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일지] #6. 1학년 2학기, 가을 일기

by 여행사 작가 류익

수능) D-808 2011. 8.23. (일)


<꿈만 같았던 한 달>


ㆍ 생각보다 출가해서 생활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방학하고 내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한 달을 경주에서 보냈다. 가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경주 친구들도 실컷 만나고 하고 싶은 컴퓨터도 실컷 하고 잠도 매일매일 실컷 잤다.

친구들과 놀다 밤 12시쯤에 들어가 아빠한테 혼나기도 했고, 방학 마지막쯤에 안경을 바꿔달라고 말해서 또 혼나기도 했다. 처음으로 친구들과 캘리포니아 비치에 가서 놀아 봤는데, 비키니도 처음 봤다. 가족이랑 바다 보러 부산 해운대에 갔는데 바다는 구경도 못하고 사직구장에 가서 야구를 보고 집에 오기도 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신앙 학교도 다녀왔고, 카타르시스 문학 기행도 다녀왔다. 참, 돌이켜보면 무난하지만 다사다난한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한 달 만에 학교에 와서 펜을 드는데 참 어색하다.

이제까지 실컷 쉬었으니 진짜 열심히 해야지. 무난한 한 달을 보낼 수 있게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능) D-799 2011. 9. 1. (목)


<모의고사>


ㆍ 여름 방학도 끝났고 어느덧 찾아온 9월, 한창 하늘은 창창하고 새들이 노래할 시기이다. 날씨가 좋으니 나도 마음을 정리할 겸 가까운 공원에라도 산책하러 가고 싶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지금은 좀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9월 1일에 있을 모의평가 준비를 해 왔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써 마지막으로 치는 모의평가. 기분이 새롭기도 하지만 이제 곧 수능을 바라보고 있는 고3 선배들의 표정을 보면 맘이 편하지만은 않다.


푹 자고 일어나서 기숙사생을 위한 새로운 Project로 운동장 한 바퀴 가볍게 돌고 반에 들어왔다. 아침에 가벼운 운동을 해서 확실히 잠도 깨고 개운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 항상 그래왔듯 친구들과 잘 치라는 훈훈한 말을 나누고 자리에 앉아 잠깐이나마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 종이 땡 치고 시험 시작하자마자 모든 문제에 대해 최선을 다해 풀었다. 2교시 수리영역을 끝까지 치고 밥 먹기 전에 룸메이트들을 만났는데 표정이 다들 좋아 보이진 않는다. 준수는 블랙리스트 때문에 근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런 준수를 보며 "외국어 영역에서 잘 치면 되지"라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일 말고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왠지 내 마음이 더 아련해졌다. 밥 먹고 Room mate들에게 외국어 영역 푸는 기술을 몇 개 가르쳐 주고 자리에 앉았다. 또다시 시험 시작, 듣기도 열심히 듣고 읽기도 열심히 풀었지만 역시 또 시간이 부족하다. 항상 하는 실수인데도 또 반복됐다. 시험지를 풀면서도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외국어 영역이 끝나고 탐구 영역 시간. 난 도덕, 일반 사회, 물리를 선택했다. 인문계라 도덕 일반사회는 점수가 꽤 나왔는데 물리는 영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괜찮다. 14년 수능에서는 2과목밖에 보지 않는다니까. 어쨌든 시험이 끝나고 가채점을 해보았다. 언수외가 210점 간신히 넘는 점수. 보아하니 저번 시험 보다 등급의 진전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기도 했던 시험이지만 훌훌 털어내고 시험도 끝났겠다 호원이 형이랑 맛있는 것 사 먹으러 시내로 나갔다. 오랜만에 햇살도 받고 날씨도 좋고 참 좋았다. 한참을 걷다 결국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있는 아비오에 들어가서 돈가스 하나를 주문했다. 밥 먹으면서 오늘 시험 이야기도 하고 선생님들 얘기도 하고 취미 얘기도 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농담도 주고받고 다른 사람과 같이 나와서 밥 먹는 게 참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할당된 2시간이라는 저녁 식사 시간은 훌쩍 가버리고 7시에 다시 학교에 가서 오늘 푼 시험지를 살펴보았다. '이걸 왜 틀렸을까, '하는 문제들이 엄청 많았다. 아마 긴장해서 아는 것도 어물쩍 넘어간 게 많은 것 같았다. 시험이 끝나고 아쉬운 이유는 항상 이런 지점에서 나오는 것 같다.


모의고사 날이라 야간자율학습을 11시까지밖에 안 한단다. 하던 공부를 정리하고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 운동장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체육관 앞 벤치에 앉아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반짝반짝했다. 그 광경을 보자 내 눈엔 눈물이 핑 돌았다. 왜 눈물이 나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하늘에 달린 별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야 할 우리 같은 나이에 다들 땅만 쳐다보고 남들을 짓눌러야 하는 나, 아니 우리들이 참 안쓰러웠던 것 같다. 창문 밖으로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며 오늘의 일기를 줄이겠다.




수능) D-783 2011. 9.17. (토)


<화랑 문화제>


ㆍ 글쓰기 연습을 할 겸 화랑 문화제 '산문' 부분에 참여를 했다. 어제 참가 명단을 확인했는데 거기에 홍성민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준수 누나가 화랑 문화제에 온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고 2교시까지 수업을 듣다가 화랑문화제에 나가는 학생들은 당장 모여 달라는 방송을 듣고 나갔다. 참가자는 나, 상근, 병찬, 호원이 형, 보석이 형, 원준이 형, 그리고 모르는 형 한 명까지 해서 8명이었다. 밥을 먹고 출발할 줄 알았는데 밥은 알아서 사 먹고 대회 장소인 경산고등학교로 알아서 가란다.


이유정 선생님이 담당 교사였는데 아쉽게도 선생님은 3학년들 시험 관계로 동행해 주시지 못했다. 우리끼리 일단 햇빛 쨍쨍 쬐는 늦더위를 맞으며 학교를 쫄래쫄래 나가면서 뭘 먹을지 고르는 것 가지고 한참 입씨름을 했다. 결국 김밥 집에 들어가 먹고 싶은 걸 먹었다. 밥을 먹고 경산으로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침 버스에 햇빛이 들어서 피크닉을 나가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경산 고등학교에 도착했는데 학교 시설이 너무 좋았다. 일단 운동장이 거대했고 거대한 건물들이 착착 늘어져 있었다. 이런 학교에 다니면 안 되던 공부도 되겠다 싶었다.


화랑 문화제 문예 부분은 별관 4층에서 진행된대서 올라갔는데 우리가 첫 손님인 듯했다. 좌석표 하나만 붙어 있을 뿐 휑했다. 좌석에 앉아서 내 양 옆자리 사람들 이름표를 봤는데 둘 다 여자 중학생이었다. 시간이 흘러서 사람들이 점점 찼고 곧이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유의사항과 주제를 가르쳐 주셨는데 주제는 독도, 경기장 중 택 1이었다. 난 많은 사람들이 독도를 선택할 줄 알고 경기장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경기장에 쓸 소재가 없어 그냥 독도를 선택했다. 그리고 독도를 향한 우리들의 인식 개선과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자세에 대한 논설문을 썼다. 대충 전체적 틀을 짜고 글을 쓰는데 쉽지 않았다. 나는 이제야 한 장 두 장 채워가고 있는데 벌써 다 쓰고 나가는 학생도 많았다. 솔직히 학생 하나하나가 나갈 때마다 왠지 조급해졌다. 제일 걱정되는 게 심사 위원들이 내 글씨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그 점만 빼면 글의 통일성이나 간결성 부분에 나쁘진 않은 것 같다. 한 시간 반가량의 긴 글쓰기를 끝내고 나머지 무학인들을 기다렸다. 무학인들 중에는 내가 첫 타자로 끝냈던 것 같다. 하나 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보석이 형과 원준이 형은 마감시간 10분 전인 4시 20분까지 자리를 지켰다. 형들의 집중력이란 실로 대단하구나 싶었는데 보석이 형은 2시간을 내리 잤단다.

어쨌든 조금 아쉽지만 신선한 글쓰기를 끝냈다. 생각 외로 산문 부분에 출전한 7명 중 독도를 쓴 건 오직 나뿐이었다. 화랑 문화제를 뒤로하고 다시 하양으로 돌아왔다. 하양에 와선 곧장 노래방으로 갔다. 나, 보석이 형, 호원이 형만 남았다. 가서 모든 걸 잊은 듯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늦기 전에 학교로 돌아가 야간자율학습 1부 때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수능) D-780 2011. 9. 20. (수)


ㆍ 오늘은 영어 듣기 시험이 있는 날이다. 딱히 영어 듣기 대비를 한 건 아니지만 나름 잘 쳐 왔기에 오늘도 뭐 그러려니 하고 별 대비를 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엔 기숙사 수학 시험이 있었다. 계산 실수도 하긴 했지만 16개 중 4개 정도 틀린 것 같다. 공부한 것에 비해 선방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다지 좋은 성적은 아닌 것 같다. 아침 시험이 끝나고 아침 방송을 하러 갔다. 오늘은 신부님께서 첫 방송을 해주신다고 했는데 방송 10분 전, 5분 전까지 도무지 나타날 생각을 않으셨다. 대본도 신부님이 가지고 있으신데, 나중에 알고 보니 허리를 다치셔서 못 하겠으니 알아서 방송하라고 대본을 두고 가셨단다. 일단 대본을 받긴 했는데 이게 고민에 관한 이야기라 참 막막했다.

일단 방송을 하긴 했지만 해결책 없이 그냥 노래만 틀어줬다. 망했다.




수능) D-777 2011. 9.23. (금)


<찜닭>


ㆍ 어느 나른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가 정규 수업 마지막 시간 4강 (한자) 때 내 옆에 앉은 동관이 형이 오늘 저녁 시간에 명계 찜닭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오늘따라 왠지 나가고 싶었는데, 잘 됐다.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기숙사에 들리지도 않은 채 신발만 갈아 신고 밖에 나갔다. 근데 약속시간이 6시 50분까지 나오란다. 7시에 야자가 시작인데. "에라 모르겠다"하고 나갔다. 나간 김에 동관이 형이 살고 있는 고시원에 잠시 들렀다. 꽤 아늑하고 좋았다. 공부할 분위기는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원래 4명이서 먹기로 했는데 한 명이 못 온다고 했다. 아쉽게도 3명이서 먹기로 했는데 나머지 한 명이 주영이 형이었다. 주영이 형은 나만 보면 착한 후배라고 칭찬해 주는 형이다. 항상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성격도 좋고 멋진 형인 것 같았다. 유머감각이 넘치셔서 밥을 먹는 동안 엄청 웃었다. 닭 한 마리를 비우는데 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밥맛도 예술이었다.




수능) D-776 2011. 9.24. (토)


ㆍ 토요일, 사촌 형인 성민이 형이 드디어 장가가는 날이다. 8시에 일어나서 밥 먹고 그럭저럭 준비하니 9시이다.

오늘은 아침 자습을 하지 않고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갔다. 하양 삼성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나니 시간이 10시 30분 남짓. 자습 감독 선생님께 오늘 친척 집에 일이 있어서 좀 빨리 가야 한다고 허락을 맡은 뒤 학교를 나섰다. 터미널에서 포항 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포항 가는 학생!"하고 어떤 아저씨가 외치기에 "네?" 하고 달려갔더니 표를 안 챙겼더라.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냐며, 표를 챙겨주신다. 큰일 날 뻔했다. 겨우내 포항 가는 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도착했다.

포항에 내려서 결혼식이 진행되는 예식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택시 아저씨가 어떤 사람이 두고 내렸다며 I-pod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그러면서 "2만 원에 줄 테니 살래?"하고 물어보신다. 순간 고민됐지만 난 지금 MP4가 있고 가지고 있어도 썩 도움 안 될 것 같고 해서 단칼에 거절했다. 어쨌든 예식장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마중 와 계셨다. 아버지와 인사하고 식이 열리는 3층으로 갔다. 아름답게 꾸민 우리 누나부터 친척들 모두 다 있었다. 다들 인사를 나누고 성민이 형을 만났다. 원래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화장도 하고 슈트를 입으니 멋있었다. 곧 식이 진행되면서 혼인 서약을 하고 주례님의 간단한 축사가 끝난 후에 cake cutting을 했다. 다음 차례는 축가인데 축가는 다름 아닌 형이 직접 불렀다. 자기 결혼식에 자기가 축가를 부르다니, 보기 좋았다. 축가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행진만 남았는데 행진하기 전에 사회 보는 성민이 형 친구가 장난을 쳤다. 성민이 형 보고 "나 유부남 됐다! 넌 이제 내 여자다!" 하면서 뛰어다녀 보란다.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신부에게는 "나 유부녀 됐다! 성민이 내 거! 아잉~"을 깜찍하게 하라고 시켰다. 어쨌든 가벼운 행사가 끝나고 행진을 끝으로 식이 마무리되었다. 성민이 형 결혼 축하드립니다.




수능) D-747 2011.10.23. (일)


ㆍ 최근 몇 주간 시험 기간이었다. 때문에 모든 공부는 내신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친 시험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시험이 끝난 후 개운한 마음으로 다음날 소풍을 갔다. 소풍 목적지는 '우방 타워랜드'.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준비하고 두류역으로 출발했다. 선생님에게 얼굴 도장 찍고 공원 안에 들어갔다. 옛날부터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Bungee jump를 향해서 바로 갔다. 하지만 개시를 1시부터 한단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뤘다. 바이킹도 타고 고스트 하우스도 갔지만 별로 재미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빨리 나왔다.




수능) D-725 2011.11.13. (일)


ㆍ 무엇보다도 이번 11월 10일, 대망의 수능이 있었다.

수능 치러 가는 선배들을 응원가기로 해서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차 타고 문명 고등학교에 갔다. 학교가 산 중턱에 있어서 추웠다. 경산고등학교 학생들이 먼저 와서 현수막 들고 대기하고 있었고 학교 입구에서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녹차, 초콜릿 등을 주시는 어머니회가 와 계셨다. 경산고 학생들은 구호가, 한 사람이 "1등급!" 하면 나머지 애들이 "댐이지!" 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도 질 수 없어서 병찬이가 "1등급!"이라고 외치면 나머지 애들이 "받아온나!"로 결정했다. 이내 무학고 버스가 내리고 신나게 소리쳤다. 그런데 무학고 버스는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무학인들은 안 왔다. 중간에 어떤 여성분이 올라오시더만 문명고 선생님이 "여기 남자들만 치는 수험장인데요."라고 하니 놀라면서 뛰어가신 그런 해프닝도 있었다. 수능날도 자습하다가 갑자기 자유시간을 주셔서 세언이랑 '봉대박 스파게티' 먹으러 갔다. 맛있었다.




수능) D-718 2011.11.21. (월)


<기숙사 산행>


ㆍ 기숙사 생활 처음으로 기숙사 자체 산행을 한단다. 뜬금없는 산행 소식에 다들 반응은 반신반의. 꽤 싸늘한 날씨에 산행이 가능할까 생각하고 아침을 맞았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준비를 했다. 아침에 김밥을 받고 간식도 받고 바로

버스로 갔다. 버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벌써 칠곡군 가산에 도착했더라.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한기. 오늘 등산은 예사롭지 않겠구나, 갑자기 진짜 올라가기 싫어졌다. 등산할 때 편한 옷 입는다고 어떤 친구들은 더러 잠옷을 입고 온 아이들도 있는데 난 조금 불편하더라도 속 누빔이 되어 있는 청바지를 입고 왔다. 그걸 본 친구들이 넌 왜 산 타는데 청바지를 입고 오냐 하는데 나는 잘 선택한 것 같다.

안전 수칙을 듣고 사진 한 장 찍고 출발. 처음 한 30분 정도는 포장도로같이 걷기 좋은 길이 나왔지만 갑자기 생긴 가파른 길에 찬 바람까지 쌩쌩 불었다. 바람이 세지는 않았지만 옷을 다섯 겹 가까이 입어도 추운 그런 날씨였다. 선생님께서 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머니에 넣으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셔서 내 손이 오늘 고생 많이 했다.

올라가다가 풍경을 한 번 쭉 돌아보았는데 이제 산도 겨울임을 알았는지 모두 잎을 떨어뜨리고 민가지만 휑하니 남아 있었다. 그 나무들을 보면서 '겨울이 왔구나, 1년이 끝나가구나'라고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많은 가족분들이 가산을 찾으셨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좋은 운동 하시라고 덕담을 한 마디씩 하면서 지나갔다. 한 분은 기특하다며 초콜릿 한 조각을 건네주셨는데 별것 아니지만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추운 날씨였지만 마음은 훈훈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산행을 한지 한 시간 반 정도 어느 정도 올라오니 바람도 별로 안 불고 길도 평평하고 양지바른 곳에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박칼 선생님께서 "이제 점심 먹자" 하시길래 다들 자리부터 잡고 아침에 받았던 김밥을 하나 둘 꺼냈다. 추운 날씨에 김밥이 거의 얼듯 했지만 배가 고파서 정말 맛있고 왠지 모르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맛있게 점심을 다 먹고 쓰레기도 가방에 넣은 후에 정상으로 출발했다. 그냥 묵묵히 걷고 있는데 위에 보이는 철계단만 올라가면 정상이란다. 와, 끝이 보이는구나. 한라산만큼은 아니지만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차례차례 순서를 지켜서 정상, 가산바위에 올라가 보니 산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고 구석구석 앙증맞은 집들이 숨어 있었다. 멀리서 태양이 나를 비춰주고 있었고,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구경하느라고 우리 조 사진 찍는 것을 못 봐서 아쉽게도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그림 같은 풍경을 한껏 감상하고 내려오니 뭔가 느껴지는 뿌듯함. 아, 이런 것이 산행의 즐거움이구나. 작은 깨달음을 얻은 것 같기도 하다. 내려가는 길은 훨씬 좁긴 했지만 수월했다.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하며 내려오니 정말 금방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그렇게 높고 추워서 올라가기 싫은 산이었지만 별것 아니었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자세로 공부의 모토를 삼으면 되겠다"라는 마음가짐도 다졌다. 여러모로 따뜻한 온정을 느끼고 몇 가지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해 준 그런 산행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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