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항공 승무원이 되고 싶다며 떠들었지만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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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이 그렇게나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지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곧 ‘하루를 무사히 생존하는 것’을 의미했기에, 생존을 위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일상생활의 잡념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여행 자체도 참 좋았지만 여행지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늘 달고 있던 쓸모없는 생각들이 말끔히 없어지게 되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꼭 여행을 떠나야만 생각을 비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던 여행을 떠나면 잡념이 사라졌기에 나는 메마른 땅에서 우물을 찾듯이 여행을 갈구했다.

사실 나를 옥죄는 현실이 싫어서 여행을 떠났었지만, 시행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나름 여행의 일가견이 생기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나를 점점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로 선택한 것들이 나의 자랑거리이자 무기가 될 수 있다니, 내 삶에 이것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행이 일상이자, 나의 밥벌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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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을 앞두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나서게 되면서 첫 분야로 어떤 것을 선택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단연 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그렇게나 좋아했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 좋다는 여행으로 돈을 벌 수 있기는 한 걸까 싶었다. 그때 내가 기껏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 작가가 되거나 여행 회사에서 가이드를 하는 것뿐이었다. 당시에는 여행 유튜버나 크리에이터같은 직업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대신에 매번 비행기를 할 때 마주했던 승무원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 직업이야 말로 나의 환상을 다 채워줄 수 있는 천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승무원이 되고 싶다며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졸업을 앞두고 있을 시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역병이 돌고 있었기에 여행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모두 없어진 상태였고, 기존에 승무원을 준비하던 사람들도 모두 백기 투항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싶었다. 채용 공고가 없으니 오랜 시간 준비해 오던 경쟁자들이 다 떨어져 나갔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대체로 준수한 외모와 어학 능력, 그리고 수영 실력이 필요했다. 더해서 필수는 아니지만 서비스 관련 경력이 있으면 좋다고 했다. 해외를 다니면서 매일 같이 했던 것들이 외국인과의 소통이었고, 그 결과 나는 꽤나 수준급으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에 단연 자신이 있었다. 무엇인가, 승무원은 내가 적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취하게 되면서 항공 승무원에 대한 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기 시작했다. 승무원 준비를 할 때는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었다.

내친김에 나는 승무원 학원을 등록하고, 수영 강습을 결제했다. 학원에서는 주로 자기소개서를 봐주었고, 승무원 면접의 기초를 알려주셨다. 면접의 톤과 매너, 그리고 인사와 자기소개법 등 면접의 다양한 스킬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모의 면접을 보았다. 그제야, 나는 면접에 있어서 그렇게나 고쳐야 할 것이 많은 지원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게 서 있는 자세도 비틀려 있었고, 목소리는 호소력이 없었으며, 눈을 심하게 깜빡이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학원에서는 나의 말씨와 억양을 표준어로 바꿀 것을 권장하셨다.


사실 다른 것보다 평생 달고 왔던 나의 말씨를 고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조금 더 나아가 사실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도 들었다. 평생 동남 방언만을 쓰다가 억지로 말씨를 나긋이 바꿔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어색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어색한 말투를 교정해 보려 나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말투를 바꿔보려 할수록 본연의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크게 느껴졌었고, 이렇게 숨겨지고 꾸며진 모습으로 매일 손님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물론 밥벌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랴 싶었겠지만, 매일 내 모습이 아닌 어떤 것으로 승객들을 마주할 자신은 없었다.


매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나 꿈꿨던 직업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마음이 식어가기 시작했다. 열정이 점점 사그라드는 것을 느낄 때 즈음 응시하고 있던 승무원 면접에서 최종 탈락하게 되면서 들끓던 열정은 차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승무원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나는, 승무원의 기본 자질인 수영을 잘하지도 못했다. 내게 수영이란 해군병 시절 생존을 위해 배워야 했던 생존 수영이 전부였다. 그래서 수영 실력이라도 키우겠다며 동네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깨작깨작 배우는 척을 하다가 승무원 면접에서 최종 탈락하자마나 나는 아예 발길을 끊어버렸다. 당분간 수영을 배울 동기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나의 열정이라는 것은, 사실 이렇게나 초라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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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사회생활이라는 것 자체는 사실 가면과 연기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최소한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며 내 밥벌이를 하려고 있는 듯하다.

아직은 승무원이 되지 못했지만, 승무원이 되었으면 내 인생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과연, 꿈을 이룬 나는 행복했을까? 사실 지금도 말하자면 서비스 직에 가까운데, 내 체질이 서비스직과 완전히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무척 괴롭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나는 승무원의 일이 좋다기보다는 그 일 끝에 돌아오는 여행이 좋았었기에 업무에는 무한한 회의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고픈 여우가 신포도를 쳐다보듯, 지금까지의 내 생각은 이렇게 결론이 났다.


승무원을 하고 싶다며 실컷 이야기하고 다녀놓고선 결국 표준어 하나 잘 구사하지 못해서 좌절한 사람을 찾는다면 그게 바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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