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당 21만 원을 받아 들고 내가 느끼게 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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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막 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나도 당연히 한 명의 유권자로서 원하는 대통령 후보에게 한 표를 선사했다. 나는 정치에 관심은 있지만, 정계에 진출할 뜻은 없고 언제나 위정자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좋은 정치를 해주시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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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투표를 할 일도, 또 그 투표의 결과를 직접 바라볼 일도 종종 있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에서 만날 시간을 투표로 정해냈으며, 학급 급장 선거에서 급장을 선출했고, 연극 동아리 회장을 추대했고, 시장과 도지사에게 한 표를 던졌으며, 마피아 게임을 하면서 투표를 통해 마피아를 색출해 내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투표를 거치면서 나의 한 표가 그저 막연히 공정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막연한 믿음이었다. 그러던 중 공공기관에 다니는 한 지인이 ‘선거 사무원’이라는 것을 내게 소개해 주었고, 그를 따라 ‘선거 사무원’에 지원하게 되었다. ‘선거 사무원’이 되는 조건은 간단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성인이어야 했고, 특정한 정당 소속이 아니며, 선착순으로 모집했다. 다행히 집 주위에 한 동사무소에서 나를 선거 사무원으로 발탁해 주셨고, 2024년 하반기에 치러진 서울특별시 교육감 투표의 ‘선거 사무원’이 되었다. 나는 민주시민의 일원으로 난생처음 ‘투표’의 과정에 참여해 보게 되었다.
해당 선거는 궐위에 의한 선거였기에, 선거는 오전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진행되었다. 다만 교육감의 보궐 선거였기에 법정 공휴일이 주어지지는 않아 일반적인 평일에 투표는 진행되었다.
투표 시작이 6시였기에 사무원들은 5시까지 투표장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면 적어도 새벽 4시에는 침대에서 일어나 준비해야 했기에 초저녁부터 잠을 청했지만 수면 리듬이 깨진 탓인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아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준비해 투표장으로 나섰다. 길을 나설 때는 오전 4시 30분 깨였으므로 아직은 세상이 엄청 어두웠다. 하지만 새벽 5시 정도에 투표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언제부터 준비를 하셨는지 선거 공무원들이 이미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으며 긴장된 모습으로 선거 사무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사무원들이 도착해 준비를 다 마친 후엔 간단히 사무원들에게 오늘의 업무를 분할해 주시고선 조식을 먹었고, 새벽 6시가 당도해 본격적으로 투표 사무원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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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사무원이 되어보니 그저 투표자일 때는 알 수 없었던 풍경들이 내 눈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새벽 6시부터 투표가 진행되었는데, 본인의 한 표를 선사하겠다며 새벽 5시부터 기다리던 유권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사실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의 감정이 차올랐다. 나에겐 투표란 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내 손에 쥐어진 투표권을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겐 밤을 꼴딱 새워버릴 만큼 중요한 권리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새삼 놀랍게만 느껴졌다. 새벽 일찍부터 투표장에서 가장 먼저 본인의 권리를 행사하고 돌아가는 그 당당한 모습들이 가장 먼저 보였고, 그 광경이 가장 큰 인상으로 다가왔다.
‘선거 사무원’은 특이하게도 업무 시작 전에 먼저 일당부터 주고 맡은 일을 수행하게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급여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고, 사실 전자 송금으로만 받던 일당을 현금으로 담아 봉투로 건네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업무의 시작은 모든 참관인들이 보는 앞에서 특수 봉인지를 붙이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각 당의 참관인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앞에서 특수 봉인지를 붙였고, 그렇게 기표함이 설치되었다.
내가 맡았던 업무는 선거인 명부에서 투표자의 등재 번호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선거인 명부에서는 담당 지역구의 주민들을 이름 순서대로 한 부, 그리고 생년월일 순서대로 한 부가 있었다. 생년 순의 선거인 명부를 보았을 때 그 지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주민은 만 110세를 바라보고 있었고, 또 지역에서 가장 젊은이는 이제 막 성인의 반열에 든 20살의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무려 90년의 세월을 건너 이들이 같은 명부에 있다는 것도, 거의 1세기를 거친 이들이 똑같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실제 사회생활을 하면 같은 사람 사이에 이렇게나 엉겁 같은 시간의 차이가 있을 경우 똑같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모든 것과 관계없이 완전히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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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원의 업무는 크게 선거인 명부를 관리하는 업무, 투표소 밖에서 투표장을 안내하는 업무, 그리고 사람들이 기표함에 투표지를 잘 넣는지 확인하는 업무로 크게 3가지로 나뉘었다. 사실 지방 선거, 대통령 선거 등에 비해서 교육감 재보궐 선거는 투표 열기가 뜨겁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평일 일과시간 중에 투표가 진행되다 보니 바쁜 업무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보다는 노년층의 투표 비율이 확실히 높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투표장 안내 요원이나 선거인 명부 관리인은 투표인이 없을 때 중간중간 쉴 수 있었지만, 투표함을 감시하는 인원은 장시간 긴장하며 계속 투표함만을 바라보아야 했으니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나 피로도가 강했다. 그래서 투표함 감시와 안내 인원은 서로 교대하며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오전 6시부터 공식적인 업무가 시작되었기에 조식, 중식, 석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고, 또 별도로 식대까지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 덕분에 12시간이 넘는 업무를 하면서도 커다란 피로도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긴장감이 감돌아야 하는 장소이지만, 워낙 업무 시간이 길기 때문에 투표 중간중간 관리인들이 각자 가져온 간식을 나눠 먹으며 여유 시간을 가질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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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를 하루 종일 지켜보는 일도 난생처음이었는데, 이를 통해 느끼게 된 점도 꽤 많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부정 선거는 정말 행해지기가 어렵다.’라는 것이다. 일단 모든 투표에는 투표 참관인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었고, 또 선거 감시인들이 투표 중에 수시로 찾아와 투표 중 소요 사항이 없었는지 꼭 확인하곤 했다. 그리고 투표가 끝나기 30분 전부터 경찰관들이 찾아왔고, 투표가 끝나자마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봉인지로 봉인 후 경찰이 직접 투표함을 호송했다. 적어도 내가 보았던 투표 과정에서는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다. 그제야 나는 정말 믿을만하고, 합리적인 사회에서 신뢰하며 투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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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21만 원을 챙겨 집으로 가는 길, 무엇보다도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했고 또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아주 조금 더 신뢰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뿌듯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