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바다에 가지 않고, 집 앞 공원을 달렸습니다.

- 못된 욕망을 이겨내기 위한 나의 분투기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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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늘은 바다로 갈 생각이었다. 모처럼 받은 주말의 휴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청하게 보내기는 싫었다. 확실히 집에 TV를 들인 이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검은 화면 앞을 멍청하게 지키는 날이 많아졌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내 각막에 맺히는 온갖 자극적인 정보들에 영혼이 팔려 그 속에 완전히 잠식되어 버린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인가 나의 모든 여가시간은 공허 속에 흩뿌려지고 없어진 나날이 많았다. 분명, 휴식 시간이었지만 도무지 이것은 휴식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몇 날, 며칠을 쉰다고 한들 눈 밑에 맺힌 피로의 증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바다에 가 볼 생각이었다. 탁 트인 바닷가에서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차 한잔을 마시면서 집에서도 잘하지 않는 독서 혹은 명상을 하거나, 또 수필을 쓰고 싶었다. 이러한 계획은 꽤 오래전부터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왜인지 선뜻 차표를 예매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심지어 어느 지역에 가서 어느 숙소에 묵을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것들을 할 것인지까지도 대충 정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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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또 실행력이 빠른 편이다. 하지만 이번 여정만큼은 예전과는 달리 도무지 먼저 행동이 앞서 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 보고자 했다.

30대가 되면서 그래도 20대 시절의 태도나 행동보다는 더욱 성숙하게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어제는 그 변환점에 다다랐으니 무엇보다도 나에게 좀 더 솔직하고 싶었다. 나는 물론 바다에서 내가 하고 싶은 작업들을 잔뜩 하고자 하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곳에서 펼쳐질 새로운 인연들에 대해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컸다. 낯선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사람만큼 큰 짜릿함을 주는 것은 내게는 별로 없다. 입으로는 바닷가에서 독서를 하겠다며 거창한 일을 하는 것처럼 떠들어 놓고서는 사실 마음속에는 완전히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그 안에는 새로운 사람, 특히 새로이 만나게 될 이성에 대한 갈망이 훨씬 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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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늘 이러했었다. 혼자 시간을 보내라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늘 그 시간에 새로운 인연을 찾으러 밖에 나설 궁리만 했었다. 그런 노력으로 별로 관심도 없는 농촌 활동 동아리에 들기도 했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위스키 스터디에 나가보곤 했다. 정말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활동들에 쏘다녔다. 활동보다는 그곳에서 만나게 될 인연들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덕에 다양한 분야의 경험치를 쌓았고, 남녀를 불문하고 인맥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활동들 사이에 진정한 ‘나’는 없었다. 그저 그 활동에 있어서는 어떤 인연이 만들어질까만 골똘히 고민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사람을 찾아 수많은 장소를 쏘다녔고, 그 많은 활동들을 했던 것을 자랑인 양 늘여놓을 때도 있었다. 누군가가 내 많은 경험에 박수를 쳐줄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오르곤 했다. 결코, ‘본질에 충실했던 나’는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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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는 늘 바깥에서 찾아오는 기쁨과 행복만을 찾아 이리저리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다. 물론 그 끝에는 별로 남아 있는 것들이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면서도, 나는 늘 그렇게만 행동했었다.
그리고 30대가 된 지금은 더 이상 그런 행동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그래서 모처럼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망설여졌을지 모른다. 나의 욕심은 바다가 아닌 게스트하우스에서 이어질 인연을 바라고 있었고, 그런 내 모습을 다시 목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오늘 집 앞의 하천가를 달렸다. 오로지 나의 체력과 건강을 위해서. 나 스스로 샘솟는 기쁨과 행복을 느껴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달렸다. 진정으로 나 자신과 시간을 보내보는 것으로 여태까지의 나의 바보 같은 욕심들을 달래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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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바다에 안 가고 집에 있었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꽤 유의미한 변화이자 인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멋진 어른이 되려면 이렇게 나 혼자서 잘 지내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태도를 더욱이 새기고 싶다.


그래 앞으로는 나 자신으로부터 샘솟는 기쁨과 사랑을 쫓아가 보려는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더욱 힘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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