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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모르게, 나는 남들 앞에서 무대에 섰던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무대 위에서 노래한 적도, 춤을 춘 적도, 악기를 연주한 적도 있었다.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 이를 용기 있게 발산하노라면, 짧게나마 내가 속한 단체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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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관심을 받는다는 느낌이 참 궁금했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학예회 때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서 아이돌 춤을 춘 적이 있다. 그래도 나의 춤선이 나쁘지 않았었는지, 무대에서 내려오니 친구들은 물론 얼굴을 모르는 선배들까지 “무대를 잘 보았다.”라며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남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남들이 나를 인식했다는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 오히려 내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남들 시선을 피해 다녔다. 어쩌면, 나는 남들 앞에 나설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다 보니 남들 앞으로 나서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학교를 대표하여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야 했고, 회사를 대표해서 사업 아이템에 대해 발표해야 했으며, 군 시절 우리 부대를 위해 국악을 배워 민속춤을 추었던 적도 있었다. 차츰차츰 앞으로 나서는 경험이 쌓이면서, 나 역시도 점점 무대 체질로 바뀌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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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나 자체에 대해 제일 많은 관심을 받은 곳은 스리랑카 땅이다. 그곳에서의 나는 아예 피부 색깔부터 달랐기 때문에 단연 어디를 가던지 나 자체가 굉장히 튀는 존재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스리랑카 사람들은 나와 같은 동양인들에게 늘 호의로 대해주었다. 한국 말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이 땅에서, 새까만 외국인이 우리나라 말로 내게 말을 걸어주는 그 자체가 엄청나게 신선했다. 그런데 신기함이라는 환상은 금방 거품처럼 꺼지고 말았다. 스리랑카에는 한국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을 하다가 귀국한 사람이 꽤 많았다. 다만, 그들은 대개 정규 교육과정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배웠고 그렇기에 구사할 수 있는 어휘들이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서로 대화를 나눈대도 길게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타국에서 예의를 바라는 것은 응당 무리이겠지만, 초면에 말을 걸면서도 존댓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을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했다. 한국어로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한 수준이 대다수였다. 그래도 처음에는 낯선 이가 내게 먼저 말을 걸며 다가와 주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이내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의 의도가 빤히 읽히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 사람이 좋고, 한국에서의 기억이 좋았어서 내게 말을 걸었던 경우도 있었겠으나 대개는 내 지갑 속에 들어 있는 돈이 되었던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 되었던지 무엇인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도 수차례 있었다. 나름 유대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자기가 영업하는 물건을 사달라며 요구하거나 심지어는 그냥 돈을 달라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의도를 잘 읽고 행동거지를 맞추는 것도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매번 반복되는 형태의 이러한 대화와 관계 속에 나는 갈 길을 곧 잃어버렸고, 끝내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을 피하게 되는 결론에 다다랐다.
처음 보는 외국인과의 대화는 언제나 유형이 비슷했다. 자신의 이름과 더불어 꼭 자기가 한국에서 살았었고 일했었던 지역이 어디인지 알려주었다. 새까만 외국인의 입에서 나도 잘 모르는 전라남도 장흥군에 살았었니,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일했었니 하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늘 패턴이 똑같다 보니 나중에는 그들이 어디서 생활했는지 들을 때면 대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얼굴을 모르는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면 늘 뚱한 표정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통성명이 끝나면 왜인지는 모르지만 으레 자신의 조국에 대한 자랑을 했으며 그 이후 의미 있는 대화는 거의 이어지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내게는 아무 의미도 영양가도 없는 대화였기에 어느 순간부터 낯선 이가 내게 말을 걸면 나는 대꾸조차 잘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다들 내게 말을 걸다가도 지레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타인의 호의를 무시했던 날이 이어졌다. 이전에는 나는 나 자신이 누구에게나 친철한 사람이라며 굳게 믿으며 살아왔는데 본성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낯선 이의 관심이 귀찮았다. 그저 나를 가만히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스리랑카에는 Horton plains라고, 아주 광활한 평원의 산책로를 걸을 수 있는 관광지가 있다. 하루는 날을 잡아 평원을 쭉 돌아보고는 잠시 한 폭포 근처의 의자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스리랑카 가족이 내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중간에 두고 가족 구성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갑작스럽게 펼쳐진 이러한 상황에 정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하나의 유명한 동상이 된 것 같기도, 혹은 이름을 날린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가족은 한 술 더 떠 나를 정 가운데 두고선 전체 가족사진까지 야무지게 찍고선 제 갈길을 향했다. 내게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 모르는 이의 관심 내지는 호의가 내게는 맞지 않겠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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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자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현지 사람들이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어 참 감사했다. 터키를 갔었을 때는 현지 친구와 함께 시골 마을에 있는 클럽에 들린 적이 있는데, 클럽 안에 동양인이 왔다는 것이 소문이 났는지 현지인들이 정말 벌떼처럼 몰려와 내게 같이 춤을 추자며 너나없이 손을 내밀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참 감사하면서도 당황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적당한 호의는 좋으면서도 또 과도한 관심은 부담스러운 정말 양가적인 가정이 몰아 쳤다. 그러면서, 나는 나중에 유명해 지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유명해 진대도 그걸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큰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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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연예인의 삶을 옆에서 잠시나마 지켜본 적이 있었다. 상경한 후 졸업한 대학의 재경 동문회 행사에 초청을 받게 되어 한 호텔로 갔던 날이다. 모든 좌석은 자리가 지정되어 있었는데 나는 공교롭게도 초청 가수 및 연예인이 있는 자리에 배정되어 그들과 같이 잠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전국구로 이름을 날린 한 트로트 가수도 있었는데, 행사 내내 사람들이 찾아와 사인과 사진을 찍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연예인은 행사 시간 내내 정말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응대해야만 했다. 그는 약 2시간이라는 행사 시간 내내 사인 요청 세례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찍 자리를 떠버리고 말았다.
그의 삶을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조망하지는 못했지만, 잠시나마 옆에서 보았을 때도 그가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들을 통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겠지만 그 대가로 본인의 기분이나 상황이 어떻건 늘 웃는 얼굴로 모르는 이를 상대하는 삶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의 삶에 잠시 나를 대입해 보았다. 나는 그처럼 과연 그렇게 매일 웃으면서 타인을 상대할 수 있을까. 지난 기억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잘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단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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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유명해질 날을 대비해, 마음 준비 역시 단단히 하는 것도 내 삶의 중요한 숙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