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생긴 대로 살자.

-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의 균형점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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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새로운 것이 좋다. 새로운 만남, 경험, 음식, 사람, 장소 등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상황에 나를 놓을 때면 나조차도 잘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는 것이 좋다. 처음 방문한 장소에서 생소한 음식을 먹을 때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피부 결에 소름이 돋고, 심장소리가 쿵쿵 뛰어 귓가에 울릴 때마다 비로소 나는 진짜 살아있음을 느낀다.


반대로 익숙한 것도 좋다. 익숙한 만남, 경험, 음식, 사람, 장소 등 예전의 경험이 서려있는 추억 속에 다시 나를 놓을 때면 그 좋았던 기억들이 몽글몽글 떠올라 다시금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익숙한 옷을 입고, 손에 맞게 설정된 컴퓨터로 내게 주어진 일을 할 때에는 그보다 더 편한 시간은 없다고 생각할 때도 많다.


늘 새로운 것을 지향하면서, 익숙한 것들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을 목도하는 일이 잦다. 그렇기에 늘 새로운 도전을 한다지만 그 끝에는 결국 내가 편안하고 익숙한 것들을 찾아 회기 해버리는 결과를 자주 낳는다. 새로운 것을 향해 잠시 발만 담가 보았다가, 진득하게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늘 하던 방식으로 돌아간다. 이게 늘 내가 행해왔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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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기질을 할 수 있다는 TCI 검사를 해보았다. 나는 자극 추구 성향이 높아서 내가 끌림이 있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직접 해보지 않고는 결코 참을 수가 없어서 저돌적으로 행하고야 마는 피를 타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 기질이 지속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를 오랫동안 잡고 꾸준히 행하는 충성심과 인내력은 상대적으로 다소 낮았다.
하지만 이 단순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면서 내가 여태까지 무의식 중에 했었던 행동들에 많은 실마리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다양한 활동들을 직접 해보는 것을 좋아했는지 혹은 그 많은 활동들을 해왔음에도 꾸준한 성과를 내지 못하였는지 등을 TCI 검사에서 나타내는 문장 하나로 확연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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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것은 나의 발길이 닿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경험이 강력하게 이끌려, 여태까지 100번 이상의 모임 내지는 파티를 나가보았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많은 모임을 다니면서도 무언가에 꾸준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경향은 내가 주최한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추진력은 타고나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지체 없이 사람을 모아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또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지레 실망하며 여태 들인 열정들을 빠르게 식혀버렸다. 그렇게 나는 곧장 늘 해왔던 대로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또다시 내 피를 끓게 하는 새로운 활동들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고 찾아보면서 많은 시간을 토해냈다.

내가 직접 운영했었던 음악 모임이 딱 이 모양이었다. 내가 결국 서울에 올라온 계기도 다양한 기회와 경험에 대한 갈망이 컸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기회들이 가득 찬 곳 서울로 가기 위해 학창 시절부터 그리도 부단히 열심히 살아왔나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 땅에 올라왔을 때 그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모임, 그리고 파티에 나가는 것과 동시에 내가 직접 모임을 주선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 그리고 글쓰기를 더한 활동을 생각해 내었고 실제로 모임을 조직해 보기도 했었다. 참가자들과 같이 해볼 활동과 공간 대여, 시간 조율과 가격 책정까지. 하나하나 고민하고 또 조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첫 모임에는 정말 감사하게도 다수의 인원들이 참가해 주었다. 첫 모임이 끝나고, 다음 모임을 추진해 보았으나 생각보다는 반응이 시들했다. 결국 저조한 참여율에 만 3회가 되지 않아 내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그 음악 모임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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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새로운 것들을 거의 추구하지 않는 모습도 내 안에는 있다. 특히나 나의 취향과 관련된 것들이 그렇다. 대표적으로 내가 입는 옷들이나 머릿결 모양, 좋아하는 영화의 장르나 즐겨 듣는 음악 등이 그렇다. 직접적으로 나를 꾸민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취향을 잘 바꾸지 않는다. 나를 직접적으로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이들은 잘 알 테지만, 나는 사실 성인이 된 이후에 차림새를 바꾼 적이 거의 없다. 정만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정장 바지에 깔끔한 셔츠를 입었으며, 심지어는 폭염 특보가 내려지는 나날에도 반바지를 입는 날이 없었다. 정말 고집스럽기도 하지만, 내 외모를 파격적으로 바꾸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좋아하는 가수와 듣는 음악의 감정선도 그렇게 다양하지 못하다. 좋아하고 친숙한 음악만 몇 번이고 반복하고 집중해서 듣는다. 마음을 간질이는 한 곡이 너무 좋다. 이런 것들은 노력을 한대도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안다. 늘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이 역시도 한 때는 다양한 것들을 접해보아야 되겠다면서 손길이 잘 가지도 않는 생소한 음악들을 들어보곤 했었다. 하지만 결국 취향이 아님을 몸이 앞서 알았고, 결국 늘 듣던 음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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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생긴 대로 살아가기로 했다. 새롭게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들은 기꺼이 도전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나의 색깔을 지키기로 하는 것이다. 억지로 맞지 않은 옷을 입는 것은 성인이 된 이후에 그만하려 한다.

언젠가 주짓수를 배워본 적 있었지만, 타인의 관절을 꺾고 경동맥을 누르는 그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무지 힘든 일로만 느껴졌기에 그저 혼자서 강가에서 달리는 것을 선택했다. 혼자서 조용히 몸을 단련하는 것이 내게는 꼭 맞기 때문이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 행동들을 굳이 하지 않고, 내게 맞겠다 싶은 행동들만 골라서 한다. 행동을 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행동의 편식을 하니 내가 좋아하는 활동들에 집중이 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느낌이 늘 좋다. 그래서 내가 끌림이 있는 것을 찾으면 그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어른이 된 나의 커다란 생장점이 된다.

늘 새로운 것을 경험하길 원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얼마큼 더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그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별 것도 아닌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확신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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