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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나는 물욕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꼭 가지고 싶은 존재가 하나 있었다. ‘강아지’였다. 언제부터 그리고 왜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그저 시골 바닥을 뛰어다니는 강아지를 볼 때면 하염없이 그를 쫓아가기도 하고 애완견을 키우는 친척 집에 갈 때라면 늘 그의 주위를 맴돌며 강아지의 눈을 하루 온종일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마음이 동한 나는 우리 집에서도 강아지를 키우자면서 부모님께 사정없이 졸라댔지만, 그들은 눈 끔뻑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 생일이 된 날, 부모님께서는 가지고 싶은 선물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강아지를 가지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강아지 모양의 장난감을 선물로 받은 날도 생생히 기억난다. 강아지에 대한 열망이 오죽했으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머리맡에 손가락만 한 양말을 내어놓고서, 자고 일어나면 산타 할아버지가 양말 속에 하얗고 작은 존재를 넣어주고 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했다. 그리고, 매년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으면 내가 기대한 강아지 대신 늘 손톱만 한 캐러멜 몇 개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내심 뿔이 나서 내 마음도 몰라주는 산타 할아버지를 그렇게나 원망했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얼굴도, 형태도, 아니 존재조차도 잘 모르는 이에게 실망감을 가득 안았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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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생명을 키워보고 싶었다. 그런 내게 생명이라는 존재는 정말 우연하게 내 품에 안기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렸던 날, 놀이터에서 비를 흠뻑 맞으면서 뛰어놀다가 몸에 한기가 느껴질 때 즈음 집을 생각하며 신발끈을 고쳐 매려는 순간, 바닥에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 존재를 바라보고, 아파트 단지 화단에 동네 할머니들이 심어놓은 배춧잎 하나를 똑 따고서 귀한 보물을 모시는 양 그 달팽이를 소중히 감싼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루가 다 가도록 그 작은 존재를 세심히 보살폈다. 배춧잎을 뜯어먹는 것을 한참이나 구경하다가, 달팽이가 꾸물꾸물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나는 튀어나온 달팽이의 두 눈을 냉큼 눌러보기도 하고, 껍질 채로 몸통을 들어 올려 그가 지나간 자리의 찐득찐득한 진액을 손가락 끝으로 느껴보곤 했다. 내 앞에 이 존재가 너무나도 신기하기만 했다. 처음으로 내가 온전히 한 존재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를 보살피면서 새로이 알게 된 것들도 많았는데, 다른 생명의 똥은 색깔이 다르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평생 갈빛이 도는 인간의 똥만 보았던 나는 생애 처음으로 달팽이가 만들어낸 생명의 흔적을 보았고, 그는 새파란 배춧잎을 먹었기에 똥의 색깔도 선명한 초록빛을 띠는 것도 보았다. 이러한 작은 사실조차도 내게는 무척이나 진귀하고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생명을 향한 내 열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게나 생경했던 달팽이에 대한 열정은 불과 일주일을 가지 못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유리병에 갇혀 지내는 그의 똥을 청소하기 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또한, 그의 밥을 주기 위해 화단의 배춧잎을 한 장씩 서리하는 것도 그렇게나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 달팽이는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어린이의 손에 붙잡혀 평생을 똥밭에 구르다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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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쥐어진 첫 생명은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내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내게 두 번째 생명이 곧 찾아왔다. 당시에 무슨 유행이 돌았었는지, 통닭 가게에 배달 주문을 하면 물고기 한 마리를 사은품으로 주는 행사가 있었다. 나는 통닭도 좋았고, 새로운 생명도 좋았다. 아버지는 흔쾌히 통닭을 시켜주었고, 김이 나는 빠알간 통닭 옆에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물고기 두 마리를 얻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그 물고기들을 장식장 옆에 두고 키웠다. 한 마리는 배가 통통하고 그 좁은 수조에서도 속도가 재빨랐지만, 다른 한 마리는 해도 홀쭉하고 며칠간 굶었는지 영 힘이 없는 모습이었다. 통닭 가게에서는 물고기와 함께 며칠 동안 급여할 수 있는 먹이도 조금 주었는데, 그 먹이를 수조에 넣기만 하면 통통한 녀석이 재빠르게 달려들어 떨어지는 먹이의 8할을 모두 독식하였다. 그에 비실비실한 녀석은 바닥에 떨어지는 먹이만 조금 주워 먹고는 또 맥이 풀린 듯 축 쳐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정량 이상의 물고기밥을 수조에 더 쏟아붓곤 했다. 그럼에도 홀쭉한 녀석은 거의 음식을 받아먹지 못했고, 점점 더 비틀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만 삼일이 지났을까, 학교를 마치고서 수조로 달려간 나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통통하고 음식을 많이 먹어 그렇게나 건강해 보이던 녀석이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마치 배에 폭격을 맞아버린 듯 동그랗게 터진 채 수조 가장 밑에 잠들어 있었다. 제 용량 이상의 먹이를 무리하게 받아먹다가 결국 자기의 배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제야 홀쭉한 녀석도 먹이를 주면 제 몫을 잘 받아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통닭집에서 받은 먹이는 다 떨어져 버렸고, 아버지가 어디에서 구해온 물고기 사료에는 개미들이 잔뜩 들끓어 있어 사용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나는 굶고 있는 물고기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냉장고를 열어 빵가루를 손가락으로 잘게 부수어 수조 위로 한 조각씩 떨어트리곤 했으나, 물고기가 곧 잘 받아먹는다 싶더니 결국 그도 머지않아 생명을 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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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명을 이런 기회들로 다루면서 생명을 대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번거롭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게다가 물을 주는 것조차 귀찮아 식물마저도 곧 말라죽어 버리는 경험을 하고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생명을 다룬다는 것이 정말 무모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는 생명을 다루는 것이 그렇게나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생명을 멀리하고 살았다. 마음을 멀리 하니, 그들이 귀여운 존재였다는 것조차도 완전히 망각해 버리고 말았다. 애완견을 키우는 친구가 자신의 반려견을 보여주어도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고, 지나가는 모든 길고양이들에게 손짓하며 말을 거는 친구를 볼 때 마음 한 편으로는 부끄럽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랬던 내가 최근에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보여주는 고양이 동영상에 완전 혼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옷’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는 그 존재에게, 인간이 보았을 때 귀엽다고 생각하는 온갖 귀여운 옷들을 그들에게 입히는 영상이었다. 그들은 마치 사람처럼, 청바지를 입기도 하고, 메이드 복을 입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수영복을 입기도 했다. 마치 인간을 흉내 내는 그 존재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존재들에게 확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에는 옷을 입은 고양이들이 그저 흥미로웠는데, 자꾸 보다 보니 그들이 부리는 애교, 소리, 몸짓 모든 것들이 점점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작은 생명이 내 가슴속에 몽글몽글한 장미들을 피워주었다. 작은 존재들을 보며, 정말 잊고 있었던 따스함이 다시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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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내가 직접 어르고 달래며 키우기에는 책임감이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온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는 따스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이 꽤나 좋다.
작은 생명들을 점점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슬슬 결혼할 때가 오고 있기는 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