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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즐기지만, 특히 그 활동을 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친한 지인’으로 남겨 가는 것을 좋아한다. 내 성향은 늘 그래왔다. 그래서 30대의 성인이 된 지금까지 초등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님과도, 고등학교에서 만난 은사님과도, 캠퍼스에서 만난 대학 교수님과도, 동아리 활동에서 만난 친구나 대외 활동을 하면서 만난 누나, 심지어는 여행지에서 알게 된 사람까지 충분히 1회성으로 끝날 수 있는 만남들을 알뜰살뜰 챙겨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항간에서 이야기하는 ‘활동보다는 사람을 남긴다.’라는 말에 늘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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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지나간 기억과 스쳐간 사람들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전화를 걸어 시덥잖은 안부를 묻는다. 신기하게도 오래된 인연들에게 기꺼이 먼저 연락하는 것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나 스스로 인연을 끌어가고, 또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실제로 나의 대학 시절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에 있는 지인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 취미일만큼 ‘지인’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많이 만나고 다녔다. 대외 활동을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인사라도 한 번 나누게 된다면 꼭 그들의 연락처를 받았고 불쑥 그들을 찾아갔다. 이런 나를 보며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에는 그러한 반응들을 꽤나 즐겼던 것 같다. 전국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미래의 재회를 꿈꾸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가까이 둘 수 만 있다면 이런 모든 관계들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한 번 맺은 인연은 그렇게나 잃어버리기가 싫었다. 어떻게든 그 연을 이어가는 것이 나에게는 관계의 중요한 책무였다. 그랬기 때문에 강제로 관계가 단절될 수밖에 없는 군대라는 환경이 내게는 너무나도 벅찼다. 그 작은 사회에 갇혀 바깥의 인연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매일 얼굴을 같이 보는 전우들보다 여행지에서 인사 몇 마디 못 나눈 그 사람들에 더욱 관심이 갔었고, 작은 우리 속에 갇혀 항상 그 바깥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매일을 버텼다. 며칠 간의 휴가라도 받을 때면 그렇게 바랐던 오래된 인연들을 만나러 전국을 쏘다녔다. 대학교 동아리 선배를 만나러 광주로 향했고, 성당에서 알게 된 지인을 만나러 속초로 향했다. 그렇게 나의 쌓인 욕구들을 해소해 버리듯이 사람들을 만났다. 이렇게 발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는 참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주변인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까지 드는 어리석고 오만한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아무렴 그게 뭐라고, 나는 정말 오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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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람들을 잘 챙긴다고 자화자찬했었던 나는 의외로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렇게나 어렵고 힘들었었다. 학교에서 매일 보는 친구들, 기숙사에서 같이 사는 룸메이트, 같은 침상을 쓰는 선 후임 등 매일 보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어떤 거리감을 두어야 하는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매일 보지만 데면데면하게 지내기에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고, 또 너무 가까이 지내던 이와는 늘 갈등이나 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그 사이에 어느 정도의 온도가 적당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도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해서 취향을 많이 타고 또 호불호도 강하게 드러내 버리는 성격이었기에 나의 어릴 적 관계들은 모두 뜨거운 장작처럼 뜨겁게 대하거나 차가운 얼음장처럼 냉정하게 대하면서 모든 관계를 두 갈래로 나누어 버렸다. 눈 안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은 아예 본 체도 안한채 지냈었고, 가깝게 지내고 싶은 이들만 몇 골라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듯 했다. 하지만 그와도 정말 별 것 아닌 것으로 다투고 나서는 다 타버린 장작처럼 서로 메말라 버리기 일쑤였다. 화염 속과 얼음장 사이에 갇혀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늘 고민했던 것이다.
겨우내 내가 내린 결론은 마음에 가는 이들을 그렇게나 가까이 두지 않는 것이었다. 너무 붙어만 있으면 필시에 서로 가시에 찔려버린다는 것을 경험에 비추어 깨달았다. 마치 고슴도치들이 서로 가시에 찔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서로의 체온을 나누듯, 나 역시도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와도 서로 너무 가까이 붙지 않고 관계의 온도만 따뜻하게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가까이 있는 이들을 멀리 두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가까이만 하다가 또 내가 애정하는 사람을 지구와 달의 거리처럼 떨어뜨리기는 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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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도 멀리 있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챙기려는 성향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보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거리를 두려 한다. 참 모순적인 나의 인간관계의 논리이다. 정답은 없겠지만, 모순적으로 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나한테는 꼭 맞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