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새파랗게 어린 저도 강연이란 걸 합니다.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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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살아가며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가끔 강연 의뢰가 들어오면 오직 그날만을 생각하며 몇 날 며칠을 긴장하고 있다가 남들 앞에서 손발을 벌벌 떨면서 이야기를 마치고, 거의 사시나무가 되어 단상을 내려오곤 한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척만 해도 그렇게나 긴장이 되어버려 심장소리가 귓등까지 울려버릴 만큼 배포가 작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오며 워낙 독특한 경험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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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으로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해 본 경험은 대학교 새내기 때였다. 우연히 ‘사람 도서관’을 운영하는 담당자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나도 그 단체의 ‘사람 도서’로 등록했던 적이 있다. ‘사람 도서관’이란 한 사람의 이야기를 구술 책으로 만들어 이야기를 듣고 싶은 독자들에게 직접 입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을 말한다. 특히 아픈 일을 직접 겪은 이들이 그가 겪은 일과 비슷한 이야기를 듣기만 하더라도 스트레스 지수가 상당히 낮아지는 논문 결과를 보면 그 자체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으로 보였다.
어찌 되었던 고교를 막 벗어난 새내기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란, 고교 시절의 밴드부 경험, 입시의 경험, 그리고 대학 새내기에서 마주친 첫사랑의 경험 따위의 시시콜콜한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내 이야기의 특성상 인근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친한 동생에게 수다 떨듯이 이야기를 하는 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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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스리랑카에 가니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곳에서의 나는 언제나 먼 곳에서 온 ‘귀한 손님’이었고, 꼭 어디를 가더라도 귀빈석에 앉아 귀빈 취급을 받기도 했다. 참 부끄럽게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고, 커다란 도움이 되지는 않는 나일지라도 선진국의 국민을 대표한다며 꼭 행사 중간에 마이크를 쥐어 주셨다. 그럴 때마다 여느 대학생의 입에 걸맞지 않은 ‘두 국가 간의 우호’라던가, ‘긴밀한 협력’따위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내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늘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에 입국하고 나니 이렇게 어린 청년이 개발도상국에서 특이한 경험을 했었다면서 또 각종 행사나 국제 포럼 등에 초대되는 일도 있었다. 아무래도 젊은 나이에 타국에서 국제개발 실무를 해본 청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국제개발을 꿈꾸는 청년을 위해서 실무자의 입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할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 똘망똘망한 눈앞에 내가 현장에서 겪었던 일 들, 그중 특히 힘들었던 일들과 그 속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타국 생활을 해왔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강단에 서서 한 국가의 실황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두 눈을 감고 내 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는 어르신의 표정을 볼 때마다 또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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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번은 타지 생활에서 알게 된 일본인 여행자가 알고 보니 일본 오사카 지역의 중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직업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인을 대표해 내 삶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다. 한창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시기라 직접 일본에 가서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고 비록 내 방 안에서 화상으로 강의를 진행했지만, 일본어로 내 삶의 이야기를 전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이나 외국어로 외국인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정말 온 힘을 다 쏟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외로도 주니어 포럼의 대표자로 강단에 서거나, 청년을 대표한다며 토의장에 나서는 등 여전히 나에게는 무겁기도 하지만 가끔씩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만약 정식 작가가 된다면 나의 책과 글에 대한 이야기를 또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포부를 품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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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강의를 하겠다며 여태 강단에 올랐다. 온 정신이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된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어찌 되었던 중요한 것은 용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부터 조금씩 잔근육을 키워 놓아야, 미래에 진심이 담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새파랗게 어린 나도 새싹을 키운다는 생각을 안고서 무서울지라도 계속 강단에 나선다. 어찌 되었던 작가로서 보여줘야 할 것은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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