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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Nov 14. 2024

#29.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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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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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사회인이 되어버리니, 만남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평소 일상적으로 다니는 장소가 정해져 있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급격한 심경의 변화가 있지 않은 한 새로운 사랑이 싹 트이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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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사실 알고 지내왔던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어렵다기보다는 두렵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밥벌이를 하는 곳에서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내게는 심장을 내어 보이는 것처럼 위험부담이 커다랗게 보인다. 그래서 사내 연애를 하는 분들을 보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진다. 내 생활의 대부분을 걸고 있고, 또 걸어야 하는 곳에서 심장을 내어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마치 벼랑 끝에서 남녀가 같이 왈츠 음악에 춤을 추는 것같이 위태롭게만 보인다. 서로 합을 잘못 맞춘다면, 벼랑 저 아래로 같이 떨어질 것만 같아, 위험한 곳에서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그렇기에 간혹 사내에서 만나 그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화마를 뚫고 생명을 구한 소방관을 보는 듯한 존경심이 든다. 아니, 나는 솔직히 그 화마에 뛰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매일 우리가 만나 오늘의 식량을 벌어가는 이곳에서의 사랑은 내게 무척이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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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직장 밖에서 사랑을 찾아볼까 싶었다. 지인 중 누군가가 ‘로테이션 소개팅’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남자와 여자가 단체로 모여 1:1로 10분씩 대화하는 소개팅 방식이라고 알려주었다. 색다른 유형의 만남이라 분위기가 잘 상상되지 않았고, 다수의 이성을 빠른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사실 여태까지의 경험을 미루어 보았을 때 소개팅 상대와의 발전 가능성은 만남 후 2분 안에 모두 결정 났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이성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고, 첫인상으로 서로의 호감을 판단하고 원한다면 만남을 추후에 이어갈 수도 있었다.

 그렇게 행사의 날은 다가왔고, 떨리는 마음을 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행사장에는 남자 25명, 여자 25명을 포함해 모두 50명이 모여 있었고 나는 그날 무려 12명의 여성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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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살면서 1:1로 만나 한 사람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1:1로 10분씩 대화를 나누어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대화를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다수의 이성과 대화하며 느낀 것도 당연히 많았다. 단지 10분의 시간이었지만, 각각의 10분은 모두 달랐다. 10분 동안 서로 자기소개만 하다가 끝난 분도 있고, 10분간 일방적으로 질문과 대답의 도돌이표에 대화 내내 숨이 막힐 것 같았던 분도 있고, 10분 동안 자기 자랑만 하셨던 분도 있고, 심지어는 그 10분 동안 연애 상담을 하시던 분도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이 짧은 시간에 정말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만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엄청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무려 12명의 여성을 만났음에도 내 마음에 들어온 여성은 단 한분도 없었으며, 심지어 호감으로 다가온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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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겪으며 내가 이성을 보는 눈이 정말 좁고 확고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느꼈다. 더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또 그이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정말로 하늘이 점지한 것처럼 힘든 일이구나 하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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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슬슬 안정을 찾아가는 지금은 짝이 없는 이를 찾기도 무척이나 힘들다. 그리고 그 사이에 호감 가는 이를 찾는 이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혹여 마음이 가는 이를 찾더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 기적과 같다는 것을 늘 느낀다.


누구와도 관계를 쉽게 맺을 수 있지만, 누구와도 쉽게 맺을 수 없는 것. 아주 낮은 확률로 만나게 된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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