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945 2011. 4. 8. (금)
ㆍ 중학교 땐 아는 선배 하나 없던 내가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꽤 많은 선배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내가 먼저 다가서서 말을 걸었지만 의외로 나를 먼저 알아보시고 인사를 건네 주신 친구들, 선배들도 꽤 있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들어온 이 학교에 점점 아는 사람을 늘려가는 재미, 꽤나 쏠쏠하다.
ㆍ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간식이 나왔다. 간식이 닭꼬치, 김밥, 과일, 초밥이라는 귀띔을 받았기에 더 기대했다. 하지만 간식을 받으러 가는 줄이 너무 길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매점 가서 사탕을 사고 왔는데도 줄이 그대로였다.
간식 가격은 한 번에 5000원씩이었는데 친구들이 다 5000원 가치 안 된다고 불평불만이었지만 난 이거라도 감사하게 먹었다. 다음에는 어떤 메뉴가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음식이던 맛있게 먹어야지. 이 간식 덕분에 배부른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처음으로 초콜릿우유가 나왔다. 아침에 마셔서 그다지 깊은 맛을 느끼지는 못한 것 같다.
수능) D-942 2011. 4.11. (월)
<엄청 맞은 날>
ㆍ 오늘 아침부터 개운하고 다 좋았는데, 때는 밥 먹고 난 후 유도관에서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옆으로 나란히 하고 팔 내릴 때 다리에 손치는 소리 내지 말랬는데 못 들어서 한 대 맞았다. 꽤 충격이 컸다. 진짜 아팠다. 그 후로 계속 옆으로 나란히를 시켰는데 나 말고도 계속 다른 아이들이 팔 소리를 내서 다들 맞았다.
다음 시간 진로 시간. 선생님이 시킨 거 다 하고 쉬고 있었는데 어디서 계란 썩은 냄새가 났다. 짝꿍인 성길이에게 방귀 뀌었냐고 물었는데 안 뀌었단다. 그래서 그 뒤에 있던 종웅이보고 "아 종웅이!" 하며 장난치며 웃고 있었는데 선생님한테 걸려서 한 대 맞았다.
다음 시간 사회 시간. 졸다가 걸렸다. 그래서 또 한 대 맞았다. 오늘 머리를 너무 많이 맞았다. 내일 모의고사 잘 칠 수 있겠지?
수능) D-941 2011. 4.12. (화)
<모의고사>
ㆍ 오늘은 모의고사 날, 아침부터 잠이 너무 쏟아져서 아침 자습 끝나고 모의고사를 칠 때까지 계속 쿨쿨 잤다.
시험 시작 5분 전에 일어나 잠은 덜 깼지만 맑은 정신으로 시험 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앞쪽 쓰기, 어법 부분 문제는 1문제 빼로 다 맞힐 수 있었다. 중간쯤 가니 알쏭달쏭 한 문제들이 있었지만 나름 열심히 분석하다 보니 저절로 답이 보이는 문제들이 있었다. 끝에 가서 실수를 조금 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충 잘 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2교시 수리, 웬일인지 문제가 술술 풀리길래 '어? 왜 이러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모르는 문제가 한 두어 개가 있었지만 찍어서 맞춘 것도 있고 헷갈려 고민하다 그냥 처음에 선택한 걸로 해서 맞춘 것도 있고 저번 3월 모의고사 때 극악의 난이도를 보여주었던 수리 주관식 문제도 술술 풀리길래 '내가 무슨 실수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주관식도 2개밖에 안 틀렸다. 만족한다.
3교시 외국어, 듣기 문항을 치고 있는데 볼펜에 자꾸 신경이 가서 놓친 문제가 하나 있다.
참 아쉽다. 그리고 듣기 문제가 17문제에서 22문제로 문항도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난이도도 훨씬 어려워져서 듣기에서만 10점을 날렸다. 그리도 독해 문제를 푸는데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문법 문제가 뭐 그리 많은지. 모르는 단어에 해석 안 되는 문장은 또 뭐 그리 많은지. 진짜 줄줄이 소시지로 틀렸다. 내 삶 통틀어 최악의 점수였지만 전체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나름은 만족한다.
마지막 탐구, 도덕ㆍ한국사ㆍ지리ㆍ일반사회ㆍ물리ㆍ화학ㆍ지구 과학ㆍ생명 과학 중 2개를 골라 치는 것이었다. 배경지식으로도 풀 수 있는 무난한 도덕과 일반사회를 선택했다. 문제 풀 때는 알쏭달쏭. 배경지식과 육감을 총동원해서 푼 결과 44, 45점으로 탐구는 잘 친 것 같다. 저번에 모의고사 목표가 총점 300점 넘기였는데 이번 시험에서는 무려 총점이 320점으로 저번보다 무려 42점이나 올랐다. 기분이 좋다.
언어 79 / 수리 84 / 외국어 68 / 사회탐구 ① 44 / 사회탐구 ② 45 - 총점 320
수능) D-931 2011. 4.22. (금)
<최근의 일, 모의고사 성적>
ㆍ 며칠 전, 오래 달리기 수행평가가 있었다. 오래 달리기, 그다지 자신은 없었지만 한 번 열심히 해 보자는 각오를 다졌다. 역시 많은 아이들이 pace 조절은 없고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내 pace를 유지했다. 앞에 가던 아이들은 한두 바퀴를 채 안 돌았는데 헉헉거리며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나는 한 네 바퀴를 뛰고 목표를 구체적으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위권 유지하기에서 앞에 달리고 있는 송희선이를 따라잡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희선이가 조금 달리다가 그만둘 줄 알았는데 결승선까지 쉬지 않고 달려서 결국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희선이를 따라잡으려고 열심히 뛰다 보니 6바퀴째까지 안 쉬고 계속 뛰었다. 밥을 2그릇이나 먹었기 때문일까 신장 쪽이 아려왔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지만 내 고유의 근성으로 정신력으로 8바퀴까지 안 쉬고 뛸 수 있었다. 피니시 라인에 들어오는 순간, 털썩 주저앉아 한 5분간 헥헥거린 것 같다. 결과는 7분 43초, 나쁘지 않다. 진짜 힘들어 죽을 뻔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내 끈기에 뿌듯함을 느꼈다.
ㆍ 오늘은 수행평가가 2개나 있었다. 수학과 영어. 1교시부터 수학 수행평가를 쳤는데 쉬운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산을 이상하게 해서 2개나 틀렸다. 그래도 그다지 나쁜 성적은 아니다. 다음 3교시 때는 영어 듣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영어 듣기가 꽤나 자신 있어서 쉬울 줄 알고 쉬엄쉬엄 하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집중하며 열심히 들었는데도 1번부터 답이 안 나왔다. 1번을 제외하고 단어 몇 개만 듣고 짐작해 맞춘 문제도 많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리는 지문부터 하나도 안 들리는 것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어려웠는데, 한 80점 정도 맞은 것 같다.
ㆍ 그리고 오늘 고대하던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성적표를 받았다. 맨 앞장에 전교 40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 생의 최고 등수다. 뿌듯한 마음으로 성적표를 폈는데 등급은 43421 국어보다 수학에서 더 높은 등급이 나와 신기하고 이상했다.
수능) D-924 2011. 4.29. (금)
<다리에 깁스>
ㆍ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메뉴가 시리얼이어서 두 그릇을 먹고 씻고 옷 입고했는데 시간이 꽤 늦은 것 같아 조금 서둘렀다. 방 정리를 다 하고 도서관에 가는데 전기홍 선생님이 핸드폰을 보며 서 계셨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른다고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발을 접질렸다. 정말 엄청난 고통이었다. 선생님이 놀라셔서 계단에 좀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계단에 앉아 5분 정도 더 앉아 있었는데도 계속 욱신댔다. 통증이 꽤나 완화되고 도서관에 올라갔는데 김문수 사감 선생님이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물어보셨다. 발을 접질렸다 대답하니 '발을 접질린 건 네 사정이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발 접질린 게 일부로 그런 게 아닌데. 기분 나빴지만 빨리 들어와 자습했다. 자습이 끝나고도 계속 통증이 있길래 파스를 붙였다. 그때까지도 꽤 괜찮았는데 오후가 돼서 점점 통증이 심해지자 그냥 정형외과에 가 보기로 했다. 정형외과에 도착했는데 문이 안전장치가 없어 손이 끼일뻔했다. 위험했다. 어쨌든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발을 내보라고 하셔서 냈더니 내 발을 조물조물하셨다. 정말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러면서 힘줄이 3개나 늘어났고 사진을 찍어보자고 하셨다. 왼쪽 발을 다쳤지만 비교를 위해 오른발도 찍어주셨다. 둘 다 찍고 보니 왼 발은 꽤 많이 부어 있었고 오른발은 성장판이 약간 열려 있다고 하셨다. 아픈 것보다 다행이었다. 성장판이 열려 있다니. 그리고 깁스를 하러 갔는데 깁스하는 발이 뭐 그리 뜨겁던지, 식겁했다. 목발도 대여했는데 총 5만 원 나왔다. 약을 사고 깁스한 채로 학교까지 오는데 뭔 길이 그렇게 오르막길이 많은지, 오는데 정말 식겁했다. 이제 보니 학교 가는 길이 최악일 정도로 험난했다. 기숙사로 가는 길은 왜 이렇게 가파르고 도서관 계단에는 봉도 하나 없는지. 어쨌든 몸은 되게 힘들어질 것 같다. 아이고 내 다리.
수능) D-895 2011. 5.28. (토)
<전국 청소년 가톨릭 대회>
ㆍ 드디어 몇 주 동안 고대해 온 전국 청소년 가톨릭 대회 날이다. 출발시간이 아침 8시, 빨리 일어나야 했다.
빨리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아 오율이에게 아침에 깨워달라 말을 하고 잤는데, 누가 내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길래 깨어 보니 오율이가 아침 7시 15분이라며 빨리 준비하란다. 피곤하지만, 바로 일어나 3층에서 샤워하고 짐 싸고 나갔다.
운동장에 나가니 버스는 이미 대기하고 있고, 전에 근화여고랑 같이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저 버스에 근화 여고생이 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탔는데 아무도 없었다. 강민구 선생님이 근화여고는 중간에 합류를 한다고 했는데 한 30분 타야 합류하겠거니 생각했지만 5분 정도 달리다가 차가 끽 서더니 근화 여고생을 태웠다. 나는 가면서 근화 여고 친구들이랑 같이 얘기도 하고 이런 걸 상상했었는데 갑자기 제휘 형이 기타를 꺼내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질감이 형성되기 좋은 상황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가요를 부르다가 나중에는 성가를 불렀는데, 근화여고에는 반틈 이상이 신자가 된 지 6개월 내외인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첫 번째 휴게소를 지나서 호원이 형이 앞에 나와 간단한 자기소개라도 하자고 제안했다. 1학년 얼굴마담 울릉도 선우부터 시작해서 계림중 기윤이, 베이스 송은이, 보컬 지형이 형까지 소개를 했다. 지형이 형은 앞에서 멋들어지게 한 곡 뽑았는데 역시 감미로운 목소리, 멋졌다. 화답송으로 효진이 누나가 '세월이 가면'을 불러 줬는데 잘 부르더라.
두 번째 휴게소를 지나면서 호원이 형이 근화 여고 'CELL'장에게 섞어 앉기를 권유해 봤는데 아직 어색하다고 섞어 앉지는 말자고 했단다. 그 일로 섞어 앉긴 글렀고, 모두들 피곤했는지 잤다. 이렇게 전주에 도착했다.
전주는 아기자기하고 이뻤다. 한옥 마을인 만큼 한옥도 많고 단층 건물이 요기조기 서 있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전주 성심 여자 고등학교. 학교가 많이 컸다. 들어가서 사진 찍고 짐 풀고 강당에 들어갔다. 시작 전례를 하고 조별 모임이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도 안 했다. 조별로 모여서 조별 활동을 했는데 대충 시간 때우다가 레크댄스 추러 나갔다. 레크댄스는 포크댄스 같은 건데 두 명이 짝을 지어 손을 잡고 추는 춤이었다. 레크댄스 끝나고 밥을 먹고 공연 준비를 했다. 공연을 하려면 3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두근두근했다. 인트로 연습을 몇 번이나 한지 모른다. 학교별 공연 시간이 다 되어 강당으로 향했다. '창세기'라는 밴드가 열심히 연주 중이었다. 즐기고 있으니 본 행사가 진행되었다. 우리 순서는, 맨 마지막. 이 실력으로 맨 마지막이라니. 그래도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 즐기기로 했다. 잘하는 팀이 많았다.
근데 생각 외로 다들 가요에 춤을 준비했었다. 성가만 두 곡 준비한 팀은 우리밖에 없었다. 공연을 즐기다 보니 순식간에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우리 앞 팀 공연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 긴장감이란, 1초가 1시간 같았다. 정말 긴장되고 손이 벌벌 떨렸다. 앞 팀 공연이 끝나고 우리가 입장했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소개가 끝나고 바로 인트로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인트로에 틀리지는 않았다. 떨렸지만 눈에 코드가 들어오긴 했다. 그런데 손이 안 따라줘서, 틀린 부분은 없지만 놓친 부분은 많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또 피아노를 꾹꾹 눌려 쳤단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서 후회되지는 않는다. 끝나고 앙코르 제의 도 들어왔는데 아쉽게도 하지는 못했다. 재미있고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성지 순례를 간단다. 성지 순례라는 것도 없이 산책로만 걷고 왔다. 걷는 길에 같은 조였던 지원이 누나랑 얘기한 것 밖에 기억 안 난다. 돌아가서 폐회 미사 보고 밥 먹고 다시 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수능) D-884 2011. 6. 8. (수) ~ 11. (토)
ㆍ 드디어 수학여행 가는 날. 이번 수학여행은 1진, 2진, 3진으로 나뉘어 가는데 1진은 빨리 출발해 빨리 도착하고 2진은 적당한 출발 적당한 도착, 3진은 늦게 출발해 늦게 도착하게끔 일정을 만들어 놓고 반마다 팀 배정을 했다.
나는 1반이니 1진, 7반과 소 신학생들, 특수반 아이들과 같이 가는 조다. 1진이라 학교 집합이 오전 6시. 일어나 준비하는 건 적어도 5시쯤에 일어나야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더라. 아침에 못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도 선잠밖에 자지 못했지만 선 잠은 그렇다 쳐도 방에 벌레가 들어왔는지 가려워서 얼굴 긁는다고 자다가 참 많이 깼다. 사감 선생님이 정확히 5시가 되니 돌아다니며 깨워 주셨다. 부스스 일어나 씻고 밥 먹고 옷가지 챙기고 하니 시간이 꽤 빨리 지나갔다. 6시 5분 전, 운동장에 나가보니 생각보다 아이들이 많이 와 있었다. 8시에도 늦어서 헐레벌떡하는 아이들이, 수학여행 간다고 바리바리 준비해 왔다. 버스에 올라 종웅이 옆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경치 감상을 하니 금방 대구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간식을 받고 항공표를 받았다. 그리고 공항 검색대에 들어갔는데 직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 가방에 무슨 이상이 있다고 그러더니 필통을 꺼내서 커터 칼을 빼란다. '이게 무슨 문제야'하고 내 필통에 있는 커터 칼 2개를 꺼내서 직원에게 반납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신문이 놓여 있는 곳에 가져와도 되나. 고민하다 하나 가져왔다 하지만 못내 켕기는 게 있어서 몰래 가져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다. 비행기에서도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신문을 읽으며 사진도 찍고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륙 시간이 되었다. 이륙 시간이 되니 스튜어디스 누나가 안전 수칙을 수화로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만 보던 그 장면을 실제로 하다니 신기했다. 끝나고 우리 학교 애들이 엄청 크게 박수쳐줬다. 어쨌든 박수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출발했다. 활주로까지는 슬슬 가는데 활주로에 가까이 오니 속력을 내면서 비행기가 붕하고 떠올랐다. 비행기를 타면 귀가 먹먹해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구름 위로 올라가니 아래에는 뵈는 게 없고 멀리 보이는 구름 지평선, 한 5분 보다가 읽던 신문을 마저 읽었다. 한 40분 지나니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제주 공항에서 버스 타고 첫 번째 코스인 자연사 박물관에 도착했다. 대충 둘러보고 버스에 도착했는데 기사 아저씨가 제주도 자랑을 엄청 하시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제주도 똥돼지 얘기를 해 주는데, 똥돼지 설명을 너무 리얼하게 해 주셔서 한참 웃었다.
다음에는 '성산 일출봉'에 갔는데 180미터 남짓 되는 거리라 금방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거리도 꽤 되고 경사도 꽤 깊었다. 희일이와 재혁이랑 같이 갔는데 걔들은 다리에 모터를 달았는지 빠르게 올라가는데 따라가는데 애먹었다. 그래도 그 아이들 덕분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이 생각보다는 낮아서 내가 생각하던 경치와는 달랐다. 사진 몇 장 팍팍 찍고 내려왔다. 그 후엔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향토 음식이 나올 줄 알았건만 뷔페를 먹었다. 그래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 씻고 쉬었다. 원래 한라산 등반은 3일째로 예정되었지만 기후 사정 때문에 다음날로 예정이 앞당겨져서 쉴 수밖에 없었다. 내일을 위해.
다음날, 아침을 먹고 일찍 한라산으로 출발했다. 한라산 입구에서 개개인마다 물 한 병, 오이 한 개, 도시락 하나씩 배부를 해 주었다. 올라가면 쌀쌀하다는 소리를 듣고 두꺼운 바람막이를 들고 등반을 했다. 열심히 걸어 '진달래밭 휴게소'까지 도착했다. 나는 꽤 빨리 도착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우리 학교 애들이 꽤 있었다. 나는 꽤나 후미 주자였다. 휴게소에서 밥을 먹었는데 밥, 고기, 김치, 김 등이 있었다. 힘들게 올라가 배고파서 그런지 싹싹 비웠다.
밥을 다 먹고 백록담에 올라가는 길에 박송은이를 만나 송은이와 같이 올라갔다. 둘이 걷는 페이스도 얼추 비슷해 한참을 같이 올라갔다. 저 멀리 보이는 백록담 꼭대기. 이만큼이나 올라왔는데, 참 허무했다. 지금부터 얼마나 더 걷고 올라가야 백록담이 나올진 모르겠지만, 백록담이라는 이름 하나로 버티며 계속 올라갔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끝에 보이는 백록담. 내 앞으로 계단이 수백 개씩 있는데, 이 많은 계단 앞에서 이걸 언제 다 올라가나, 힘이 쭉 빠졌지만 저기 백록담이 있다는 사실만 믿고 마지막 힘을 짜내 올라갔다. 고도도 꽤 높아졌는지, 시원한 바람이 세차게 불고 기온도 꽤 쌀쌀해졌다. 계단 몇 개 오르고 좀 쉬고, 좀 오르고 쉬고, 좀 오르고 쉬고. 저놈의 백록담 가까워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벌써 백록담을 다 보고 내려오는 팀들도 있는데 모두들 얼마 안 남았다고 힘을 북돋아준다. 힘내서 또 오르고 오르고.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정상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백록담. 생각보다 물이 적었지만 백록담 경치는 진짜 멋졌다. 사진도 많이 찍고 놀았다. 내려올 때도 너무 고생이었다. 정말로 계단이 엄청났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돌길. 내려오는데 돌이 너무 많아 발을 계속 삐끗삐끗했다. 진달래밭 휴게소에 겨우 도착해서 뭐라도 사 먹으려고 했는데, 우리에게 물건을 안 판단다. 쓰레기 버릴까 봐. 할 말이 없었다. 한참 밑에 있는 약수터까지 뛰어가듯 향했다. 내려오는데도 돌계단이 가득했다. 아주 다리가 부서질 뻔했다. 겨우 찾은 약수터에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고 했다. 마저 내려와서 숙소에 도착하니 밥 먹고 아주 뻗었다.
세 번째 날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온다. 준비하고 천지연 폭포로 향했다. 비옷을 입고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버스로 돌아갔다. 그다음엔 '더 馬 파크'에 가서 칭기즈칸 일대기를 다룬 공연을 보았다. 말도 망아지부터 어른 말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사람도 아이부터 어른까지 골고루 나왔다. 인종은 몽골인 같았는데, 타국까지 와서 말 타는 걸 보여주고 어린 나이부터 돈벌이를 하는 것이 불쌍했다. 그래도 씩씩하게 말 타는 걸 보며 많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을 타며 이런저런 묘기를 보여줬는데 낙마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말머리를 쓰다듬을 시간을 줘서 쓰다듬어줬다. 그러니 말머리에 있던 털이 빠져 내 손에 잔뜩 묻더라.
다음에는 서커스장으로 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나와 탑을 쌓고 하는데 그 아이들도 넘어지고 탑도 쓰러지고 하더라. 모자로 저글링 하는 아저씨와 외발자전거 타는 아줌마들도 신기했지만 단연 압권은 좁은 구형의 철장에서 오토바이 타는 분들. 처음에 보면서 신기하다고만 했는데, 계속 한 명 한 명 들어가더니 마지막엔 그 좁은 철창에 5명이나 들어가서 묘기를 부렸다. 부딪힐까 내가 더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집에 돌아오는 날 마지막으로 기념품 집에 들렀는데 학생들 용돈으로 사기는 부담스러운 금액의 물건들이 많았다. 버스는 제주 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한 번 타봐서 그런지 비행기에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대구 공항에서 따로 떨어져 난 곧바로 경주로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동대구역까지 갔는데 중간에 가방을 두고 내릴 뻔했다. 진짜 큰일 날 뻔했다.
그냥, 혼자 즐기는 마음으로 떠났던 수학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