!"하고 크게 외쳤고, 이목은 내게 집중되었다. 현재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비밀로 부쳐놓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갑자기 불쑥 찾아와 여자친구가 누구냐 물어보기도 했다. 다행히도 교류회에는 리나가 참석하지 않았었기에, 대답은 대충 회피했다. 일본 분들에게도 비밀이라고 대충 둘러대었다.

 


 

파견) D+254 2019. 4.18. (목)

  

ㆍ 4월도 중반이다. 다음 주까지 꿈적꿈적하다 보면 4월도 끝. 조금 더 지나면 올해의 반이 사그라진다. 매일 더워서 그런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잘 모르겠다. 진짜, 정신 차리면 근무 시간이 벌써 끝나 있다. 하루하루가 어찌 흘러가는지도 잘 모르겠다.

 

ㆍ 리나와의 관계는 아주 좋아졌다. 서로 표현도 부쩍 늘어났고 또 자주 만나고. 일단의 선택에 대해서는 만족스럽다. 물론 그녀도 우리가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만약 헤어지더라도 친구로 남자고 한다. 언젠가 헤어질 걸 본인도 알고 있는 듯한데 스리랑카 생활이 좀 더 풍족해진다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지 아니한가.

 

 

 

파견) D+259 2019. 4.23. (화)

  

<콜롬보, 폭탄 테러>

  

ㆍ Sinhala/Tamil 명절 끝자락에 부활절과 Poya Day가 겹치면서 오랜만에 3 연휴가 만들어졌다. 서호현 위원님이 금요일은 출근 안 해도 된다고 하셔서 금요일 점심 즈음 리나와 Galle 지역으로 출발했다.

리나와는 2월 10일,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 서로 일정이 있었던 한 주와 서로 별다른 일정이 없었던 한 주를 제외하고 매주 만났다. 뿌듯하다. 여태까지 못 해 보았던 적당한 근거리의 연애가 좋긴 좋구나. 이런 연애는 꼭 해 보고 싶었다.

 

ㆍ Kadawatha에서 Galle 행 버스를 갈아타고 약 4시간 전후로 Galle에 도착했다. 연휴라 그런지 사업지에서 콜롬보로 향하는 버스는 대부분이 만석이었고, 우리도 일반 버스에 겨우 타서 겨우 Kadawatha에 도착했다. Galle에서는 저번에 봐 둔 손 만둣가게로 들어갔다. 찌는 듯 더위에 좁은 가게였지만 그런데도 맛은 엄청 좋았다. 가격 대비 만족도 최고였다. 그리고 저번에 먹었던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서 에어컨 바람맞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해변 산책을 했다. 그렇게 감명 깊은 바다는 아니었는데, 여자친구는 무척이나 좋아하더라.

 

스리랑카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라며. 한참이나 같이 사진도 찍고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하다가 이전에 봐둔 Hikkaduwa 지역의 Hikkatranz Hotel로 향했다. 가격대도 10,000루피 중반에,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그 호텔로 향했다. 적당히 방이 있겠지 하고 갔으나 웬걸, 호텔 프런트에서는 30,000루피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분명 인터넷에서는 10,000루피 중후반이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Online Booking을 하겠다고 핸드폰으로 갖은 방법을 다 찾아 예약을 마쳤다. 그런데 예약을 하고 보니 날짜가 정말 이상한 날로 되어있었다. 환불도 안된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그 호텔에 숙박해야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Google이 추천하는 날짜가 완전 무작위라는 것을. 일단은 너무 비싼 가격에 다른 숙소를 잡고 마친 Hikkaduwa에 휴양 오신 소장님의 사모님과 잠시 차 한 잔을 같이 마셨다. 확실히 소장님과 대화를 나눌 때와는 대화의 결이나 주제가 많이 달랐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Finlanka'라는 숙소로 향했다.

밤에 잠을 청했는데, 진드기가 있었는지 몸 구석구석이 엄청 가려웠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되려 겉옷에 양말까지 신고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잤다.

 

ㆍ 아침 8시쯤 일어나 리나가 하고 싶다던 Scuba Diving을 하러 갔다. 나는 태생이 물을 무서워하는 성격이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등록하고 안전 관련 영상을 시청한 후 착용 장비들을 어떻게 쓰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처음으로 산소통을 차 봤는데, 10kg가 넘는 무게에 꽤 묵직하더라. 물에 뜨는 산소라 그런지 바닷물에 들어가면 무게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떠오르지 않도록 허리 쪽에 모래주머니 역할을 하는 벨트를 찼다.

 

Hikkaduwa Beach는 정말 맑았다.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해변까지 물고기들이 가득 헤엄치고 있었다. 물도 투명해서 물 밖에서도 물고기들이 보일 정도였다. 그런 바다에서 첫 Skin Scuba의 경험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입으로 숨을 쉰다는 것에 이물감과 막연히 두려운 바닷속 잠수. 물 안에 들어가면 온 세상 소음이 막히고 그저 내 숨소리만 들리고, 또 불투명한 시야에 가려 자꾸 두렵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슴이 쿵쿵 뛰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리나의 손을 꼭 잡고 다시 한번 잠수했다. 안 삼켜지는 침을 억지로라도 삼키며 버텨보니 어느 정도 가능은 하겠다 싶더라. 적응 또 적응을 거쳐 두려운 감정은 사라지고 꼭 이수해야 하는 안전 사항들도 어떻게든 통과를 했다. 연습하며 코와 입으로 바닷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Hikkaduwa 바다 밑을 헤엄치며 쭉 돌아보는 것은 너무 좋았다. 참 만족스러운 경험이다.

 

바닷가에서 잠시 쉬다가 비가 올 듯해서 급히 숙소로 들어왔다. 정말 극적이게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마구 쏟아졌다. 숙소에서 씻고 바다거북을 만나러 밖에 나갈 심산이었지만 번개가 치는 바람에 그냥 숙소에서 푹 잤다. 이후 일어나서 주린 배를 채우러 밖으로 나갔고 어제 소장님의 사모님이 추천해 주신 카페에서 간식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 또 숙소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놀고 그렇게 다시 하루가 흘렀다.

 

그다음 날에는 콜롬보에서 점심에는 KOICA ‘김다솜’ 선생님과, 저녁에는 동규 / JICA 봉사단원 '아미' 씨를 만날 예정이었다.

 

ㆍ 새벽 즈음 잠시 일어났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원래는 아침에 바다로 나가 스노클링을 할 생각이었는데 계속 이렇게 비가 내린다면 스노클링을 못 하니까, 비가 그치지 않으면 일찍 콜롬보로 올라갈까 생각하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비는 그치었다. 조식을 먹고 스노클 장비를 챙긴 후에 Hikkaduwa Beach로 향했다. 물고기와 함께, 여자친구와 함께 헤엄치는 게 너무나도 재미있고 좋아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놀았다. 해변에는 산호가 많았는데 뾰족하고 딱딱한 부분이 많아 다리 곳곳에 상처 나거나 찔려가며 놀았다. 한참 재미있게 놀고 김다솜 선생님과 만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슬슬 콜롬보로 올라갈 준비를 하러 방에 들어왔다. 그런데 핸드폰에 전화와 메시지가 몇 개씩이나 와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나 싶으면서 문자창을 열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충격이었다. 콜롬보에 폭탄 테러가 있었다고 했다. 약 10시쯤에. 물론 약속 시각이 늦은 점심시간이라 미리 콜롬보에 올라갈 일은 없었겠지만, 아침에 비가 억수같이 왔었다면 혹시 모른다, 콜롬보로 올라갔었을 지도.

 

일단 소장님께 생존 연락을 드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치를 받았다. 콜롬보를 들르지 않고 일단 자택으로 복귀하는 방향으로 정해져서 즉시 Pick me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Galle로 향했다. 밥을 빨리 먹고 올라가려 했는데, 밥을 먹는 와중에 또 다른 폭탄이 터졌단다. 일단 나는 이동 자제 권고를 받았고 현재 소장님이 계신 Hikkaduwa로 다시 향했다. 여자친구는 별다른 이동 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꼭 돌아가야 한다며 버스에 몸을 싣더라. 다행히도 Kandy로 가는 직통버스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길로 나는 다시 Hikkatranz Hotel로 향했고, 170 USD 정도를 낸 뒤 체크인을 했다. 이후 전국에 통행금지 명령이 떨어졌고 호텔에서는 아예 한 발자국도 못 나가도록 입구가 폐쇄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신나게 놀자고 생각해서 호텔 안 Turtle Beach로 가 바다거북을 구경하고, 거북이와 함께 헤엄치고,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저녁도 소장님이 따로 사주셔서 맛있게 먹고 단잠을 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오늘은 공가 처리를 받았다.

 

다음 날도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한참 늦장 부리다 Pick Me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Rambukkana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기사가 어제 일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는데, 가끔 들리던 'Cinnamon Grand Hotel'에서도 참변이 생겼단다. 거기에 숙박한 적 있는 Kingsbury Hotel, Shangri-la Hotel에서도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무섭다.

 

심지어 동규는 현지 직원 Indika와 함께 테러가 터진 St. Antonio Church에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부활절이기도 하고, 기독교 신자인 직원 Indika와 현지 교회에 가려고 일정을 맞추었으나, 당일 갑자기 Indika가 집안 사정이 생겨서 조금 늦게 출발했는데. 만약 정시에 출발해서 도착했었더라면 어떤 참변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다.

Cinnamon Grand Hotel도 소장님이 매 주말 한인 교회 가기 전에 아이들과 잠시 빵을 먹으러 들르는 장소인데, 이번 주만 소장님의 부모님이 스리랑카로 오셔서 잠시 Hikkaduwa로 휴양 왔다가 변을 피했다. 다들 한 발짝 사이로 모두 생존했다. 일단은 여행 경보가 2단계까지 올라갔는데, 상황을 좀 더 지켜보아야 할 듯하다.

 


 

파견) D+269 2019. 5. 3. (금)

  

<KOICA / JICA의 귀국>

  

ㆍ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JICA는 임시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일본 측 사상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민감한 모양이었고, 기민하게 대처하였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 한편이 철렁했다. JICA가 복귀하면 KOICA도 따라가고, 결국은 우리도 임시로라도 복귀하게 되지 않을까. 어떤 단체가 임시로 철수한다는 것은 정말로 치안이 위험하다는 걸 반증하는 건 아닐까? 생각의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본으로 리나는 일단 떠나게 되지만, '머지않아 이곳으로 돌아오겠지'하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에서는 왜 별다른 대책이 없는 거지?'라는 생각.

그 순간, 나는 무척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듯하다. 일단은 지금 처한 이 상황을 뜨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ㆍ 수 없이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생각이 단지 욕심인지, 아니면 나의 소신인지.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일단 위험 상황을 잠시나마 벗어나 있는 것은 현명한 결정으로 보였다. KOICA도 일단은 잔류 지침이 내려졌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당시 Batticaloa 쪽에서 IS 깃발과 폭탄 공장이 발견되기도 하고, 총격전 끝에 몇 명이 사살되었다는 뉴스도 흘러나온다. 이슬람이나 기독교 예배 행사 때 유혈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 속에 두려운 감정도 이었다. 그 와중에 IS가 이번 사건의 배후를 자처했고, 또 다른 테러가 있을 것이라는 으름장을 계속해서 각종 매체를 통해 놓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ㆍ 그러던 와중 4월 말일에 KOICA도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하루 이틀 후에 귀국이라며 KOICA의 선생님들은 급하게 상황 정리를 시작하신다. Pitiyegama 선생님들도 복귀하시는 바람에 일단은 내가 임시로 Pitiyegama 사무실에서 근무하기로 하였다.

우리의 거취 여부는 5월 2일 공관장 회의 후 결정 난다고 했다. 국내 국제협력의 최고 지위를 가지고 있는 KOICA가 철수한다면 자연스레 관련 기관인 우리 재단도 임시 귀국의 절차를 밟지 않을까. 

 

ㆍ 나는 아무래도 현지에 남아 있는 것이 좋은 편은 아니라 생각하고 일단 일시적이라도 본국이나 제3 국으로 가길 희망했다. 국내 언론사들은 이번 스리랑카 테러 사건을 꾸준히 보도하고 있었고, 내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공관장 회의가 끝나고도 우리는 잔류 결정이 났다. 

 


 

파견) D+270 2019. 5. 4. (토)

  

ㆍ 이번 금요일 소장님이 마을을 다녀가셨다. 상황 설명을 해 주셨는데, 일단 5월 6일 공관장 회의 후 우리의 일시 귀국 논의가 이루어질 듯하다. 예상은 5월 8일 수요일 결과가 나올 듯 보이며 5월 16일 목요일 출발하여 6월 9일 날 다시 돌아오는, 약 25일간 일시 귀국 조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견) D+272 2019. 5. 6. (월)

  

<일시 귀국 결정>

  

ㆍ 마음을 놓고 기다리라는 소장님의 말씀에 일단 마음 놓고 기다렸다.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그냥 방에서만 계속 있었다.

 

ㆍ 오늘 10시 30분 2차 공관장 회의가 있었다. KOICA / JICA / UNV 단원들이 귀국했고, 앞으로도 추가적인 분쟁이나 테러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하니 일단 우리도 복귀 승인이 났다. 당초 5월 16일에서 6월 9일까지 25일을 예상했지만, 6월 13일까지 약 한 달 정도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파견) D+277 2019. 5.11. (토)

 

 <일시 귀국 전 마지막 주말>

  

ㆍ 일주일간 Pitiyegama에서 근무했다. 모르는 건 왜 그렇게 많고, 또 다른 건 어찌나 그렇게 많은지. 업무 파악하느라 금방, 미리 비용 처리하느라 금방, 일주일이 지나가 버렸다. 다음 주면 귀국이다. 시간이 엄청나게 더디게 갈 줄 알았는데, 정말 금방 훌쩍 지나가 버렸다.

 

ㆍ 이틀 전은 내 생일이었다. 늘 느꼈다시피 내 생일을 누가 축하해 주는 것은 무언가 낯부끄럽다. '축하'라는 것이 아직은 어색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그래도 여태 생일은 무언가 씁쓸한 감이 있었는데, 올해는 정말 많은 사람이 축하해 주었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문자만 60명 정도에게 받았다. 그런 말을 해주는 것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사무실 직원들이 케이크도 사주셔서 나름의 파티도 했다. 

 

ㆍ 한국에 돌아가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드리려고 선물을 잔뜩 사고 있다. 중요한 사람들에게 드릴 고급 계피와 일반 계피, 차 등을 샀고 열쇠고리와 Spa Ceylon 화장품, 코끼리 조각을 사 갈 생각이다. 아직 '누구에게 주어야겠다'라는 생각은 따로 없는데 아무튼 의미 있는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벌써 짐을 하나하나 싸고 있기는 한데, 떠난다는 실감이 별로 나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는데 한국의 누구를 만나기보다 빨리 일본으로 건너가 친구들도 만나고 싶다. 

 

ㆍ Pitiyegama 조합이 나 없이도 한 달 동안 돌아갈 수 있도록 물품을 다 구매하고 직원들 급여와 여타 비용을 다 처리했다. 10일 안에 모든 것을 끝냈는데 거의 천만 원가량을 썼더라. 이렇게 돈을 펑펑 쓴다고 썼는데, 천만 원이라니 그런데 살면서 이렇게 큰돈을 이번처럼 마구 쓸 날이 또 있을까?

 

ㆍ 귀국한 주 금요일은 재단 본부에 들를 예정이다. 일단은 무사히 도착했노라 말씀드리고 그간의 사항들, 생활하면서 느낀 것들까지 세세하고 자세히 말씀드릴 예정이다. 또 미리 준비해 간 선물도 전해 드리고. 어쨌든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도와주셨으니 도리를 다하는 게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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