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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Nov 14. 2024

#28. 해바라기 꽃처럼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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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꽃은 해만 바라보며 일생을 산다. 단 하나만을 바라며, 그것만을 끝까지 바라본다. 단 하나만을 보며 살아가는 그 아름다운 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존경심이 일면서도, 한 편으로는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세상 만물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하나만 바라며 사는 것일까. 이 땅 위에는 별도 있고, 달도 있고, 남도 있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도 있는데,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어떻게 해만 바라보며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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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개 우리는 하나의 선택만 하고 살아간다. 하나의 전공을 선택하고,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고, 한 명의 배우자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하나뿐이다. 


워낙 호기심이 많은 나는 천성이 하나를 진득하게 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된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건드려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하나를 오랫동안 붙잡고 성실히 그리고 꾸준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그래서 하나의 목적을 두고서 오랫동안 정진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약점 중 하나이다. 

이러한 성향은 나를 감싸는 모든 것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3년 동안 준비했던 수능 시험 준비가 그렇게나 힘들었고, 8년 만에 겨우 받은 학사 졸업장이 그러했다. 그리고 하나의 일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지금의 직장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나는 한 무리의 친구들과만 계속해서 어울리는 것에 크게 흥미가 없다. 그래서 늘 새로운 경험과 또 다른 사람, 처음 만나는 무리와 섞여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하나에 심취해서 꾸준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가슴 깊은 곳에서 존경심이 올라온다. 특히 평생 동안 하나의 악기만을 연주했거나 똑같은 종목의 운동만 했거나, 매일 같은 음식을 만드는 등의 명인, 장인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평생을 한 이성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과 그중 첫사랑과 일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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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민들레 같은 마음을 가진 나는 그나마 오랜 시간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이 글쓰기이다. 수필을 쓰거나 일기를 쓰고, 이따금씩 노랫말을 쓰기도 한다. 내가 해온 것들 중에 오랜 시간 동안 싫증 내지 않으며 기쁜 마음으로 해왔던 것이 이 글쓰기라,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고 또 이 글쓰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엉덩이를 붙이고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쓰면 되겠지만, 몇 줄의 글을 쓰노라면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스친다. 미루어 두었던 설거지 거리가 생각나거나 평소에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몇 줄의 문장을 쓰고 나서는 개수대에서 그릇을 씻으며 다음 문장을 생각하고, 못내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도 통화에 집중을 못한 채 또 다음 문단을 생각하는 식이다.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쓰면서 온갖 행동들을 다 해버린다. 그릇을 씻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선 양치까지 끝내가며 한 편의 글을 끝마치고 나면 부쩍 시간이 모두 가버릴 때가 많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쓰는 글의 내용은 그렇게 길지 않은 단편의 수필이 대부분일지라도 글 한 편을 쓸 때마다 반나절이 꼬박 걸리는 경우도 많다. 천성이 이리 꾸준하지 못해 내가 장인이 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은 늘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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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민들레 같은 마음이 내게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문득 찾아온다. 워낙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고 또 그것을 체득하는 것을 즐기다 보니, 체득했던 지식을 결합하여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가령 '태양'이라는 단어를 볼 때면 여름, 더움 등 단어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은 물론이고 太陽, Sun 등 외국어와 '태양왕 루이 14세'의 모습과 타로카드에서 뜻하는 태양의 의미, 국악을 배우며 배웠던 태양의 의미 등이 입체적으로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그로 인해 '이러한 요소를 결합해서 글을 써보자'라는 온갖 글감이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떠오르는 글감이 휘발되어 버리기 전에 재빨리 수필로 남겨놓고는 새까맣게 잊고 산다. 그래서 내가 조명하는 주제들은 대개 일관성이 없다. 생각의 다양한 부분을 결합해서 속으로 녹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들레 같은 마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늘 해바라기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수필의 말미에는 내가 존경하는 시인인 이해인 수녀님의 '해바라기 노래'라는 시를 끝으로 이 글을 줄인다. 




[해바라기 노래] - 이해인

불타는 사랑으로 해를 닮은 꽃

언제나 해를 향해 깨어 사는 맘

노랗게 빛나네 사랑의 꽃잎


해바라기 꽃처럼 살고 싶어라

해바라기 마음으로 살고 싶어라


불타는 소망으로 해를 닮은 꽃

언제나 해를 향해 깨어 사는 맘 

까맣게 익었네 소망의 꽃씨


해바라기 꽃처럼 살고 싶어라

해바라기 마음으로 살고 싶어라


불타는 믿음으로 해를 닮은 꽃

언제나 해를 향해 깨어 사는 맘

땅깊이 묻었네 믿음의 뿌리


해바라기 꽃처럼 살고 싶어라

해바라기 마음으로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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