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상사와의 면담 중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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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을 듣는 순간 왠지 말문이 꽉 막히고 말았다. 매일 나는 돈을 벌고 있었지만, 사실 ‘왜’는 없었다. 응당 나는 하루를 살아야 하니까, 전기세와 월세를 내야 하니까, 무더운 여름날에 수박 한 통 사 먹어야 하니까, 늙어 가는 어머니에게 지폐 몇 장 쥐어드리며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야 하니까. 내 머릿속에는 이렇게나 일차원적인 답변들이 계속해서 맴돌았으나 왜인지 입 밖으로는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런 유치한 것들 말고, 무언가 더 거창한 이유를 대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나 간단한 질문을 받았음에도 나는 한참이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내 속에 무언가 얹힌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에게 달리는 이유를 물어본 것 같았다. 달리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경주마가 그냥 달리듯이 나 역시도 그저 돈을 벌었을 뿐이다. 돈을 번다는 것은 남들과의 경쟁도 아니었고, 또 혼자만의 사투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며 맹목적으로 돈을 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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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실제로도 그랬다. 최근까지의 수입은 모두 소비를 위한 벌이였다. 하루 밥을 굶지 않기 위해, 마른 목을 채우기 위해, 매일 밤 어딘가에 몸을 뉘이기 위해 돈을 벌었다. 모든 소득은 하루를 위한 소비에 향해 있었기 때문에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모든 금전은 그저 하루살이에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속이 없는 학생이었고, 돈에 대한 관념보다는 그저 ‘돈을 벌어 본 경험’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최근이 되어서야 진정으로 소비 이외의 남는 돈을 경험하게 되었다. 직장인이 되어 하루하루 시간을 팔아 돈을 벌다 보니, 오히려 돈을 버는 시간이 쓰는 시간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었다. 돈을 쓸 시간이 없어 놔두기 시작하니, 생애 처음으로 통장에 돈이 쌓여보는 경험을 했다. 호의호식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원하는 만큼 소비를 했음에도 돈은 남았다. 여태까지의 벌이와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벌이의 목적은 오직 쓰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그러고도 남으니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쌓여 있는 돈을 보며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더 사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집도, 차도, 그리고 미래의 생길 내 아이의 기저귀도.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만약 내가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얻었을 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찬찬히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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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경제적 자유가 생긴다면 배움을 더해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연구자를 꿈꾸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 공부를 통해 조금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도 매달 받는 급여의 상당수를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사용하고 있다. 운동을 배우고, 음악을 배우며, 또 보드게임을 배우는데 상당한 돈을 쓴다. 지금은 이렇게 작게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이내 돈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원 없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충분한 기반이 다져진다면 전 세계를 유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경험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내 머릿속에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곳에 나를 던지면 그 생활 중에 배우는 것들, 그리고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매일같이 새로운 환경에 나를 내던지면서 또 세상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쌓고 싶은 욕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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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나의 소득의 이정표는 ‘배움’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또 마음껏 배우고 원 없이 유랑하고자 한다. 다음에 누군가 내게 돈을 왜 버는지 물어본다면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답을 찾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