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이제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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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더라도 생각만큼 빠르게 진전이 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보다 답답하고 싫증을 느낀다. 하루빨리 멋진 몸과 화려한 능력을 갖추고 싶었고, 또 하루라도 더 빨리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와 근사한 관계가 되기를 원했으며, 하루아침에 경제적으로 아무런 걱정이 없는 근사한 부자가 되고 싶었다. 무언가를 하려면 물방울을 떨어뜨리듯 한 방울씩 고요하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꼭 상황에 닥치면 늘 서두르고 마는 것이었다. 가령, 자격증 시험을 본다고 하면 정공법으로 하나하나 배우며 깨치는 것보다는 ‘~일 만에 완성하기’ 따위의 책을 일거나 그 자격증을 빨리 취득했다는 사람들의 수기집을 읽으며 어떻게든 그 방식을 답습해 빨리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도록 갖은 애를 썼다. 결국에는 얼마 못 가 지쳐 나가떨어져 버린다. 결론적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한 결과로 남게 되는 것이 부지기수이다.
사실 그렇게 날려버린 시간이 꽤 많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 무엇이라도 해보아야겠다며 혼자 영어 회화 공부도 해보고, 중국어 공부도 해보고, 부동산 공부도 건드리면서 나름 혼자 갖가지 도전들을 많이 했었지만 정말 길어봐야 열정은 2달 정도 빛을 발하고선 멈추어 버렸다. 싫어도, 괴로워도 일단은 계속해보아야 잔근육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늘 요령만 피우다가 지레 손사래 치기 일쑤였다. 열 손가락에 모두 반지를 끼우고 싶은 욕심쟁이가 된 것 같이 이것저것 욕심만 부리다가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의 반복이다. 늘 빠르고, 또 조급하게만 마음을 먹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늘 마음이 급했다. 정말 급하고도 급했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해도 되는 것을, 그렇게 급하지도 않으면서 급히 행동하다 화를 불렀다. 작사가 도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정해놓은 기간 내로 꼭 작사가 데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표한 기간까지의 진척이 없자, 그 이후에는 작사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고 말았다. 오랜 시간 꿈꿔왔던 것인데도 말이다.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오래 바랐던 것들도 쉽게 지쳐버리고 만다.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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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삶을 살아가며 여유롭게 무엇인가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학생 때도 늘 계획표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만들어낸 계획과 틀을 어떻게든 지키려 했었고, 군대에서도 또 사회에서도 늘 내가 지켜야 하고 해내어야 할 할당량은 늘 존재했었다. 그래서 그 할당량을 채우느라 여유 없이 그렇게나 각박하고 급하게만 살았다.
이렇게나 목표 지향적인 성향은 당연히 인간관계를 대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빠르게 열고만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특별한 관계를 맺길 원했다. 그래서 상대방의 의중은 신경 쓰지도 않고 늘 마음만 앞서 먼저 표현하고, 또 밀어붙이려고 했었다. 그러던 중 한 분은 나에게 좀 더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다가왔으면 좋겠다며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었던 적도 있었는데 사실 당시에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나의 머릿속에는 그의 애인이 되어 한시라도 빨리 내가 하고 싶은 데이트들을 해치워 버리고 싶었다. 결코 상대에게 마음이 커지고 또 깊어질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늘 밀어붙이고 또 사냥하듯 타인의 마음을 쟁취하려 했다. 기다림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내게 지레 겁을 먹고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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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라는 명제를 깨닫기까지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적어도 지금은 그 명제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무언가를 공부한대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그리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더라도 천천히 진전을 해보려고 마음속에서는 계속 브레이크 패드를 밟아보려 한다. 내일을 생각하면 어느샌가 한시가 조급해지지만, 그래도 이제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