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토록 꿈꾸었던 작사가 데뷔 성공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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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오후 12시 30분은 내 인생에 아주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오늘은 정식 작사가로 데뷔한 날이다.
처음 작사가를 꿈꾸었던 2019년 8월 8일로부터 정확히 2,333일이 지난 오늘, 드디어 나는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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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의 꿈은 정말 우연처럼, 그리고 운명처럼 다가왔다. 나는 대학 생활 중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경상북도청에서 주최하는 스리랑카 주재원 모집에 지원했다. 주재원 생활의 계약 기간은 총 2년이었는데 그중 1년은 현지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남은 1년은 귀국 후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설계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앞으로 길게 펼쳐질 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서 이미 나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살아온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작은 현지 교민 사회를 쏘다니며, 일면식도 없는 한인들에게 커피라도 마시자며 대담하게 물어보곤 했다. 그 제안에 화답해 주신 분들이 더러 있었고, 선배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해외에 있다 보니 특이한 이력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다가 스리랑카까지 온 사범님, 서핑이 좋아 목 좋은 곳에 서핑샵을 차린 사장님, 한국 방송국에서 10년 이상 방송 작가 생활을 하고 스리랑카에 온 봉사 단원 등 다양한 직군의 이야기를 단시간에 들어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선배들이 겪었던 고충을 상상하고, 또 나의 미래에 대입해 보았다.
그렇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곳은 스리랑카라는 이국의 작은 땅이지만, 만나기 전의 삶은 하나같이 다채로웠다. 그 덕에 그들을 거울 삼아 나의 미래를 비추어 보았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을 섞은 일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작사가였다. 작사가라는 꿈이 정말 꿈결처럼 내게 안기는 순간이었다. 나는 조국으로부터 이역만리 떨어진 타지에서 평생의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스리랑카에서의 시간은 180도 달라졌다. 업무 중간에 틈틈이 음악을 듣고, 내 감상과 함께 눈에 띄는 작사법 등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었고, 노래를 들을 때에는 언제나 가사집을 보면서 청취했다. 한국 음악이든, 외국 음악이든 상관없이 가사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꽤 진심으로 임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작사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나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열정이 끓어올랐다. 진정 나의 수식어가 ‘작사가’가 될 수 있기를 매일 밤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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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배경도 없이 귀국한 나에게 누군가 갑자기 무턱대고 곡을 의뢰할리 없었다. 정식으로 작사가가 되기 위해서는 작사 학원을 다니는 것이 가장 직관적이고 빠른 방법이었다. 얼마간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나면 학원에서는 데뷔할 수 있는 데모곡을 수강생들에게 전해주는 방식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작사 학원은 서울에 위치해 있었기에, 작사 학원에서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서울 땅으로 올라와야 했다. 그래서 나는 졸업을 앞두고서 고민도 않고 수도권의 취직을 준비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취업 준비 기간이 그토록 괴로웠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생각은 이미 취업하여 작사 학원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몸은 어쩔 수 없이 지방에 묶여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별안간 서울에 취업했을 때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학원부터 달려갔다. 그리고 본업이 조금씩 손에 익기 시작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작사 학원에 출입하며 작사 판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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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처음 발을 내딛는 분야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 나는 독학을 한답시고 남들이 썼던 가사들을 많이 들여다보기는 했었는데, 정작 내 손으로 가사를 다 써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완전히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음반의 글자 수를 따는 방법부터, 심상을 잇고, 감정을 섞는 방법을 배웠으며, 선배 작가들의 작업기 등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처음 써 본 나의 가사 수준은 아주 처참하였다. 아예 감을 잡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욱 맞겠다. 주로 강의는 아이돌 음반을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그때까지 아이돌 음악을 별로 듣지도 않았었다. 그랬기에 왜 아이돌 음악을 위주로 강의를 진행하는지 의문도 들었었는데, 알고 보니 기획사로부터 들어오는 음반의 90% 이상이 아이돌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작업하고 싶었던 발라드나 트로트 같은 장르는 오히려 비주류였고, 전체 의뢰곡 중 10%도 되지 않았다. 오롯이 한 곡을 다 쓰려면, 그리고 프로 작사가로 살아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아이돌 음악을 잘 알아야 했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요즘 유행한다는 아이돌 음악은 모조리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여태 너무 정제되고 틀에 박힌 글만 써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갓 10대를 지나는 아이돌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를 30대 아저씨가 고르다 보니 너무 올드한 느낌이 들었다. 전혀 맞지 않는 방향성에 나는 완전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작업했던 시안들이 점점 세상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채택된 작품과 비교해 보았다. 같은 주제로 같은 시간 안에 썼을 가사인데도 기성 작가들은 정말 음악에 착 달라붙는 단어들로 음악을 꾸며내고 있었다. 완전히 기가 눌리고 말았다. 당황했고, 감을 찾기 어려웠다. 작사를 위해 올라온 서울이지만, 이내 학원 측에 고사의 뜻을 비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난 오늘, 선물처럼 퍼블리셔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때 밤낮을 고민하며 썼던 발라드 가사가 채택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만 1년 만에 돌아온 반가운 선물이었다. 며칠 밤을 고민하며 써 내려간 글귀가 딱 1년 후에 빛을 발했다. 너무나도 놀라운 소식이었고, 정말로 기뻤다. 나도 이제 정식으로 작사가가 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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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가수 조세빈 님이 불러주신 음악의 음반에 정식으로 나의 이름이 올라갔다. 이제야 진정으로 다시 창작을 향한 힘을 되찾는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맹세코, 오늘을 시작으로 나는 가삿말의 길을 끊임없이 걸어갈 것이다.
오늘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 줄 하나이다. 오늘의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다.