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꽃 꽂는 남자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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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사람을 만들 듯,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느새인가 나 자신을 정의하려 드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령,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주위에 남자들만 득실거렸던 남고 시절이나 군대 시절에는 분명 본성이 그렇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남초 사회에서 쉬이 연약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곧 상대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별일 아니더라도 눈에 힘을 주는 척하는 날이 많았다. 그만큼 내 속에 숨어 있던 남성성들을 어떻게든 잔뜩 끌어올리려 분주하던 나날이 있었다.


그것은 여초 환경에 가서도 똑같았다. 같은 말을 듣고 뱉더라도 혹여 그 안에 행간이 숨어져 있지는 않은가 문득 생각해 보게 된다. 주변인들에게 보고 듣는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외모나 미용에도 관심이 생긴다. 그렇게 어느새부터 그들이 추천해 주는 발크림이니 영양크림이니 하는 것들을 남몰래 몸 구석구석을 찍어 바르는 나 자신을 발견하던 나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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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완전히 여자들이 가득한 환경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조직만 본다고 하더라도 나를 제외한 모든 구성원들이 나와는 다른 성별이다.
허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 동성만이 가득한 환경에서만 생활했었다. 남고 기숙사와 군대 내무반을 거치면서 다수의 남성들과 매일 같은 공간에서 잠자리를 드는 것이 예삿일이 되었다. 그들과 수많은 밤을 함께 보내면서도 서로 감정 교류 하나 없던 밤들도 많았다.
스리랑카라는 타국 생활을 할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혹여나 있을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당시의 스리랑카 사무소 소장님께서는 타국가와 달리 모두 남자 단원들만 선발하여 받아들이셨다. 그런 탓에 우리 사업은 속도감에 강한 추진력으로 업무를 진척시키는 것은 잘했었지만, 이에 다양한 시선 혹은 혹여 우리 사업으로 피해를 받는 이들을 사려 깊게 살펴보긴 힘들었다. 그것이 우리의 색깔이었고, 우리들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카멜레온이 피부의 색을 완전히 바꾸듯 나의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행, 관광 업계를 좋아하고 희망해서 이 세상으로 뛰어들게 되었지만 사실 입사 전까지 이렇게나 여자가 가득한 공간인지 알지 못했다. 까마득한 나의 상사부터 같이 문을 열고 들어온 동기들까지 모두 이성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극명한 차이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녹아들라고 했던가, 나는 아무런 선택권 없이 그 사회에 융화되어야 했다.


같은 울타리 안에 있지만 그들과 완전히 동화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더 가까웠다. 어느 순간이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이 보였고, 차라리 나는 균열을 만들지 않는 편을 택했다. 이전에 늘 행하고 배워왔던 방식대로 널따란 질그릇을 하나 만들어 놓은 뒤 넘치거나 말거나 모두 다 담아두기로 했다. 그것을 쏟아버릴 일은 결코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여태 발하지 못한 나의 숨겨진 여성성들이 조금씩 그리고 자연스레 빛을 발하는 듯했다. 앞서 이야기했던 미용 역시도 어찌 보면 나의 지난 세월 속 숨겨 놓은 욕망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삼겹살에 소주 대신 치즈 파스타에 와인을 곁들이는 우리의 회식 문화가 꽤 만족스러웠고, 내 안에 알지 못했던 여성성을 바탕으로 나와는 다른 세상을 조금씩 관찰해 보기 시작했다. 가령, 이전에는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이성의 손톱이었는데 이제는 그 위에 무언가 그려져 있는가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또, 그들의 귓불이 청색으로 빛나는지 은색으로 빛나는지도 어느새인가 점점 시선 속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 속에 아주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던 여성성들이 조금씩 저변을 넓히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히려 하나로 꽉 가두지 말고, 적당히 양을 섞어 균형점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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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속의 모든 욕구들을 자연스럽게 양생해 보기 시작했다. 그중 내가 골랐던 것은 요가와 독서, 그리고 꽃꽂이이다.
특히나 꽃은 내게 무척이나 멀기만 한 존재였다. 남자로 태어나서 내 손에 직접 꽃을 쥐어본 경험은 많지 않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드물었다. 기껏해야 졸업식 정도에 받아볼까 했었지만 일찍 행사를 끝마치고서 사진 찍을 여유도 없이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들이켜느라 바빴던 우리 집안 분위기에는 그리 꽃을 반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더욱이, 자식들에게 밥 한 끼 잘 챙겨줄 시간도 부족했던 우리 가족에게 기꺼이 꽃을 만질 여유까지는 한참이나 부족했었다.

하지만 나의 외할머니는 달랐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셨던 할머니는 승강기가 없는 아파트의 6층에 사셨는데, 할머니는 어디서 났는지 아파트 1층에 신문지 몇 개 크기의 화단에다가 온갖 식물들을 심어 놓으셨다. 그 자그마한 땅에 노란 호박과 상추를 심었고, 이름 모를 꽃들을 잔뜩 심어 관리하셨다. 우리 할머니는 그 생물들을 만나러 6층에서 1층까지 부지런히 오르내리셨다.
그 넓은 아파트 단지 안에 계절마다 색색이 얼굴을 바꾼 채 피어있는 집은 우리 할머니의 집 앞 밖에 없었다. 우리 할머니 덕분에 나는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배웠고, 삭막한 건물 숲 사이 이따금씩 꿀벌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에도 점점 식물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퇴직 후 취미로 집에 다육식물들을 하나씩 들이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산세베리아가 되었고, 스투키가 되었고, 몬스테라가 되었으며, 아보카도가 되었고, 끝끝내 방울토마토가 되었다. 통창이 나 있는 본가의 베란다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식물들이 잔뜩 자리 잡아 자라나고 있었고, 우리 어머니께서는 그들이 내뿜는 녹색 빛깔 안에서 빨래를 세탁하고 건조시켰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빼곡하게 차오르는 식물들을 보며 나도 점점 더 벅찬 감명이 느껴졌다. 생물에 대해 아무런 흥미가 없었던 나에게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창가의 초록 친구들이 늘 적잖은 위로를 건네주는 듯했다. 끝내, 나 역시도 맨손으로 그들을 직접 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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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최근에 꽃꽂이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끔 꽃을 들었던 적 말고 손에 색색의 꽃을 직접 잡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꽃은 오직 나를 위한 선물로 삼았다. 색채가 없는 일상 속에서 조금이나마 색깔을 입히고 싶은 마음도 컸다. 꽃을 만질 때마다 내 안에 숨은 모든 여성성을 총 동원하여 꽃대를 자르고 꽃잎을 다듬는다. 그리고 최대한 풍성해 보이게 꽃봉오리를 잔뜩 펼쳐놓고서 그 향내를 맡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작은 생명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는가, 생각한다.

인정하기로 했다. 꼭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이 역시도 온전히 선택하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다시금 되새겼다.
어느 날엔 화병 안의 꽃향기를 맡고서, 체육관에서 글로브를 낀 채 누군가의 복부를 가격한 날도 있었다. 이렇게나 내 안에는 많은 것들이 이질적으로 혼재되어 있지만 이제는 그에 헷갈리기보다 조화롭게 나의 색깔을 빚어가려 한다. 그리고 다시 되뇌어본다. 정녕 내가 둘러싼 환경이 나를 만들어 낸 것이 맞는가, 혹은 내 속에서 전부 발하고 토해낸 것이었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꽃꽂이가 마냥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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