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모르는 이와의 동침

-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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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성적으로 즉흥적인 사람이라, 순간 무언가를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즉흥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공항 카운터에서 비행기 표를 산 적이 있을 정도이다. 외국에 사는 친구가 귀국하면서 농담 삼아 자신의 국가로 같이 귀국하자고 이야기했는데, 마침 수중에 여권이 있었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에 그가 카운터에서 미리 산 항공권을 발권할 동안 나는 현장에서 직접 표를 구매했다. 혹시나 현장에서 표를 구매한다면 더 저렴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현장에서는 어떠한 할인도 없이 정가로만 살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여행을 떠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나는 즉흥적으로 여행을 한다.


그런 만큼, 숙소도 여행지 현장에서 즉흥으로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숙소를 미리 예약한다는 것은 그 예약 일정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 느낌이 참 싫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도시가 좋아서 더 머물고 싶은 곳이 있고, 그 반대로 빨리 도망치듯 떠나고 싶은 도시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미리 숙소를 다 예약해 버리면 좋아하는 도시도 빨리 떠나보내야 하고, 있기 싫은 도시도 계속해서 남아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내 마음을 조여온다. 그래서 현장에서 그냥 있고 싶은 만큼 숙소를 예약해 버린다. 그러면 오히려 여행에 있어서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급작스러운 사고가 생기거나 원래 가려던 곳에 못 가게 되더라도 늘 마음에는 여유가 있다. 그냥 새로운 곳에서 천천히 숙소를 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해외여행을 할 때 도착 도시에서의 숙박만 미리 예약하고, 그 뒤로는 현장에서 그때의 기분과 느낌에 따라 예약하는 것이 내 여행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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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나는 여행할 때 즉흥적이게 활동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 모르는 이와 동침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도 여행지에 가서는 동행을 구하거나, 여행 정보를 얻을 겸 인터넷 여행 카페를 둘러보곤 한다. 그중에 사정과 일정이 맞으면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모르는 이와 같이 동침을 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또 겁이 많게 행동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여행지에서는 용기가 샘솟아 모르는 이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놓고 잠에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여행지에서 참 다양한 사람들과 동침했다. 하루는 여행지에서 만난 한 형님과 동침하게 되었는데, 새벽 중에 갑자기 그 형이 자다 말고 한참이나 휴대전화를 만지는 것이었다. 나는 어련히 그 시간에 연락할 사람이 있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새벽 중 그가 휴대전화를 만지는 손길은 내일도, 글피도 또 반복되었다. 그제야 나는 궁금증이 들었고, 이내 그에게 새벽 중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배시시 웃으며 새벽 중에 주식 단타 거래를 한다고 이야기했다. 주식 시장이 개장하는 한국 시간 9시에 맞춰 그는 일어났고, 약 1시간 동안 열심히 주식을 사고팔면서 여행비를 번 다음, 그 수익으로 하루를 여행하는 듯했다. 수익이 잘 나온 날에는 신식 숙소에서 자거나 질 좋은 음식을 사 먹었고, 수익이 없는 날에는 허름한 숙소를 전전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그의 주식 성적에 따라 나의 가계부도 새로 쓰였다. 그가 돈을 버는 날이면 밥과 음료를 얻어먹었고, 반대로 그가 돈을 잃은 날이면 내가 밥과 커피를 샀다. 그와의 여행길이 길어질수록 아닌 밤중에 하염없이 전화기를 붙들던 그에게 응원을 빌어 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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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랑을 찾아 외국으로 떠나온 이도 만났던 적이 있다. 터키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터키의 관광지가 아닌 한 시골 동네에 갔던 적이 있었다. 우연히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한국 사람과 연락이 닿아 만나보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는 당시 나와 나이 터울이 조금 있는 3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그는 여행을 떠나온 목적이 바로 인생의 반려자를 찾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전부터 외국인과의 결혼이 꿈이었는데, 하루하루 미루다가 드디어 사랑을 찾으러 비행기에 올랐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터키라는 여행지에서 조우하게 된 것이었다. 해외여행이 처음이라는 그는 참 특이하게도 첫 여행지도 한국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조지아’를 골랐었고, 조지아 현지에서 사랑에 실패한 뒤 ‘터키’라는 여행지를 선택한 듯했다. 그는 데이팅 어플을 통해 한 현지 터키인을 만났고, 그곳에서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지면서 아예 그곳에 정착하여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지 여성과 연애를 하면서 장기 숙박을 할 수 있는 전세방을 구했고 그 방에 남는 공간을 내게 내어 주시면서 잠시 스치는 여행객에게 푹 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 나는 약 일주일간 그의 집에서 머물며 영어를 못하는 형에게 영어를 알려주거나, 그의 여자 친구와 셋이서 한적한 시골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나는 곧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그는 사랑의 결실을 맺었고 그 현지인과 결혼하여 아직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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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로 여행을 할 때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났으며 많은 도움을 주기도, 받기도 했다. 렌터카 안에 차 열쇠를 두고 내려서 어쩔 수 없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구난 차량이 차문을 열어주었던 기억, 숙소를 예약 안 했다니 본인 이모 집의 안방은 내어주던 현지 친구, 본인이 재즈 가수임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공연에 기꺼이 초대해 주던 식당에서 만난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추억이 있다.

일상 속에서 쉽게 겪을 수 없는 사건을 다양한 여행지에서 만났다. 물론 늘 좋았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잠이 든 사이에 물건을 도둑질을 하려 했던 사람을 만난 것도, 심지어는 바로 옆 침대에 잤던 사람이 밤새 마약을 했던 사람이었던 것도 돌아보면 정말 등골이 오싹한 지경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낯선 이와 동침을 하는 날이면 꼭 깨달음을 하나 얻고 가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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