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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전재판’이라는 탐정 게임에 푹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해당 게임의 주 내용은 한 살인사건에 대해서 증인들이 증언하는 말들에서 모순점을 찾아 증거와 함께 사건의 시비를 가리는 것이다.
게임의 주인공인 ‘나루호도’는 법정에서 증인이 위증을 할 때마다 모순점을 발견하면 가감 없이 당당하게 ‘이의 있다’라고 외친다. 확실한 증거를 통해 증인의 위증을 논박할 때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쾌감이 몰려온다. 상대방에 발언에 당당히 맞설 줄 아는 그러한 자세는 내게 유독 큰 감명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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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인생을 살아오며 그렇게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항상 타인의 의견을 쫓아가기만 바빴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숨기고 가는 것이 나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송곳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를 보면, 나 스스로가 그렇지 못하니 비겁하게 뒤에 숨어 ‘왜 저러느냐’라며 비난한 적도 있었다. 아니, 사실 그럴 용기도 없어 혼자 되뇌고선 덮어버릴 때가 많았다.
가끔 이런 행동을 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어쩌다 이렇게 비겁한 사람이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나 보아 왔었던 ‘상명하복의 정신’이 완전히 핏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일까, 누군가의 의견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것은 내게는 엄청나게 큰 도전처럼 느껴진다. 늘 그랬다. 가정에서도, 군대에서도, 어쩌면 지금까지도. 적어도 내가 보았던 사례에서는 누군가의 의견에 거스르는 발언을 한다면 결과는 늘 좋지 않게 끝난 경우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이의’를 입 밖으로 꺼낸다면 누군가는 내게 꼭 고함을 지르거나 체벌을 했고,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받았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일정하지 못했다. 반항이라도 할 세라면 늘 체벌이 뒤따라왔다. 난 체벌이 너무 싫었던 탓에 내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저 순간을 속여 넘어가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거짓말이 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거짓말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태연하게 거짓을 고할 때도 많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선생님께서는 모든 수업시간마다 교과서와 함께 꼭 몽둥이를 들고 교실에 오셨다. 그들에게는 도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었다. 나는 워낙 개구쟁이였던 탓에 나와 내 친구들은 선생님의 눈 밖에 날 때면 몸 구석구석을 맞았다. 실제로 나는 교육의 이름하에 학교 생활을 하면서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온몸의 구석구석을 맞았다. 그래도 그들의 권위에 덤벼들지 않았다. 아니, 절대로 하지 못했다. 그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는 더욱더 심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자 물리적인 처벌은 많이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간부 혹은 선임 병사들의 눈 밖에 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일로도 반드시 보복이 따라왔기에, 철저한 계급 사회의 아래에서는 내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틈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의문을 제기하기보다 그저 냄새가 난다 싶으면 뚜껑을 덮고 모른 체하고 덮어버릴 때가 많았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학습된 무기력 앞에서 진실을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못내 아쉬워 뒤에서 궁시렁거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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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탓에 눈속임도 점점 달인이 되어갔다. 내 말에 의문을 가지는 이들을 만날 때는 지레 겁먹고선 아예 상대를 안 했고, 어쩌다 내 속마음을 들킬 때에는 그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뿐 반성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 혼자서 쌓아 올린 모래성 안에 혼자 몸을 감추고, 누가 무너트리면 어쩌나 늘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나 속내를 비치지 않으며 눈속임을 잘만 했던 나는 꼭 취약한 관계가 하나 있었다. 그것을 바로 이성관계이다. 여자친구를 사귀게 될 때조차 나는 늘 그러했듯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가령 혼자 있고 싶을 때는 그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늘 어쭙잖은 핑계나 거짓말을 덧붙여 나만의 시간을 따냈고, 연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날 때조차 역시가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곤 했다.
촉이 좋은 여자들은 단번에 내 거짓말을 알아보았고, 이렇게 별것도 아닌 것들에 나는 연인 간의 신뢰에 금을 낸 적도 많았다. 만일 거짓말이 들키는 날이면 마치 궁지에 몰린 쥐가 된 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잔머리만 데굴데굴 굴렸다. 역시나 거짓은 또 거짓을 낳았고, 그에 지친 이성들은 나를 떠나갔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며 뒤늦게야 늘 후회하곤 하지만 사실 깨달음은 그때뿐이었다. 변하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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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거짓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화면 속 인물을 보며 깊은 존경심이 들 때도 있다. 그 ‘미움받을 용기’는 내게는 너무나 멀고 또 무겁게만 느껴지는 도전이다. 언젠가 내게도 그 무게를 짊어질 날이 올까. 이러한 마음을 가상 세계에라도 작게 담아 외친다. ‘나 역시도, 이의가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