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다한증과 함께 살아온 나의 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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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 다한증(多汗症; 일정 신체 부위에 과도하게 땀 분비가 일어나는 것)과 함께 평생을 살아왔던 나에게는 유독 손과 발에 관련된 기억들이 많다.
까마득하게 어린 날부터 나는 손과 발에 땀이 항상 가득했었다. 잠을 잘 때에는 땀이 나지 않는데, 아침에 일어나 등교하여 오전 수업 시작종이 울릴 때 즈음 가슴이 울렁거리며 심장으로부터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하고 이내 손발에서 뜨거운 액체들이 한 방울씩 맺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의 경우에는 아주 심각한 정도가 아닌지 땀이 맺혀 주르르 흘러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내 손이 닿고 지나간 물건에는 꼭 소금기가 남았다. 친구에게 빌려 쓴 아이패드 액정 위에도, 공용 공간에서 사용하는 키보드 위에도, 내 손을 스치고 지나간 농구공 위에도 나의 손길이 닿았다 하면 새하얗게 배어 있던 소금기가 버젓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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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손에 물기가 가득했기에 특히나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나 스스로가 손에 물기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전기/전자 제품을 사용할 때 특별히 더 조심해야만 했다. 내 손이 닿고 난 이후에는 금방 부식되어 버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또한, 테이프를 붙일 때도 내 손을 거치고 나면 점성이 금세 떨어지는 일이 일쑤였다. 칼을 쥘 때는 언제나 미끄러웠기에 조금만 방심하면 손끝에 늘 핏방울이 맺혔다. 언제나 그 모든 것들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칠 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긴장이 되면 손에 물기가 더욱 많아지는데, 답안을 기입하는 OMR 카드를 잘못 문지르기라도 하면 모든 사인펜 자국이 번져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시험장에 들어가면 거의 붓글씨를 쓰듯이 펜대를 하늘 위로 바짝 세워 들고 써야 했다.
늘 손에 콩죽처럼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보며 주변의 어르신들이 “이래서 나중에 여자 손이라도 잡아볼 수 있겠냐”라며 우스갯소리를 자주 던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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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어렸을 적에 손끝이 터져버리는 날도 많았다. 부르트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피부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피가 보였다. 다한증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일날 성당에서 손을 모으고서 기도를 하고 있노라면 가끔 손끝에서 바알간 핏방울이 고이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수돗가에서 손을 씻어냈다. 그리고서 다시 구부정한 모양으로 기도 손을 모았다.
조금 더 자라서는 손끝이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꼭 손과 발의 모든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마치 곤충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허물을 벗어내는 듯 나 역시도 온전히 피부 껍질을 다 벗겨내고서 그 속에 숨겨진 새살이 발갛게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든다. 피부가 벗겨지는 그 시기가 되면 참 신기하게도 손 발에 땀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건조해지는 바람에 하루 종일 핸드크림을 바르더라도 부족한 지경이다. 여전히 심장으로부터 뜨거운 기운이 말초신경으로 흩어지긴 하지만 신기하게도 땀이 차오르지는 않는다.
이러한 증상은 발에도 똑같이 나타나는데, 발에 탈각 증상이 일어난 때면 내가 지나간 자리에 고스란히 발에서 떨어진 표피들이 찢어진 휴지조각처럼 하얗게 남는다. 나와 같이 기숙사 생활을 했던 고교 동기들은 그 모습을 마땅찮게 여겨 곧잘 내게 핀잔을 주곤 했다. 나도 그 환경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손과 발에 땀을 진정시키는 약도 발라 보았지만, 나의 땀은 약효를 모두 다 뚫고 나올 만큼 강력했다.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나의 손과 발은 언제나 참 극단적이었고, 바람 잘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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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생을 땀 묻은 손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 덕을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끈적한 느낌 그 자체를 싫어하는 이들은 내 손에 닿는 것조차 싫어했는데, 어린 마음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곧 잘 상처를 받곤 했다.
그러다 군대를 갈 때 딱 한 번 덕을 볼 뻔했었다. 신체검사를 받을 때 주먹을 쥐고서 1분 안에 손의 땀이 땅바닥으로 뚝 떨어지면 병역을 면제 처리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손바닥에 가득 맺히기만 할 뿐 도저히 땅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입대 후 매일 신었던 전투화는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나의 발은 항상 젖은 상태였고, 겨울밤 부대 뒷산에 사격이라도 나갈 때면 그 젖은 발이 꽁꽁 얼어붙어 완전히 동상에 걸린 듯 며칠씩 쓰려오기도 했었다. 나의 발은 늘 젖어 있으니 무좀이 생기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군대 시절에는 정말 많은 요소들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나의 발 역시도 언제나 한 부분을 차지했었다.
나의 모습을 안타깝게 본 군의관님이 약물로 치료를 해보는 것은 어떻냐고 권해 주셨고 그가 건네어준 약을 먹어 보았다. 그 약은 곧잘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한 끼 건너뛰자 또다시 손발에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평생을 함께 살아온 이 땀 때문에 평생 병원 신세를 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운명처럼 이 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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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는 얼마나 탈피를 많이 했는지 이제는 지문이 거의 없어진 정도이다. 해외로 출국을 하거나 입국 심사를 할 때 지문 검사를 받을 일이 많은데, 지문 자체가 인식이 되지 않아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30대에 접어든 지금은 ‘손’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 자연스레 큰 부담감이 따른다.
알고 보니 가족력이라 했다. 우리 외삼촌 역시도 어릴 때 나처럼 땀이 많이 났었나 보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며 피부에 수분이 말랐고, 어느 순간부터 증상이 완전히 호전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야기했던 “나이가 들면 나아질 것이다.”라는 말을 굳게 믿어 왔는데, 아직 내 손에는 땀이 흥건한 것을 보니 “나는 아직 나이가 많이 들지는 않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늘 따뜻한 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글을 작성하거나 편지를 쓸 때 곧잘 나의 따스한 마음이 글 속에 담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스한 손길’이란 정말 나에게 딱 맞는 단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나의 손은 붙타오르고 있었으므로 그 누구에게나 나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을 것이다.
나의 모든 생각과 글들은 뜨거운 손으로부터 따스한 마음과, 그 끝에 맺어진 땀방울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