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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부러움이 샘솟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 되었든 열매를 맺어낸 분들이다. 대학원을 졸업했다거나, 직장에 취직했다거나, 가정을 꾸렸고 자식을 얻은 사람들이 응당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 모든 이들은 사랑이든 공부든 무언가를 꾸준히 했고, 그것에 대한 열매를 맺어내었다. 그 사실 자체가 나에겐 늘 대단하고 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물론 나 역시도 현재 대학 학위를 취득했고, 또 어딘가에 취직해 소속되어 일하고 있다. 문득문득 내가 여태껏 일구었던 성과들이 커다랗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이루어야 할 수많은 성과들이 많기에, 펼쳐질 미래가 아주 막연하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고, 어떻게 다른 이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지, 그것을 어찌 넓혀갈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끝맺어야 하는 것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나를 얻어내기 위해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늘 상기하며 살아간다. 하다못해 나는 대학 졸업장 하나를 얻어내는 데에도 근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방황하고 헤맬 줄 몰랐다. 사회와 세계에 수백 번 부딪히고, 나 자신과 수천번 다툰 끝에 얻어진 결과물이라 나에겐 이 대학 졸업장 하나가 굉장히 큰 의미이다.
그리고 한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이렇게 온갖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직장’이라는 것을 손아귀에 하나 쥐기까지 나의 모든 능력과 역량들을 내어놓고 공작새가 된 것처럼 상대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잔뜩 몸집을 부풀렸다. 또, 겨우내 선택받은 것에 대한 안도의 눈물을 흘리던 그 날을 기억한다. 이 작은 경험들을 통해 세상에 벌어진 모든 성취와 그 성과물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자세를 가졌다. ‘파과’라는 이름으로 늦가을 즈음 염가에 팔아버리는 멍든 사과에도, 잘 듣지도 않는다면서 불평을 일삼던 싸구려 볼펜 한 자루에도 누군가의 피땀 흘린 고뇌의 결과였다는 것을 인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불만이 가슴에서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 그 성과에 머무른 사람들의 온기가 맺히며 목젖을 탁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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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머무를 수 있어야 성과를 일궈낼 수 있다.”라는 아주 간단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나 역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늘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가 평생 나를 괴롭힐 일생의 숙제이다.
나 역시도 돌아보면 기어코 열매를 맺은 것도, 혹은 익기도 전에 꽃망울을 떨어뜨린 것도 있다. 내가 맺어낸 열매 중 단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일본어’이다. 타국의 언어에 혼신을 다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아주 순식간에 바람처럼 찾아왔다.
일본을 여행하던 중 정말 우연한 계기로 현지인과 인연이 닿아 대화를 나누게 된 일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일본어를 아주 조금 더듬더듬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웬만한 대화까지는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부족한 언어와 번역기를 사용해서 어떻게는 서로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지만, 상대의 입에서 쫑알쫑알 나오는 이해 못 할 타국의 언어를 누군가의 도움 없이 나 스스로 온전히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완전한 몰입을 해보았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일본어 단어를 듣고, 쓰고, 외우고, 말하면서 완전히 그 언어를 몸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 여름밤, 나는 일본어 단어를 외며 잠에 들었고, 심지어는 일본어로 꿈까지 꾸었다. 그리고 전날 외웠던 그 단어를 되새기며 침대를 일어났다. 이윽고 그런 생활을 3개월이나 계속한 끝에 그이가 입 밖으로 뱉어내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하나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언어에 열성이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단지 내가 친해지고 싶은 이가 쏟아내는 언어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다.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욕망 하나가 생애 처음 내 손으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었다. 그 안에는 나의 피땀 어린 머무름이 있었고, 지금도 이따금씩 그 기억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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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내속에서 여물지 못한 꽃망울들은 훨씬 더 많다. 나는 고교시절 연극학을 전공하길 꿈꾸었지만 결국 관련 학과로의 대학 진학은 실패했었다. 대신 동아리 활동을 통해 공연예술 업계에서 음향 크루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고, 나는 그때 처음 공연 산업에 몸을 던져보게 되었다.
뮤지컬 공연의 관객석에 앉을 때, 그리고 황홀한 선율이 내 달팽이관을 타고 흐를 때 온몸에 전율이 돋으며 당장이라도 그 무대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고 나니 생각보다는 가슴이 뛰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생각보다는 육체노동이 가득한 공연 업계에서 수없이 테이프를 자르고, 붙이고, 무거운 철제 구조물들을 나르는 동안 그 뜨거웠던 가슴은 빠르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이내 열정보다는 ‘일’로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나 자신이 알았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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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수많은 경험을 통해 겨우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머무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의식적이고 필연적으로 끝까지 머무르려 노력한다.
음악과 글쓰기에 대한 영혼의 열정이 사라지지 않도록 현재 나는 매주 음악과 글쓰기를 합친 청음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딱 한 명의 참가자만 관심을 가져주는 경우에 상대적으로 힘이 빠지는 날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이와 함께 주제에 맞는 음악을 듣고 소통하며 파생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일을 한다.
이제야 슬슬 ‘성과’라는 것을 잡아챌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진리 하나를 목도하고 체화한다. 이루어내려고 하면 반드시 진득하게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흔들림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며 성실히 임할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실함의 고결한 가치를 점점 더 깊숙하게 깨달아 간다.
꾸준함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나는 이제 열매 맺는 방법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